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20)
기러기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 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한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 메리 올리버(1935-2019), 시선집 『기러기』,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21
**
과메기는 추워야 제맛입니다. 과메기의 맛을 당기는 추위가 갑작스레 와서 몇 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추위는 본격적인 추위라기보다는 겨울을 예고하는 추위입니다. 곧 추운 날이 계속 이어질 겨울이 오리라는 예고입니다. 하니 아직 겨울이 완전히 당도한 것은 아닙니다. 절기상 입동은 지났어도 체감하는 겨울은 더 기다려야 옵니다. 이러다가 다시 평소의 가을 기온으로 돌아가지요. 제 기억이기는 하지만 이 추위가 작년과 비교해 일주일 이상 빨라졌습니다. 매년 더 빨라집니다. 하루 이틀 빨라지다가 이렇게 일주일 이상씩 더 빨라집니다. 여름이 더 빨리 오듯 겨울도 이렇게 더 빨리 와서 또 여름처럼 더 오래 머뭅니다. 이렇게 매년 봄과 가을은 또 짧아집니다. 짧아지다가 언젠가는 영영 사라질지도… …, 알 수가 없지요. 거리에는 제 물을 제빛대로 곱게 들일 새도 없이 말라 떨어진 낙엽들이 쌓이며 뒹굴어서 을씨년스러운데 어떤 은행나무의 잎들은 아직 가을도 다 맞지 않은 듯 청청 푸른 여름의 기운을 자랑합니다. 여름 가을 겨울, 여러 겹으로 중첩된 풍경이 왠지 씁쓸합니다. 과메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역시 제 기억이기는 하지만, 저희 식구들이 포항으로 이사 오기 전인 90년대 중반쯤 여름에 과메기가 출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포항시에서 사철 과메기를 공급하기 위해 연구 의뢰해서 출시한다고 했지요. 여름 과메기의 맛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해서 출시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 신청해서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업무를 마치고 여름이라 아직 훤한 저녁에 직원들과 둘러앉아서 먹었는데 이구동성 맛이 영 제맛이 아니었습니다. 제철 맛이라면 과메기는 역시나 추운 겨울이어야 제맛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후 여름에 과메기가 출시된다는 소식은 더 듣지 못했습니다. 각설하고. 갑자기 추위가 닥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생각은 대부분 걱정이지요. 가난했던 옛날이나 대부분 그때보다 잘살게 된 지금이나 강도는 조금 다르기는 하겠지만 살아갈 걱정이 평소보다 많아집니다. 걱정이라고 에둘렀지만, 이 걱정은 다시 철학적 생각과도 이어지지요. 성찰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생각입니다. 허무가 밀려오기도 하고 무어라 이름 짓기 모호한 절망감이 닥치기도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의 시인은 걱정 같은 것 붙들어 매고 그냥 살아가라고 합니다. “착하지 않아도 돼./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네 몸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된다고 합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애매하고 모호해도 세상은 순리라고 불릴 수 있을 순환을 계속하지요. 세상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로 흘러가지요. 이렇게 흘러가게 하는 데는 또 상상이 필요합니다. 상상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이 힘듦을 벗어나리라는 상상, 결국 나아지리라는 상상. 절망하는 세상은 상상을 끝낼 때 제 모습을 제대로 드러냅니다. 상상하는 한 세상은 마구잡이로 휘둘리기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능 한파라고 했나요. 내일이 수능 예비소집일인데 겨울 추위를 예고하는 추위가 일찍 와서인가 평년 기온을 회복해 큰 추위는 없을 거랍니다. 금상첨화도 드물지만 설상가상도 예삿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낮밤 오르내리는 기온의 폭은 크다고 하니 폭 속에 휘둘리지 않도록 몸 관리는 잘해야겠습니다. (20231115)
첫댓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메리 올리버)
메리 올리버는 193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시인이네요.
2019년 자연으로 영원히 돌아갔고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이어 자연을 소재로 많은 시를 창작한 시인이네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3288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