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강과 다뉴브 강의 크루즈 낭만 여행
-제18화 예술의 도시 비엔나 2- 2106년 6월 28일
비엔나의 미하엘 광장은 황궁 동쪽 출입구인 미하엘 투어 입구에 있으며
합스브르그 가의 위상을 말해 주듯이 헤라클레스 조각상이 여러 형태로
입구에 4개나 세워져 있었고
광장 앞에는 1990년경에 발견된 2000년전 로마시대의 주거 지역으로
판명되는 유적들이 발견되어 후세를 위하여 개발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우린 비엔나의 명품거리 콜마르트 거리로 나왔다
비엔나의 명품거리로 유명하지만 옛날에는 이름 그대로 석탄(Kohl)시장
으로 서민들의 시장이지만 왕궁이 확장되고 귀족들이 왕궁 가까이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자 이 거리는 귀족들의 거리로 변하였으며 지금은
비엔나의 명품거리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 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명소가 200여년전부터 왕가에 케이크와 쵸코렛을
납품하여 온 명소인 Demel이라는 케이크 과자 전문점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명소는
원래 쵸코렛으로 유명하며 그 명성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고 한다
쵸코렛의 맛은 살짝 바른 살구쨈의 풍미와 함께 코팅된 쵸코는 입에 들어 가자
싸르르 녹아 쓴맛을 느끼지만 달지 않은 맛의 풍미를 느끼는 것이 이 집의 비밀이란다
이름하여 자허 토르테 라고 한다
우린 시간이 없어 현장에서 맛보지 못하고 선물용으로 2Box를 사 가지고 이 집을 나왔다
콜마르크트거리가 끝나고 그라벤 거리로 들어가니 바로크 풍의 건축물들이
개속되고 끝 부분에는 피터 성당의 지붕이 보인다
그라벤(Graben)거리는 명품거리로 이어지며 거리의 폭이 넓어 노천카페
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거리 예술이 수시로 열리는 도심속의
열린 무대이자 만남의 장소인 도시의 응접실이라고 한다
그 한 켠에는 자그마한 성 피터 성당이 있는데 약 800년경 샤롤 마뉴 대제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며 문헌상은 12세기말 쇼텐스티프트 수도원으로
편입되었으며 중세시대에는 세개의 금색 성찬대를 가진 성당으로 유명해졌으나
1661년 화재로 인하여 많이 회손되었다 하며
1679-80년 비엔나에서는 역병으로 더욱 황페해 진 이곳을 레오 폴드 1세가
성당을 방문한 후 성당을 재건할 것을 확정하였고 1701년 건축가 몬타니에
의하여 착수하였으나 1706년 건축가 존 후카스가 계승하여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하였고 1766년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모방하여 이 성당을 완공하였다고 한다
교회의 돔은 비엔나에서 최초로 만든 돔 성당이며 돔의 내부는 황금
스쿠토오 장식으로 돔의 설계는 마티아스가 했으며 안드레 포조는
프레스코화를 그렸다고 한다
매일 오후3시간 되면 무료 오르간 연주회가 계속되므로 이 시간대에는 관광객과
교인들도 항상 만원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라벤거리를 걸어 올라가니 양편에는 명품점들이 줄지어 있고
거리의 한 가운데는 황금을 입힌 기념탑이 서있다 이 기념비는
“상위일체 기둥” 독일어로는 페스트조일레(Pestsaule)라고 한다
1679년 비엔나에도 흑사병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당시 황제 레오폴드1세는 흑사병이 물러나면 성모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탑을 세우겠다고 약속하며 기도를 드렸는데
흑사병이 끝나자 1682년 착공하여 10년 후 1692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삼위일체 기둥은 오스트리아 곳곳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기둥 주위의 조형물은 모든 품계의 아홉 천사들이 조각되어 있고 아래 부분은
건축가 JB 피셔 본이 설계하여 완성하였고 전체적인 구상은 파올 슈트루텔
(Paul Strudel)의 작품으로 기둥의 모습을 구름 피라밋 형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천사들이 구름사이에서 하느님 삼위일체를 찬양하는 그 아래에는 황제 레오폴트
1세가 무릅을 끊고 감사드리는 모습도 조각되어 있었고
제일 아랫단은 인간으로써 청원자인 레오폴트1세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며
두 번째단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로 천사들을 그렸다하며
세 번째단은 거룩하신 하나님 삼위일체를 표현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란 창조주 성부와 구세주 성자와 성령의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한다
그라벤 거리를 거닐다 보면 모든 건물이 중세 풍의 바로크 식 건물인데
특별히 강철과 유리로 건축된 현대 건물을 보게 되는데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하스 하우스(Haas haus)는 건축가 ‘한스 홀라인“의 작품으로 외관면에서
