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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법을 고치고 없는 법을 만드는 것이 난법난도이다
도전님께서는 평소 도주님의 말씀은 때로 비결 푸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당신께서는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도록 쉽게 직접 말씀하신다고 하시며,
난법난도에 대해서도 ‘있는 법을 고치고 없는 법을 만드는 것이 난법난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도전님 훈시(1991. 2. 20, 1992. 3. 3,)
도인들이 우리 도의 제도와 법을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 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도법(道法)이다.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들어서 우리는 수도를 해나가고 있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젖혀놓고 도를 믿고 있다.
우리가 도를 믿는다는 것은 상제님의 뜻을 받들고 도주님의 법을 지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조금이라도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의 법은 상제님의 뜻을 도주님께서 짜놓은 것이며, 우리의 제도를 믿고 나가는 것이 수도생활이다.
우리의 법을 믿는 사람을 도인이라 하고 우리의 법을 믿지 않는 사람을 비도인이라 한다.
이 법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난법난도자, 난동자가 되는 것이다.
도는 자각(自覺)을 해야 한다고 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믿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각은 옳은 것을 깨달으라는 얘기다.
마음대로 종단의 제도와 법을 지키지 않고 한다면 난법난도자 즉, 난동자가 되는 것이다.
사회단체에도 각각 그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자의 제도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제도와 법을 어긴다면 사람이 아니다. 짐승과 같다.(도전님훈시 1991년 2월 20일)
영대에 있는 서가여래자리가 도전님 자리라는 주장에 대하여
<상도방면의 기록이다.>
1991년 1월 14일 도전님훈시 중에서
"너! 서가여래 자리에 나를 모셔야 된다고 그러는데, 누구한테 배웠어?"
박성구 선감이 "예! 입도 시 주문에 서가여래 자리가 이상하여 한동안 도를 닦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정대진 선감이 후일에 도전님 자리라고 하여 그렇게 이해하고 도를 닦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정대진이 너!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 라고 물으시자,
정대진 선감이 의자에서 황급히 일어나 "저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라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봐라! 정대진이가 안 그랬다고 하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 하시며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다그쳐 물으시자
"예, 제가 깨달아 했습니다.
전경에 보면 구천상제님께서 공사보실 때, 3대 종교의 종장을 바꾸었지 않습니까?
서가여래가 불교의 종장이었는데 진묵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 하니,
"너는 진묵이하고 도 닦아라!"고 하시었다. .. <이하중략>
(위의 훈시 내용은 박성구씨가 도전님 용안의 그림을 올리면서 서가여래의 자리가 도전님의 자리라고 주장하는 과정으로 상도방면 측에서 올린 글에서 발췌하였음)
아래 내용은 안동방면에서 기록한 도전님 훈시내용이다.
상도측 기록과는 서로 약간 다르며 뺨 맞은 부분은 상도방면에서 일부러 뺀것으로 보인다.
"너(박성구)! 산제사 이것 보고 했지?"라고 물으시니 "예, 그러하옵니다."하였다.
그러자 전경 책을 바로 덮으시고는, 박성구선감의 뺨을 순간적으로 빠르게 몇 차례 치시고
"너! 서가여래 자리에 나를 모셔야 된다고 그러는데, 누구한테 배웠어?"
박성구선감이 "예! 입도 시 주문에 서가여래 자리가 이상하여 한동안 도를 닦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정대진선감이 후일에 도전님 자리라고 하여 그렇게 이해하고 도를 닦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정대진이 너!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라고 물으시자,
정대진선감이 의자에서 황급히 일어나 "저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라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봐라! 정대진이가 안 그랬다고 하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하시며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다그쳐 물으시자
"예, 제가 깨달아 했습니다. 전경에 보면 구천상제님께서 공사보실 때, 3대 종교의 종장을 바꾸었지 않습니까?
서가여래가 불교의 종장이었는데 진묵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하니,
"너는 진묵이하고 도 닦아라!"고 하시면서 박성구선감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전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교운 1장 65절] 또 어느날 상제께서 말씀하시길 「선도(仙道)와 불도(佛道)와 유도(儒道)와 서도(西道)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바탕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崔水雲)을 선도(仙道)의 종장(宗長)으로, 진묵(震黙)을 불교(佛敎)의 종장(宗長)으로, 주 회암(朱晦庵)을 유교(儒敎)의 종장(宗長)으로, 이마두(利瑪竇)를 서도(西道)의 종장(宗長)으로 각각 세우노라」고 하셨도다.
위의 전경말씀에서 불교의 종장을 진묵으로 세웠으니 라는 대목을 보고,
박성구선감은 “전경에 보면 구천상제님께서 공사보실 때, 3대 종교의 종장을 바꾸었지 않습니까?
