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水亭) 마을 내력비
우리 고장은 상학산(上鶴山) 줄기인 함박봉을 배경으로 예로부터 낙동강 물이 안기는 곳으로서 언덕 위에 길손이 쉬어가던 정자나무와 너른 들이 있어 수정원(水亭員)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풍수지리상으로 정자가 있던 곳은 상학산 줄기에서 학의 목 부분에 해당되어 수정목이라 하였고 강물이 돌아 흐르던 곳에 선비들이 산천(山川)을 읊었던 학성산의 학사대(學士臺)는 학의 머리부분으로 수정끝이라 부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용(龍)이 유영(遊泳)하는 형상이라 하여 용수동(龍水洞)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마을 남쪽 앞산에서 신석기시대 돌도끼가 발견 되었고 가야시대 옛무덤인 고분군(古墳群)이 발굴되어 우리 고장이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배움터인 양사재(養士齋),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양수정(養水井), 강변 암벽 위에서 낚시질하던 조대(釣臺) 유적들과 대장골(大莊谷)에 얽힌 전설이 전해오는 유서 깊은 고장인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향토의 옛 모습이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음을 볼 때 선조들이 남기신 발자취를 후대에 길이 물려주기 위하여 주민들의 뜻을 모아 수정 마을의 내력을 돌에다 새겨서 남겨 놓는다.
檀紀 4330年 陰 4月 8日
水亭鄕土保存會
<수정마을의 연혁비>
신석기시대 마을 앞산에서 돌도끼 유물 발견
가야 시대 화명동 고분군(古墳群) 유적 발굴
조선 시대 양산군(梁山郡) 좌이전방(左耳田坊) 수정리(水亭里)
1869 동래부(東萊府) 좌이면(左耳面) 수정리
1875 양산군 좌이면 수정리
1896 부산부(釜山府) 좌이면 용수동(龍水洞) 수정원(水亭員)
1914 동래군 구포면(龜浦面) 화명리(華明里) 수정
1943 동래군 구포읍(龜浦邑) 화명리 수정
1964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화명동(華明洞) 수정
1978 부산직할시 북구 화명동 수정
1995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