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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폐 쪽이 약간 쑤셨다. 당만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독연 중 일부를 들이마신 탓이다. 그래서 몸이 약간 둔해져 맞지 않아도 될 독장을 맞았다.
어지간한 독에는 면역이 생긴 신황이지만 당만호의 몸과 주머니에서 뿜어져 나온 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지독했다.
때문에 신황도 비록 일부나마 독을 들이마시고 만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몇 군데 상처를 입었다.
“너........너, 이 녀석!”
당이홍이 이를 바득 갈았다. 자신의 손으로 숙부의 숨통을 끊게 하다니. 이 원한은 신황을 죽여 뼈를 갈아 마셔도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죽인다. 녀석도 독연을 들이마셨으니 동작이 둔해졌을 것이다.”
당이홍의 외침에 그의 형제들이 일제히 암기를 꺼내들었다.
순간 신황의 오른손이 좌에서 우로 굽어져 나왔다. 그러자 그의 팔에서 월영인이 발출되었다. 월영인은 유형화된 실체를 가지고 당이홍 등을 향해 날아갔다.
“거........검강인가?”
팽만익의 눈이 부릅떠졌다. 조금 전에는 확신을 하지 못했는데 또다시 눈앞에서 펼쳐지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월영인의 실체를 모르는 그로써는 신황이 펼친 기술이 검강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거....검강?”
팽유연도 팽만익이 하는 말을 듣고 망연히 중얼거렸다. 그의 아버지나 펼쳐내는 기술을 신황과 같은 젊은 사람이 펼쳐낼 줄 몰랐기 때문이다.
스가악!
어찌 피할 사이도 없었다. 신황의 손에서 발출된 월영인은 순식간에 당이홍 등에게 들이 닥쳤다. 그러자 당이홍과 형제들이 몸을 날려 월영인의 궤도에서 피했다.
당이홍의 사촌동생인 당관홍도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허공으로 몸을 날려 월영인을 피했다.
“뭐....뭐야?”
그의 발밑으로 마치 칼날 같은 기운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너무나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어디다 신경을 쓰는 거지?”
갑자기 누군가 앞에서 나직이 속삭인다. 그에 황급히 고개를 드는 당관홍, 그러자 갑자기 검은 손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덮쳐왔다.
콰직!
“큭!”
강철같은 손이 당관홍의 얼굴을 감쌌다. 당관홍은 급히 손에 있는 암기를 정면을 향해 뿌리려 했다. 순간 신황의 몸 전체가 그의 몸을 짓눌러왔다.
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신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천근추를 펼쳤다.
마치 커다란 쇳덩이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당관홍의 몸, 그리고 발과 팔을 이용해 고양이 같은 자세로 그를 짓누르는 신황.
바닥과 엄청난 기세로 충돌하며 당관홍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의 형상 그대로 움푹 꺼진 바닥, 그곳에 당관홍의 몸에서 흥건하게 흘러나온 피가 고였다.
당수련이 명왕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는 당수련이 공포에 질려 과장되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원래 여자들은 이야기를 할 때 감정에 많이 치우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막상 신황을 보자 오히려 동생의 말은 그를 반도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았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명호인 절명공자는 오히려 저자에게 더욱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신황의 팔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모두 당문 사람들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어차피 그와 자신들은 불공대천의 원수다. 누가 살아남든 나머지 한쪽은 완전히 말살할 것이다.
당이홍의 말에 따라 살아남은 이들이 일제히 두 손을 활짝 펼쳤다.
그들의 몸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암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자신
들이 소지하고 나온 암기를 모두 쏟아내었다. 이 한수에 그들의 모든 것을 건 것이다.
공기 중에 암기뿐 아니라 단혼사까지 섞여 있었다. 그것들은 공기의 흐름을 타고 신황을 향해 날아 들었다.
그가 피할 공간을 완벽하게 차단한 채 쇄도하는 암기들, 그러나 신황은 전혀 피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 모습에 오히려 놀란 것은 초관염과 팽만익, 팽유연들이었다.
