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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동심으로 노래하는 수석 닮은 시인
- 정용원 국제PEN 한국본부 부이사장
방효필 박사는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시인이다. 그에게서 흙냄새와 풀꽃 향기가 진하게 풍겨 나와 나를 향수에 취하게 만들었다. 그의 인간미와 속 깊은 문학정신과 이제 완숙 단계에 들어서는 싱싱한 시의 맛을 알게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의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글 속에 그 사람의 사상, 인성, 감정 등이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택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서 농학석사, 공주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이다. 문학과 거리가 먼 농·공학자가 농사를 짓고 시를 좋아하고 문학지를 발간하며 문학발전을 위해서 희생 봉사하는 문인이라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했다.
방 선생이 고향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학의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걸 보면서 권력에 취한 정치인이나 권세를 누리는 부패한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매한 인격을 발견했다. 나는 방선생을 위해서 별로 도와 준 일도 없는데 어느 가을, 그가 손수 경작한 감자 한 상자를 선물로 보내왔다. 한동안 잘 익은 감자를 먹으며 그의 후덕하고 깊은 인심까지 맛볼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아기처럼 해맑게 웃는 얼굴이다.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고 남을 속일 줄 모르는 순박한 농부 시인으로 늘 상대를 편하게 해 준다.
평택시 팽성읍 원정리 소재 주택 다락방에 꾸민 청암문학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초대를 받았다. 전국에서 모인 100여명의 문인과 문학도들은 소박한 행사 내용과 진행에서 6월의 밀, 보리밭 냄새 같은 순수미를 발견하고 즐거움을 맛보았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늦은 나이에 등단을 했다. 안성문협 지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청암문학작가협회 이사장,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한국아동문학연구회, 현대수필, 시사랑문학회 등의 단체 일을 도와주고 ‘청암문학’을 발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임마누엘고등공민학교 교사, 1980년대에는 국립한경대학교에서 근무하였으며, 옥조근정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교육과 사회봉사로 젊음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의 이번 첫 시집 『밥 먹고 마음먹고』 서문 중에서 그의 자연관과 문학 사랑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보리밭 샛길을 따라 줄지어 가는데 초등 1학년 학생이 손을 흔드는 해 맑은 그 모습이 오래도록 가슴에 다가와 동심을 불러 부채질 했습니다. 귀여운 아이들을 보면서 한 편, 한 편 동시를 엮어 보았습니다. 풀 한 포기, 작은 개미 하고도 이야기 할 수 있는 어린이, 자연과 친구가 되는 그들과 동심을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바다가 보이는 평택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늘 보는 어린이들과 다정한 친구가 되어 갑니다. 저는 토끼풀도 되고 들꽃도 되어서 모든 분이 벌 나비가 되어 저의 고향 마을 다락방 문학관으로 날아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흙과 더불어 씨를 뿌리고 떡잎이 쑥쑥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곱게 자라는 예쁜 모습을 그려 봅니다.’
나는 방효필 시인의 핏속에 ‘아이’란 말을 ‘어린이’라는 존칭어로 바꾸고 어린이날을 제정한 우리나라 어린이문화운동의 대명사 방정환 선생님과 일가 혈연관계가 있어서 그런지 그가 동심의 시인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문학은 인간의 영혼을 맑게 순화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고등 동물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과학보다 몇 백 년, 또는 몇 천 년이나 앞서간다. 달나라에 제일 먼저 간 인간은 시인 이태백이다. 그러나 과학자 암스트롱은 그보다 몇 천 년 뒤에 갔다. 비록 마음으로 달에 갔다는 추상과 실제 인공위성을 타고 갔다는 과학적 사고의 차이는 있지만 달에 갔다는 비유는 그럴듯하다. 공학박사인 방효필 선생이 시인이 되었다는 것은 숫자 미학인 공학을 좋아했지만 감성미학인 문학에도 깊은 묘미를 탐지하고 터득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농학이나 공학은 일정 부분 공식에 맞춰서 풀어가는 과학이기 때문에 그가 시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얼른 이해하기 어려웠고 궁금했다. 친구 중에 수학 교사가 문학을 하겠다기에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었다. 문학은 수학 방정식처럼 풀 수 없는 영역인데 시를 쓴다기에 궁금했던 것이다. 과학도가 문학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하여 궁금증을 일으킬 수 있다.
