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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巡典經 제 3 장 문도의 추종과 훈회 《 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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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巡典經 제 3 장 문도의 추종과 훈회 《 1~70 》
1 임인(壬寅) 사월(四月)에 천사 김형렬의 집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니
김자현 김갑칠 김보경 한공숙 등이 차례로 따르니라
2 계묘(癸卯) 정월에 전주부에 이르사
서원규 약방에 머무르시니 원규와 김병욱 김윤찬 등이 따르니라
3 한 사람이 물어 가로대
금년에는 어떤 곡종(穀種)을 심음이 좋으리이까
천사 가라사대
일본 사람이 녹(祿)줄을 띠고 왔으니 일본종을 취하여 심으라
또 생계(生計)의 모든 일에 그들을 본받으라 녹줄이 따라 들리라 하시니라
4 장익모가 그 어린 아들을 심히 사랑하거늘
천사 일러 가라사대
복은 위로부터 나리는 것이요
아래에서 치오르지 아니 하나니
부모를 잘 공경하라 하시니라
5 천사 비록 미천한 사람을 대할지라도 반드시 존경하시더니
형렬의 종 지남식에게도 매양 존경하시거늘
형렬이 여쭈어 가로대
이 사람은 나의 종이오니 존경치 말으소서
천사 가라사대
이 사람이 그대의 종이니 내게는 아무 관계도 없나니라 하시며
또 일러 가라사대
이 마을에서는 어려서부터 숙습(熟習)이 되어 창졸간(倉卒間)에 말을 고치기 어려울지나
다른 곳에 가면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다 존경하라
이 뒤로는 적서(嫡庶)의 명분(名分)과 반상(班常)의 구별(區別)이 없느니라
6 하루는 형렬이 어떤 친족에게 합의(合意)치 못한 일이 있어서 모질게 꾸짖거늘
천사 일러 가라사대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요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니라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사(行事)는 마음의 자취라
말을 좋게하면 복이 되어 점점 큰 복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나쁘게 하면 재앙이 되어 점점 큰 재앙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7 을사년 봄에 함열 회선동 김보경의 집에 이르사 여러날 동안 머무르실 때
보경이 함열읍 사람 김광찬을 천거하여 추종케 하고
또 소진섭과 임피 군둔리 김성화가 차례로 따르니라
8 하루는 임피 오성산(五聖山)에 가셔서 세상이 칭찬할만한 곳이라 하시니라
9 하루는 심심하니 세상이 한 번 욱끈하게 웃을 일을 꾸며 보리라
너희들은 앉아서 웃어 보아라 많이 미칠 것이라 하시니라
10 하루는 천사 어렸을 때에 지은 글이라 하사
「운래중석하산원(運來重石何山遠)
장득척추고목추(粧得尺椎古木秋)」를 외워주시며
「선생문명(先生文明)이 아닐런가」라고 심고하고 받으라 하시고
「상심현포청한국(霜心玄圃淸寒菊)
석골청산수락추(石骨靑山瘦落秋)」를
「선영문명(先靈文明)이 아닐런가」라고 심고하고 받으라 하시고
「천리호정고도원(千里湖程孤棹遠)
만방춘기일광원(萬方春氣一筐圓)」을
「선왕문명(先王文明)이 아닐런가」라고 심고(心告)하고 받으라 하시고
「시절화명삼월우(時節花明三月雨)
풍류주세백년진(風流酒洗百年塵)」을
「선생선영선왕합덕문명(先生先靈先王合德文明)이 아닐런가」라고 심고하고 받으라 하시고
「풍상열력수지기(風霜閱歷誰知己)
호해부유아득안(湖海浮遊我得顔)
구정만리산하우(驅情萬里山河友)
공덕천문일월처(供德千門日月妻)」를
「우리의 득의추(得意秋)가 아닐런가」라고 심고하고 받으라 하신 뒤에
「시세(市勢)를 짐작(斟酌)컨데
대인보국정지신(大人輔國正知身)
마세진천운기신(磨洗塵天運氣新)
유한경심종성의(遺恨警深終聖意)
일도분재만방심(一刀分在萬方心)」이라 창(唱)하시며
가라사대
이 글은 민영환의 만장(挽章)이니
「일도분재만방심(一刀分在萬方心)」으로
세상 일을 알게 되리라 하시고 《이 뒤에 민영환 순절(殉節)하니 》
또 가라사대
「사오세무현관(四五世無顯官)하니
선령(先靈)은 생유학사학생(生幼學死學生)이요
이삼십불공명(二三十不功名)하니
자손(子孫)은 입서방출석사(入書房出碩士)」라 하시니라
11 병오(丙午) 사월에 예수교당에 가사
모든 의식(儀式)과 교의(敎義)를 문견(聞見)하신 후에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족히 취(取)할 것이 없다 하시니라
