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중심, 남설악을 정복하다
양양 오색령 코스
오색령까지 이어지는 44번 국도를 따라 평균 7%의 경사를 10km 정도 꾸준하게 올라야 한다.
노력의 대가로 남설악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끽할 수 있지만 ‘여기는 한계령 정상입니다.
해발 920m’라는 표지판이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다.
editor 인유빈 photo 이성규 rider 배경진, 인유빈
오색령과 한계령
근래에 들어서는 독자들에게 힐클라임 코스만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소개할 곳도 부지런히 올라야 정복할 수 있는 강원도 양양의 오색령 코스이다. 오색령이라 하면 많은 이들이 “거기가 어디죠?”라는 반응이다. 지금의 오색령은 우리가 흔히 한계령으로 부르는 곳으로 인제군에서는 한계령이라고 하며, 양양에서는 오색령이라 부르고 있다. 오색령의 ‘오색’이라는 말은 오색마을에 있던 계곡에 있는 오색암석에 연유된 명칭이라고도 하며, 이 마을에 어떤 나무에 다섯가지 색깔의 꽃이 피었다하여 명명한 지명이라고도 한다.
양희은의 명곡인 한계령이 있어 그런지 일반 대중들에게는 한계령이라는 말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이번 코스는 양양에서부터 시작해 올라가는 경로로 계획했기에 오색령으로 부르기로 했다.
설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오색령은 강원 인제군 북면,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과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는 1,004m에 달한다. 특히 서면 오색리에 있는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은 해발고도 1,707m이다. 이는 태백산맥에서 가장 높고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높다.
가까워진 양양
이러한 설악의 수려한 장관을 즐기기 위해 등산객이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 양양이다. 대청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양양을 거쳐 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양양은 설악의 남쪽 즉 남설악에 위치해있다. 남설악은 한계령은 물론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라는 88m 높이에서 낙차하는 대승 폭포, 단풍이 유명한 오색주전골, 철과 탄산질이 풍부한 오색약수와 오색온천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2013년 양양사이클경기장이 지어진 이래 매년 국제경기를 개최하며 사이클 도시로서의 입지도 다지고 있다.
예전에는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떨어져 꽤 오랜시간 투자해야 도달할 수 있었지만, 요즘 한창 이슈가 되었던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이 수월해졌다. 시간 단축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인제양양터널이다. 이 터널은 우리나라 최장 터널로 지정되었으며 길이가 11km에 달한다.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거대한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돌아 들어갔지만. 지금은 백두대간 속으로 들어가 빠르게 양양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자전거를 싣고 부천에 위치한 사무실을 출발해 2시간대에 양양에 도착했다.
웜업-맛보기-본격 업힐 3박자
이번 코스는 양양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한 뒤 임천교차로에 접어들어 남설악터널과 가라피계곡, 오색초등학교를 지나 한계령 휴게소까지 44번 국도를 따라 약 25km를 달리는 구간을 계획했다. 우리는 양양에 도착해 종합운동장에 차를 주차한 뒤 달릴 채비를 마치고 힘차게 페달링을 시작했다. 본격 업힐은 한참 뒤에나 나오는 오색버스터미널 근처부터이지만 이 곳에서 출발한 이유는 가자마자 업힐만 짧게 즐기고 끝내기 아쉬웠기 때문이다. 또한 터미널 근처가 아니고서야 마땅히 주차를 하고 채비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에 우리는 한참 뒤인 양양종합운동장에서 출발했다.
임천교차로부터 양양ic를 지나 남설악터널을 빠져나오기 까지는 대부분의 차들이 고속 주행을 하는 구간이므로 주위를 살피며 빠른 속도로 빠져나와야 했다. 이때 자연스레 웜업이 되어 본격 언덕을 오르기 전 충분히 몸을 풀 수 있었다.