지금 그들의 눈에 비친 신황의 모습은 누가 봐도 스스로 자살하려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 신황의 오른 팔이 크게 원을 그렸다. 그러자 흐릿한 유형의 벽이 둥글게 생겨났다. 월영인으로 벽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신황이 월영인으로 벽을 만들 수 있는 순간은 그야말로 촌각에 불과했다. 워낙 막대한 내공의 소모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일제히 그가 만들어낸 유형의 막에 부딪치는 암기들, 그리고 잠깐의 공백. 신황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몸이 길게 늘어났다. 아니 너무나 빨리 움직였기에 잔상이 남아 그렇게 보인 것이다. 절정에 이른 현월보였다.
당이홍이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신황은 이미 당이홍의 정면에 서 있었다.
신황이 손을 털어냈다. 그러자 그의 소매를 타고 흐르던 핏물이 벽으로 튕겨나갔다.
당이홍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손을 앞으로 뻗어 허우적댔다. 그러나 신황의 몸은 잡히지 않았다.
점차 몸의 힘이 빠졌다. 이제 더 이상 그의 몸은 그의 의지의 지배하에 있지 않았다.
‘당.......가는 너무나 무서운 저......적을 두었구나. 어찌할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흐릿해지는 눈으로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형제들의 모습이 보였다. 신황은 가차 없었다.
그는 미처 그의 형제들이 암기를 꺼내기도 전에 그들의 몸을 난자해 놓았다. 그러자 마치 썩은 짚단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는 당이홍의 형제들.
‘그러나 아는가? 명......왕이여! 이로써 너는 너무나 무.......서운 사람을 적으로 두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너무나 무........서운 단체도............ 너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니............’
그의 몸에서는 이제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생명력을 잃은 그의 눈만이 공허하게 빛날뿐이었다.
신황은 몸을 돌려 초관염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초관염이 무이의 두 눈을 가렸던 손바닥을 떼었다.
그는 신황이 손을 쓰면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무이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신황이 다가오자 설아가 훌쩍 뛰어 그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신황의 얼굴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그러자 적들의 몸에서 튀긴 피로 얼룩졌던 신황의 얼굴이 금방 깨끗해졌다.
신황이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설아의 입에서 기분 좋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당가의 정예를 몰살시키는 강력함, 그리고 추호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 잔혹함. 초관염의 눈에는 신황이 마치 사신처럼 보였다.
요즘 중원을 울리는 소문 중에 가장 믿기 어려운 소문이 바로 명왕이 대륙십강에 근접하는 가장 강력한 무인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막상 두 눈으로 직접 보니 무공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손속만큼은 그들보다 훨씬 잔인한 것 같았다.
정말 명왕이란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잔인한 손속이었다.
팽만익이 어느새 신황의 곁에 다가와 물었다. 그러자 신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그 별호를 쓰지 않는다면 분명 저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허...............! 정말 대단하구먼. 어찌 당만호를 그리 쉽게............”
당가의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지만 당만호를 그리 빠른 시간 안에 제압한 것은 분명 기겁할만한 일이다.
일반 고수도 아닌 지독한 극독으로 이루어진 독인이 바로 당만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호의 모든 사람들이 독을 두려워했다. 당가의 독에 중독되면 그들의 해약이 아니면 해독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황은 독에 중독되는 것을 겁내하지 않고 당만호를 제압했다.
비록 성수신의가 해독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나 그말을 믿고 신황처럼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팽만익은 신황이란 존재가 정말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신황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무이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초관염이 무언가 깨달은 듯이 급히 품속에서 단환 하나를 꺼내 신황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이것을 복용하게. 독이 퍼지는 것을 막아 줄 것이야.
그리고 잠시만 기다리게. 내 당만호의 시체를 살펴보면 그가 무슨 독을 썼는지 알아낼 수 있으니. 그럼 해약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야.”
사실 아까부터 신황은 속이 무척이나 거북했다. 독이 몸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겉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그가 어떤 상태인지 알수 없는 것이다.
무이가 신황의 검지를 잡으며 말했다. 신황은 그런 무이에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러자 무이가 소매를 들어 신황의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주었다.
무이는 시체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비록 신황이 사람을 죽였으나 그가 이유 없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팽만익과 팽유연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팽유연의 눈에 어린 빛은 더했다.
‘허~! 당가의 사람들에게는 그리 잔인하더니 딸에게만큼은 저리 따뜻하구나. 저같이 잔인한 자도 자신의 혈육에게만은 정을 주는구나.’