방효필 선생이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작품을 창작하면서 문학잡지 ‘청암문학’을 펴내어 문학의 저변 확대를 넓혀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겉만 바라보고 속까지 오판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그래서 공학박사인 방시인의 겉과 속을 바로 들여다보려고 그동안 창작한 작품을 두 번 세 번 읽어보았다.
수학자나 과학자가 전공 학문을 연구한다고 해서 문학적 감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임을 깨달았다. 인간은 누구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있어서 전공 학문과 관계없이 눈물도 흘리고 흥겹게 웃기도 한다. 누구나 그 감정을 글로 나타내면 문학이 되고 일정 작품 수준을 인정받고 등단과정을 거치면 문학가가 되는 것이다.
수석(壽石)처럼 자연스럽고 진실한 시
방효필 시인의 작품은 정교하게 세공을 한 금은 장식품이 아니고 자연 그대로의 수석(水石) 과 같다. 수석은 관상용의 자연석이다. 자연 그대로의 돌을 좌대에 올려놓으면 폭포도 되고 동물도 되고 사람의 형상 등 갖가지 이미지가 되어 자연의 오묘한 맛을 자아낸다. 그의 첫 시집에서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자연 속의 수석을 닮은 시 60여점을 감상할 수 있어서 기뻤다.
부안의 변산반도 채석강은
부지런한 손길의 거대한 책 바위.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부지런히
매일매일 책을 열심히 읽고
반듯하게 책장에 쌓아 놓았나봐.
파도가 철썩철썩 칭얼대도
서로 어깨 다독다독 거리며
보채는 어린 물고기를 키우는
층층이 쌓인 수 만권 책 바위는
거대한 해변 바닷가 도서관 되어
책을 읽으니 물고기들도 기쁘겠지.
거대한 고래부터 새우까지
펄쩍펄쩍 물장구치며
해수욕도 즐기며 독서하는
책바위 도서관.
-해변 도서관
부안 변산반도에 가면 채석강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도서관으로 바라본 시인의 눈과 어린 물고기, 고래, 새우까지 책을 읽는다는 동심적 발상이 이채롭다. 한 폭의 채석강을 도서관으로 비유하고 책을 읽는 물고기를 대비시켜 시적 구조를 만들어낸 방시인의 문학적 감성은 독특하다. 인간과 자연의 융합이 아닐 수 없다. 산소와 수소가 합쳐지면 물이 되는 걸 융합이라고 한다. 산소처럼 맑은 방시인의 시심이 수소 같은 자연을 만나서 한 편의 ‘해변도서관’이란 시가 탄생했다. 물론 시가 설명적이지 않고 조금 더 함축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들지만 ‘파도가 칭얼대도, 보채는 어린 물고기를 키우고, 재미나게 해수욕까지 즐기는 도서관’이라고 동심 표현을 하여 시적 감각과 잔잔한 감동으로 독자의 가슴을 적셔줌으로써 한 편의 동화시를 읽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학교 공부 보다 더 중요한
1년 농사 소몰이
동산에 소를 풀어 놓고
오랜만에 신나는 공놀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보낸 한나절
정말 큰일이 났네!
소가 감쪽같이 사라졌어
어둠이 몰려와
무서워 허둥지둥 집에 오는데
외양간에서 ‘음메에 -’
어떻게 집에 왔을까?
누렁아, 미안해, 미안해!
그만 목을 꼭 껴안고 말았어.
