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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폴리에서 로마로 이동을 하는 날이다. 09시 20분 나폴리 첸트랄레역에서 로마 테르미니역으로 약 1시간 10분 열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황당한 것은 우리 좌석표가 10호차인데 배차된 것은 7호차 밖에 없는 열차였다. 열차 여행이 일상화되어 있는 유럽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항의도 할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비어 있는 좌석에 앉아서 로마까지 갈 수 있었다.
로마 숙소는 테르미니역에서 버스로 약 30분 정도 가야 되는 지역으로 로마에서 대중교통을 처음으로 이용해야 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숙소에 도착하니 12시 정도 되었다. 숙소는 우리만 단독으로 사용하는 곳으로 시설도 깨끗하고 주방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어 정말 좋은 것 같았으며, 이곳에서 5박 6일간 머물렀다.
판테온 신전..

【판테온Pantheon】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든 신’, 한자어로 하면 ‘전신(全神)’이라는 뜻으로 다신교인 고대 로마에서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신전이다. 르네상스 3대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건물이라고 칭한 곳으로, 죽어 여기에 묻히기를 희망했으며 현재 그의 묘가 있다. 이 판테온 양식의 지붕인 돔은 이탈리아 전역 어디에서나 성당이나 건축물의 훌륭한 교본으로 사용되었다. 이 돔 양식은 현존하는 로마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그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판테온은 기원전 27년에 아그리파(아우구스투스 대제, 즉 카이사르를 계승한 인물인 옥타비아누스 대제의 사위)가 만든 것이다. 신전으로 사용되다가 80년에 화재를 입었으며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약 120년대) 때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이때 남쪽을 향해 있던 건물의 문을 북쪽으로 향하게 하여 로톤다 광장을 조성했다. 판테온에는 총 16개의 기둥이 있는데 기존의 이탈리아 건물들의 기둥과는 다른 색의 화강암이며 코린트 양식을 갖추었다. 609년 비잔틴의 포카스 황제가 교황 보니파치오 4세에게 이 건물을 공식적으로 기증했다. 이를 받은 교황은 이 건물을 성모 마리아와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성당으로 바꾸었다.
입구의 상단에는 이 건물을 아그리파가 세웠다는 내용의 글(MAGRIPPAIFCOSTER···)이 쓰여 있다. 입구에 있는 청동문은 이민족이 침입한 5세기 때 신성 로마제국 시대의 약탈과 이후 바티칸 건축 시에 사용되어 지금 보는 것은 1500년대의 것이다. 위로는 지름 9m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43.3m이고 바닥의 지름도 43.3m이며 1873년에 복원된 것이다. 판테온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콘크리트로 만든 아치로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 부분의 벽은 두껍고(5.9m) 위로 갈수록 얇아져서 건축물의 하중을 최소화했다. 꼭대기의 벽 두께는 1.5m이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이탈리아 건국의 영웅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묘가 있다. 성모 마리아 상 아래는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판테온에서 나오자마자 작은 바(Bar)들과 이집트 여신인 이지스 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있는 로톤다(Rotonda) 광장이 보인다. 이 광장은 1578년에 기존의 공터를 개축해서 만든 것이다.(출처 : Enjoy 이탈리아)
이 건물은 아그리파가 세웠다는 내용의 글(MAGRIPPAIFCOSTER······)이 써 있다..