아직 신황과 무이의 관계를 모르는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보자! 이 녀석이 익힌 것이 만절만옥수이니 모두 서른세 가지의 극독을 섞어 익혔겠구나!”
초관염이 당만호의 몸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그가 무슨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알았으니 해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반의원들이라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성수신의, 중원제일의 신의인 것이다.
“거기에 앉아서 기다리게나. 해독약을 만들려면 시간이 조금 더 있어야겠네.”
신황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독의 공격으로 몸의 고통이 심했으나 그의 얼굴표정만큼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아직 정식인사를 드리지 못했군요. 전 하북 팽가의 팽유연이라고 합니다. 중원에 소문이 자자한 명왕 신황 소협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순간 신황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무이의 얼굴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신황의 음성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기운을 느꼈는지 팽유연이 말을 더듬었다.
무이가 신황의 바지자락을 붙잡았다. 그러자 신황이 무이의 어깨를 만지며 말했다.
“반갑소! 내가 신황이오. 그리고 이쪽은 내 조카인 백무이오.”
팽유연이 무이에게 따뜻한 눈인사를 했다. 그러자 신황이 무이에게 말했다.
망설이는 무이, 신황은 그런 무이에게 흐릿한 웃음을 지어주며 용기를 복 돋아 주었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팽씨 숙질은 그저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무이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이를 앙증맞게 물었다. 그리고는 어렵게 품에서 어머니가 남겨준 목걸이를 꺼냈다.
팽유연의 눈은 무이의 가슴을 향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이가 가슴에서 꺼내 든 목걸이에 집중 되 있었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 되 있었다. 금세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생생한 표정, 그에 무이의 눈망울에도 뿌연 습막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건 엄마가 제게 남겨준 거예요. 외.......할머니한테 받은 거라구요. 그........그런데............”
어느새 무이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팽유연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팽유연의 음성이 덜덜 떨려나왔다. 무이의 음성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얼마 전에 사.......고로 엄마가 도.........돌아가셨어요. 그.......그리고 아빠도 돌아가셨구요.
그래서.......그래서 전 백부님하고 엄마가 옛날에 살았던 집으로 가.........고 있어요.”
“성은 팽자 쓰시고 이름은 하연을 쓰세요. 아빠는 백씨 성에 우인을 이름으로 쓰시구요.”
“네가 언니의 딸이구나. 네가.............”
무이는 아무 말도 못했다. 자신을 껴안고 있는 팽유연의 몸이 매우 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느낌, 자신의 엄마가 안아줄 때 느꼈던 그 포근한 느낌이 지금 팽유연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팽유연이 잠시 무이의 몸에서 가슴을 떼고는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녀는 그것을 무이가 들고 있는 목걸이와 나란히 손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나의 어머니가 언니와 나에게 똑같이 준 것으로 이 세상에 단 두개밖에 없는 물건이다.”
그녀가 꺼낸 것은 무이의 목걸이와 똑같이 생긴 목걸이였다.
무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렇지 않아도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던 무이의 눈에 다시 그렁그렁 눈물방울이 맺혔다.
팽유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도 온통 눈물로 얼룩이 져 있었다.
팽만익이 하얀 수염을 푸들푸들 떨며 그녀들을 향해 다가갔다.
“네..........네가 하연이의 딸이란 말이냐? 하연이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연이는 어쩌고 네가 이곳까지 온 것이냐?”
누구보다 팽하연을 아꼈던 팽만익이다. 때문에 그의 목소리에는 누구보다 강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의 어깨를 신황이 잡았다. 그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이를 팽가로 데려가는 길입니다.”
“그......그런! 아니 하연이가 왜 죽었나? 왜? 그 착한 아이가.......... 어느 놈이 그 아이를 건드린 것인가? 도대체 어느 놈들이.............”
팽하연을 건드린 것이 누구인지 안다면 당장이라도 도를 들고 달려 나갈 기세였다.
“저 아이의 부모에게 손을 댔던 자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여전히 무심한 눈이다. 강호에서 그래도 고수소리를 듣는 자신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표 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제 신경을 쓰고 보니 그의 눈동자 속에 숨겨진 파괴력이 보인다. 수많은 세월 동안 강호를 종횡했던 자신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눈이다.
팽만익의 말에 신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팽만익은 수긍했다. 이런 눈을 가진 남자가 허튼소리를 할리 없기 때문이다.
