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입술에서 문득 희미한 웅얼거림 소리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음 같기도 하고 한숨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마치 제주도의 바닷가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바다 울음소리나 파도 소리 같은 그 웅얼거림은,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니 이어도, 그 오랜 제주도 여인들의 슬픈 민요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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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중편소설 「이어도」 중에서 |
하늘은 잿빛입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향긋한 바다냄새가 납니다. 제주에 도착한 그때부터 어떤 흥얼거림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햇살 속에 파르르 퍼지는 여자아이의 재재거림, 여인의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소리, 웅숭깊은 여인네 노래 소리, 할머니의 자장가 소리. 무언지 분간할 수 없는 그 소리들은 바람의 결을 타고 귓가를 서성이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서울을 떠나 한 시간만에 도착했으나 아주 아득한 여신들의 섬에라도 온 듯 현실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오르페우스의 현금(玄琴:거문고)이 묻힌 레스보스 섬에 와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디선가 감미로운 음악이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전날 잠을 설친 탓인지 자꾸 눈이 감겨왔습니다. 차는 공항을 출발해 송악산으로 향합니다. 마음은 벌써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를 향해 노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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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아가 우지마라 차창을 열자 부드러운 바람이 목덜미를 간질입니다. 누군가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는 것 같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검고 긴 머리를 가진 그녀가 보일듯말듯한 미소를 품고 이쪽을 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눈은 내 몸을 지나 창 밖에 펼쳐지는 푸른 언덕을 달리는 듯합니다. 나를 향한 것이 아닌데도 나는 그 부드러운 눈길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어쩌면 그녀를 사랑하게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밋밋하던 평야에 갑자기 둥그렇게 산이 솟아났습니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방산입니다. 먼 옛날 제주에는 500명의 자녀를 둔 거신(巨神) 설문대할망이 살았다지요. 얼마나 몸집이 큰지 마라도와 관탈섬에 다리를 걸치고 우도를 빨래돌 삼아 빨래를 했다고 합니다. 빨래를 하던 설문대할망이 방망이를 잘못 놀려 한라산 봉우리가 떨어져 나온 것이 산방산이 되었다는군요. 거구의 할망이 빨래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때 그녀가 귀에 대고 소곤거렸습니다. 자 들어봐. 지금 할망이 죽을 끓이고 있어. 바다에 나간 아들들을 위해 끓이는 죽이야. 그런데 어쩌지. 그만 죽 끓이는 솥에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어. 바다에서 돌아온 자식들은 그것도 모르고 죽을 맛있게 먹어. 다 먹고 나서야 솥 밑바닥에 어머니의 나막신을 보았지. 제 어미의 살과 피를 먹은 자식들은 그 자리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자결하고 말아. 그들은 한라산 영실기암이 되었고 해마다 5월이면 철쭉꽃처럼 붉은 눈물을 흘려. 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니?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의 품속으로 숨어드는 애들 마냥 그녀에게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싶어집니다. 그러자 투박하지만 보드라운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합니다. 느껴보렴, 네가 맡고 있는 이 흙과 바람의 냄새를. 볕 좋은 오후 잘 달구어진 옹기처럼 따스한 할머니의 목소립니다. 