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사님
이것은 C목사 위임식 때 있었던 일이다. K교회는 갑자기 교인들을 잘 다스리고 있던 목사가 교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뒤 기도원에 들어가 얼마 동안 교회가 어수선했다. 성도들이 절대 순종을 맹세하고 기도원을 찾아가지 않아서인지 목사는 기도원에 버티고 있더니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옛 목사는 떠나고 경제적인 손실 외에는 별문제가 없이 바로 새 목사를 모셔오는 일이 시작되었다.
교계 신문에 목사 초빙 공고를 냈더니 한 달 사이에 60여 명이 응모했다. 이 교회는 역사가 70년이 가까운 매우 보수적인 교회였다. 그동안 목사가 공석이 되면 교회 어른들이 수소문해서 목사를 모셔와서 그냥 목사님께 순종하고 지냈는데 이번에는 젊은 당회원들이 목사 청빙위원회를 만들어 목사를 공모하기로 한 것이다. 자격 있는 목사가 넘치는 시대가 되어 이런 사례는 특이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평소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부르며 그의 사무실 근처도 못 가던 평신도들이 목사를 쥐락펴락하며, 면접하고 이리저리 따지며 심사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직접 대면하지도 못하고 60여 명의 ‘주의 종’을 2, 3명으로 압축해서 공동의회에서 뽑는 일은 이런 경험이 없는 교회에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류를 낸 목사 중에는 외국에서 시무하는 목사도 있고 파키스탄이나 인도 등에 선교사로 가 있는 분도 있었다. 이력서와 두 편의 설교 파일을 받아 놓기는 했지만, 청빙 위원이 함께 모여서 60명의 서류를 심사하고 설교 녹음을 다 듣고 있을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응모자 중에는 인맥, 학맥을 통해 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교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소음 때문에 하나님의 신호를 놓칠 수가 있다. 청빙위원회에서는 일주일 특별 새벽기도회(특새)를 선포하고 기도로 주의 음성을 듣기로 했지만, 하나님은 모세 같은 분을 꼭 집어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어서 은사가 넘치는 교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들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은 따로따로일 수밖에 없다. 결국 ‘특새’ 후 청빙 위원들은 당회실에 이력서와 방송 녹음 USB를 보안 상자에 넣어 보관하고 각 위원이 보안 규칙에 따라 집으로 대출해 가서 설교 녹음을 청취하고 일정 기간 후 모여서 20명 정도로 압축하기로 했다.
일반 교인들은 청빙 위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하고 있는 것인지 불안하였다. 어떤 원로 장로는 자기는 청빙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으므로 ‘목사 청빙을 위한 기도’라는 제목으로 자기가 드린 기도문을 교회 홈피에 올려 여러 교인과 청빙 위원이 공유하도록 하기도 했다. “1.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 2. 발 씻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 3. 외식하는 바리새인이 아니고 죄인인 세리처럼 겸손의 본을 보이는 사람, 4. 바울처럼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소망의 인내심이 있는 사람, 5. 사마리아인처럼 자비를 베푸는 사람.” 그런 목사님을 보내주시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로 장로 자신의 소망이지 하나님의 뜻일 수 없다.
결국, 이런 복잡한 과정에서 청빙위원회의 면접을 거친 두 사람이 교인들에게 설교로 선을 보이고, 최종적으로 공동의회에서 투표로 모신 분이 C목사이다.
C목사가 교회를 맡은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불편하게 교회 생활을 했지만, 모두 만족스러워서 교회 창립 7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목사 위임식을 하게 되었다. 목사는 복이 있는 분인지 나라에서도 코로나 규제를 풀어 하객들도 많이 초청되었다. 평소 인맥이 넓다고 말하던 분이어서인지 경향 각지에서 온 하객들이 모두 화분 하나씩을 가져와서 교회 공간에 놓아둘 장소가 부족하였다. 낮예배 후 교인들의 점심 대접은 오랜만에 교회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이건, 교인들에게도 이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모두 마스크를 벗고 민낯으로 대면해서 식사하는데 꿈만 같았다. 그뿐 아니라 식사가 끝나서는 교회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대화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나이 많은 김 장로는 신기해서 카페에 들어서는데 옛날에 같은 구역에서 구역 예배를 드렸던 신 권사가 자리에 앉아 있다가 그를 붙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를 옆에 앉히고 뭘 마시겠느냐? 뜨거운 거냐, 얼음 띄운 거냐? 커피냐, 일반 차냐?……
옛날이나 다름이 없었다. 같은 구역원일 때 성경 묵상집 「다락방」을 교도소 선교용으로 보내자고 제안했을 때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후원금을 내주던 자매였다.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데 같이 앉은 자매도 김 장로를 잘 안다고 말했다. 목사 위임식은 오후 3시였다. 김 장로는 물었다.
“이번 C목사 참 좋지요?”
앞에 앉은 자매가 반색하며 동조했다.
“우리 목사님, 정말 짱이에요. 저는 존경하고 숭배해요”
그러면서 목사 칭찬을 늘어놓았다. 자기 딸이 이번 특수교사 임용고시에 응시하게 되었는데 늘 기도하면서도 염려되었는데 목사를 만나 자기 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를 일부러 당회실(목사 사무실)까지 불러 그 시험 날짜가 언제인지 무슨 과목 시험을 보는지 일일이 물어보고 수첩에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자기 딸이 합격했다는 것이다. 또 2차 시험도 무사히 통과했는데 그것은 오직 목사의 기도 덕분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용한 목사님은 처음 봤어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묻고 교인을 위해 기도해 주는 목사님이 어디 있어요? 나는 뿅 갔어요.”
“목사님은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 아닌데…….”
“그건 다르지요. 무당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아맞히는 것이고, 이건 목사님이 하나님께 간청해서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이잖아요?”
“하나님은 직접 자기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지 목사님이 대신 기도했다고 들어주는 분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목사님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중보仲保하시는 분이지요.”
“나는 하나님이 그 목사의 기도 안 들어주셨으면 더 좋을 뻔했다고 생각합니다.”
“뭐라고요?”
“그랬으면 밤을 새워 기도하며 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매달려 기도했을 게 아닙니까? 그러는 동안,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비몽사몽 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기도가 내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즉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는 거로 생각하는데요.”
장면이 좀 어색했는지 신 권사가 끼어들었다.
“무얼 그렇게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세요?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지낸답니다. 한순간 한순간이 기적 아니고, 은혜 아닌 게 어디 있어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다는 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옆에 앉은 집사가 대답했다.
“그래요. 장로님, 정말 우리가 이런 목사님을 모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예요. 나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보다 목사님 따라 살 거예요.”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새 목사님이 이런 교인들을 제자로 삼고 목회하려면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