신황은 묵묵히 팽유연과 무이의 해후를 바라보았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팽만익 역시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왠지 저들 사이에 그가 끼어드는 것이 망설여졌다. 팽만익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을 팽유연과 무이는 꼭 껴안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얼마 후 팽만익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분노에 찬 모습으로 부들부들 떨다가도 무이를 보면 다시 주책맞게 웃음을 터트리는 팽만익, 신황은 그들의 모습을 보다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옆에 초관염이 따라붙으며 말했다. 신황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신황의 모습을 보며 초관염이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비록 소량이라지만 독에 중독되었다. 그것도 천하의 당가에서 만든 독이다. 그런데도 신황의 얼굴에서는 중독으로 인한 어떤 표정변화도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고통이 심해 참기힘들 텐데도 그의 얼굴에서는 전혀 그런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초관염이 이제까지 수많은 환자를 봐왔지만 이런 남자는 처음이었다.
“걱정을 했지만 자네라면 조금 더 견딜 수 있겠군. 내 지금 들어가서 약을 만들 테니 기다리게나.
혼자 있기 뭐하면 내 친구 시체 치우는데 도와주기라도 하게나. 시체 처리는 이 화골산(火骨酸)으로하고....”
그 모습에 초관염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 절래 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흔들며 뒷수습을 하던 장노인은 신황이 다가오자 몸을 움찔했다.
무공이라고는 길가에 굴러다닌다는 흔한 초식조차 하나도 모르는 그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초관염이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런 그에게 있어 갑자기 난입한 당가의 인물들과 그들을 상대로 살육을 자행한 신황이 인간 같지 않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다른 그 누구라도 신황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면 당연히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가 하겠습니다. 이 이상 험한 꼴 보실 필요 없습니다.”
신황의 말에 장노인이 황급히 그 자리를 떴다. 그모습을 보며 신황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남이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은 그저 자신의 길만 가면된다. 남이 이해해 주는 것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는 묵묵히 자신이 난자한 시신들을 대장간의 안쪽 공터에 모았다.
유달리 눈을 부릅뜬 당이홍의 눈이 들어왔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이제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그러자 화골산이 떨어진 부위부터 급격히 시체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여섯 명이나 되는 시체들이 녹아내리는 광경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때문에 신황은 고개를 돌려 그 광경을 외면했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팽유연이 눈물을 닦으며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까지 무이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이는 내 조카요. 당연한 일을 한 것뿐 인사를 받을 이유는 없소.”
“하지만 저희 팽가로써는 정말 어떻게든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녀의 말에 신황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그는 예의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보답은 필요 없소. 난 팽가까지 무이를 데려갈 것이오. 그리고 무이가 잘 적응하는지 내눈으로 확인하면 내 길을 갈 것이오.”
“무이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이제부터 제 친딸 대하듯 할 테니............”
“세상일은 모르는 거지. 그리고 사람의 마음도..............”
팽유연의 눈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신황의 말투에 담긴 어감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황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에서 더 이상 어떤 말을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허허허! 그리 살았더냐? 그래서............그래서 어이 되었느냐?”
팽만익의 너털 웃음이 연신 들려왔다. 팽만익은 무이를 꼬옥 안고 있었는데 무이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연신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무이가 귀여워 견딜 수 없다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아마 팽만익을 아는 강호의 인물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자신의 두 눈을 씻고 의심을 할 것이다.
자신의 아들들에게는 누구보다 엄하게 대하는 그이다. 때문에 그의 아들들은 그의 앞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그런데 지금 무이를 안고 있는 그의 모습은 손녀를 보는 할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비록 가문이 힘들기는 하지만 팽가의 그 누구도 무이를 타박하지는 않을 겁니다.”
신황이 무이에게 시선을 때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너무 나직해 팽유연은 미처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호북에는 수많은 강들과 호수로 인하여 수로가 매우 잘 발달 되어 있었다. 때문에 호북은 중원의 교통요지이면서도 많은 문물이 지나는 핵심 요충지였다.
때문에 이곳 호북의 백성들은 매우 문화의식이 높았으며 또한 자존심도 강했다.
그런데 그들의 자존심을 높여주는 또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무림맹이 바로 호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록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무림맹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무림맹의 제일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자소청(紫巢廳), 이곳은 무림맹의 문사인 백면서생(百面書生)제갈문의 거처로 무림맹의 대부분의 중요 의사가 이곳에서 결정 되었다.