12 하루는 종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文明)케하여 써
천지의 역사(役事)를 시키려 함인데 현하(現下)에 학교 교육이 학인(學人)으로 하여금
비열(卑劣)한 공리(功利)에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성도(成道)하게 되었노라
13 천사께서 함열에 많이 계셨는데
이것은 만인함열(萬人咸悅)의 뜻을 취함이라 하시더라
천지공사를 행하시므로부터 두루 순회(巡廻)하시는 곳은
전북 칠군(七郡)이니 곧 전주 태인 정읍 고부 부안 순창 함열이러라
14 정남기가 일진회원(一進會員)이 되어 천사의 가입을 강권(强勸)하며 회원 십여인으로
더불어 천사의 두발(頭髮)을 늑삭(勒削)코저하여 가위로 베이되 베어지지 않는지라
천사께서 머리 한모습을 친히 베이시며
가라사대
내 이것으로써 여러 사람의 뜻을 풀어주노라 하시고 웃으시며
정남기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희 보좌(補佐)가 되리라 하신 후
다시 남기에게 탈회(脫會)하기를 권하사
네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일후에 후회 막급이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 후에 남기는 패가망신하고 그 유족(遺族)이 유리(遊離)하니라
15 정미년 사월에 신원일을 데리시고
태인 관왕묘(關王墓) 제원(祭員) 신경원의 집에 가서 머무르실새
경원에게 일러 가라사대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盡力) 협조함이 가하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경원은 처음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더니
다음날 경원이 다른 제원들로 더불어 관왕묘에 들어가 봉심(奉審)할 때
삼각수(三角鬚)의 한 갈래가 떨어져 없어진지라
모든 제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되
오직 경원은 천사께서 전날 하신 일을 회상(回想)하고
관운장이 공사에 진력 협조하였음을 표시하기 위하여
소상(塑像)에 그 표적(表迹)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하니라
이 뒤로 신경원 김경학 최창조 최내경 최덕겸 등이 따르니 모두 태인 사람이더라
16 오월에 천사 형렬의 집을 떠나시며
가라사대
이 길이 길행(吉行)이라
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용암리 물방앗간 집에 머무르시다가
그 앞 주막에서 정읍사람 차경석을 만나시니라
경석은 전주로 가는 길에 이 주막에서 잠간 쉬더니
천사
대삿갓에 푸단님으로 김자현 등 두어사람을 데리고 오니
경석이
그 소탈(素脫)한 가운데 씩씩한 기운을 띄우신 의표(儀表)와 순진(純眞)한 가운데
꾸밈이 없는 언어동지(言語動止)를 보고 비범히 여겨 말씀을 청하니
천사
온화하게 대답하시고
술을 마시실 때 닭국 한 그릇을 경석에게 권하시니
경석이 받음에 문득 벌 한 마리가 국에 빠지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니
천사 가라사대
벌은 규모있는 벌레니라 하시더라
17 경석이 물어 가로대
무슨 업(業)을 하시나이까
천사 웃으시며 가라사대
의원 노릇을 하노라
또 물어 가로대
어느 곳에 머무르시나이까
가라사대
나는 동역객 서역객(東亦客 西亦客) 천지 무가객(天地 無家客)이로다
경석이 천사의 지식을 시험코자하여 다시 물어 가로대
어떻게 하면 인권(人權)을 많이 얻으리이까
가라사대
폐일언(蔽一言)하고 욕속부달(欲速不達)이니라
가로대
자세한 뜻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가라사대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일찍 내이나 늦게 내이나
먹이만 도수에 맞게 하면, 올릴 때에는 다같이 오르게 되느니라 하시더라
18 경석의 이번 전주 길은 세무관과 송사(訟事)할 일이 있어서
그 문권(文券)을 가지고 가는 길인데 문권을 내어 뵈이며
가로대
삼인회석(三人會席)에 관장(官長)의 공사(公事)를 처결한다 하오니
청컨대
이 일이 어떻게 될지 판단하여 주사이다
천사 그 문권을 낭독하신 뒤에
가라사대
이 송사는 그대에게 유리하리라
그러나 이 송사로 인하여 피고의 열한 식구는 살길을 잃으리니
대인으로서는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남아(男兒)가 반드시 활인지기(活人之氣)를 띨 것이오
살기를 띰이 불가하니라