서가여래가 불교의 종장이었는데 진묵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였던 것이고,
이에 도전님께서는 "너는 진묵이하고 도 닦아라!"고 하시었던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농담을 하거나 허언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도전님 말씀은 마치 박성구는 상제님의 도가 아니라 불교의 도를 더 닦아야 한다 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이러한 모든 사태로 인해 도전님께서 박성구선감 아래 도인들을 불러 물으셨다.
박성구의 말이 옳다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 그 때 그 밑에 사람들 대부분이 옳다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저놈이 모두 자기 도인을 만들었구나
즉 상제님의 도인을 만든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도인을 만든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한탄하셨다.
도전님께서 박성구씨의 뺨을 때리고 경고하시다.
만약 박성구씨가 종통을 이어받을 존귀한 사람이라면 도전님께서 아무리 화가 나셨다 해도 결코 박성구씨의 뺨을 때리지는 않으셨으리라 본다. 또한 종통을 받는다고 하는 자는 그러한 뺨 맞을 일을 꾸미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도전님께서는 박성구씨의 뺨을 몇 차례 때리시기도 하시고 또한 여러 가지 잘못된 점을 지적도 하셨다.
실제로 박성구씨는 뺨맞을 짓을 한 것이며 그 행위가 큰 잘못이라는 것을 경고하신 것이라 보겠다.
이들은 이 사건을 두고 도전님께서 전체 임원들이 모인가운데 박성구씨에게 도전(都典)을 맡으라는 말씀으로 개유보(발표)를 하시어 박성구씨에게 도통줄이 보내졌다고 주장한다.
이는 완벽한 거짓말이다.
도전님께서는 그러한 말씀을 하신 적도 없고 오히려 박성구씨를 경계의 인물로 묘사하고 주의를 주고 때리기 까지 하셨다.
그러니 박성구씨가 뺨 맞는 것에 대해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미화시키는 것은은 허령이다.
앞으로 상도방면 임원들은 박성구 말을 듣지 마라.
다음 달까지 확실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제명시키기 전에 나가라.
앞으로 상도방면 임원들은 박성구 말을 듣지 마라. 절대로 손을 떼어라.
밑에 도인들은 박성구 지시를 받을 것 없다. 절대로 안된다.
앞으로 내가 지시한 것을 지켜라. 그렇지 않으면 어렵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법(法)을 가지고 진리라 한다.
법이 맞으면 진리가 맞다고 한다. 진리에 맞으니까 옳다고 좋아한다.
법은 진리다. 모르면 어렵다.
네놈이 당돌해도 보통 당돌한 놈이 아니다. 역적도 그런 역적이 없다.
다른 사람은 다 허수아비냐? 그럼 네 마음대로 다 움직이네.
네가 위(구천상제님, 옥황상제님)에서부터 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니,
네놈이 어디를 가서 용서를 받을거냐.
지금 박성구 말이 옳다고 하는 것은 살인행위다.
옆에서 호응해 주는 사람은 박성구보다 더한 놈이다.
생각하면 참으로 죽일 놈이다.
개를 그려다 놓고 제 아버지 제사를 지내라 하면 그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옆에서 호응해 주는 사람은 박성구보다 더한 놈이다.
우리가 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옳은 도인을 만들어 우리의 소망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영대에 카메라 가지고 올라가서 상제님 옷을 찍어서 나도 아닌 이상한 것을 그려 놓고 도전이라고 했다.
그림을 그려도 나랑 찍은 사진을 놓고, 그려도 그렇게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이 틀리고 맞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거야. 그냥 받아달라는 얘기지.
저놈이 아주 노골적이다.
상제님은 옥황상제께서, 옥황상제님은 도전이 만들어줬다는 거야.
그러니까 도전은 우리가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밑에 임원들을 보고 자기를 그렇게 해주라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 도전말을 듣겠지만 그것만큼은 듣지 않겠다는 거다.
옛날로 치면 너는 대역죄다. 보통 죄가 아니다.
제명을 시키면 연동흠처럼 된다. 앞으로 한 달간 시간을 주겠다.
내가 너를 직접 따로 만나지는 않는다. 그러면 반드시 자기 마음대로 말을 한다. 라고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은 내가 도전님을 모셨으니 자기 밑에 임원들에게도 똑 같이 너희들도 내가 죽으면 나를 모셔라. 라고 하는
음흉한 계획을 도전님께서는 이미 아시고 하신 말씀이다.
사실 박성구 사망후에 그 아래 임원들은 박성구를 원위에 올려놓고 사위성존이라 칭하며 숭배하고 있다.
조회시간에 도전님 훈시를 더 살펴보자
천자는 하늘의 아들이란 뜻이다.
도문소자는 도(道)의 아들이란 뜻이다.
도(道)는 천(天)과 지(地)이다.
소자는 윗전에 자신을 낮춰 칭하는 것으로 도(道)에 내 몸을 낮추어 말하는 것이다.