백면서생 제갈문. 무림맹의 문사로 별호 그대로 백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무림맹의 중요 대소사가 거의 대부분이 그의 선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사실상 무림맹의 실세라고 봐도 무리가 없었다.
밖의 풍경이 모두 내다보이는 자소청의 삼층, 그곳에 제갈문이 있었다.
제갈문은 창가에 서서 묵묵히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두 명의 남녀가 조용히 서 있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제갈문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복면을 뒤집어 쓴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제갈문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마치 유생 같은 풍모의 얼굴이 나타났다. 누가 봐도 온유해 보이는 인상이다.
하지만 복면을 쓴 남자는 그의 얼굴 뒤에 숨겨져 있는 잔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몸은 더욱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옛! 그의 행적이 처음 나타난 곳은 소문대로 천산에서였습니다.
워낙 산세가 험한 곳이라 그가 어디에서 살았는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가 그곳에서 기거했던 것은 분명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가 천산파를 단신으로 쳐들어가 봉문을 시킨 것도 사실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아 그간의 소문이 모두 사실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런가? 신흥강자의 출현인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이야기군.”
부하의 보고를 받는 제갈문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강자들이 출현 하는 곳이 무림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지금 그들이 보고를 받는 인물처럼 그렇게 파란을 일으키며 전 무림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나타난 자는 드물었다.
그만큼 그의 무력은 범상치가 않았다. 순식간에 대륙십강의 뒤를 이을 강자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무력수위는 확실히 후기지수 가운데 최고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미 강호의 절정을 달리는 고수라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무공은 아직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쓰는 무공이 이제까지 강호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갈문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미소가 떠올랐다. 가끔씩 이런 자들이 있다.
출신내력도 분명치 않으면서 강호에 큰 풍파를 몰고 오는 이들이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자들이 반갑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많이 몰고 다니기 때문이다.
“평상시라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시기가 안 좋군. 더구나 우리일과 관련이 있으니 더욱더 그렇고.............. 적문주가 지금 길길이 날뛰고 있어.
덕분에 그를 달래느라고 요즘 애를 먹고 있지. 거기에다 당문과 팽가, 어디 한군데 우리와 연관되지 않은 일이 없어.”
“자네가 죄송할 게 무에 있겠나. 하지만 일 처리 만큼은 확실히 해주어야겠네.”
분명 부드럽고 온화한 말이다. 하지만 제갈문의 말을 듣고 있는 복면인의 얼굴에는 한줄기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주군이 하는 말을 마음에 들지 못하게 처리할시 어떤 처벌을받을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암혼삼십육수(暗魂三十六守)를 움직이겠습니다. 그들이라면 문상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수있을 겁니다.”
순간 대답을 한 복면 남자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눈앞에서 남자가 사라졌음에도 제갈문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예의 조용한 음성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러자 뒤에 있던 여자가 탁자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글쎄요! 암혼삼십육수가 강하긴 하지만 정말 그에 관한 소문이 맞는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것 같군요.”
만약 암혼삼십육수보다 약하다면 전혀 쓸모없는 인물일 것이고, 만약 그들을 이긴다면 어느 정도 이용치가 있는 인물이겠지. 판단은 그때까지 유보한다.”
“그렇다면 제가 한번 나가볼까요? 그런 인물이라면 제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거든요.”
“후후! 너의 그 고질병이 또 도졌구나. 좋다! 네가 강호로 나가거라. 단 혼자 나가지 말고 무룡대(武龍隊)를 데리고 나가도록 해라.”
제갈문의 말에 여인이 제갈문이 따른 찻잔을 들며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이는 이제야 만난 자신의 이모인 팽유연과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덕분에 그는 모처럼 혼자 잠을 잘수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 자는 잠이라 좀 쓸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이가 가족들과 만난 날이기에 같이 기뻐해 주었다.
“오랜만이군! 달을 보는 것도..............”
이제까지는 너무나 바빴다. 무이를 돌봐야 했기에 그동안은 자신의 무예를 닦는 것을 등한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 모처럼 시간이 났으니 한바탕 몸을 풀어도 상관없을 듯싶었다.