경석이 크게 감복하여 가로대
선생의 말씀이 지당하오니
이 길을 작파(作罷)하나이다 하고 즉시 그 문권을 불사르니라
19 경석은 원래 동학신도로서 손병희를 좇다가 그 처사에 불만하여
다시 길을 고치려 하는 차이라
이날 천사께 뵈임에 모든 거동(擧動)이 범속(凡俗)과 다름을 이상히 여겨 짐짓 떠나지
아니하고 저물기를 기다려서 천사의 뒤를 따라가니 곧 용암리 물방앗집이라
식사(食事)와 범절(凡節)이 너무 험악하여 잠시라도 견디기 어렵더라
20 천사 경석의 떠나지 아니함을 괴로워하사
물러가기를 재촉하시되
경석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 집으로 함께 가시기를 간청하니
천사
혹 성도 내시며
혹 욕도 하시며
혹 구축(驅逐)도 하시되
경석이 보기에는 모든 일이 더욱 범상치 아니 할 뿐아니라
수운가사(水雲歌詞)에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간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누구다려 한말이며」
라는 구절이 문득 생각키며 깊이 깨닫는 바 있어 드디어 떠나지 아니하고
열흘 동안을 머무르면서 집지(執贄)하기를 굳이 청하거늘
천사 일러 가라사대
네가 나를 따르려면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직 나의 가르치는 바에만 일심하여야 할지니
이제 돌아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
경석이 이에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유월 초하룻 날 다시 용암리에 와서 천사께 뵈입고 정읍으로 가시기를 간청하니
천사 다시 거절하시다가 사흘 동안을 지낸 뒤에야 허락하며
가라사대
내가 깊은 목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벗어나서 발목물에 당하였는데
이제 네가 다시 깊은 길물로 끌어 들인다 하시니라
21 천사 일진회가 일어난 뒤로 삿갓을 쓰시다가
이날부터 의관을 갖추시고 경석을 데리고 물방앗집을 떠나 정읍으로 가실 때
원평에 이르사 군중을 향하여 가라사대
이 길은 남조선(南朝鮮) 뱃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시고
술을 나누어 주시며
또 가라사대
이 길은 성인 다섯을 낳는 길이로다 하시니
모든 사람은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
다시 떠나시며 가라사대
대진은 하루 삼십리씩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노정(路程)을 헤아려서 고부 솔안에 이르러 친구 박공우의 집으로 천사를 뫼시니
공우도 또한 동학신도로서 마침 사십구일동안 기도하는 때더라
22 천사 경석과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西天西域(서천서역) 大法國(대법국) 千階塔(천계탑) 天下大巡(천하대순)이라
동학주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내 일을 이름이라
내가 천지를 개벽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인간과 하늘의 혼란을 바로 잡으려하여
삼계(三界)를 둘러 살피다가 너의 동토(東土)에 그쳐
잔피(殘疲)에 빠진 민중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믿는 자는 무궁한 행복을 얻어 선경의 낙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동학(東學)이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강산명산(朝鮮江山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니라
동학신자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更生)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라
또 가라사대
예로부터 계룡산(鷄龍山)의 정(鄭)씨 왕국(王國)과 가야산(伽倻山)의 조(趙)씨 왕국과
칠산(七山)의 범(范)씨 왕국을 일러오나
이 뒤로는 모든 말이 영자(影子)를 나타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정씨를 찾아 운수를 구하려 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23 이튿날 솔안을 떠나 정읍 대흥리로 가실 때 공우를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만났을적에」하시니