-소몰이
농경시대를 살아온 세대는 이 시를 읽고 얼른 이해가 되고 감정동화가 될 것이다. 소를 풀어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다 보니 소가 없다. 허둥지둥 집에 오니 소가 먼저 집에 와 있었다. 소가 화자보다 더 영리한 것 같아서 미안하고 고맙다. ‘그만 목을 껴안고 말았다’ 는 마지막 시구에서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 극적인 감동으로 다가온다. 소는 온순하고 영리하다. 우리 집 아버지, 어머니. 형, 동생과 같은 한 식구다. 요즘 어린이들은 그와 같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고 얼른 감동이 오지 않으므로 관심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는 현재 사실을 노래한 것만 참 동시이고 과거를 노래한 것은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생경하므로 동시로서 부적절하다고 하는 것은 동시를 모르는 문외한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는 뿌리이다. 10년 전의 시작품도 고귀한 시다. 100년 전, 아니 수천 년 전 전래동요도 인간의 정서를 정화시키는 자양분이다. 증조 고조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노래한 시를 통해서 우리는 조상들의 예지와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감정을 전승, 공유할 수 있다.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를 요즘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면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일부 젊은 시인들은 역사와 전통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나이 많은 시인들의 동심 회귀적 시를 소중하게 취급하고 어린이들에게 이해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전 국민이 애창하는 이원수의 ‘고향의 봄’ 동요는 어린이도 어른도 좋아한다. 도시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살면서도 이 노래는 가슴 속의 고향을 불러낸다.
토마토, 가지, 고추가 / 사이좋게 자라고 있습니다.
“파란 아기 주먹만 하다가 / 빨간 아빠 주먹보다 크게 자라는매끈한 이 몸매가 부럽지 않니?” / 토마토가 으쓱 뽐내며 자랑을 합니다.
“적당한 크기로 길쭉하게 / 반들반들 자라는 이 몸매맛있는 반찬으로도 일품이야!” / 가지도 들썩 뽐내며 자랑을 합니다.
고추가 갑자기 훌쩍훌쩍합니다./ “고추야! 왜 그래 ”토마토와 가지가 동시에 묻습니다.
“나는 조그마해서 자랑할 게 없어.”
아니야! 아니야! / 넌 아주 소중한 친구야!
“양념에서 빠질 수 없어 / 맛있는 김치에 고추가 빠지면 안 돼.”“작아서 못할 게 뭐니,
작은 고추가 맵다고도 하잖아.”각기 모양도 영양도 다르지만 / 우리는 텃밭의 다정한 친구란다.
-텃밭 친구
논두렁, 밭두렁 싱싱했던 풀 / 농약으로 누렇게 시들고
너도밤나무, 나도 밤나무 / 산도 비행기로 농약 쳐서
벌레들 힘없다고 무시한 채 / 사람들만 속닥속닥 살면 무슨 재미야
들꽃냄새, 노래 잘하는 뻐꾸기 / 잠자리나 나비도 함께 놀고 싶은데.
-함께 놀고 싶은데
텃밭에서 자라는 토마토 가지, 고추를 우리들의 친구로 보는 자연친화적인 발상이 정겹다.
논두렁 밭두렁의 풀과 밤나무, 들꽃, 뻐꾸기, 잠자리 나비도 함께 살아가는 친구다. 이런 친구가 없으면 우리도 살아갈 수 없다. 농약을 무분별하게 처서 자연을 병들게 하면 우리도 병이 들게 된다. 방시인은 농촌에서 온갖 곡식과 채소를 기르고 들꽃, 잠자리, 나비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을 시 속에 진솔하게 담아놓았다.
텃밭을 친구로 여기고 즐겁게 농사를 짓는 농부는 행복하다. 농삿일이 힘들고 재미가 없으면 몸이 아프고 모든 게 귀찮고 불행해진다. 시인은 자신이 하는 일을 이렇게 다정한 친구로 삼는다. 나무와 풀에 농약을 치고 사람들만 혼자 살면 무슨 재미냐고 묻는다. 이렇게 함께 살면 지구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원수지간인 사람이 상대편을 죽이려고 달려들면 상대는 가만히 있지 않고 보복을 한다. 그러다 보면 둘 다 죽거나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우리가 자연을 맘대로 지배하려고 파괴하고 죽이면 자연은 반드시 인간에게 그 보복을 한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긴 동시다.
뱁새 한 마리가 / 나뭇가지에 앉아
햇살을 쏘이고 있다.
빛과 빛 사이로 / 오늘은 무슨 소식 전해 주려고
아침부터 / 분주할까나
어제는 / 꽃씨 하나 물어와 / 봄을 주더니
오늘은 / 들판을 가득 채워줄
꽃소식이라도 전해 줄까?