음(陰)과 양(陽)이 아니더냐.
하늘이 크냐. 도(道)가 크냐.
하늘의 아들이 더 크냐. 도(道)의 아들이 더 크냐.
세살 먹은 어린애도 알 것이다. 하나가 크냐. 둘이 크냐.
예전에 황제를 천자(天子)로 불렀는데, 말 그대로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흔한 것이 천자다. 그동안의 천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박성구는 도전님을 천자라고 불렀다.
그 흔한 천자를 도전님께 붙였다.
도전님께서는 그렇게 불리는 것이 잘못되었기에 도전과 천자의 비교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가르치셨다.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것이다 라며.
그래도 박성구씨는 그 뜻을 이해를 못하고 자기만의 엉뚱한 해석을 고집하고 도전님 말을 안 들었다.
오히려 도전님께서 행하신 모든 말씀이 박성구에게 종통을 주기위함이라고 주장했다.
도전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는데도 그는 자기주장을 버리지 않고 고집을 피웠다.
그래서 고집은 불통을 낳는다. 도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사망했다.
허령은 고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허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도법(道法)이 그렇다.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도주 옥황상제님께서 펴신 법이다.
그 법을 지켜나가는 것이 도인의 도리이고 임무이다.
구천상제님의 유지(遺志)를 받들고 도주님이 펴신 법을 따르는 게 우리의 도리고 임무다.(도전님훈시 중에서)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과연 옳은것인지 더 깊이 생각해보자.
생각 1.
박성구선감은 서가여래의 자리에 도전님을 모시고자 하는 이유가
상제께서 "불교의 종장 서가여래를 진묵으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박성구씨가 주장한 이 말은 생각없이 듣다보면 그럴듯 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애들 수준의 생각이다.
박성구선감에게 다시 물어보자. 우리가 불교단체인가?
혹 우리가 불교 관련단체라고 한다면 박성구의 말이 어느정도 타당성은 있다.
즉 종장이 바꼈으니 서가여래를 내리자는 의견에 우리가 생각해 볼 만도 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또 이해가 안되는 것은 불교의 종장이 바뀌었는데 그 자리에 왜 도전님이 들어가야 하는지
도대체 그것은 어디에서 나온 근거인가?
오히려 그 자리에 도전님 보다는 진묵이 들어가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은가?
그러니 도전님께서 너는 진묵이하고 도 닦아라 라고 하셨던 것이다.
도주님께서 영대를 세우신 당시 불교의 종장은 이미 진묵이었다.
상제께서 서가여래를 불교의 종장에서 진묵으로 바꾼 시기는 120년 전인 1902년 임인년 이다.
이미 이 때부터 석가와 불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다시 말해 불기 3000년과 석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주님과 도전님은 영대에 석가를 모셨다.
생각 2.
사람들은 위 내용을 보고 생각하기를
상제께서 불교의 종장을 새로 바꿔 세우셨으니 이제 서가여래는 아니다,
즉 요즘말로 표현하면 “아웃 되었다”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이는 상도방면뿐만 아니라 중곡동의 천안이나 포천의 서울방면, 대진성주회 등 여주를 제외한 기타 방면에서
서가여래를 내리고 도전님을 모신 모든 단체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종단은 불교관련 종단이 아니므로 불교의 종장 바뀐것과 우리의 신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 도(道)는 모든 종교를 초월한 천지(天地) 대도(大道)이다.
당시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이시기 때문이다.
생각 3.
그리고 훈시에 또 말씀하시기를 "영대는 털끝만큼도 바꾸어서는 안된다."라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길 영대는 하늘에서 이미 정해진 것이므로 도전일지라도 결코 건드릴 수 없는 막중한 신위라 하셨다.
이에 대해서 도전님을 모신 사람들은 그 때는 도전님 화천하시기 전이었기에 영대를 건드리면 안되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화천하고 안계시니 신위를 정해 영대에 모셔야한다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도전님께서 영대를 바꾸어서는 안된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도전님께서는 당신이 재세 시이든 화천하신 후이든 상관없이 벌어질 사건들을 말씀하신 것이지, 도전님 재세시에 영대를 바꾸자고 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누가 어떤자가 과연 영대를 바꿀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영대를 건드린 자들이 변명하는 얘기를 들어본다면,
도전님께서 건드릴 수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도전님 다음에 나타나는 자가 영대를 건드리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괴변인가 말이다. 참으로 그 벌은 맞중할 것이다.
생각 4.
석가의 자리를 빼앗은 분으로 인식되게 하였다.
이들의 생각은 도전님께서 스스로 원위에 앉으실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올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자기라는 것이다.
즉 스스로 종통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서가여래의 자리를 강제 퇴위하고 그 자리에 도전님을 앉혔다
결국은 도전님께서 서가여래의 자리를 강탈한것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도전님을 욕보이게 행위를 하였다.
생각 5.