숙소 인근 가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콜로세움 티켓(18유로)을 예매하고, 7.2일 바티칸 투어 집결장소를 사전 확인하기 위해 테레미스역으로 가서 로마 교통카드 일주일 티켓 (CIS/25유로)을 구매하였다. 테레비스역에서 바티칸투어 집결장소인 옥타비아누스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두리번거리는데 여성 두 명이 다가와 옥타비아누스역으로 가는 지하철로 안내를 해 주겠다고 하여 따라갔다.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여성 1명이 주었다고 하면서 일행(혜안)의 여권을 돌려주었다. 사실 이 두 여성은 소매치기 일당이었는데 지갑에 여권만 있고 돈이 안 들어 있어 돌려준 것 같았다. 여권이 들어있는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있었음에도 소매치기를 당한 것은 CIS 로마 패스를 구매할 때 현금을 지급하고 가방 지퍼를 열어 두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다행히 현금은 지갑의 다른 칸에 있었기 때문에 여권만 소매치기를 당했고, 그들이 여권을 돌려준 것 같았다. 소매치기라도 여권을 돌려주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여권을 분실했더라면 대사관에 가서 임시여권을 만들어야 되기에 하루 일정을 꼬박 날릴 뻔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바티칸 투어 집결장소인 옥타비아누스역에서 집결장소를 확인한 후 다시 테레미스역으로 돌아와 7분 거리에 있는 한국식품점에 가서 김치, 햄, 소주, 막걸리 등을 구입하여 숙소로 돌아와 모처럼 찌개에 소주, 막거리로 식사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둘째 날은 로마에서의 1일 차로 내일 16시 콜로세움투어(1인 18유로)를 예약했는데 오늘인 줄 착오로 콜로세움 입장 시간을 고려하여 오전에 판테온 신전을 시작으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구경하기로 하였다. 오늘 일정은 판테온 ~ 포로로마로 ~ 팔레티노 언덕 ~ 콘스탄티노 개선문을 구경한 후 수소로 돌아와서 냉국수를 만들어 먹고 휴식을 취한 후 콜로세움을 구경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 결과 콜로세움투어가 내일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트레비분수, 스페인광장 등을 구경한 후 타레미스역 인근의 한국식품점에서 식재료를 구입한 후 숙소에서 찌개를 끓여 와인 한 잔을 마시면서 마무리하였다.
오늘 추진 : 판테온 ~ 에마누엘라 2세 기념관 ~ 포로로마로 ~ 팔레티노 언덕 ~ 콘스탄티노 개선문 ~ 트레비분수 ~ 스페인광장..
판테온 신전 가기 위하여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이 '조국의 제단'이었다. 잠시 조국의 재단을 본 후 판테온으로 이동하였다..
조국의 제단에서 판테온 신전 가는 길에 있는 로마에 최초로 지어진 예수회 성당으로 성당의 파사드는 자코모 델라 포르타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로마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본격적인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이다. 파사드의 정문 위에는 예수회가 상징으로 사용하는 '예수'의 그리스어 약자 'IHS'가 새겨져 있다.
판테온 신전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이 언덕에서 로마 시가지를 내려다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물은 단연 판테온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판테온의 형태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판테온의 둥근 지붕이 온통 금박으로 덮여 있어 마치 태양처럼 눈부신 광채를 발했기 때문이다.
판테온 신전 앞에 있는 분수..
판테온 신전에는 이 건물은 아그리파가 세웠다는 내용의 글(MAGRIPPAIFCOSTER······)이 쓰여 있다
B.C.44년 카이사르(Julius Caesar, B.C.100~44)가 암살당한 후,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Octavius Thurinus, B.C.63~A.D.14)는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 B.C. 83~30)와의 내전에서 승리하고, B.C.27년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한 자)' 칭호를 받아 로마 제국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심복이자 사위인 마르쿠스 아그리파(Marcus Agrippa, B.C.63~12) 에게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도록 했고, 아그리파는 캄푸스 마르티우스에 판테온과 아그리파 목욕탕(Bath of Agrippa)등의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2,0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판테온의 입구의 거대한 청동문..