엄숙하고 화려한 스페판 성당과는 아주 대조적인 건물이나 그 대조가 오히려
도시에 활력을 일으켜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1990년 이 건물을 완공하였을 때는 너무나 혹평을 많이 받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면에 비추어진 스테판 성당의 그림자의 아름다움이 건물의 효과를
더욱 돋보이게 함으로 지금은 이 건물을 혹평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스테판 광장에는 항상 인파가 북적이는데 많은 관광객들의 모이는 필수 코스인
스테판 성당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슈테판 성당은 세계 4대 고딕양식 성당 중의 하나이고 신약성서중 사도행전에
나오는 최초의 순교자 성 스테마노 성인을 기리기 위한 만든 성당으로 비엔나
에서 제일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다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이 성당은 화제로 회손되어 보수작업을
하면서 고딕식으로 증축되었으며 서쪽 정면과 첨탑은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137M높이의 화살모양 남쪽 첨탑은 작은 스테판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탑이며 1433년 완공하였고 25만개의 벽돌기와로 모자이크 조각
천정이 인상적이었다
137M는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방주의 길이 300큐핏과 같은 길이라고 한다
같은 모양의 북쪽 독수리 탑은 68,3M이며 1529년 터키의 침공으로 규모가
축소되어 아직까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북쪽 탑에는 1683년 터키 군이 버리고 간 포탄을 모아 녹여 만든 22톤의 종을
만들어 떠도는 영혼들을 위로하는 푸메린(Pummerin)이란 이름으로 1711년
종탑에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45년 종탑의 화제로 인하여 파손되었다가 1951년에 다시 주조하여
현제의 종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매년 제야의 종이 울리는 곳이다
슈태판 성당의 정면에는 두 개의 “이교도의 탑”고딕양식이 아니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유는 이곳에 고대 로마 신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들어가는 입구를 거인의 문이라는 리젠토어(Riesentor)라고 하며 이는
기초공사를 할 때 엄청나게 큰 뼈가 나오자 이는 노아의 홍수때 물에 빠져
죽은 거인의 발뼈라고 생각하고 입구의 이름을 리젠토어라고 했다고 한다
성당내부는 18개의 제단이 있는데 중앙제단은 성 스테파노의 순교 장면이
그려져 있고 그 옆에 작은 교회를 들고 있는 조각상이 성인 스테판이라고 한다
중앙제단의 뒤편에 보이는 화려한 스테인드 그라스는 2차 세계대전시 이곳
성직자들이 이 그라스를 하나 하나 떼어 내어 지하에 숨겨 놓았기에
지금까지 보전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중앙제단의 오른쪽 편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황제 프리드리히(Friedrich)3세의
엄숙한 무덤관이 있다 찰스브르그에서 가져온 붉은 대리석으로 만든 석관
주위에는 240개나 되는 조각품들이 만들어 져 있고 르네상스식으로 건축된
관에는 A.E.1.O.U (Austria Est Imperatrix Ommis UniversI) 란 약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스트리아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의미와 당시 재정적으로 결핍한
프레드리히 3세 황제는 오스트리아 통치가 힘들었고 1485년 항거리 왕 마티아스에게
오스트리아 밖으로 추방된 것으로 보아 “최고의 나라 오스트리아가 없어지다”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십자가 제단 바닥에는 오스만 투르크 군을 물리친 전쟁영웅 오이겐 공의
묘가 만들어 져 있었으며
스테판 성당의 제일 자랑거리인 설교단은 정말 정교하고 화려해 보였다
16세기 “안톤 필그림"이 만든 설교단은 아주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었으며
단 맨 윗부분의 4면에는 성 아우구스틴, 성 그래고리, 성 제롬, 성 암브로스
4명의 기독교 성인이 새겨져 있고
제단 아래에서부터 설교단 까지 악의 근원인 도마뱀과 두꺼비가 복잡하게 표현되어 있고
가장 윗부분에는 모든 악을 물리친다는 성물 개의울부 짓는 모습이 조각되어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계단 하반부에는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페스터쿠카”라는
조각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설교단을 만든 조각가 안톤 필그림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중앙 제단에 버금가는 제단인 비너 노이슈타트 제단은 성모 마리아상을
비롯하여 72명의 성인들을 정교하게 목판에 새긴 평풍같은 목판화 인데
그 제단 아래에는 프레드리히 3세의 세상 모든 땅은 오스트리아의 것이
