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원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거대자본을 앞세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사회 모든 영역으로 확산돼 서민의 삶을 더 팍팍하게 한다.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대기업 자본 축적의 도구로 전락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와 평등, 연대의 가치에 기초한 협동조합법 시행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새롭게 부는 협동조합 바람은 조합 간의 협동과 정부ㆍ시민단체의 관심이 없다면, 거대자본이라는 골리앗의 힘에 눌려 사라질지도 모른다.
- 두레생협을 찾은 조합원들이 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지역민을 위한 협동조합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있는 성동두레생협 매장. 14㎡ 남짓한 매장에는 각종 먹을거리와 생활잡화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먹을거리는 모두 현지 생산자들이 납품한 유기농 제품이다.
조합원 김완희(체칠리아, 62)씨는 "축산가구와의 직거래로 질 좋은 유기농 먹거리를 살 수 있다"며 "무엇보다 조합원 간에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얼마 전 배추 파동에도 조합원은 저렴한 가격에 배추를 공급받았다. 계약재배가 있어 가능했다.
성동두레생협(이사장 이현옥)은 2007년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조합을 결성했다. 지역의 신용협동조합인 논골신협에서 자본금을 대출받아 매장을 열었다. 이현옥(아기 예수의 데레사) 이사장은 "신협 도움으로 지역민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생협을 열었다"고 말했다. 지역 협동조합이 또 다른 협동조합 설립에 기여한 사례다.
이 이사장은 "생협은 중간 유통과정이 없어 생산자 농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안겨주고, 소비자인 조합원은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동두레생협은 생협 정신을 조합원에게 교육하고, 지역민과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 조합원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서로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조합은 매장을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원에게 받는 출자금 3만 원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이사장은 "조합원 수가 늘면 매장 확장은 물론 협동조합 추가 설립이 쉬워진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연대를 통한 활성화
일반 경제구조에서 협동조합의 경쟁력은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주의 협동조합 네트워크는 협동조합 간 연대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원주는 1965년 원주교구 초대교구장인 지학순(1921~1993) 주교와 사회운동가 장일순(요한, 1928~1994) 선생이 신자 35명을 모아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면서 협동조합이 태동했다. 이후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가장 큰 변화는 외환위기(IMF) 이후 2003년 협동조합 간 협의회를 결성한 것이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김선기 사무국장은 "협동조합끼리 연대하면 자립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농산물 생산자 단체가 1차 농산물을 생산하면 가공사업을 하는 단체가 가공, 이를 다시 소비자 관련 협동조합인 원주한살림 등에 납품하는 형태다. 생산과 가공, 소비로 이어지는 시스템이다. 연대를 통해 서로 안정적 판로 개척에 나선 것이다.
연합은 한발 더 나아가 지역사회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도모하며, 참여와 자치의 지역사회 건설에 힘쓰고 있다. 지역현안인 화상 경마장 도입 저지, 환경파괴 정책 대응, 장애인 생존권 운동을 펼치며 풀뿌리 민주주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현재 교육ㆍ의료ㆍ복지ㆍ생산 및 소비자 분야에 조합이 있으며, 조합원은 3만 5000여 명(중복 조합원 복수집계)에 이른다. 원주 인구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김 사무국장은 "협동조합은 지역을 기반으로 주민이 자발적으로 사회, 경제, 문화적 욕구와 필요를 충족하고자 만든 경제 조직체"라며 "조합이 활성화하면 지역순환경제 확립은 물론 고용창출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2012년 12월 23일, 백영민 기자]
"협동조합 활성화, 지역경제 파수꾼 역할 기대"
유영우 논골신협 이사장
유영우(토마스, 58, 서울 금호1가동 선교본당) 논골신협 이사장은 1993년 서울 금호ㆍ행당ㆍ하왕 지역 재개발 당시 빈민운동과 더불어 주민자치협동체건설 기획단 대표를 맡아 협동조합운동을 이끈 주역이다. 1997년 출자금 3억원으로 출발한 논골신협은 15년만에 자산 25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유 이사장은 그간의 굵직한 빈민운동 경험을 토대로 "협동조합이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지역사회에서의 연대'가 필요하다"며 협동조합 경쟁력 방안에 대해 조언했다.
유 이사장은 "예를 들어 동네 슈퍼마켓끼리 협동조합을 추진하면 구매ㆍ유통ㆍ판매 등 장점을 한 데 모아 경쟁력을 갖춘 지역 경제 파수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협동조합의 연대가 생산ㆍ유통ㆍ소비ㆍ금융ㆍ교육상담 시스템 확장에 기여해 지역사회 경제를 살린다는 것이다.
스페인 몬드라곤과 이탈리아 등의 외국 성공 사례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병폐를 극복할 대안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의 생존 방안이다.
유 이사장은 협동조합이 우리나라 경제민주화 측면에서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인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은 커지지만 지역경제는 죽고 있다"며 "재벌에 예속된 경제구조에서 협동조합운동은 경제민주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은 "이종ㆍ동종 간 협동조합이 지역사회 네트워크에 들어와 함께하면 산출 이익은 다시 지역 발전을 위해 재투자 된다"며 "지역사회 경제를 선순환 구조로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협동조합이 거대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조합원의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협동조합 정신에 대한 확고한 교육이 밑바탕이 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유 이사장은 "협동조합은 이타심이 바탕이 돼야 한다"며 "협동조합 정신인 정직ㆍ책임ㆍ주인의식 등을 조합원이 충분히 숙지하고 철저히 지켜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원뿐만아니라 정부와 교구 역할도 중요하다. 유 이사장은 특히 '가톨릭교회 기본정신과 협동조합 기본정신은 일치한다"며 교구 역할을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교회가 어떤 방법으로 기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지역 경제 선순환을 위해 본당 신자를 지역사회 협동조합 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2012년 12월 23일, 강성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