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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정규직 청소부이다. 오늘도 화장실에서 변기들과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얘들아 안녕! 잘 지냈지? 오늘 하루도 잘 보내자” 청소는 하찮은 직업이 아니다. 환경을 깨끗하게 바꾸어 주는 고귀한 직업이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대학을 나와서 청소를 하는 나를 보면서 학생들이 혀를 찬다. 왜 농협을 그만두었느냐고, 무엇을 잘못했냐고, 불쌍하다고, 안되었다고, 한심하다고, 대단하다고, 끝까지 견디라고………….
나는 이 고단한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내 인생에 청소부라니? 청소부 노릇을 한지도 벌써 7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부정하고픈 이 현실을 외면하고 싶다.
2003년 12월 26일 날 00중고등학교 행정 실에 첫 출근을 했다. 첫날부터 야근을 했다. 이놈의 일복은 어딜 가든지 늘 따라 다닌다. 이사장님께서 아시는 분들에게 연하장을 발송해야한다. 몇 년 치의 주소록을 수정하는 일이었다. 행정실 직원들은 6시가 되어서 퇴근을 하는데 나는 첫날부터 10시까지 주소록과 싸우며 일했다.
2004년 1월 1일자로 중고등학교수납일과 전자문서 담당자가 되었다. 3월 중순에 행정실일을 도맡아 하던 여직원이 퇴직을 했다. 감사원감사로 공금횡령죄로 걸렸는데 그 벌로 야간업무를 맡겼는데 반발하고 자기 발로 나간 것이다. 어차피 있어봤자 징계를 당하게 생겼으니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바람에 나는 고등기술학교와 중고등학교 지출과 수납, 고등기술학교 급여, 재정결함, 전자문서업무를 배당받았다.
그 여직원이 있을 때 업무를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그만두는 마당에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줄리
만무했다. 재정결함신청이란 것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재정결함이란 사립학교에서 보조금을 신청하는 일이다. 즉, 기준재정 수입액이 기준재정 수요 액을 충당하지 못하여 부족액이 발생한 경우에 그 부족액을 재정 지원하여 사립학교 운영의 정상화 및 내실화를 도모하기 위한 일이다. 1호에서 26호 서식까지 되어 있었다. 2-3개만 알 수 있었고 당최 인수가 없어 행정실장님에게 물어보았지만 “알아서 하세요. 하고 말을 했다. 뭘 알아서 하란 말인가? 학교일은 처음이고 용어도 생소한데. 무엇을 물어보려고 해도 다른 학교에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제출할 날짜에 서류를 싸들고 교육청담당자를 찾아갔다. 사정을 말했다.
“학교일은 처음인데 가르쳐 줄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해야 되냐” 그 분이 웃으면서 그 학교 뭐하는 학교냐고 했다. 전체적인 맥락을 가르쳐 주고 신청일을 늦추어 주었다. 또 행정실장 연수 실무책을 주면서 그 책에 적힌 대로 하라고 했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처음부터 하나도 빼지 않고 열심히 읽으면서 일을 했다. 학교 실정과 맞지 않는 내용도 최대한 맞추어 가면서 없던 장부도 만들었다. 일에 대한 애착과 중독이 있던 나는 하루라도 빨리 행정일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일념 하나로 밥 먹듯이 야근을 하며 일요일에도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칭찬했다.
그 당시 여직원들은 일은 대충했고 인사이동도 잦았다. 그래서 인수인계도 엉망이고 학생들과 수납문제로 늘 다툼이 있어왔다. 우리학교는 평생교육시설학교로 3부제로 운영된다. 아침반, 오후반, 저녁반, 늦깍이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배움을 놓치고 한이 되어서 그 한을 풀려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다.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하다. 아주 잘 사는 부자가 있는가 하면 하루하루 살기가 버거운 분들도 계시다. 학생들이 행정실에 오면 직원들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업무도 많은데 학생상대를 하면 자신의 일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은행에서 하던 습관이 몸에 배여서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하며 웃으면서 맞이하고 안내하면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 학생들이 친절하다고 칭찬을 많이 했다. 이사장님도 나를 믿고 모든 일을 맡겨주시며 “네가 없으면 불안하니 휴가는 가지 말라”고 해서 몇 번은 휴가도 찾아먹지 못했다.