누가 감히 도전님께 신위를 부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단 말인가.
대순진리회의 분란이 생기면서 각 계열과 방면은 자기노선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도전님을 박성상제, 박성인존상제, 박성미륵세존 등등 신위를 제각각 정해 영대라는 곳을 만들어 모셔놓았다.
이들은 각 단체 모신곳마다 도전님의 신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 이름이나 신위를 정한다고 해서 신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륵불이 한 분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위에 미륵이라고 붙이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렇다면 미륵이란 무엇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미륵불에 대해.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미래에 사바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로 메시아와 같은 뜻을 갖고 있으며 구원자, 구세주, 해방자라고도 칭하며 앞으로 인류를 구원해주시는 분으로 해석한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미래에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분으로 미륵을 기다려 왔다.
조성옥황상제이신 도주님도 역시 미륵이시다.
옥황상제는 정산 즉 솥의 이치로 미륵의 기운을 갖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솥이 들석이니 미륵불(彌勒佛)이 출세하리라」고 이르셨도다.(예시 86절)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솥이 곧 정산이고 미륵불이시고 솥의 기운으로 오시는 분이란 뜻이다. 들석였으니 말이다.
아니 솥과 연관이 없으면 솥 들석이는 것과 뭔 상관이 있다고 말씀하시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내가 신이나서 들썩이면 내 엉덩이가 들석이지 저 옆사람 엉덩이가 들석이냐 말이다.
미륵이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들 모두를 말한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으로 칭하는 구천상제님과 옥황으로 칭하는 옥황상제와는 다르게 박성미륵세존 박성미륵상제 또는 박성상제라는 말에는 정작 신위를 칭하는 명칭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박성, 미륵, 상제, 세존 등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쓰는 보편적인 말로써 이를 두고 어느 위치 어떤 자리에 계신 누구이시다 라고 신위로 하기에는 부적합하다.
물론 그 외의 다른 이름과 함께 사용한다면 신위라고 보여지겠지만, 예를들어 구천응원, 옥황 등등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바른 신위라고 볼 수 있다.
박성이란 누구나 나올 수 있는 성씨이고, 미륵이란 오래전부터 기다려 오던 구세주 메시아의 보편적 개념으로 앞으로 오실 분을 말하는 것이며 이를 두고 어느 위치에 계신 누구이시다 라는 의미의 신위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세존이란 말도 존귀한 분이란 뜻이지 신위로 볼 수 없다.
신위란 그 자리의 직분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 분만이 갖는 고유한 자리의 명칭을 신위라고 하는 것이다.
구천상제님이 둘일 수 없고 옥황상제님이 둘일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니 아무 이름이나 아무렇게 신위를 정한다고 해서 신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감히 선감 교감 원장 총재 따위가 정할 문제가 아니다.
생각 6.
또한 그들은 영대를 훼손하지 않고 서가여래를 그대로 모시고 있는 곳을 향해
거기는 부처의 법을 따르는 곳이다. 라고 한다.
그렇다면 영대에 서가여래를 모신 도주님이나 도전님은 부처의 법을 따랐는가? 상제님 법을 따랐는가?
참으로 한심하고 찌질하기가 짝이 없는 질문이다. 이렇게 질문하라고 누가 가르쳤는지...
도대체 도를 어찌 닦고 선,교감까지 갔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상제님의 법을 따라 수도하는 도인이며 영대에 구천상제님을 모시고 있고
상제님의 도법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방식으로 질문한다.
우리는 부처님의 법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상제님의 법으로 공부하는 도인들 입니다.
다만 부처님은 선천시대에 가르침으로 공이 매우 크신분이므로
그동안 불교의 종장차원에 오랫동안 계셨던 것을 진묵으로 바꿔 주신 후
상제님께서는 석가를 서방칠성의 원위 좌측편에 올려 예우를 갖추신 것이라 보겠습니다.
생각 7.
상도측 10인이 모여 대두목 공사를 행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상제께서 동곡에 머물고 계실 때 교운을 펴시니라. 종도 아홉 사람을 벌여 앉히고 갑칠에게 푸른 대(竹)나무를 마음대로 잘라 오게 명하셨도다. 갑칠이 잘라 온 대가 모두 열 마디인지라. 그중 한 마디를 끊고 가라사대 “이 한 마디는 두목이니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이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하늘에 별이 몇이나 나타났는가 보라” 하셨도다. 갑칠이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에 별 아홉이 반짝입니다”고 아뢰니라. 상제께서 “그것은 수교자의 수에 응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교운1장38절)
도전님께서는 도정실에 모여 이 문제에 대한 말씀하시고 의견도 들으셨다.
