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바다 - 김석규
떠나고 남은 뱃길 오래도록 눈 끝에 시리네
새끼손톱 깎아내어 목선 한 척 짓는다면
푸르게 일어서는 수평선 더 넘어 떠나련만
파도의 흰 갈기에 걸려 무너져 내리는 바다
빈 그물에 퍼덕이는 비늘의 반짝임으로
찬 하늘 그리움도 저물어 타고 있는 어화
기약 없이 떠난 뱃길 아직도 눈 끝에 시리네
♧ 쉰이야 - 권갑하
저 홀로 깊어가는 것이 어디 산뿐이겠는가
오르는 길이 내려오는 길에게 손을 흔들 듯
물소리 서운하지 않게 뚝 지는 가랑잎 하나
나의 황혼은 얼마나 많은 잎을 떨굴 것인지
갈수록 선명해지는 멈추지 않는 길 위에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먼 산 오래 바라보느니
떨어져 시린 마음 고이 보듬으라는 거겠지
곱씹을 시간이 있다는 그런 위안 풀어놓고
포근히 대지를 덮어주듯 그리 깊어지자구.
♧ 인사동 - 정용국
세월을 벽에 걸고 화두를 찾아 헤맨
티벳 산골 어느 굴 속 야위신 돌부처가
길바닥 난전에 앉아
그룹전(展)을 열고 있다.
동참한 네팔 동종 미얀마 사리탑도
중뿔난 서울 중생 흰 등이 측은해서
뙤약볕 온몸에 인 채
탁발 게(偈)를 외고 있다.
♧ 어머니의 달 - 김성주
달이랑 둘이 걷는 시오리 길
친정 기제에 다녀오는 길
이슬 내리는 길
달의 동공에
달맞이꽃잎에
촉촉이 젖는 길
인로왕보살의 길
西로 가는 길
♧ 이 뭣꼬? - 김승범
돌담길 걷고 있네요
청보리 사슬 사슬
빗길에 흔들리고
마음도 가운 가운
바람에 흔들리네요
아득한 저 편
먼 곳으로 흩어진
기억을 더듬으며
빙그레 미소 짓습니다
비
구름
바람
삼라만상이 안겨드네요
♧ 신발 바꿔 신으며 - 김용길
묵은 계절의 신발장을 열고
새 계절의 신발을 골라 신었다
엄지발가락에 끼인 곰팡내
햇살에 털어내고
달라붙은 밑창
묵은 세월의 먼지를 닦아내었다
제법 윤빛나는 구두코
끈을 조이다 말고
세상 걷기 편하라고
구두굽을 떼어버렸다
♧ 전정 1 - 문태길
역류의 세월 틈에
무성한 독버섯들
예리한 가윗날에
강산이 새로 솟고
눌렸던
가슴마다엔
새 하늘이 열린다.
가위를 들고서도
못 자른 도장지들
광야의 빗발 속에
새 뿌리 다시 내려
이제야
저 한강 줄기
제 갈 길을 갈 건가.
♧ 관음사운(觀音寺韻) - 오영호
산 빛
하늘 빛
물빛으로 단장하고
삼천 대천 세계
풍경소리로 열어 놓은
천만 폭
치마를 펼쳐
산문 열고 앉았다.
물소리
바람소리
마음 씻고 눈 뜬 숲속
세월 감은 밤나무는
법화경을 설하는데
대웅전
정좌한 선승들
바라밀을 쌓고 있다.
백팔 시름
한 접시를
목탁소리에 헹구며는
향으로 피어올라
벌어지는 만다라꽃
봉여관(蓬廬觀)
큰스님 모습
해탈문이 열린 곳.
*'혜향'은 혜향문학회(전 제주불교문인협회)에서 내는 문학지입니다.
○ 천수경 - 삼보사(三寶寺) 카페에서
카페 게시글
일심
혜향 2016
하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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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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