그제야 나는 어머니 대지의 보드라운 살을 밟고 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철쭉을 피우고 새들을 불러모으고 소들을 키우는 대지의 숨결. 아직도 이곳 검은 땅에 젖줄을 흘리고 있는 어머니 신을 나는 왜 몰랐을까요. 할망의 숨결을 한껏 들이마시고 마라도로 가는 배편에 올랐습니다. 지독한 바람입니다. 숨을 곳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는 바람 피할 품 넓은 나무 하나 없이 나즈막합니다. 그 나즈막한 언덕 저 끝에 등대만 우뚝 서 있습니다. 세계 해도에 제주도는 없어도 마라도 등대만은 표시되어 있다는 유명한 등대. 어두워지면 저 멀리 40여 킬로미터까지 강한 빛줄기를 내뿜는다지요. 휘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그대로 내맡긴 채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걷던 그녀가 언덕 밑으로 사라집니다. 나는 옷깃을 세우고 몸을 웅크린 채 그녀 뒤를 좇습니다. 너무 게으름을 피운 걸까요, 그녀는 어디론가 먼저 가버리고 없습니다. 바람 때문에, 나는 애꿎은 바람 탓을 해 봅니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 허리 참에 빈 포대기를 두른 가냘픈 여자아이가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아이가 빈 포대기를 어르며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하네요. ‘아가아가 우지마라 아방 있고 어멍 있는 아가아가 너 왜 우니…’ 아이의 목소리에는 짙은 물기가 배어 있습니다. 내가 가까이 가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만 바라봅니다. 아이가 바라보는 바다 저 쪽 가파도가 보입니다. 가파도 너머는 모슬포입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돌아올까요? 아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립니다. 널어놓은 기저귀를 가져가려고 배에서 내렸는데 사람들은 내가 내린 걸 까맣게 잊어버렸나봐요. 바람 때문이에요. 바람을 잠재우려고 선원들이 나를 두고 간 거예요. 그런데 바람은 여전히 난폭해요. 그래서 나를 데리러 오지 못하는 거겠죠? 저 섬 너머 모슬포가 우리 집인데요.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아이의 혼잣말을 지워버립니다. 아이가 있던 자리에 둥그런 돌담만 남았습니다. 하염없이 모슬포만 바라보다 외로움과 굶주림에 지쳐 죽은 애기업개의 당이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휑한 돌담에 돌 하나를 더 얹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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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애처로운 애기업개당을 뒤로 하고 걷다보니 동화 속 그림 같은 하얀 집에 다다릅니다. 미끄럼틀이며 시소며 철봉이 있는 걸 보니 이곳이 마라분교인가 봅니다.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가득해야할 운동장에는 국기 게양대 깃발 펄럭이는 소리만 스산합니다. 괜스리 게양대 옆 쇠종을 두들겨봅니다. 어딘가 숨은 아이들이 이 소리를 듣고 달려나오지 않을까요. 정글짐 사이사이로 바다가 조각나고 있습니다. 이윽고 나타난 두 사람. 마라분교의 유일한 선생님과 학생입니다. 부녀처럼 다정해 보입니다. 지난 모슬포장에서 사온 토끼를 위해 풀을 뜯어 오는 길입니다. 소녀는 부지런히 토끼장으로 달려갑니다. 나는 소녀 옆에 쭈그리고 앉아 풀을 건네줍니다. 소녀는 말이 없습니다. 외로웠으면서도 반가우면서도 내가 곧 떠날 것을 알기에 쉽게 마음을 보이지 않는군요. 소녀의 발소리를 알아듣는 토끼들과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이 소녀에게는 더 소중할 테지요. 나는 더 남쪽으로 향합니다. 최남단비가 있는 장시덕선착장까지 오고야 말았군요. 정말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입니다. 그녀가 먼저 와 끝간데 없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 다리를 가지런히 포개고 앉은 그녀는 슬퍼 보입니다. 눈물처럼 말간 꽃이 그녀 주위에 피어 있습니다. 별사탕처럼 아주 작은 꽃입니다. 너무 작아서 내가 가면 소스라치게 놀랄까봐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겠습니다. 그녀는 지금 이어도를 꿈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서는 되돌아오지 못하지만 이승의 삶이 고달플 때 편히 쉴 수 있는 저편의 섬, 이어도.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려 돌아오지 않는다는 그 섬에 가고 싶은 걸까요. 아침부터 귓가에 맴돌던 여인의 흥얼거림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넓은 바다 앞을 재면서, 한 길 두 길 앞으로 가고 깊은 바다 깊이를 재며, 한 길 두 길 들어가면 저승길이 오락가락,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가 저승길의 반이라 한다.’ 