사실 신황은 그동안 월영인을 조금 더 발전시킨 형태를 생각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형태는 잡아놓고 있었지만 그동안 시간이 없어 직접 몸으로는 익힐 시간이 없었다.
이른바 이론과 실제 사이에 괴리감이 있다고나 할까.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무예를 직접 몸으로 익혀야 했다.
월영보는 크게 만월보와 현월보로 나눠진다. 만월보가 환(幻)의 묘리를 담고 있다면 현월보는 쾌(快)의 묘리를 담고 있다.
실전에서 신황은 상황에 따라 두개를 적절히 혼합해 사용한다. 신황의 이 두 가지 보법은 요즘 수많은 실전을 거치면서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신황 자신도 가끔은 두 가지를 헛갈릴 때가 있었다. 어느 때는 만월보가 현월보 같고 현월보가 만월보 같기도 했다.
하지만 신황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쨌거나 실전에서 잘 써먹으면 그만 아닌가!
신황은 월영보를 사용하면서 월영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월영인이 손발에 맺혔다. 그는 그 상태로 손발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발이 바람을 갈랐다. 그러자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날카롭게 갈라져 나갔다.
달빛이 은은하게 그를 감쌌다. 마치 달빛 속에서 홀로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단전이 근질거린다. 월영기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월영기는 그의 단전에서 시작 되 그의 온몸을 헤집고 다녔다.
마치 칼과도 같이 차갑고 날카로운 기운, 만약 신황이 아닌 다른 자가 월영기를 운용한다면 심맥이 갈가리 찢고 말리라. 그만큼 월영기는 양날의 칼과도 마찬가지였다.
지독한 살상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만큼 부담도 큰 것이다.
몸이 떨린다. 월영기가 요동을 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사지에 퍼져 있던 월영기가 그의 오른팔로 몰렸다. 그러자 그의 오른팔에 굵은 힘줄이 투둑 튀어나왔다.
‘더............더..............!’
신황의 눈에 핏발이 섰다. 과도한 공력이 집중되는 탓이다.
어느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의 오른 팔에 월영인 맺혔다. 그러나 평소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의 것이 거의 무형에 가깝다면 지금 그의 오른팔에 생성된 것은 유형의 모습을 확실히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신황은 공력의 주입을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월영인이 크게 확장되며 륜(輪)의 형태를 갖췄다.
신황의 입가에 한줄기 선혈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자신의 손에 집중이 되 있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느릿한 회전을 하고 있는 커다란 륜, 그것은 그가 월영인의 형태를 변형시킨 것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실전을 치루면서 신황은 자신이 만든 무예의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의 무예가 너무나 접근전에만 치우쳐 있어 거리를 두고 싸워야 할 경우 파탄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급한 김에 월영인을 날리기도 했지만 공력의 소모에 비해 효율성이 적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때문에 그는 조금 더 확실한 공격방법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그의 오른손에서 맴돌고 있는 륜이었다.
월영인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날리기 위해 조금 더 진화시킨 것이다.
쉬이익!
그는 입술을 질근 깨물며 만들어낸 륜을 허공으로 날렸다. 그러자 륜이 십여장을 날아가다 사라졌다.
사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월영인에 조금 더 공력을 집중시켜 형태를 만들어낸 것일 뿐 진정한 위력을 지닌 새로운 기술이 아닌 것이다.
“형태만 잡았을 뿐 알맹이를 채워 넣으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신황은 월영보를 접으며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아직 월영륜의 느낌이 남아있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무예란 없다. 필요에 따라 하나하나 보완되며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황은 충분히 그럴 용의가 있었다.
그때 그의 귀에 설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설아와 함께 무이가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나오고 있었다.
“그래! 너도 잘 잤느냐? 왜 더 자지 않고 이리 일찍 나오느냐!”
어젯밤 밤새도록 이모인 팽유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도 얼마 못 잤을 텐데도 무공을 배우겠다고 나오는 열의가 기특한 것이다.
그때 무이가 신황의 곁에 다가오며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신황은 무이가 무슨 의미로 그러는지 알아차리고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이것은 비밀인데요. 사실은 백부님하고 잘 때가 더 편했어요.”
마치 커다란 비밀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직이 속삭이는 무이. 신황은 손을 들어 무이의 머리를 만져 주었다. 그러자 무이가 혀를 쏙 빼며 귀엽게 웃었다.