-뱁새 한 마리
방효필 시인은 작은 들새 한 마리를 보고 무심하게 지나쳐보지 않는다.
아침부터 햇살을 쐬면서 분주하게 새 소식을 전해 준다는 시상이 반짝반짝 빛난다.
아침 해와 새와 꽃씨와 들판이 모두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이다. 이처럼 자연을 자연 그대로 바라보면서 시의 이미지를 살려내는 기술은 천진한 시인만 발휘할 수 있다.
새에게 질문한다. ‘무슨 소식 전해주려고 분주할까?’ 대답은 들판을 가득 채워줄 꽃소식이다. 새 한 마리가 전해주는 상쾌한 아침 메시지이다.
새가 꽃씨를 물고 와서 봄을 전해준다는 시인의 상상은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시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독특한 시상이다.
천심을 건져 올린 동심의 시
가마솥에 쇠죽 끓이고
숯덩이를 화로에 담아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옹기종기 모여 앉아
앵앵 우는 아기를
여우가 물고 갔다는재속에 추억을 묻고
화롯불에
고구마, 감자를 구워 먹던
긴긴 겨울밤그리움의 이야기화롯불에 활활 타고 있어요.
-화롯불 이야기
우는 아기를 여우가 물고 갔다는 할아버지 이야기, 화롯불에 감자를 구워먹는 일, 겨울 밤 긴 긴 그리움 이야기가 화롯불에 타고 있다는 시인의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린 시다. 인터넷 시대에 어린이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공감을 할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요즘 어린이들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라서 그렇다. 요즘 어린이들만 대상으로 그들의 정서에 호소해야 하는 글이 동시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도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옛날이야기를 통해서 전통과 역사를 알게 되고 조상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과거 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되고 정서 순화가 된다. 그리고 이런 시를 나이 많은 어른들이 읽으면 아련한 추억에 잠겨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즉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게 되어 몸도 마음도 젊어지는 묘약이 되기도 한다. 방효필 시인은 지금도 농촌에서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 감자는 보릿고개 시절의 귀중한 양식으로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을 살려 낸 구황식물이었다. 감자는 탄수화물이 대부분이고 섬유질이 풍부하여 옛날에는 식사대용으로 먹었으며 변비, 다이어트, 당뇨에도 효능이 있다. 이런 감자를 보면 방효필 시인의 모습과 성품이 떠오른다. 감자는 방시인의 성격과 인간성을 닮았다. 그의 시가 변비, 다이어트, 당뇨를 예방 치료하는 약이 되었으면 좋겠다.
겨울 밤, 화롯불에 감자를 구워먹으며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들었던 추억을 순진무구한 동심으로 표현했다. 향수 짙은 동심의 시는 방시인의 가슴에서 우러나와 우리들 가슴까지 훈훈하게 데워준다.
나비야, 나비야 / 너랑 나랑 놀자.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중략)
나비야, 나비야 / 너랑 나랑 놀자.
추운 겨울을 이기고
따뜻한 봄볕에 개나리, 진달래 피워놓고
우리 함께 마주보며 살자
(중략) 따가운 햇살아래 바다가 그리워지면
파도타기 해수욕 하면서 놀자.
칡넝쿨처럼 엉겨 함께 사는 세상 만들자!
(중략) 가을 황금들녘에서 허수아비와 노래하고
코스모스 길가에서 고추잠자리와 놀며
함께하는 세상 만들어 가자
(중략) 목화솜 이불처럼 눈 내리는 금수강산에서
겨울 손님도 만나보자
(중략) 저 산이 부른다. 너랑 나랑 놀러가자.
신명나고 아름답고 깨끗한 금수강산
나비야, 나비야 / 그곳에 모여 함께 살자!