저기 어디 해녀들의 물질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허벅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랫소리인지도 모르지요. 그녀와 함께 앉아 오래도록 이어도를 가늠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이어도를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본 이어도에는 먼 옛날 물질을 나갔던 그녀의 어미나 바다에 나가 몇 년째 소식 없는 지아비가 살고 있었겠지요. 그녀가 내게 백년초 열매 하나를 따 주었습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 붉은 물이 들었습니다. 국토의 마지막, 어쩌면 영혼의 시원(始原)일지도 모를 마라도에서 그녀와 나는 얼굴을 맞대고 붉은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입 안 가득 새곰한 향기가 번졌습니다. 소녀의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가시가 손가락에 박혀 있는 것은 나중에야 안 일입니다. 우리는 낙원에서 쫓겨나는 심정으로 자꾸 섬을 되돌아보며 배에 올랐습니다. 돌무더기 위에서 웬 소녀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합니다. 아기 기저귀 같은 흰 천이 갈매기처럼 배 뒤를 쫓아오며 거센 바람을 막아주네요. |
풀이 눕는다 또 하나의 섬 우도에 왔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흰 소를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닮은 우도(牛島)라서 괜한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수 년 전 굳은 소똥과 말똥을 밟으면서 우도봉에 올랐을 때 보았던 흰 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흰 소는커녕 얼룩무늬젖소도 없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꼭 흰 소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도봉에 오릅니다. 초록빛 물결로 번지는 잔디들은 느릿느릿 해안까지 이어지다가 그대로 바다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 언저리에는 망설임처럼 드문드문 검은 돌담과 집들이 퍼져 있습니다. 초록이 파랑과 만나 교합하는 해안선에는 흰 물보라가 일어납니다. 바다는 옥색과 코발트색 감청색으로 제 속살을 바꾸며 춤을 춥니다. 초록과 파랑이 대지와 바다가 만들어 내는 곱디고운 색에 나도 들어갈 수 없을까요. 신을 벗고 우도봉 기슭에 앉았습니다. 손가락을 쫙 펴고 잔디 한올한올을 쓰다듬어봅니다. 온기가 느껴집니다. 가만히 손을 대고 있으면 고른 숨을 쉬는 흙의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초록풀을 먹은 흰 소가 스스로 초록이 되어 깊은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끌어다 잔디 위에 얹어 주었습니다. 이번엔 그녀가 내 손을 잡아당깁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울타리를 넘어 우도봉 절벽에 앉았습니다. 길게 자란 풀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젖히고 있습니다. 서로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서로의 등을 어루만지며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들. 숨어 있기 좋은 곳이에요, 내가 말합니다. 그녀는 사람이 선해지는 곳이야, 라고 대답합니다. 그제야 나는 “발목까지 발 밑까지 눕는” 것이 무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조금 더 누워 있어야겠습니다. 돌담을 지나 밀밭길을 나그네처럼 걸었습니다. 하얀 수염을 꼿꼿이 세운 밀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우도봉의 풀들과 닮았습니다. 우도의 어느 곳을 지나든 선해지지 않을 수 없는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작은 비양도입니다. 제주도 서쪽 끝 한림 앞바다에 큰 비양도가 있고 동쪽 끝 우도 앞에 작은 비양도가 있습니다. 자칫 놓치고 지나치기 쉽지만 너무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검은 바위 해변 너설(바위나 돌 따위가 삐죽삐죽 내민 험한 곳-편집자 주) 웅덩이는 작은 바다입니다. 고요한 듯하지만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도를 닮은 애기삿갓조개며 백록담처럼 분화구가 있는 사각따개비며 테두리고동 거북손이도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딱지조개네요. 이곳 사람들이 군부라고 부르는 납작한 이 조개류는 딱딱한 껍질을 칼로 긁어낸 다음 속살을 삶아 된장에 무쳐 먹는다고 합니다. 