도전님께서 도정실로 납시어 직접 인원수를 세어보시고는 "열 명이다. 맞지?" 하시니, 김찬성 선감이 "예, 열 명입니다."라고 복명하였다. 그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박성구· 최해경· 김진원· 이정지· 유기혁· 김재목· 이태경· 경석규· 정인식· 김찬성으로 총 열 명이었다. 라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오로지 상도방면에서만 말하는 주장이다.
어쨌든 그렇다고 치자. 너도 나도 그 자리에 없었으니 자세히는 모르는 일이다만,
그런데 그들은 위 내용을 두고 대두목 공사 중 대나무 10마디에 빗대어 말하며 대두목이 박성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 대해 이치적으로 따져볼 필요갸 있다.
1. 상제님 공사 당시 갑칠이 대나무 10마디를 잘라왔다
2. 박성구씨가 올린 그림이 분란을 일으킨 이유로 도정실에 10명이 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나무 10마디를 갑칠이 잘라왔다고 해서 갑칠이가 대두목이 아니듯이,
그림 하나로 문제를 일으켜 10명 모였다고 그 분란 일으킨 박성구가 대두목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즉 무조건 10명이 모였다고 대두목으로 인정받았다 고 하는 논리는 타당치 못하다.
물론 도전님께서는 박성구에게 대두목을 임명하시거나 그와 관련된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분란에 대해 걱정만 하셨다.
그러므로 이것이 대두목 공사라는 것은 상도방면 측의 일방적인 거짓 주장이다.
그리고 혹 뭔가 관련이 있다 라고 해도, 대나무 잘라온 자는 그 역할을 했던 것이고,
분란 일으킨 자도 갑칠과 같은 그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실제 대두목이신 경우정 종무원장님도 계셨음을 알아야 한다.
대두목은 경우정 종무원장 이시다.
이것이 상제님 공사에 응하신 것이라면 말이다.
생각 8.
어느 누구라도 종통을 주장한다면 천부적인 신성성 연속성의 증거를 대야한다.
현재 각 방면에서는 독자적으로 이름을 정해 판을 차리고 자기들이 종통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천안계열이든 성주계열(현재는 대진성주회)이든 용암방면이든 어디라도 본인들이 종통을 받은 계승자라면 그 증거를 대야하며, 그 근거가 천부적인 신성성 연속성이어야 한다.
우리 도의 종통방법은 심법전수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조가 주장자로 방아를 세 번 치고는 조사당으로 돌아갔다.
혜능은 야밤삼경에 몰래 조사당으로 가서 오조를 만났다.
오조대사는 행여 누가 볼까 가사로 혜능을 가려주고는 <금강경>을 읽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 일자무식한 나뭇꾼 혜능은 행자생활 중에 <금강경>을 듣고 활연 대오하여 영원한 대자유인 부처가 되었다.
그 밤에 오조는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가져와 2조에서 3조와 4조를 거쳐 받아가지고 있던 가사를 전하고 이름을 ‘혜능(慧能)’으로 바꾸어 주고 6조로 인가하였다
그리고 오조는 육조가 된 혜능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제 남쪽으로 가서 3년 동안 숨어 지내라.
오조는 혜능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육조를 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신수와 혜능이 게송 대결을 펼치는 과정에서 오조는 혜능에게 육조로 인정하고 가사 발우를 전했다.
이렇게 오조와 육조는 심법전수로 종통을 이어나갔다.
이것이 상도방면에서 말하는 도전님으로부터 박성구씨에게 종통을 전하는 과정의 비유이다.
과연 종통전수과정을 육조 혜능과 비교하는 것이 맞는지 팩트 체크 해보자
1. 말하자면 오조는 육조가 신수로부터 피해를 입을 것을 염려하였다.
그렇다면 도전님께서도 박성구가 다른 임원들로 부터 보복당할까 걱정하셨을까?
결코 아니다. 육조는 신수의 패거리로 부터 위험을 피해 도망갔지만, 당시 박성구씨는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쳤고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임원들이 박성구씨를 나무라거나 그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방면도 다르고 각자 자기 일이 바빠 다른 사람 참견할 수 없던 때였다.
대다수 임원들은 그를 말 안 듣는 자로 생각했으며, 각자 자기 수도하기 바쁜 상황에 남의 일에는 크게 관여하지도 않았다.
2. 혜능은 남쪽으로 도망가야 했지만 박성구씨는 누굴 피해 도망가지도 않았고 본인이 운영하는 포항방면에서는 왕과 같은 존재로 있으면서 또 하나의 실질적인 종단을 차렸다. 그리고 도전님 화천하신 이 후에 그들은 개유본지 뭔지 들고 다니면서 도장을 들쑤시고 분란을 일으키며 시끄럽게 했다.
결론. 도전님 말씀처럼 천부적 신성성 연속성이 아니면 모두 가짜다.
오조와 육조 사이에 이어진 심법전수는 그들만의 종통방법으로 우리 도의 종통방법과 전혀 다르다.