-나비야, 나비야
동심여선(童心如仙)이라고 한다.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뜻이다. 동심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인간 본래의 착한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만 신선이 될 수 있다. 신선이란 도를 닦아 도에 통한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 도(道)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는데 종교적으로는 깊이 깨달은 이치 또는 그런 경지를 말한다. 이 시를 종교적으로 심오하게 해석할 것 까진 없다. 우리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함께 아름답고 깨끗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시인의 소박한 염원을 통해 함께 그 길을 걸어가면 신선도 될 수 있다는 이미지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풍경 묘사로 끝내지 않고 혹독한 겨울 추위, 미세 먼지 따위는 이겨내고 칡넝쿨처럼 엉겨 함께 사는 세상, 나비처럼 금수강산에서 신명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시인의 맑고 밝은 소원이 담겨있는 대서사시다. 이런 시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들이 더 많이 읽고 감동하고 금수강산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대열에 함께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언어의 유희처럼 재주와 기교에 치우친 짤막한 동시 몇 줄 보다는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의 바다를 노래한 이런 서사시가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 시에서 함축성, 간결성도 중요한 시의 기법이지만 이처럼 설명식 산문시도 그 무게나 의미가 더 높게 볼 수도 있다. 이 시를 통하여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을 바르게 인식시키는 시
선과 악은 반대 개념이다. 그러나 어떤 생각과 행동을 선이라 하고 악이라고 규정하는지 확실한 기준을 내세우기 힘들다. 법을 어긴 죄수가 법정에서 자기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구약성경에 아담은 아내와 더불어 에덴동산에 살게 되었는데, 사탄의 유혹에 빠진 아내의 권유에 따라 먹지 말라는 사과를 먹었다. 두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기 사항을 위반했고 하나님은 이러한 죄를 짓고도 생명나무에서 나는 과실 또한 먹을까봐 염려하여 두 사람을 에덴에서 추방하였다. 아담과 하와는 이렇게 해서 힘든 노동과 고통, 죽음을 맛보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악을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적으로 해석을 해도 인간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위반하면 죄악이 되고 벌을 받는다고 한다. 종교를 떠나서 국가, 사회 속에 사는 인간도 지켜야 할 법률을 정해 놓고 이를 어길 때는 죄인으로 벌을 준다.
밥 먹을 때, 소화가 되도록 즐겁게 잘 씹어 먹으면 영양 흡수가 잘 되고 키가 쑥쑥 잘 자란다. 마음을 먹을 때도 즐겁고 단단하게 잘 결심을 하면 기분이 좋고 잘 자란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즐거우려면 음식도 잘 먹고 마음도 건전하게 가지면 건강한 사람이 된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정치 지도자와 국민들이 법을 잘 지키고 자유민주주의 정신으로 화합하고 살아간다면 정의로운 나라, 번영하는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비유를 아래 동시 ‘밥 먹고 마음먹고’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밥 먹을 때
반찬도 꼭꼭 씹어 먹고
밥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면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아유! 우리 장손
밥 잘 먹었어 장군 되겠네
암 그렇고말고
밥도 먹고 꿈도 먹고
칭찬도 먹고 쑥쑥 크는 나
꿈 먹을 때
생각도 꼭꼭 씹어 먹으면
가슴은 시원한 피돌기 하고
머리는 좋은 생각에 신나니
몸 밖으로 내빼는 나쁜 마음
밥 먹고 꿈 먹고 쑥쑥~!
-「밥 먹고 꿈 먹고」 전문
야옹야옹!
두리번두리번
뒷 볼일을 보더니
땅을 파 흙으로 살살 덮는다.
고양이는
부끄러움을 아는가 봐!
엄마가 어릴 때부터 예절바르게
머리 쓰다듬어 주며
찬찬히 가르쳐 주셨나봐!
-똥을 덮는 고양이
고양이는 자신이 눈 똥을 흙으로 덮는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더러운 것을 감추려는 행위라기보다 일종의 본능적인 자기 보호 의식일 것이다. 자신의 똥을 그대로 버려두면 다른 포식 동물이 냄새를 맡고 와서 잡아먹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감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고양이의 이런 행동은 참 기특하고 귀엽다. 동물도 이렇게 배설물을 묻어버리고 감추는데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배설물이나 허물을 감추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를 보면 고양이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고양이와 비교할 수 없는 고등 동물이다. 그런데 고양이보다 못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고양이의 엄마가 어릴 때 가르쳐 주어서 그런 착한 행동을 하는 줄로 상상하는 시인은 천성이 착하다. 부끄러움을 아는 고양이의 행동을 시로 표현한 작품 속에는 교훈성이 짙게 배어있다. 시는 교훈성과 예술성이 융합되어야 한다. 만약 이 시에서 ‘우리 인간도 고양이를 보고 배워라’고 표현했다면 교훈성을 표면에 그대로 드러내어 예술성이 없는 반쪽 글이 되고 만다. 이 시는 교훈성을 글 속에 숨겨두고 겉으로 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엄마 꾸지람에
입이 댓 발이나 불쑥
유치원 동생의
귀여운 재롱에
그만 웃음 터져
푸 하하, 이 히히히
시원하고 상큼한 웃음은
찡그린 얼굴, 주름진 마음
웃음 다림질로 활짝 펴는
기쁘고 즐겁고 고마운 웃음.