공우가 문득 동학 가사에
「만나기만 만나 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라는 구절이 깨달려 드디어 따라 나서니라
24 이날 대흥리 경석의 집에 이르사
가라사대
나의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서쪽 벽에 붙이시니 문득 우뢰가 크게 일어나거늘
천사
속하다 하시고
그 글을 떼어 무릎 밑에 넣으시니 우뢰가 곧 그치는지라
공우는 크게 놀래어 감복하고
마을 사람들은 뜻밖에 일어나는 백일(白日) 뇌성(雷聲)을 이상히 여기니라
우뢰를 거두시고
경석에게 물어 가라사대
이 집에서 지난 갑오년 겨울에 세 사람이 동맹한 일이 있었느냐
대하여 가로대
그러하였나이다
가라사대
그 일로 인하여 모해자(謀害者)의 밀고로 너의 부친이 해를 입었느냐
경석이 울며 가로대
그러하였나이다
또 가라사대
너의 형제들이 그 모해자에게 큰 원한을 품어 복수하기를 도모하느냐
대하여 가로대
자식의 도리에 어찌 복수할 마음을 갖지 아니 하오리까
가라사대
너희들이 복수할 마음을 품고 있음을
너의 부친이 크게 걱정하여 이제 나에게 고하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할 때라
만일 악을 악으로 갚으면 되풀이 되풀이로 후천(後天)에 악의 씨를 뿌리는 것이 되나니
너희들이 나를 따르려면 그 마음을 먼저 버려야 할 지니 잘 생각하라
경석이 이에 세 아우로 더불어 별실(別室)에 들어가서
서로 위로하여 그 원한을 풀기로 하고 그대로 아뢰니
가라사대
그러면 뜰 밑에 짚을 펴고 청수(淸水) 한동이를 길어 놓고 그 청수를 향하여
너의 부친을 대한 듯이 마음 돌렸음을 고백하라
경석이 그대로 하여 사형제가 설움에 복받쳐서 청수동이 앞에서 크게 우니
천사 일러 가라사대
너의 부친이 너무 슬픈 울음을 오히려 불쾌히 여기니 그만 그치라 하시니라
그 뒤에 「천고춘추아방궁(千古春秋阿房宮) 만방일월동작대(萬方日月銅雀臺)」를
써서 벽에 붙이사 경석으로 하여금 복응(服膺)케 하시니라
25 이 뒤에 동학 신도 안내성 문공신 황응종 신경수 박장근 등이 서로 이어 따르니라
26 천사께서 이도삼에게 글 삼자(三字)를 부르라 하심에
도삼이 천 지 인(天 地 人) 삼자를 부르니
천사 글을 지어 가라사대
천상무지천(天上無知天)
지하무지지(地下無知地)
인중무지인(人中無知人)
지인하처귀(知人何處歸)요 하시니라
27 이 때에 김광찬은 구릿골에 있어 차경석의 종사(從事)함을 싫어하며
가로대
경석은 본래 동학 여당(餘黨)으로 일진회에 참가하여 의롭지 못한 일을 많이 행하였거늘
이제 도문(道門)에 들임은 선생이 정대(正大)치 못하심이라
우리가 힘써 마음을 닦아온 것이 다 쓸데 없게 된다 하고
날마다 천사를 원망하거늘
형렬이 민망하여 천사께 와 뵈옵고 광찬이 불평 품은 일을 아뢰며
가로대
어찌 이런 성질가진 자를 문하(門下)에 두셨나이까
천사 가라사대
용이 물을 구할 때에 비록 가시덤불이 길을 막을지라도 회피하지 아니 하느니라
돌아가서 잘 무마하라 하시니라
28 하루는 경석에게
「계분수사파(溪分洙泗派), 봉수무이산(峯秀武夷山),
금회개제월(襟懷開霽月), 담소지광란(談笑止狂瀾),
활계경천권(活計經千券), 행장옥수간(行裝屋數間),
소신구문도(小臣求聞道), 비투반일한(非偸半日閑)」
의 고시(古詩)를 외워주시고 경석을 데리고 순창 농바우 박장근의 집에 이르러
가라사대
이제 천하대세를 회문산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의 형세(形勢)에 붙여 돌리노니
네게 한 기운을 붙이노라 하시고
그 집 머슴을 불러 가라사대
어젯 밤에 무슨 본 일이 있었느냐
머슴이 대하여 가로대
어젯밤 꿈에 한 노인이 농바우를 열고 갑옷과 투구와 큰 칼을 내어주며
이것을 가져다가 주인을 찾아 전하라 하므로
내가 받아다가 이 방에 두었는데 곧 차경석의 앉은 자리나이다 하니라
대저 그 지방에서는 농바우 속에 갑옷과 투구와 긴 칼이 들어있는데
장군이 나면 내어가리라는 말이 전하여 오니라
29 농바우에서 수일 동안 일을 행하시고 돌아오실 때에
글 한 수를 외우시니 이러하니라
「경지영지불의쇠(經之營之不意衰)
대곡사노결대병(大斛事老結大病)
천지권우경지사(天地眷佑境至死)
만사아손여복장(漫使兒孫餘福葬)」
30 태인 고현내 행단(杏壇)에 이르사
경석에게 일러 가라사대
공자가 행단에서 강도(講道)하였나니 여기서 네게 한 글을 전하리라 하시고
옛글 한 장을 외워 주시며 잘 지키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부주장지법(夫主將之法) 무람영웅지심(務攬英雄之心)
상록유공(賞祿有功) 통지어중(通志於衆)
여중동호미불성(與衆同好靡不成)
여중동오미불경(與衆同惡靡不傾)
치국안가(治國安家) 득인야(得人也)
망국패가(亡國敗家) 실인야(失人也)
함기지류(含氣之類) 함원득기지(咸願得其志)」
또 가라사대