우리 도(道)의 종통방법은 심법전수가 아니라 도전님께서 말씀하는 천부적인 신성성과 연속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 도의 종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늘로부터 신명으로부터 정해져 있었다.
생각 9.
독조사 도수를 본인들에게 비교한 것에 대한 팩트체크
고부 도수에 감당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네게 주인을 정하여 독조사 도수를 붙였노라. 진주 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으니 남의 돈을 따 보지도 못하고 제 돈만 잃고 바닥이 난 후에야 개평을 뜯어가지고 새벽녘에 본전을 회복하는 수가 있음을 말함이니라.(행록3장65절)
이 공사의 내용은 진주에게 종통이 전해지는 과정이 독조사 도수처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잃고 나서 판이 다 할 때쯤 되어 다시 복구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독자적으로 교주가 된 각 방면들은 본인들도 독조사 도수처럼 아무것도 없이 홀로 나왔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들이 실제로 그랬는지는 팩트 체크를 해보면 알 수 있다.
1. 대순계열의 각 방면은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던 재단법인 회관을 챙겨갔다.
모든 회관은 대순진리회 재단의 재산으로 지방의 방면에서 자체적으로 건설 및 운영관리 하였다 해도 종교적인 신념이 다르거나 이름이 바뀌면 그 회관을 재단법인에 돌려줘야 한다. 만약 돌려주지 않으면 불법점거가 된다.
2. 각 대순계열이나 방면은 자신들의 종통성을 주장하면서 도장을 차지하였거나 또는 차지하기 위하여 소송을 불사한다.
독조사 도수의 이치라면 가진 것도 모두 내 놓아야 할 판인데 오히려 도장을 내놓으라고 각 방면 간 서로 싸움을 벌이거나 법정 소송을 하여 상제님의 덕화를 손상시키고 난법 난도를 행하였다.
3. 본인이 종통을 받았다는 거짓된 명분하에 다른 곳에서 수도 잘하는 도인들을 꾀어내어 전도인과 후도인과의 관계에 깊은 척을 짓게 만들었으며 자신들의 영달(榮達)을 위해 수도의 체계를 무너트렸다.
실제 종통이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척이 생길 수 없다.
도전님께서도 태극도에서 나오실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와이셔츠 한 장만 가져온 것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대순의 계열과 방면들은 자기들이 챙길 것은 모두 챙겨서 떠나갔다.
타 방면의 재산을 차지하려 소송도 불사했다.
달성방면에서 상도방면(박성구선감)측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달성방면 회관(대구 남구소재)에서의 기도행위를 위한 회관 출입과 기도행위를 방해하지 말라는 취지로 지난 2002년 12월 27일에 대구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이에 대구지방법원에서는 1년여의 심리과정을 거쳐 2003년 12월 31일에 박성구측의 신청 모두를 기각하고 달성방면이 승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의 주요 내용을 보면
ㆍ종단 대순진리회의 도인의 권리, 의무에 관하여 도헌(道憲)은 “본회의 종지와 도헌을 찬동하고 소정의 입회절차를 이수한 자를 도인으로 한다.(제7조)
도인은 본회 운영에 대한 건설적인 의사를 건의할 권리가 있으며 본부에 헌납하는 성금은 자진 성의에 의하여야 하고 일체의 권유와 강요를 받지 않는다.(제8조)”고 규정하고 있다.
ㆍ종단 대순진리회는 창설 후 구천상제 강증산과 옥황상제 조정산, 그리고 석가여래를 영대(靈臺)와 원위에 봉안하고 각종 의식 때 강증산에게 법배(法拜) 4배를, 조정산에게는 평배(平拜)4배를, 석가여래에는 평배 3배를 하여 왔다.
그런데 1991년경 상도방면 선감인 박성구가 영대에 모신 석가여래를 퇴위하고 도전의 진영을 영대에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도전은 1991년 2월 12일 경 “우리는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들어 수도를 해 나가고 있는 것이므로 영대는 나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취지의 훈시를 하면서 영대를 변경할 수 없음을 천명하였고, 이에 종단은 박성구를 징계하였다.
전체 판결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소송 신청자들은 도전의 진영을 영대에 봉안하는 것에 반대하는 달성방면에서 종교 활동을 중단한 채, 도전의 진영을 영대에 봉안하는 것에 찬성하는 상도방면에 성금을 내면서 거기서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사실이 소명되는 바, 달성방면에서 탈퇴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되어 있다.
위의 판결은 방면을 이탈하여 본부도장 소속이 아닌 다른 곳에서 종교행위를 한다면 그 이탈한 세력에 대해서는 소속방면을 탈퇴한 것으로 보는 근거자료가 된다.
이처럼 각 대순의 계열과 방면들은 재판을 해야 할 정도로 패악질을 하였다.
상도방면으로 나간 사람들은 수임선감인 달성선감을 배반하고 떠나갔으면 그만인 것을 무슨 욕심으로 수임선감이 운영하는 회관마저 차지하려고 재판까지 벌였다.