“고맙구나! 하지만 앞으로는 이모하고 자도록 하거라. 미리 친해둬야 나중에도 더욱 편하니까.”
“이제부터 무공을 수련하자. 어제 가르쳐 준 심법은 잘 기억하고 있겠지?”
신황은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서 손날로 다듬어 목도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는 그것을 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령도(紫靈刀)는 모두 세 가지의 초식으로 이루어진다.
첫번 째 초식은 자령일섬(紫靈一閃)이라 하고, 두번째 초식은 자령만휘(紫靈滿輝)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초식은 자령만천(紫靈滿天)이라 한다.”
“그렇다! 기본적으로 자령도는 찌르기, 베기, 부수기, 이 세 가지의 요체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에 수많은 무리(武理)가 있지만 도법을 놓고 본다면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자령일섬은 극쾌의 빠르기를 형상화 시킨 찌르기로 공력을 한데 모아 엄청난 폭발력을 얻는데 그요체가 있다.
그리고 자령만휘는 자색의 도기가 만천하를 휩쓴다는 의미처럼 베기의 요체를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령만천은 보다 패도적인 위력을 가진 초식으로 가진 내력을 도인에 집중시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일반 강호의 무공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신황은 이 세 가지의 초식이 연환이 될 수 있게끔 손을 봤다.
단 세 가지의 초식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럼으로 인해 세 가지 초식이 일곱 가지 이상의 초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세 가지 초식만 익히면 일곱 가지의 변식이 나오는 건가요?”
“그렇다! 하지만 처음엔 하나의 초식씩 익혀야겠지. 그리고 각 초식들이 능숙해지면 변식을 익힌다. 지금부터 구결과 초식을 알려주마.”
신황은 무이가 알아듣기 쉽도록 구결을 풀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무이는 가끔 이해가 가지 않으면 질문을 하며 신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자령심법을 알려줄 때와 마찬가지로 단 두 번 만에 구결을 완벽하게 외움으로 총명한 오성을 자랑했다.
신황은 그런 무이를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준 자령도는 이제부터 북경으로 가면서 틈이 나는 대로 익힐 것이다. 그러니 잊어버리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거라.”
“그리고 지금 내가 알려준 구결은 오직 너 혼자만 알고 있거라. 다른 누구에게도 말해줘서는 안된다. 자령도는 오직 무이 너를 위해 만든 것이니..............”
“그래! 세상에 많고 많은 무공이 있지만 자령도는 오직 너 하나만의 것이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자신만의 무공이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백부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만들어준............, 그러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백부님! 절대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무이 혼자만 알고 있을게요.”
“그래! 그리고 오늘 아침은 가볍게 체력 단련을 시작하자.”
신황은 무이의 손에 자신이 만든 목검을 들려주며 말했다.
“이것으로 설아를 때릴 수 있을 때까지 휘둘러 보거라.”
“후후~! 아마 네가 설아를 때리려면 십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신황의 말에 설아가 나직한 울음을 토해내며 자리를 뜨려했다. 귀찮아질 것을 직감한 것이다.
순간 신황이 만월보를 펼쳐 설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설아가 펄쩍 뛰어 신황의 옆으로 빠져 나가려 했다.
그러나 신황이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려 막음으로써 그런 설아의 기도는 무산됐다.
설아의 입에서 기분 나쁘다는 듯한 울음소리가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신황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말고 몇 번만 도와달라고..............”
신황의 말에 설아는 대답도 않고 뒤로 몸을 날렸다.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미처 감지하지 못할 만큼 빠른 몸놀림이었다.
만약 신황이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설아의 기척을 놓칠뻔 했다.
신황이 재빨리 몸을 날려 설아의 뒤를 점유했다. 그러자 다시 설아가 반대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것이 마치 곳곳에 번개가 치는 것 같다. 신황과 설아는 별채의 정원 곳곳을 누비며 빠른 몸놀림을 과시했다.
무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도무지 신황과 설아가 어찌 움직이는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주먹만 한 크기지만 어지간한 고수들보다 빠르며 은밀한 몸놀림을 가지고 있었기에 신황은 설아를 잡기위해 한동안 식은땀을 흘려야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마침내 설아의 뒷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목덜미를 잡힌 설아의 입에서 기분 나쁘다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설아의 눈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북경까지 가는 내내 매 식사 때마다 네 몫으로 신선한 생선 한 마리 씩 구해주마. 이정도면 너도 그리 손해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친구를 위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느냐! 너와 무이는 친구니까................”