라는 그 유명한 A,E,I,O,U가 새겨져 있다 하니 하느님과 모든 성인이
이 사실을 인증하고 있는 것 처럼 비노 노이슈타트 제단이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 성당의 크기는 길이107M이고 폭이 79M나 되는 거대한 성당은
전체가 조각예술품이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그보다 멋지게 천정에서부터 내려진 내개의
형광빛 네온 벌룬에는 자유/ 정의/ 봉사 /희생을 되뇌이는 글귀가
세겨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순수한 마음이 들었다
이밖에도 여러곳의 예배실이 있었으며 너무나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
하나의 예술품을 관람하는 박물관 처럼 보였다
1782년 이 성당에서 26세의 나이로 모차르트는 콘스탄체와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곳이나 위대한 천재음악가 모차르트는 1785년부터 계속되는 경제 결핍
속에서도 작곡과 연주 여행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1791년 12월5일
비바람이 몰아치는 혹독한 겨울날 성당 근처에서 35세의 나이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3일후 이 성당에서 초라한 장례식을 마쳤으며 시신은 다른
시체와 함께 공동묘지에 버려졋기에 후세에 그의 시체는 못 찾았지만
위대한 음악가의 생애는 오스트리아의 국보로써 기리기 위하여 왕의
정원에도 기념동상이 만들어 추모하고 있다고 한다
지하에는 카타 콤베라는 지하 납골당 유골안치소가 있는데 “부활을 기다리며
잠자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움푹 파인 지하 묘지를 말하며 로마시대부터
유골안치소를 성당내부에 만들어 유골을 보관하였다는데 이곳 카타콤베는
1450년에 만들어 졌으며 1679년에 페스트로 희생된 시민 2000구의 시체를
이곳에 안치했으며
이곳의 성직자는 물론 합스브르그 가의 황족 심장도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고
하며 특별한 날이 아니면 이곳은 열람이 불가하다고 한다
우린 슈테판 성당 관광을 마치고 조금 시간이 남아 명품거리인 케른트너
슈트라세거리를 걸어가다 뉴욕의 메트로 폴리탄,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 이어
세계3대 오페라 하우스인 빈의 국립 오페라 극장를 외부에서 들러 보았다
1741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시대에 건립된 왕립 극장으로 모차르트의“피가로의 결혼”
“후궁으로부터의 도망 ” “여자는 다 그래“가 초연된 극장이며 그후 1861년 빈의 시민
성금으로 10년에 걸쳐 재 완성된 오페라극장은 모차르트의“돈조바니‘가 초연되었으나
1945년 대전 때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비엔나의 음악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1955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하였다고 한다
정면의 많은 장식은 네오 르네상스식 건축물로 화려한 느낌을 주며 내부의
프레스토 화가 아름답다고 한다
이것으로 오늘의 관광일정은 끝이지만 요한 스트라우스와 모차르트의 콘서트 연주를
비엔나 콘서트홀에서 보기 위하여 서둘러 선박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빈 콘체르트 하우스(Wiener Konzerthaus) 콘서트 홀 찾어 갔다
빈 콘서트 홀은 매년 1월 1일 신춘 음악회가 열리는 장소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콘서트 홀이다
비엔나 홉스 브르그 가의 황실 오케스트라의 협주로 모차르트와 스트라우스의
음악 10곡 정도를 유명한 성악가들이 연주 하는 내용인데 우리 크루즈 팀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음악 감상을 하였다
비엔나 콘서트 홀은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치만 음향의 반사와 공조에 대하여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어 만든 콘서트 홀인 것 같았다
홀의 실내장식도 화려하지는 않코 단순하지만 음의 반응을 고려한 실내장식
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Overture”를 비엔나 홉스 브르그 가 왕립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시작으로 성악가 Georg Lehne가 모차르트의 “휘가로” 를 열연하는 음악을
들었으며 마지막에는 왈츠 합창곡으로 요한 스트라우스 작곡의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강”
울려 퍼질 때에는 관중들도 매료되어 함께 부르면서 휘날레를 장식하였다
이 무대에 서기 위하여 수많은 연습과 실력을 쌓아 인정을 받을 때 까지의
노력에 많은 박수를 보내지만 우리나라의 성악가 조수미씨도 이 무대에
서기 위하여 이곳 비엔나에서 숱한 시련과 노력을 기울려 오늘날의 성악가로
인정받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끝내고 오늘을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