내 일은 수부(首婦)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네가 일을 하려거든 수부를 들여 세우라 하시니라
경석이 천사를 뫼시고 돌아와서
그 이종매 고부인(姨從妹 高夫人)을 천거(薦擧)하니라
31 동짓달 초사흗날 천사께서 고부인을 맞아 결혼하실새
부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만나려고 십오년 동안 정력(精力)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내게 맡기리라」하시고 인하여 부인을 옆에 끼시고
붉은 책과 누른 책 각 한권 씩을 앞으로부터 번갈아 깔며 그 책을 밟으며
방에서 마당에까지 나가사
남쪽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네 번 절하라 하시고
다시 그 책을 번갈아 깔며 밟아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32 인하여 부인에게 모든 일을 가르치시며
문명(文命)을 쓰실 때에도 반드시 부인의 손에 붓을 쥐게 하시고
천사께서 등 뒤에 겹쳐 앉으사 부인의 손목을 붙들어 쓰이시니라
33 또 경석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접주(接主)가 되라
나는 접사(接使)가 되리라
이 뒤로는 출입을 폐하고 집을 지키라 이것은 자옥도수(自獄度數)니라 하시니라
34 이달에 구릿골에 이르사 공사를 보시고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머리를 깎으리니
너도 또한 머리를 깎으라
형렬이 마음으로는 싫어하나
억지로 대답하였더니
또 갑칠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머리를 깎으리니
내일 대원사(大願寺)에 가서 금곡(錦谷) 주지(住持)를 불러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근심하였더니 그 뒤에 다시 말씀치 아니하시니라
35 공우가 처음으로 천사를 뫼시고 구릿골로 올 때
한 대장이 갑주를 갖추고 칼을 짚고 제비산 중턱에 서 있는 것이 보이더라
이날 밤에 김준상의 집에 머무를 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헌병(憲兵)이 당신을 잡으려고
이 밤에 구릿골로 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아뢰니
천사 들으시고
태연히 계시다가 저녁에 형렬의 집으로 가시니라
공우와 여러 종도들은 준상의 집에서 잘 새 다른 사람들은 깊이 잠들었으나
공우는 헌병이 올까 두려워서 뒷산에 올라 망을 보고 있더니
야반(夜半)에 원평쪽으로부터 등촉(燈燭)가진 사람 오륙인이 구릿골을 향하고
오다가 정문에 이르러 불이 꺼지므로 크게 두려워하여
준상의 방에 들어와 여러종도들을 깨워서 같이 도피하려 하였으나
깊이 든 잠이 쉽게 깨어지지 않으므로 시간은 한식경이나 지났으되
아무 기척이 없거늘 이에 안심하고 잤더니
익일에 천사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
대장은 도적을 잘 지켜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36 박공우가 비밀히 일진회 사무소에 들어 갔더니
천사께서 문득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몸으로 두마음을 품는 자는
그 몸이 찢어지고 한 어깨에 두 짐을 지면 더수기가 찢어지나니 주의하라 하시거늘
공우가 놀라서 다시는 비밀한 일을 하지 못하고 일진회 관계도 아주 끊으니라
37 공우 천사를 따른 뒤로 여러 제자들이 모두 보발(保髮)하였으므로
삭발(削髮)한 자신이 한 물에 싸이지 못함을 불안하게 생각하여
머리를 길러 수삭(數朔)후에 솔잎 상투에 갓 망건을 쓰고 다니더니
하루는 금구를 지나다가 전일 일진회 동지 십여인을 만남에
일진회원들이 공우의 장발하였음을 조소하며 붙들고 늑삭(勒削)하여 버린지라
공우 집에 돌아와서 두어달 동안 출입을 폐하고 다시 머리를 기르더니
뜻밖에 천사께서 이르사
공우에게 수삭동안 나오지 아니한 이유를 물으시거늘
공우 황공하여 일진회원들에게 늑삭당한 경과를 아뢰고
다시 삭발한 모습으로 선생을 뵈옵기가 황송하므로 집에 있으면서 머리를 다시 길러
관건(冠巾)을 차린 뒤에 선생께 뵈이려 한다는 뜻을 아뢰니
천사 가라사대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니
머리에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하시고 공우를 데리시고 구릿골로 오시니라