바위에 딱 달라붙은 조개를 떼어내고 껍질을 일일이 긁어내 얻은 속살은 아주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바위마다 붙어 있던 군부는 꽤 긴요한 식량이 되었을 테지요. 가위집게 한 마리가 고동을 이고 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야트막한 초원 위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키 작은 엉겅퀴와 민들레가 하염없이 피었습니다. 서로 우쭐대거나 주눅들지 않고 풀과 꽃과 바람이 어울려 하나의 작은 섬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끔 길 잃은 게 한 마리가 꽃무덤에 숨었다가 돌아가곤 합니다. 바다생물과 육지생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상상의 섬, 꿈인 듯 평화로운 이곳이 어쩌면 그녀가 보았던 이어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풀을 뜯던 검은 말이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
똘은 나민 도새기 잡으라 옥빛 물색이 고운 하고수동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밤에 이곳에서 바라보는 밤 멸치잡이 배의 풍경을 일컬어 야항어범(夜航魚帆)이라고 부릅니다. 어선의 불빛이 얼마나 밝은지 칠흙같이 어두운 날이라도 마을 안길은 그리 어둡지 않다고 합니다. 야항어범과 함께 우도 8경중 손꼽히는 서빈백사(西濱白沙)로 향합니다. 오랜 세월 바다 밑에서 조금씩 자라나다 떨어져나온 산호조각들이 해안으로 밀려와 모래사장을 이룬 곳이지요. 동글동글한 산호모래가 눈이 부시도록 하얗습니다. 여인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제 막 물질을 끝내고 나와 작업을 하는 해녀들의 목소리입니다. 망사리에 전복이나 참소라를 기대했는데 해초만 가득합니다. 붉은 해초를 포대에 넣는 손이 바삐 움직입니다. 그런데 나는 자꾸 해녀의 발을 바라보게 됩니다. 구멍난 사내의 양말을 신은 해녀의 발. 어느 바위에 뜯겨나갔는지도 모른 채 차갑기만 한 물 속에서 숨을 참으며 부지런히 갈갱이질을 했겠지요. 제법 쌀쌀한 바람이 살갗에 착 달라붙은 젖은 양말 틈을 비집고 들어갑니다. 나는 그녀들의 젖은 발을 보면서, 아들을 낳으면 엉덩이를 때리고 딸을 낳으면 돼지를 잡으라 했던 우도 속담을 기억해냅니다. 가슴이 시렸습니다. 우도를 떠나기 전 마주친 할머니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할머니 두엇이 망사리를 등에 지고 바위를 밟아 해안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허리를 펴지 못해 망사리 속에 돌맹이를 넣고 가는, 오래 전 깊은 물 속까지 들어가 해산물을 캐는 대상군이기도 했던 그녀들은 이제 너설 웅덩이에 쭈그리고 앉아 톳을 캐거나 군부를 잡습니다. 바위 뒤로 사라지는 그녀들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빌어보는 것입니다. 그녀들이 둘러맨 망사리 속에 해산물들이 가득 차기를, 그것이 넓미역처럼 쑥쑥 자라 그녀들의 지친 몸을 따뜻이 감싸주기를 말입니다.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지그시 웃습니다. 말간 그녀의 눈망울에 물질하는 해녀와 아기를 업은 소녀와 빨래하는 할머니가 보입니다. 한없이 서서 기다리는 여인의 가냘픈 몸도 보이네요. 이제 나는 그녀와 그녀의 그녀들을 노래합니다. |
마라도, 복잡한 심사가 되다 한반도의 남쪽 끝 마라도는 생각보다 작았다. 전체 면적 0.3㎢, 해안선 둘레 4.2km, 동서 500m, 남북 1.2km.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는 데 1-2시간 정도면 족하다. 눈을 북쪽으로 돌리면 본 섬 제주도의 남서쪽 자락들을 쉽게 볼 수 있어 그런지 최남단, 끝이 주는 고립감은 울릉도 같은 데서 받는 것보다는 덜하다. 마라도, 두 가지만 얘기하기로 한다. 첫째, 짜장면집. 마라도를 떠나올 때도, 지금도, 마라도의 짜장면집을 두고는 애증이 복합된(증이 훨씬 더 많은) 복잡한 심사를 갖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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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애(愛). “60년만에 드디어 왔다. 마라도에 일출봉에. 짜장 먹고 싶어 왔다.” “혼인서약. 오늘 이 두 사람은 제주도 남쪽 마라도에서 하늘이 내려주신 인연으로 부부로 태어남을 선언합니다.” “안동열·오창문, 벌써 결혼 10주년이래요. 두 아들 데리고 다시 왔어요.” “마라도, 바람처럼 거칠고 험한 세상일지라도 난 헤쳐나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곁에 있기 때문이다.” 마라도에서 5년됐다는 ‘원조 마라도짜장면집’의 사방 벽과 천장을 치장하고 있는 문구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마라도에 와 이 짜장면집을 찾은 사람들이 4절지 종이에 남기고 간 문구를 식당 바닥만 빼고 죄다 붙여놓았다. 짜장면을 기다리며, 먹으며, 이런 문구들을 읽는 재미가 괜찮았다. 짜장면 맛도, 친절함도, 최남단에서는 의외다 싶을 정도였다.