2010년 여름에 교무실 선생님 중 한분이 학교 비리를 전교조선생님에게 말하여 국민신문고에 신고가 되었다. 2010년 7월 16일 금요일오후에 MBC에서 취재가 나왔다. 저녁에 9시뉴스와 문화일보 석간에 ‘가짜 졸업장 남발한 부자교장116명 허위졸업’이란 제목이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이사장님에게 교무실선생님에 대하여 이상한 선생이나 의심 가는 선생이 있었냐고 몇 번이나 불려갔었다. 또 교육청감사에 대비하기 위하여 1달 넘게 야근을 해야 했다. 이사장님은 나를 불러서 “네가 맡은 업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절대로 주차권판매와 식권판매를 관계자들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 안심이 안 되시는지 여러 번 확인 하시면서 입단속을 시켰다.“네가 말을 잘못하면 나는 감방에 간다.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
몇 년 동안 모아 놓았던 주차권과 식권을 없애느라 먼지를 마셔가며 절단기에 파쇄를 하고 장부를 없앴다. 결과는 부당인사발령과 퇴직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자기 말대로 하면 내가 생명의 은인인데 감방 갈 것을 막아주었는데, 어떻게?’ 교육청에서 9명의 선생과 1명의 행정실장만 보조를 해주겠다고 결정이 났다. 행정실직원은 3명 이었고 교사는 9명 도합 12명이었다. 그 때 이사장님은 나보고 교육청에 가서 관계자 바지를 붙들고 가서 통사정을 하라고 시켰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나를 행정실장을 통하여 인신공격을 하며 8월 말자로 사직서를 쓰게 하고 중고등학교에 발령을 내다니! 10급 19호봉에서 10급 7호봉으로 말이다. 정말 말이 안 된다. 남자 직원은 예술학교에서 받던 호봉 그대로 청암중고등학교로 발령을 내면서 나는 여자라고 차별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변함없이 열심히 일했다. 월급을 올려주지 못할망정 12호봉이나 깎다니?
어느 날 행정실장이 부르더니 계약직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왜 내가 정식직원으로 들어왔는데 무슨 계약직이냐 했더니 행정 직원 모두가 다 쓸 건데 한 선생이 먼저 쓰는 것이라고 안심을 시킨다. 위에서 시킨 거니까 찍기 싫으시면 나가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1년 계약직에 도장을 찍었다. 하루가 지나서 교장이 왜 일 년으로 했냐고 6개월로 다시 작성하라고 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계약직은 2년인데 추공화국에서 그런 것은 통할 수가 없는 일, 힘이 없는데 어쩌랴. 당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 앞에 암담하고 한없이 작아지는 나, 없는 자의 슬픔, 강자의 횡포.
2012년 2월 중순에 실장이 부른다. 겁이 덜컥 난다. “한 선생, 교장선생이 내년 3월에는 한 선생을 재계약할 수 없데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왜요” “교무실선생은 정년까지 일할 수 있지만 행정실 여직원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정년까지 할 수 없어요, 또 행정실여직원 2명중 누구 하나도 선생님과 같이 일하기 싫어하고 잡는 사람이 없는데요.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그동안 얼마나 몸 바쳐 충성했었는데 옛날 고등학교 총학생회장 장00씨의 충고가 새삼 떠오른다. “한 선생님 제 말 잘 들으세요. 제가 보니까 선생님 너무 열심히 일하시는데 그렇게 하지 마세요. 제가 이사장님을 잘 아는데요. 언젠가는 선생님 발등을 찍고 후회하는 날이 오게 될 거예요.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소용없어요. 이 학교는 뇌물로 큰 학교예요. 때마다 선물이나 잘하고 아부를 떨어야 오래 버틸 수 있어요. 명심하세요. 그때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일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반박하였다. 돌아보니 이사장님에게 쓴 사탕도 바치지 않았던 나였다.