【판테온의 입구의 거대한 청동문】
1624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25세의 젊은 예술가 베르니니(1598~1680)에게 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베드로의 묘소를 덮는 거대한 제단을 제작하기 위해 판테온에 있던 청동 구조물과 청동 장식물들을 모조리 뜯어오도록 했다. 우르바노 8세는 바르베리니(Barberini) 가문 출신인데, 당시 로마 시민들은 “바르바리(야만인)도 하지 않는 짓을 바르베리니가 했다(Quod non fecerunt barbari, fecerunt Barberini)”라고 빈정댔다. 다행스럽게도 판테온 입구의 거대한 청동문은 지금도 20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출처 :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아그리파가 지은 판테온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판테온은 120년경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가 재건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처음으로 로마 제국을 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세웠던 판테온을 다시 세웠다. 놀랍게도, 이때 지은 판테온이 고대 로마의 건축 형태를 유지한 채, 현재까지 거의 원형대로 남아있다. 로만 콘크리트와 벽돌이 드러난 외관이 현재는 초라해 보일지 모르나, 원래 돔에는 금박이 덮여있었고, 현관(엔타블리처)도 황금빛 청동으로 장식되어 있어, 마치 거대하게 빛나는 태양 같았다고 한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중요한 성당 중 하나인 미네르바 성당으로 무슨 행사가 있는지 경찰들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은 1370년에 세워진 도미니코 수도회의 중요한 성당 중 하나이다. 이 성당은 로마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르네상스 양식의 파사드 안쪽으로, 높은기둥과 고딕 양식의 아치로 된 천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별이 반짝이는 푸른색 천장과 반짝이는 붉은색 가장자리는 19세기 네오고딕 양식으로 복원되었다. 성당 앞 오벨리스크는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에게 오벨리스크를 장식할 조각을 만들 것을 주문했는데 코끼리 조각상은 1667년 베르니니의 조수인 에르콜레 페라타(Ercole Ferrata)가 주로 만들었다. 받침대에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동물인 코끼리가 운반하는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이집트의 지혜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굳건한 지혜를 전하기 위한 강인한 마음임을 인지하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조국의 제단 옆쪽으로 이곳은 지금 유물 발굴 중입니다..
1870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해, 1911년에 지어진 통일 기념관(조국의 제단)이다.
조국의 제단은 이탈리아에서 ‘통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사보이 왕가의 엠마누엘레 2세 (Vittorio Emanuele II, 재위 1861~78) 에게 헌정하기 위해 건설된 공간이자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무명용사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조국의 제단의 공식적인 명칭은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으로 1885년 건축을 시작하여 1911년 이탈리아 건국 50주년을 기념하여 개장된 곳이다.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인 비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건물은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이자 국민적 자부심의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조국의 제단 중앙에 설치된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동상..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동상 아래에 있는 이 제단은 원래 설계에는 없는 것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의 제의로 1921년에 추가되었다. 이곳에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한 무명용사의 묘가 있고, 두 명의 보초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지키고 있습니다..
건물 상단 좌우에 날개 달린 여신이 끌고 있는 4륜마차가 있는데 왼쪽은 자유, 오른쪽은 국가통합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조국의 제단 위에서 본 로마시내 전경..
로마는 지금도 발굴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국의 제단 옆에 있는 산타마리아 인 아라코엘리 성당입니다..
【산타 마리아 인 아라코엘리 성당】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포로 로마노 쪽이 아닌 도로가 있는 광장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 위에 성당이 하나 있다. 산타 마리아 인 아라코엘리(Santa Maria in Aracoeli) 성당이다. ‘하늘(Aracoeli) 위에 있는 성당’이라는 뜻이다. 이 성당은 원래 여신 주노의 신전이 있는 곳인데 1250년에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성당을 만들었다. 성당으로 가려면 총 124개의 계단을 지나야 하는데 1350년에 만든 것이며, 옆에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의 언덕보다 오래된 것이다. 이 성당에는 ‘산타 밤비노’라는 아기 예수상이 있는데(현재 있는 것은 진품은 아니다.) 이 산타 밤비노를 보면 병이 다 낫는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또한 이곳에 예전에 돈을 만드는 주조창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계단을 오르면 로또에 당첨된다는 믿음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른다. 인생 대박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번 올라가 보자. 원래 고대 로마의 영웅 마르쿠스 카밀루스(Marcus Furius Camillus)가 B.C.345년에 세운 주노 모네타(Juno Moneta) 신전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출처 : Enjoy 이탈리아)
때 마침 성당이 열려 있어 잠시 들어가 구경을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티부르 무녀(Tiburtine Sibyl)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재위 B.C.27~14)에게 세상의 구원자가 될 성모자의 환시를 보여줬고, 이 환시를 본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만든 '하느님의 장자에게 바치는 제대(Ara primogeniti Dei)'가 있던 자리에 이 성당이 세워졌다. 그래서 성당의 이름이 '천국 제단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in Ara Coeli)'이라고 한다.