설아의 얼굴에 고민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자 신황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좋아! 생선 두 마리. 나도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
마침내 설아가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그제야 신황은 설아를 놓아 주며 무이에게 말했다.
“보았느냐? 설아는 이렇게나 빠르단다. 네가 설아를 때린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니 그저 몸놀림을 따라잡으려 최선을 다 하거라.”
무이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다시 봤다는 듯이 설아를 보았다. 평소에 게으른 모습만 봐서 이제까지 설아가 이렇게나 빠른지 몰랐던 탓이다.
무이가 목도를 단단히 잡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설아의 입에서 나직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것은 귀찮은 일을 떠맡은 사람의 한숨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신황은 그렇게 둘을 붙여 논 다음 정원을 빠져 나왔다.
등뒤로 무이와 설아의 소리가 들려왔다.신황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신황이 별채의 모퉁이를 돌자 단장을 끝내고 나오는 팽유연과 수염을 매만지며 나오는 팽만익이 보였다.
“무이는 어디 있는가? 유연이의 방에도 없다던데...............”
“지금 후원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혼자 있게 놔두십시오. 식사 시간이 되면 이리 올 테니................”
“무공? 아니 무슨 무공을 익히는가? 이제 팽가의...............”
그의 말을 팽유연이 소매를 잡으며 말렸다. 뒤돌아보자 고개를 젓는 팽유연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팽만익은 무이가 팽가의 무공이 아닌 다른 무공을 익히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못되어서가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팽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팽가의 사람이면 당연히 팽가의 무공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팽유연은 그런 팽만익의 말을 막았다.
팽유연이 보는 신황은 꺾이면 꺾였지 결코 휘어지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조카인 무이에게 평범한 무공을 가르쳐 줄 리도 없을뿐더러 팽만익이 뭐라 한다 해서 들을 리 없었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가르쳐주는 절기는 개인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문제 삼지 마십시오.”
팽유연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했다. 신황은 그런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그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팽만익이 인상을 찡그린 채 말했다.
“왜 말렸느냐? 이제 무이도 팽가의 사람이 맞는데 외인의 무공을 배울 필요가 무에 있느냐? 어디 팽가의 식구가 할일이 없어서 남의 무공이나 배운단 말이냐?”
누구보다 팽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팽만익이다. 때문에 그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팽유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무이가 본가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정식으로 인정받을지 미지수입니다.
둘째 숙부님께서 반대하시면 힘든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떠나서 저분의 절기가 본가로 전해지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 팽가의 절기가 어디가 모자라서.”
팽유연의 말에 팽만익이 펄쩍 뛰었다. 그러나 팽유연의 말은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당가의 이장로를 제압한 분입니다. 전 아직까지 그보다 효율적으로 싸우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펼치는 무공도 말입니다. 사실 저희 팽가는 이제까지 너무나 정체 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가문의 절기를 대성하신 분이 없습니다. 혹시 모릅니다. 저분의 무공이 벽을 깨게 해주는 실마리가 될지도..............”
사실 팽가의 무공은 너무나 고차원적이 되어 버렸다. 아니 그것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중원의 모든 명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었다.
본래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도문(道門)과 불문(佛門)등에 흘러들어가면서 뜻을 담기 시작하고 조그만 동작 하나에도 너무나 많은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때문에 무공의 의(意)를 모르면 무공의 극에 다다르기가 힘들었다.
또한 너무나 형이상학적으로 무공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점점 높은 성취를 이루는 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팽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제 신황이 싸우는 모습은 너무나 신선한 것이었다. 그는 무공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어찌하면 효율적으로 싸울 것인가에 더욱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팽유연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들어주었다. 어찌 보면 신황이 싸우는 모습이 무공 그 자체의 뜻을 가장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하더라도 무공의 본질은 적을 제압함으로써 내가 사는 것.’
팽만익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었지만 워낙 팽유연의 얼굴이 진지한 까닭에 더 이상 어떤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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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
잘보고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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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감사 드리면서오늘도 ,독. 하고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ㄳㄳ
잘봅니다
즐감 하구 갑니다
즐독요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