38 하루는 형렬에게 옛글을 외워주시며 잘 지키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부용병지요(夫用兵之要)
재숭례이중록(在崇禮而重祿)
예숭즉의사지(禮崇則義士至)
록중즉지사경사(祿重則志士經死)
고록현불애재(故祿賢不愛財)
상공불유시(賞功不逾時)
즉사졸병적국삭(則士卒竝敵國削) 」
39 또 형렬에게 옛글을 외워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 이러 하니라
「처세유위귀(處世柔爲貴)
강강시화기(剛强是禍基)
발언상욕눌(發言常欲訥)
임사당여치(臨事當如痴)
급지상사완(急地常思緩)
안시불망위(安時不忘危)
일생종차계(一生從此計)
진개호남아(眞個好男兒) 」
40 또 형렬에게 옛글을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명월천강심공조(明月千江心共照)
장풍팔우기동구(長風八隅氣同驅) 」
또 가라사대
너는 좌불(坐佛)이 되어 처소(處所)를 잘 지키라
나는 유불(遊佛)이 되리라 하시니라
41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시속에 남조선(南朝鮮) 사람이라 이르나니
이는 남은 조선사람이란 말이라
동서(東西) 각 교파에 빼앗기고
남은 못난 사람에게 길운(吉運)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 하시니라
42 하루는 형렬을 명하사
종이에 육십사괘(六十四卦)를 점치고
이십사방위자(二十四方位字)를 둘러 쓰이사
태양을 향하여 불사르시며 가라사대
여아동거(與我同居)하자 하시고
형렬을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잘 믿는 자에게 해인(海印)을 전하여 주리라 하시니라
43 또 가라사대
선비는 반드시 몸에 지필묵(紙筆墨)을 가져야 하나니라
44 또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선비는 대학경일장장하(大學經一章章下)를 알아두어야 하나니라 하시고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우경일장(右經一章)
개공자지언이 증자술지(蓋孔子之言而 曾子述之)
기여십장즉(其餘十章則)
증자지의이 문인기지야(曾子之意而 門人記之也)
구전파유착간(舊傳頗有錯簡)
금인정자소정이 갱고경문(今因程子所定而 更考經文)
별유서차여좌(別有序次如左) 」
45 또 형렬에게 옛글을 외워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여유일개신단단해(如有一介臣斷斷해) 무타기(無他技)
기심휴휴언(其心休休焉) 기여유용(其如有容)
인지유기(人之有技) 약기유지(若己有之)
인지언성(人之彦聖) 기심호지(其心好之) 불시여자기구출(不猜如自其口出)
시능용지(是能容之) 이보아 자손여민(以保我 子孫黎民)
상역직유리재(尙亦職有利哉)
인지유기(人之有技) 모질이오지(冒疾以惡之)
인지언성(人之彦聖) 이위지비?부달(而違之비?不達)
시불능용(是不能容) 이불능보아 자손여민(以不能保我 子孫黎民)
역왈태재(亦曰殆哉) 」
46 또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모든 말을 묻는 자가 있거든 듣고 실행(實行)이야 하든지 아니 하든지
너는 바른대로만 일러주라 하시니라
47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세상에 성(姓)으로 풍(風)가가 먼저 났었으나 전하여 오지 못하고
사람의 몸에 들어 다만 체상(體相)의 칭호로만 쓰게되어
풍신(風身) 풍채(風采) 풍골(風骨) 등으로 일컫게 될 뿐이오
그 다음에 강(姜)가가 났었나니 강가가 곧 성의 원시(原始)라
그러므로 이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로 반본(返本)되는 고로
강가가 일을 맡게 되느니라
48 부친으로 하여금 일상 생활에 매양 자력(自力)을 쓰도록 하시고
평소에 허물지은 것을 생각하여 허물닦기를 힘쓰라하사
종도들 중에 혹 물품이나 금품을 드리는 것을 엄금하시더니 어떤 종도가 집이
너무 협착(狹窄)함을 민망히 여겨 그보다 큰 집을 사드린 자가 있거늘
천사 꾸짖어 가라사대
네가 어찌 나의 부친을 도적을 만들려 하느냐 하시고
다시 일러 가라사대
속 모르는 사람은 나에게 불효라 할지나
나는 부친의 앞 길을 닦아 드리려 함이로다
내가 항상 가늠을 놓고 보는데 만일 그 가늠에 어그러지면 허사가 되나니
너희들이 부친의 빈궁(貧窮)하심을 민망히 여겨 원조하여 드리고 싶거든
먼저 나에게 말하면 그 가늠을 변경하리라 하시니라
49 매양 옛사람을 평론(評論)하실 때
강태공(姜太公) 석가모니(釋迦牟尼) 관운장(關雲長) 이마두(利瑪竇)를 칭찬하시니라
50 무신(戊申) 유월에 광찬에게 물어 가라사대
촌 양반은 너를 어떻게 불러 왔겠느냐
대하여 가로대
고을 아전이라고 불렀으리이다
또 가라사대