-웃음 다림질
소문반복래(笑門萬福來)라고 한다. 웃는 집에 복이 찾아들어온다는 뜻이다.
요즘은 웃을 일이 별로 없어서 잘 웃질 않고 산다는 사람들이 많다. 웃음은 만병을 고치는 영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의 어느 말기 암환자는 웃음으로 무서운 병마를 이기고 살아났다고 한다. 거울을 앞에 놓고 자신의 얼굴을 마주보며 억지로라도 웃어보라고 한다. 이렇게 웃다보면 웃을 일이 아닌 일인데도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어른들은 웃는 것 보다 화를 내고 슬퍼할 때가 더 많다, 어린이도 고민을 하고 눈물을 흘릴 일이 많다. 그러나 찡그리고 울면 미운 얼굴이 되고 병이 들어서 고생을 한다. 즐겁게 많이 웃으면 앤돌핀과 다이돌핀이 펑펑 솟아나와서 기분이 흥겨워지고 핏속의 나쁜 독소를 몰아내어 병을 낫게 한다고 한다. 엄마 꾸지람에 입이 댓 발이나 불쑥 나오고 찡그린 얼굴, 주름진 마음을 웃음 다림질로 활짝 펴준다는 동심 가득한 시다.
시 속에 웃음의 효과를 설명하거나 웃고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 시 속에는 그런 교훈이 숨어있다.
동방의 나라 대한민국 / 봄, 여름, 가을, 겨울
겨울이면 삼한사온(三寒四溫) / 계절마다 달라지는
금수강산 / 우리나라 좋은 나라
삼천리 방방곡곡 / 아름다움 만날 수 있는 나라
오천 년 세월 지켜온 단군 자손
남북 화해 평화를 전하는 나라
전세계 자랑스런 나라 / 통일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
남북이 살기 좋은 나라 만들어 가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 계절마다 꽃이 피는 우리나라!
-부르고 싶은 노래
살기 좋은 나라 우리나라를 만들자는 교훈적인 시다.
사계절이 있어서 아름다운 금수강산, 옛날에는 삼국통일이 되었던 우리나라, 남북통일로 하나 되어 잘 사는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소원이 담긴 시다.
우리나라를 우리가 잘 지키고 가꾸고 평화롭게 살도록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으로 통일이 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른들은 하루빨리 평화적 남북통일을 이룩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안정되고 발전되도록 합심 단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은 바른 가치관을 갖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시를 읽고 글을 지으며 꿈을 기르는 정서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첫째 어른들의 책임이 수행되어야 하고 어린이들은 살벌한 기계문명에 의존하지 않고 가족사랑, 나라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노래한 시다.
벼룩은 자기 키의 40 배를 뛰어오르고
벌도 30리 밖의 꽃을 볼 수 있고
파리는 10리 밖 냄새를 맡을 수 있다지만
세상에서 가장 신비하고
세상에서 가장 신통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나는 세계 보다 크고
우주보다도 넓고 크며
모두가 내 안에 가만히 숨어
내 속에 착한 마음이 있고
부지런한 행동이 자리하고
생명의 맑은 샘이 졸졸 흐르고
내 안에 잠자는 잠재력을 꺼내
그 가능성을 날마다 꾸준히 닦아
연마하며 즐거움도 보람도 찾아보자 ,
-보람 가꾸기
사람은 살아가면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믿고 의지하던 지식이나 신념 그리고 그것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인간관계 등이 제자리를 잃고 비틀대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지식이든 지위이든 권력이든 재력이든 내가 갖고 있던 삶의 도구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삶이 여의치 않을 때,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교회나 절을 찾아가 기도를 드린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나는 세계 보다 크고, 우주 보다 크며 모두가 내 안에 숨어, 내 속에 착하고 부지런하고 생명의 샘이 흐른다. 내 안의 잠재력을 꺼내 그 가능성을 닦아 즐거움도 보람도 찾아보자’고 시인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한다.