이들이 과연 도인일까? 그들은 아직도 상도에 있나 아님 또 딴 곳으로 튀었나?
이처럼 각 방면들은 겉으로는 독조사 도수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은 종통자인 것처럼 치부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을 차지하려는 추잡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아무리 명분이 있었다 해도 위와 같은 죄는 영원히 씻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 10
道人何事多佛歌(도인하사다불가) 선천 진리를 말씀하시다
상제께서 어느 날 내장산(內藏山)에 가셨을 때에
世界有而此山出 紀運金天藏物華
應須祖宗太昊伏 道人何事多佛歌
라고 읊으셨도다.(행록 2장 5절)
이 말씀 중에 道人何事多佛歌(도인하사다불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불은 부처를 말한다. 즉 어찌하여 부처를 노래하는가 라는 말씀이시다.
또 말씀하시기를 “불가지(佛可止)는 불이 가히 그칠 곳이라는 말이오.
그곳에서 가활 만인(可活萬人)이라고 일러왔으니 그 기운을 걷어 창생을 건지리라”(예시54절) 불이 가히 그칠 곳에서 많은 사람을 살린다는 말씀이시다.
불(佛)이란 비로자나불이나 연등불도 불이요. 석가불도 불이요 미륵불도 불이다.
이처럼 佛이란 인간으로 오신 어느 한 분만을 지정해서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상제께서는 그 불이 석가다 라고 하신 적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불은 인간으로 오신 부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그동안 가르쳤던 선천세상의 잘못된 가르침과 그로인해 생겨난 불교라는 종교의 가르침을 지적하신다.
그래서 3000년이란 말이 있다.
석가가 3000년 동안 살았기에 3000년이라고 한것이 아니다.
불교라는 종교의 수명이 3000년 이란 말이고 그 불기가 끝나면 5만년 운수가 온다는 말씀이다.
불교의 종장을 진묵으로 바꾸셨기 오히려 불교와 석가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불교가 끝났다고 해서 서가여래가 끝난것은 아니다.
생각 11.
솥이 들석이니 미륵불(彌勒佛)이 출세하리라
상제께서 형렬(亨烈)의 집에 머무르고 계실 때 형렬이 집안이 가난하여 보리밥으로 상제를 공양하여 오던 차에 八월 추석절을 맞게 되어 쇠솥을 팔아서 공양코자 하는지라 상제께서 가라사대 「솥이 들석이니 미륵불(彌勒佛)이 출세하리라」고 이르셨도다.(예시 86절)
솥은 정산(鼎山)이신 도주(道主) 옥황상제님을 뜻한다.
미륵불(彌勒佛)은 미래에 오시는 부처라는 의미이다.
구천상제님도 미륵의 기운으로 오셨고 옥황상제님도 미륵의 기운으로 오셨다.
솥이 들석인다는 것은 솥이 주체이며 그 솥이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즉 솥을 뜻하는 정산(道主님)께서 미륵불의 기운으로 출세하신다는 예고의 말씀이다.
솥이 움직였으면 솥의 이치이고 상징이신 조정산 도주님께서 출세할 것이라는 의미가 맞다.
생각 12.
나는 곧 미륵이라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아래 입술을 내어 보이시니 거기에 붉은 점이 있고 상제의 용안은 금산사의 미륵금신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고 왼 손바닥에 임(壬) 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 자가 있음을 종도들이 보았도다.(행록2장16절)
상제께서 「나는 곧 미륵이라」라고 말씀하신 뜻은 그동안 너희들이 기다리던 미륵이 바로 나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륵이란 단어의 의미는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실 것을 오래전부터 기다려 오던 구세주 메시아의 개념으로 앞으로 오실 분을 지칭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그 미륵의 기운으로 이 땅에 강씨 성으로 오신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시며 오래전부터 기다려오던 미륵불이시며 하느님이시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하는 분들은 미륵불의 기운으로 오신 분들이시다.
생각 13.
길거리에서 포덕하는 대진성주회 사람들 말하기를 도전님 전생이 서가여래라고 한다.
물론 여기 길거리 말고도 그렇게 말하는 집단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 지도자들이 그렇게 가르쳤겠지만 과연 도전님 전생에 석가였다는 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냥 말이라고 해서 다 내뱉으면 되는것이라 아는 모양이다.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
생각 14.
석가의 3000년 운이 끝났으므로 석가를 믿으면 안된다고 한다.
3000년 운은 석가의 운이 아니라 불교의 운이다.
불교가 3000년이 지나면 더 이상 그 기운이 지속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석가는 그 불교의 종장으로 가르침을 주신 분이신데 상제께서 종장을 바꾸시고 서방칠성의 자리로 옮겨 앉히시어 50000년 미륵시대에 참여토록 하셨다.