촌 양반은 고을 아전에게 아전놈이라 부르고
고을 아전은 촌 양반에게 양반놈이라 부르나니
이것이 모두 불평(不評)줄이라
이제 너와 내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화평하리라 하시니라
51 칠월에 백암리에 계실 새
김영학이 경학의 천인(薦引)으로 와서 뵈이거늘
칠일이 지나도록 더불어 말씀치 아니하시니 영학이 크게 분해 하는지라
공우와 원일이 일로 가로대
성의(誠意)로써 사사(師事)하기를 청하면 밝게 가르치시리라 하니
영학이 그 말을 좇아 천사께 사사하기를 청한 대
천사 허락하시더니 문득 크게 꾸짖으시거늘
영학이
한편으로는 공구(恐懼)하고
한편으로는 분(憤)하여
문외(門外)로 나간지라
이윽고 영학을 불러 가라사대
너를 꾸짖는 것은 네몸에 있는 두 척신(慽神)을 물리치려 함이니
너는 불평히 생각지 말라
영학이 가로대
무슨 척신이온지 깨닫지 못하겠나이다
천사 가라사대
네가 십팔세에 살인(殺人)하고
금년에도 살인하였나니 잘 생각하여 보라
영학이 생각하니
십팔세에 남원에서 전주 아전 김모와 교어(交語)하다가 그 무례한 말에 노하여 화로를 던져 그 두부(頭部)를 타상(打傷)하였더니 이로부터 신음하다가 익년(翌年) 이월에 사망하였고
금년 봄에 장성 맥동에 거주하는 외숙 김요선이 의병에게 약탈을 당한 고로 의병 대장
김영백을 장성 백양사에서 찾아보고 그 비행을 꾸짖었더니 영백이 사과하고 범인을 조사
하여 포살(砲殺)한 일이 있으므로 비로소 황연(恍然)히 깨달아 아뢰인대
천사 가라사대
정히 그러하다 하시니라
52 대흥리에 계실 때
하루는 차경석 안내성 박공우를 데리고 앞 내에 나가 목욕하실 새
경석을 명하사
백염 일국(白鹽 一堯)을 가져다가 물 위에 뿌리게 하시고 물에 들어서시며
가라사대
고기잡이를 하리라 하시더니
문득 경석의 다리를 잡고 가라사대
큰 이무기를 잡았다 하시거늘
경석이 가로대
내 다리로소이다 하니
천사 가라사대
그렇게 되었느냐 하시고 놓으시니라
53 하루는 형렬이 밖에 나갔다가 예수교인에게 큰 패욕을 당하고 돌아와서
천사께 그 일을 아뢰니
가라사대
청수를 떠놓고 스스로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
형렬이 명하신 대로 하였더니
그 뒤에 그 예수교인이 병들어서 사경(死境)에 이르렀다가 어렵게 살아났다 하거늘
형렬이 듣고 아뢰니
가라사대
이 뒤로는 그런 일을 당하거든 조금도 그를 원망치 말고 스스로 몸을 살피라
만일 허물이 네게 있는 때에는 그 허물이 다 풀릴 것이요
허물이 네게 없을 때에는 그 독기(毒氣)가 본처(本處)로 돌아 가느니라
54 안내성에게 일러 가라사대
농사를 힘써 밖으로 봉공의무(奉公義務)와 안으로 선령제사(先靈祭祀)와
제가양육(齊家養育)의 일을 힘써 몸을 잘 닦을 지어다 하시니라
55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
죽을 사람을 가려내라
공우 이윽히 생각하다가 가로대
도인(道人)으로서 표리(表裏)가 같지 아니한 자가 먼저 죽어야 옳으니이다
천사 대답치 아니하시고 또 물어 가라사대
살 사람은 누구이겠느냐
가로대
들판에서 농사짓는 사람과
산중(山中)에서 화전(火田)파는 사람과
남에게 맞고도 대항치 못하는 사람이 살아야 하겠나이다
가라사대
네 말이 옳으니 그들이 상등(上等) 사람이니라
56 공우 물어 가로대
동학주(東學呪)에 강(降)을 받는 자가 많이 있으되
나는 강을 받지 못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이는 다 제우강(濟愚降)이요
천강(天降)은 아니니라
천강을 받은 자는 병든자를 한 번 만져도 낫고 건너보기만 하여도 낫느니라
57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김병욱이 남의 나라 일만 힘쓰니 그 식록(食祿)을 떼리라 하시더니
그 뒤에 공우 전주에 가서 병욱을 찾으니
생도(生道)가 궁핍하여 가구(家具)를 전당(典當)하여 경과(經過)하거늘
돌아와서 아뢰니
천사 웃으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더니
그 뒤에 다시 전주에 가서 병욱을 만나니 생계(生計)가 다시 넉넉하여 졌더라
58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대인의 도를 닦으려는 자는 먼저 아내의 뜻을 돌려 모든 일에 순종(順從)케 하여야 하나니 아무리 하여도 그 마음을 돌리지 못할 때에는 더욱 굽혀 예(禮)를 갖추어 경배(敬拜)하여
날마다 일과(日課)로 하면 마침내 순종하게 되나니 이것이 옛사람의 법이니라
59 또 가라사대
자고로 부인을 존신(尊信)하는 일이 적었으나
이 뒤로는 부인도 각기 닦은 바를 따라 공덕(功德)이 서고
신앙이 모여 금패(金牌)와 금상(金像)으로 존신(尊信)의 표(表)를 세우리라