우리는 헷갈릴 것도 없이 44번 국도만 쭉 따라가면 되기에 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서쪽으로 직진했다. 가라피계곡 근방부터는 낮은 경사도의 업힐이 지속되어 맛보기로 오르막을 시작할 수 있다. 지도상에서 볼 때는 별로 힘들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던 곳이었지만, 막상 직접 타보니 길이가 꽤 길어 그런지 약간은 지치기도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본격적인 업힐 구간이 시작되었다. 오색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경사도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이곳은 양양종합운동장에서 출발 후 약 15km 가량 떨어진 지점이다. 앞으로 한계령휴게소까지 약 10km 정도를 업힐다운 업힐로 올라갈 수 있다.
몇 개월 전에는 힐클라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긴장부터 했었지만, 최근 힐클라임 코스 소개를 연달아 하며 고개라는 고개를 오르니 조금은 적응이 되었는지 그나마 심적인 긴장은 덜 수 있었다.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는 끝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본격 경사 구간에 몸을 맡겼다.
백두대간 줄기답게
양양 시내 한복판에서부터 오색령까지 이어지는 44번 국도는 아름다운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사전 조사에서 이미 이곳을 다녀간 라이더의 사진을 보았는데 백두대간의 줄기답게 웅장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코스 촬영을 진행한 날에는 강수 확률 80%에 호우주의보까지 내렸다. 그나마 초반에는 비가 거의 오는 둥 마는 둥 해 ‘이 정도면 내가 봤던 그 엄청난 경관을 볼 수 있겠구나!’ 하며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해발이 높아질수록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고 비도 거세졌다.
기대했던 풍경 대신 우리에게 펼쳐진 것은 산안개가 자욱히 끼어있는 모습이었지만, 맑은 날의 풍경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분명 산 위에서 두 바퀴를 부대끼며 능선을 오르고 있지만 바다를 유영하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이들었다.
‘운해(雲海)’라는 말이 의미하는 그대로 저 멀리 높은 산봉우리들이 구름바다에 둥둥 떠 있는 섬 같았다. 이에 감탄하며 우수에 젖을 찰나, 눈치 없는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가시거리가 좁아져 운해의 장관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 왔지만 무엇보다 굉장히 더웠던 요즘, 많은 땀을 흘리지 않고 올라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가 자전거와 차로 최대로 올라갈 수 있는 한계령휴게소(오색령)의 높이는 약 920m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시령은 약 800m 높이까지 오를 수 있으며, 대관령은 약 840m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다른 곳에 비해 오색령이 높기는 높다.
7~12%의 경사를 꾸준하게 올라야 했지만, 다행인 것은 높이에 비해 굽이굽이 돌아가 그렇게 급한 경사가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어려운 구간 빼고는 낮은 기어로 부지런히 올라갈 수 있는 정도이다. 또한 도로가 넓고 차량통행이 드물어 힘들때 공간을 넓게 쓸 수 있어 부담이 덜했다.
그래도 괜히 백두대간의 줄기가 아니었다. 중간에 짧은 휴식을 두세 번 정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오색령을 정복할 수 있었다. ‘여기는 한계령 정상입니다, 해발 920m’ 라는 표지판이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라이딩을 마치며
우리가 도착한 곳에는 한계령 휴게소가 있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던 이곳은 지금은 많이 쇠퇴한 모습이지만, 설악산 서북능선 종주길에 올라서는 등산로에 진입할 수 있어 단풍철이면 방문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또한 해발 1,708m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설악산의 대청봉, 투명한 계곡, 조각 같은 바위 절경 그리고 가을에 오색 단풍이 아름다운 오색주전골 등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어 인기가 좋으며,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어 인증 샷은 필수다.
다가오는 11월 4일, 이곳 양양에서부터 오색령을 오르는 힐클라임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다. 국내에서는 이미 대관령, 미시령, 배후령 등에서 이와 같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힐클라임 대회가 많이 열리고 있는데, 이곳 오색령에는 처음으로 개최된다. 해발이 높아 이를 정복해보고자 하는 많은 동호인들의 승부욕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시즌이 다가기 전 아쉬움을 달래보고 싶다면, 또한 자신의 기량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이 대회에 참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