만약 상제께서 석가를 서방칠성으로 신위를 정해주시지 않았다면 석가를 원위에서 내리는 것이 맞다.
그리고 도주님께서도 애초에 석가를 원위에 모시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주님께서 영대를 세우신 당시 불교의 종장은 진묵이었다.
상제께서 서가여래를 불교의 종장에서 진묵으로 바꾼 시기는 120년 전인 1902년 임인년 이다.
이미 이 때부터 석가와 불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다시 말해 불기 3000년과 석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이다.
석가를 원위에서 내린 자들은 모두 이 부분을 착각한다.
상제께서는 1902년 불교의 종장을 바꾸시고 그 다음해인 1903년 계묘년에 형렬에게 천상계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서방칠성으로 계신 석가가 언제나 내 옆에 모시면서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석가는 항상 언제나 상제님을 모시고 다스리고 계신 것이다.
이를 아시는 도주님과 도전님께서는 석가를 영대 원위에 모시게 된 것이고
이를 두고 영대는 나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취지의 훈시를 하신 것이다.
그러한데도 박성구씨는 불교의 종장이 진묵으로 바뀌었으니 서가여래를 퇴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미 불교와 석가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박성구씨 및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도주님께서 처음 영대를 조성할 때 원위에 석가를 모신 이유가 석가가 불교의 종장이었기 때문에 그 자격으로 원위에 모셨을 것이다 라고 하는 고정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성구씨는 불교의 종장이 바뀌었으니 석가를 내리고 이번에는 박우당 도전님으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미 종장은 그 이전에 바뀌었고 그래도 도주님은 서가여래를 원위에 모신것이다.
도주님이나 도전님께서는 석가를 불교의 종장으로 본 것이 아니라 서방칠성의 신위로 보았기 때문에 원위의 자리에 모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와 석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박성구씨가 주장하는 불교의 종장을 바꾼 것과 우리 영대의 신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처럼 어리석은 한 생각이 결국에는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도인들을 성공하지 못하는 실패의 길로 끌어드리게 된 것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도인들은 잘못된 상상을 하는 것이 허령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영대에서 석가를 내린 사람들의 문제점
1. 석가의 3000년 운이 끝났으므로 석가를 믿으면 안된다고 한다.
3000년 운은 석가의 운이 아니라 불교의 운이다.
불교가 3000년이 지나면 더 이상 그 기운이 지속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석가는 그 불교의 종장으로 가르침을 주신 분이신데 상제께서 종장을 바꾸시고 서방칠성의 자리로 옮겨 앉히시어 50000년 미륵시대에 참여토록 하셨다.
만약 상제께서 석가를 서방칠성으로 신위를 정해주시지 않았다면 석가를 원위에서 내리는 것이 맞다.
그리고 도주님께서도 애초에 석가를 원위에 모시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석가를 인정하는 도인은 마치 미륵의 도를 안 믿는다는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석가를 원위에 모신 것을 보고 아직도 3000년 운을 믿느냐 라고 한다.
그리고 5만년 미륵세상은 인정 안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석가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언제나 내 옆에 모시면서 모든 것을 다스린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상제님 믿는 자가 석가를 부정한다면 어찌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을 믿는다 할 수 있겠는가.
석가는 불교의 종장에서 떠났지만 미륵이신 상제님과 함께하는 것이므로 석가도 인정하며 상제님을 믿는 것이 바른 길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래는 의통을 열어주실 경우정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숫자로 보는 사진주의 강세 및 탄강의 순차적 관계 https://cafe.daum.net/gncjsroqur/WOuy/9
대순진리회 도헌[道憲]과 도전님, 종무원장님 혼인공사로 종통을 이어가다 https://cafe.daum.net/gncjsroqur/WOuy/13
괴산은 삼풍 양백이신 도전님 종무원장님께서 탄강하신 곳 https://cafe.daum.net/gncjsroqur/WOuy/14
중앙 5, 10 토 15 동곡 중곡 토성 황중원길, 복과 복판이야기 https://cafe.daum.net/gncjsroqur/WOuy/12
네 분의 상제님 사진주(四眞主) 사종성진태을궁(四鐘聲振太乙宮) 낙반사유(落盤四乳) 사물탕(四物湯) 사명당(四明堂) 사성음(四聖飮) https://cafe.daum.net/gncjsroqur/WOuy/1
영대를 훼손하고 주문을 바꾸고 천자를 도모한 집단들 https://cafe.daum.net/gncjsroqur/NQn1/21
서방칠성으로 계신 석가가 내 옆에서 다스리노라 https://cafe.daum.net/gncjsroqur/NQn1/22
증산도에서 인정한 조정산(趙鼎山) 도주님의 종통계승 https://cafe.daum.net/gncjsroqur/NQn1/19
사진주(四眞主) https://cafe.daum.net/gncjsroq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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