60 공우 천사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날 때 한 젊은 여자가 지나거늘
공우 체면상 바로 보지는 못하였으나 그 아름다운 태도를 사모하여 잊지 못하더니
천사 알으시고 일러 가라사대
색(色)은 남자의 정기(精氣)를 모손(耗損)케 하는 것이니
이 뒤로는 여자를 만나볼 때에 익히 보고 마음에 두지말라 하시거늘
공우 깨닫고
그 뒤로는 여자를 대할 때에 매양 명하신 대로 하니
마음에 탐욕이 일어나지 않더라
61 이 뒤에 공우 다시 천사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날 때 두 노파가 지나거늘
천사 길을 비켜 외면(外面)하고 서사 다 지나가기를 기다려 길을 가시며
가라사대
이제는 해원시대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 놓았으나
이 뒤에는 건곤(乾坤)의 위차(位次)를 바로잡아 예법(禮法)을 다시 세우리라
62 공우가 천사를 모시고 태인 감곡면《원(元) 은곡면》 산직촌 앞을 지나실 새
물어 가라사대
복(福)을 얼마나 지니면 쓰겠느냐
대하여 가로대
많이 지녀야 하겠나이다
어디다 쓰겠느냐
대하여 가로대
빈핍(貧乏)하여 의식(衣食)이 없는 사람을 먹이고 입혀야 하겠나이다
가라사대
복이 너무 많으면 귀(貴)치 않으니 웬만큼 지녀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63 하루는 천원에 계실 때 참외를 드린 자가 있거늘
천사 맛보지 않고 두셨더니
공우 한 개를 먹음에 설사가 나서 낫지 아니한지라
천사께 아뢰니
가라사대
본래 그 아내가 주기 싫어 하였으므로 살기(殺氣)가 붙어있었느니
네가 그 살기를 맞았도다 하시고
닭국을 먹으라 하시거늘
공우 명하신 대로 함에 곧 나으니라
64 하루는 부안 사람이 감주(甘酒)를 드리니
천사 물리쳐 가라사대
이것은 곧 구천하감주(九天下鑑酒)거늘
네가 어찌 도적음식을 들이느냐 하시거늘
종도들이 그 사람에게 물으니
가로대
아내가 듣지 아니하므로 가만히 가져왔노라 하더라
65 구릿골에 계실 때 꿩 한 마리를 드리는 자가 있거늘
천사 받아두사
사흘을 지내니 꿩이 썩게 된지라
종도들이 아뢰니
하여금 삶아 먹게 하시고 조금도 맛보지 아니하시거늘
그 연고를 물은 대
가라사대
그 아내가 싫어하였으므로 그 꿩에 살이 박혀 있느니라
다시 물어 가로대
그러면 어찌 우리들로 하여금 살박힌 것을 먹게 하였나이까
가라사대
이제 그 살은 다 제(除)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구릿골 약방에 계실 새 양지에 글을 쓰시더니
전간제(全艮濟)의 문도(門徒) 오륙인(五六人)이
대립(大笠)을 쓰고 행의(行衣)를 입고 와서 선생님 뵈옵겠습니다 하며 절을 하거늘
천사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로다 하시며 절을 받지 아니하시니
그 사람들이 우두커니 섰다가 물러가니라
67 하루는 공우를 데리시고 태인 보림면 장자동을 지나실 새
길 가에 있는 박씨 묘를 보시고 가라사대
이 혈(穴)이 와우형(臥牛形)인데 금혈형(琴穴形)이라고
혈명(穴命)을 잘못 지어서 발음이 잘 못 되었느니라
어디든지 혈명을 모르거든 용미(龍尾)없이 조분(造墳)하였다가
명사(名士)에게 혈명(穴命)을 지은 뒤에 용미를 달면 발음(發蔭)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68 하루는 공우에게 태인 살포정 뒤에 호승예불(胡僧 禮佛)을 써주리니
역군(役軍)을 먹일 만큼 술을 많이 빚어 넣으라 하시므로
공우 명하신 대로 하였더니
그 뒤에 천사 장사(葬事)지내주리라 하시며
종도들과 함께 잡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또 가라사대
지금은 천지에 수기(水氣)가 돌지 아니하여 묘(墓)를 써도 발음이 되지 않느니라
이 뒤에 수기가 돌 때에는 와지끈 소리가 나리니 그 뒤에라야 땅 기운이 발하리라
69 하루는 김덕찬에게 양지(洋紙) 한 장을 주시며 칠성경(七星經)을 쓰라 하시니
덕찬이 자양(字樣)의 대소(大小)를 물은 대
가라사대
수의(隨意)하여 쓰라 하시므로
덕찬이 뜻대로 쓰니
지면(紙面)에 만재(滿載)하고 다만 삼자(三字) 쓸만한 여백(餘白)이 남았거늘
이에 그 여백에 칠성경 삼자를 쓰라하사
불사르시니라
70 하루는 차경석을 앞에 세우신 후에
공우에게 몽치를 들리시고 윤경에게 칼을 들리사 그들로 하여금
네가 이 후에도 지금의 스승을 모시고 있듯이 변개(變改)함이 없겠느냐
일후에 만일 마음을 변개함이 있으면 이 몽치로 더수기를 칠 것이요
이 칼로 할복을 하리라고 경고하여 써 굴복케 하시니라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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