화엄경(華嚴經)》의 중심 사상으로, 일체의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일컫는다. 곧 유심은 절대 진리인 참 마음[眞如]과 중생의 마음[妄心]을 포괄하는 것으로, 일심(一心)과 같은 뜻이다.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인간의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만든다는 뜻이며 선악귀천 · 길흉화복 · 흥망성쇠 · 염정미추 · 희로애락 등의 모든 일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마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는 말이다.
내 마음을 꾸준히 닦아서 즐거움도 보람도 찾아보자는 시인의 소망과 철학이 담긴 시다..
엄마 아빠도
함께하는 한 가족
새 모델 만나도
언제나 정다운 친구
새 소식도 전해 주고
길 알림이 네비게이션
참으로 신통해
카카오스토리, 밴드, 네이버
그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르는 게 없는 만물박사
실시간으로 새로운 것을
알려주는
너는 정말 멋있는 내 친구.
네게 너무 길들여지면
혹시
내가 바보가 되는 게 아닐까?
무섭기도 한 친구야!
-핸드폰
새 모델 새 핸드폰, 모르는 게 없는 만물박사, 멋있는 내 친구 핸드폰이라고 자랑했다. 어린이도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게임을 즐기는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핸드폰에 너무 길들여지면 바보가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한다. 무섭기도 한 핸드폰 친구라고 비유를 했다.
IT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는 우리는 너무 핸드폰 같은 문명에 익숙해지고 빠져들어서 인성을 잃어가고 있다. 로봇 인간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급변해도 인성을 잃어버리면 사람이 사는 의미가 있을까?
시인은 이걸 걱정하고 있다. 참으로 신통하고 멋있는 핸드폰이지만 그것은 기계일 뿐, 사람은 아니다. 사람이 기계의 노예가 될 순 없지 않은가. 옛날에는 연필로 직접 편지를 쓰고 문학작품을 창작했다. 요즘과 비교하면 참 불편했지만 마음은 그 때가 더 편했다. 느리고 힘들었지만 손으로 쓴 편지나 글 속에는 땀과 눈물이 배어있어서 정겨웠다. 핸드폰과 같은 기계문명을 너무 따라가면 불행해진다는 경고 메시지를 주는 동심의 시다.
동시와 어린이시의 명칭을 구분해야 한다. 어린이가 짓고 어린이가 읽고 어린이가 독차지하는 문학을 아동문학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아동문학은 어린이가 주독자이지만 어른들이 더 많이 읽고 병든 동심을 회복시키는 치료약과 같은 문학이다. 어린이가 지은 시는 아동시이고 어른이 지어서 문학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동심의 시는 동시라고 부른다.
어린이들은 이런 동시를 읽고 맑고 밝은 동심을 지켜나가야 하며 어른들은 오염되고 잃어버린 동심을 회복해야 한다.
방효필 시인의 동시집 『밥 먹고 마음먹고』는 어린이도 어른도 함께 읽고 감상해야 할 자연의 가르침을 주는 귀중한 책이다. 고향 텃밭에서 고추, 감자 농사를 지으며 문학 농사까지 짓는 방효필 시인은 머잖아 풍성한 수확을 거둘 가을을 맞이할 것으로 믿는다. 그의 시가 조금은 설명조이고 덜 다듬어지고 투박한 점이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싱그럽고 풀꽃 향기 같은 매력이 있다. 요즘 일부 젊은 시인들의 말장난이나 언어의 유희 같은 시나 도무지 무엇을 노래한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시 보다는 훨씬 더 맛있고 멋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구수하게 익어가는 곡식과 시골 풍경이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방효필 시인의 첫 시집 발간을 축하드리며 앞으로 자연을 노래하는 대표 시인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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