그레고리우스 12세 동상..
원래 이 성당의 중앙 제대화였으나 현재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의 '폴리뇨의 성모(Madonna of Foligno)' 그림이 있네요..
약 15분간 둘러보고 나왔으며, 성당 옆의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캄피돌리오 광장 Piazza di Campidoglio】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아름다운 광장
포로 로마노를 둘러본 뒤 계단을 올라가면 캄피돌리오 광장과 연결된다. 베네치아 광장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왼쪽으로 끼고 연결이 되기도 한다. 캄피돌리오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은 경사도가 상당히 완만하다. 과거 이곳은 정치의 중심지였고 그러다 보니 많은 외국 사절들이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바티칸이 아니라 이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올라왔다. 따라서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경사가 필요했다. 이 경사진 완만한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이고 계단 양쪽으로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사자상이 있다.
B.C.575년 로마 왕국의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 재위 B.C.616~578) 시대에, 팔라티노 북쪽 언덕에 유피테르 신전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다가 사람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이 유골이 전설에 등장하는 영웅 아울루스 비벤나라고 믿고, 이 언덕을 '아울루스의 머리'라는 뜻의 '카푸트 올리(Caput Oli)'라고 불렀고, 여기서 언덕의 라틴어 이름 카피톨리움(Capitolium)이 유래되었다. 카피톨리움은 이탈리아어로 캄피돌리오(Campidoglio) 또는 카피톨리노(Capitolino)라고 한다.
카피톨리움은 로마 역사에서 오랜 세월동안 '카푸트 문디(Caput mundi, 세계의 머리)'의 역할을 했는데, 미국의 국회의사당을 뜻하는 단어, 캐피털(Capitol) 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미국 초기의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나라도 대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처럼 되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이다.(출처 : Enjoy 이탈리아 등에서 발췌)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가는 계단..
이 계단은 미켈란젤로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방문에 대비해, 말을 타고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넓고 완만한 계단을 설계했다. 하지만 실제 카를 5세가 로마에 왔을 때 계단은 아직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언덕 뒤를 빙 돌아 포장도 제대로 안 된 비탈길을 따라 언덕에 올라야 했다고 한다.
계단 입구에 있는 1562년 교황 비오 4세가 기증한 2개의 이집트 사자상..
계단 입구에는 1562년 교황 비오 4세가 기증한 2개의 이집트 사자상으로 만든 '카피톨리노 사자 분수(Fontana del leoni capitolini)'가 배치되어 있다. 이 이집트 사자상은 원래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81~96)가 이시스와 세라피스를 위해 캄푸스 마르티우스(Ampus Martius) 지역에 조성한 이세오 캄펜세(Iseo Campense) 신전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을 발굴한 것이다.
정면의 건물은 세나토리오 궁을 미켈란젤로가 리모델링한 것으로 현재 로마 시장의 집무실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상】
건물 앞에 말을 타고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상이 보이는데 진품은 카피톨리노 박물관에 있다. 이 기마상은 약 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라테란 광장에 있었던 것을 미켈란젤로가 캄피돌리오 광장을 설계하면서 1538년에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인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마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예배도 드리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기마상이 기독교를 박해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상 이었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이 기마상 바로 아래에는 동전이 하나 꽂혀 있는데 이곳이 예전에 동전을 만들어 내는 주조창 근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세나토리오 궁전(현 로마시청) 계단 앞에 있는 로마 여신 분수는 미켈란젤로가 리모델링 시에 추가한 것이다.
로마 여신 분수는 양쪽에 나일강의 신과 테베레강의 신을 거느리고, 중앙에 세계를 상징하는 구를 든 로마 여신상이 배치되어 있어, 이곳 로마의 캄피돌리오 언덕이 '세계의 머리' 임을 상징한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