다음은 증(憎). 마라도 선착장에 내리면 시동을 켜놓고 대기하고 있는, 차 양옆을 짜장면집 광고로 두른 두 대의 봉고차를 본다. 한쪽은 ‘원조’를 두루고 친절하게 다른 집까지의 내력도 적어 놓았다. 배에서 내려 원조집 봉고차로 바로 직행하는 단체 관광객들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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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단 마라도…’의 어떤 것들에 관한 기대가 일순 정지 당하는 순간이다. 마라도까지와서도 보는 원조 싸움…. 당혹스런 것은 또 있다. 그 짜장면집들까지의 거리다. 차까지 대기시켜놓은 걸로 보아 걸어서는 꽤 먼 거리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선착장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지 5분여 걸으면 되는 곳에 있다. 게다가 싸움에 완전히 밀린 다른 짜장면집은 손님이 들지를 않았다. ‘원조’집의 탁월한 홍보술에 밀려 후발집 봉고차는 줄창 서 있었고 따라서 식당 문은 여닫을 일이 없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아 보였다. 여행객들이 마라도에 체재하는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그 시간에 쓰고 가는 돈이라야 대부분 그 짜장면집에서뿐일 것 같았다. 섬의 규모로 인한 여행객들의 체재 시간이 얼나 되지 않은 탓이 크겠지만, 도대체 그 짜장면집 때문에 마라도에 다른 ‘상업’들은 발 부치기가 힘들어 보였다. 어디서든 벌어지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이 소란, 대한민국 최남단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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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는 물론 전국 22개 일간지에 ‘소문난 음식점’으로 보도됐다는 그 짜장면집,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를 향해 모아온 막막한 그리움이라든가 상징성 따위를 일거에 삼켜버릴 위세로 커가고 있는 마라도 짜장면집…. 마라도에 갔다 와 기억나는 것은 짜장면집에서 짜장 먹은 것밖에 없더라? 평생 한 번 정도뿐일 마라도 방문, 이 얼마나 허망할 얘기가 아니겠는가. 마라도는 위급해 보였다. 둘째, 마라분교, 정확히는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교사 1명에 학생 1명인 초미니 학교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학생 1인당 가장 많은 교육비가 드는 학교일지도 모르겠다. 운동장(이라기보다는 마당이라고 해야 옳다)에서 공을 차면 물에 빠질 정도로 작고 좁고, 바다는 가깝다. 올해 서귀포에서 부임해 온 양학규 선생님에 의하면 학생이 한 명인 탓에 더 힘들다고 한다. 또래들이 있으면 함께들 놀게 하고 잠시 숨 돌릴 틈이라도 있겠는데 잠시도 그러지를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교과과정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같이 정해진 시간을 엄수한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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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학년인 김혜지 양은 툭하면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사진을 찍고는 떠나 다시는 연락을 해오지 않는 뭍 사람들에게 그동안 상처를 많이 받아 왔나 보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몇 마디 말문을 트기 시작하더니 카메라를 보자 이내 입을 닫고 피하는가 싶더니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슬그머니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도 친구도 없고 할 일도 없고 해서 방과 후에도 선생님이랑 지내는 날이 많다는 혜지…, 우리가 찾아간 날도 방과 후에 선생님과 토끼풀을 뜯어와 토끼와 노는 중이었다. 이 넓고 많은 세상에서 가까이 지낼 친구 한 명 없는 혜지의 외로움을 누가 생각해 주고 있을까? 마라도와 송악산을 오가는 유람선에서 일한다는 혜지 아버지가 ‘혜지야, 너 전학 갈래’ 하면 ‘싫다’고 버틸 힘이, 이유가 그녀에게 있을까? 혜지만 떠나고 나면 없어질 마라분교. 그 동화처럼 작고 아름답던 모습이 안타깝게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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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하염없이 착해지다 아름다운 풍광에 이골이 난 제주도 출신들도 인정하는 빼어난 섬이 우도다. 그런 우도의 아름다움을 우도팔경이라하여 이름 붙였으니 제1경 주간명월(晝間明月), 제2경 야항어범(夜航漁帆)에서부터 제8경 서빈백사(西濱白沙)까지, 그 이름처럼 곱고 ‘이쁜’(꼭 이렇게 써야만 어울릴 것 같다)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 중 세 곳만 얘기하자면, 첫째 마을의 고샅길들. 한라산에서 떠내려온 곰보 화산암으로 쌓아올린 돌담들로 이어진 아기자기한 골목길들을 돌아돌아 가는 재미가 그만이다. 그러다 눈을 들어 서쪽을 보면 한라산을 위로하여 봉긋봉긋 오름으로 솟아오른 제주섬, 이렇게 잘 그려진 풍경화를 어디서 또 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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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우도봉 오르는 해안절벽에서 보는 성산일출봉 일대의 바다 풍광이다. 그곳에서, 일행들 아마 이렇게들 한 마디씩 했을 거다. ‘숨이 막일 것 같다. 착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여기서 한 며칠 숨어 지내고 싶다.’ 그 중 한 명은 아예 절벽 한 귀퉁이에 누워 버렸다. 셋째, 우도 동쪽 끝에 딸린 비양도와 하고수동 해수욕장의 물빛.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된 문화유적지가 지은이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책에 소개된 이후 초토화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 책 『생활 속의 이야기』는 별 유명하지도, 영향력을 줄 수도 없는 책이니 비양도와 하고수동에까지는 여행객들이 몰려가지 않겠지. 제발 그렇게 되길. |
< 편집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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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우도 가는 길 마라도 - 송악산 포구에서 가는 게 일반적이다. 송악산 포구-마라도를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3시까지 왕복한다. 마라도까지는 약 40분 걸린다.(문의:유양해상관광, 064-794-6661) 우도 - 성산포-우도를 왕복하는 배가 오전 8시에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있다. 15분 가량 걸린다. 차량도 실을 수 있다.(문의:성산포항, 064-782-567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