입영을 앞둔 김성룡四단의 "입영전야"가 심상치 않다.
김四단은 제 1회 삼성화재배 본선 1회전에서
고바야시 사토루九단을 꺽어 X세대 돌풍을 예고하더니
2회전에서는 아예 다케미야九단의 '우주'에 뛰어들어
'비트'를 파고 탈출에 성공,
생애 처음으로 세계대회 8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40만달러 우승상금과 공익근무요원 혜택으로 가는 상행선 우승열차냐?
아니면 모든 영광을 뒤로한 채 머리깍고 훈련소를 향한 하행선 입영열차냐?
김성룡四단은 지금 '차표한장' 손에들고
서서히 플랫폼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삼성화재 전야제에서 사회를 맡았던 김동건 아나운서가
김성룡四단의 프로필을 소개하며 "별명은 밤탱이라고 한답니다"고 말하자
장내엔 폭소가 터져나왔다.
양반 스타일의 '점잖음'이 몸에 밴 프로바둑계에 말총머리와 염색머리,
반바지에 운동화 등 X세대의 온갖 유행을 선보이고 잇는 김四단은
"어른들"의 노파심과는 달리 성장속도가 무척 빠르다.
보기보다 단단하고 씩씩한 젊은이인 것이다.
91년에 프로가 됐는데(이창호九단과는 한살 차이지만 입단은 5년 늦다)
지난해(1995년)엔 벌써 MBC 제왕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 성적으로 연말에 95신예기사상을 수상했다.
삼성화재배의 한국시드는 7장,
95년도 기사들의 국내기전 획득상금을 계산해보니 김四단은 정확히 7위.
이바람에 김四단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세계최대의 삼성화재배 본선에 직행하는 행운을 잡았다.
본선 1회전의 상대는 일본의 고바야시 사토루九단이었다.
불리한 바둑이었으나 종반에 가면서 차이가 자꾸 좁혀지더니
행운의 반집승을 거뒀다.
언제나 웃는 얼굴의 김四단에게 행운이 이어지고있다.
그 행운이 이번에도 계속될까.
상대는 유명한 다케미야 마사키九단인데 과연 견딜수 있을까.
9월 24일 오전 10시 신라호텔 특설대국장.
돌을 가리니 다케미야의 흑이다.
다케미야의 흑번이라면 백발백중 3연성이고
중앙을 크게 에워싸는 바둑이 될것이다.
흑33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적이고 온건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비수를 감춘 그런수였다.
강수라면 맞받아 칠수 있으나 이런수는 이쪽에서 힘을 써봐야
아무 영항력이 없다. 이창호九단의 기풍에 딱 맞는 수다.
흑35에 김四단은 거듭 장고에 빠져든다.
한국기원이 시간기록표를 몽땅 잃어버려
어떤수에 몇분을 생각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당시 김四단을 놔둔채 자리에서 일어난 다케미야는
남의바둑을 유유히 구경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백36,38로 임기웅변하고 백40에 연결했다.
그러나 흑41이 통렬한 절단,
세력바둑을 잘 두려면 첫번째 조건이 공격을 잘 해야한다.
공격력이 없으면 우주류는 문자그대로 허장성세가 되고만다.
김四단은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장남인 김四단도 당연히 미국 영주권자가 되었으나
바둑이 좋아 서울을 떠날수가 없었다.
김四단은 최근 미국영주권을 포기했고
그러자 당장 군입대 영장이 나왔다.
미국영주권이 있으면 군대를 안가도 된다.
그런데 김四단은 영주권을 포기하고 입대영장을 받았다.
X세대라고 심성이 다 나약한건 아니다.
김四단은 바둑으로 치면 간명하면서도 두터운길을 선택했다.
매우 씩씩한 젊은이다.
이 바둑은 신기하다.
김四단이 무슨 큰실착을 범한 것도 아닌데 형세는 흑이 크게 앞서있다.
중앙을 향한 출구가 막혔기때문인데
만약 좌변마저 막힌다면 흑의 승리는 확고해질 것이다.
백106이 반상최대.
김四단은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최선을 찾아 꾸준히 추격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백148에서 흑149에 둔것이다.
김四단은 정녕 이상한듯 다케미야의 얼굴을 몇번이나 다시 쳐다봤다.
그리고 미안한듯 백150에 단수했다.
이런 정도는 10급이면 보지 않을까 싶다.
순간 다케미야의 입에서 "으악"하고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대국중이던 다른기사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돌아봤다.
그는 이 간단한 수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김四단은 역전시킨 바둑을 다시 놓쳤으나
상대의 어이없는 실수로 승리를 챙겼다.
32강전에서도 행운의 역전 반집승,
16강전에선 사망 직전의 부활,
이정도 강력한 운세라면 앞으로 두판 더 이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두판을 더 이기면 준우승확보,
즉 군입대 면제 케이스에 들어간다.
다음 상대는 요다 노리모토 九단인데 어떨까.
1996년 9월 24일 덤 5집 반
백: 四단 김성룡(한국) 흑: 九단 다케미야 마사키(일본) 150수 끝 (백 불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