이사장님의 특별배려로 식당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한다. 겨울방학 동안에 소망관 지하 1층을 몇 억을 들여서 리모델링을 했다. 채식뷔페식당을 만들 계획이었다. 공사가 늦어져 방학도 늦추면서 공을 많이 들였다. 식당책임자로 내려가서 채식뷔페 메뉴개발과 손님유치, 영양사, 위생사역할, 직원교육, 매점, 식당관리, 직원관리, 식당청소를 하란다. 살림도 하지 않던 나에게 식당일이라니? 신장하는 말 “그래도 식당에 가서 설거지하라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그 나이에 어디에 가서 취직을 하느냐 상민이 대학도 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하세요. 나 같으면 이복잡한 행정일보다 더 낫겠네 한다. 미친놈. 이사장, 교장의 딸랑이 노릇하면서 평상시에는 그렇게도 욕을 해대더니만 실장이 되고 나서 어떻게 저렇게 싹 변할까? 배신감! 말할 수 없는 모멸감! 버림 받았다는 상실의 아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통곡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분노와 슬픔과 좌절이 한없이 몰려온다. 대한민국 광명 천지에 어째 이런 일이! 그것도 나에게! 가슴에 피멍이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대한민국의 여자로 산다는 것이,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현실일지 꿈에도 상상 못했다. 이건 부당한 일이다. 신고를 해야 하나? 법이 있는데 이렇게 당하고 있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며칠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말을 했다. 너무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 말을 들으시는 노모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질까? 그래 때려치우자.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왜 밀려나는 거지? 왜 버림받은 거지? 잘못을 하고 당하는 일이라면 내가 납득할 수 있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동안 받아왔던 차별대우와 여러 가지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사장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에 아이비 잎을 넣을까? 황산을 얼굴에 뿌릴까? 그렇게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나이 때문이라니 말도 안 돼. 내가 늙어서 머리가 허연 것도 아니고 내 친구들은 몇 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염색을 하고 있다고 한다. 눈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닌데 법에 정년이 명시되어 있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을 가지고 노는구나. 너무 억울하고 분하여 얼굴과 손이 뻘게진다. 잘 생각해서 답을 달라고 한다. 하긴 이런 일이 하루 이틀째인가? 그래도 나는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이런 소리 안 듣는 게 어딘가? 교무실선생들은 교감을 통하여 너 언제부터 나오지 마하는 소리에 눈물을 머금고 그만 둔 사람이 한두 명인가? 서 선생, 김 선생 3명, 이 선생, 추 선생, 강 선생은. 너무 울어서 왼쪽 눈이 이상해졌다. 뭐가 막 날아다닌다. 추천서를 들고 백병원에 갔더니 심한 충격으로 눈을 다쳤냐고 의사가 묻는다. 다친 게 아니고 정신적 충격으로 너무 많이 울었다고 했다. 레이저수술을 25만원을 주고 했다.
식당에 내려갈 때 행정 실에서 하던 몇 가지 업무를 가지고 갔다. 8시부터 7시까지 근무에 월급 1,600,000원 보너스 없음. 시간외 수당 없음. 점심시간에 교직원식당에 6가지 메뉴와 밥과 국을 수레에 싣고 가야하는데 거리가 너무 멀고 학생들이 보는데 창피했다. 같은 선생님들 보기에도 민망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덜덜되는 수레, 잘 밀리지 않는 수레를 끌고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학생급식실과 매점을 오가며 일을 하였다. 다리가 퉁퉁 부었다. 매일 앉아서 일을 하였는데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한다. 책상과 의자도 없다. 매점장의 책상과 의자에 않아서 사무를 보았다. 학생들이 웬일이냐고 묻는다. 이사장님이 발령을 냈다고 했다. 식당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식당 책임자로 왔다고 했다. 욕들을 한다. 어른들이고 학교 사정을 너무 빤히 잘 알고 있는 재학생들이니까. 신입생들은 영양사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줌마인데 그 소리가 듣기 싫고 생소하다. 한 선생님이라는 소리가 귀에 익었나 보다. 석 달 동안 행정실장이 식당에 내려와 많은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서 소리도 지르고 많이 괴롭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 선생이 얘기를 해 줬는데 이사장이 “한기춘이 3개월도 못 버티고 제 발로 걸어 나갈 잘봐. 내 말이 맞을걸. 했단다. 못된 사람, 나쁜 사람, 나에게는 너는 할 수 있어 믿음도 있고 똑똑하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온갖 감언이설을 하더니만. 겨울 방학 때는 무노동 무임금이라 하면서 한 달간 쉬라고 하더니 50만원을 준다. 덕분에 이상구박사세미나에 가서 주방봉사를 하고 메뉴개발에 대한 것을 배우고 왔다.
1년 1개월이 지났다. 노동절날 행정실로 오라고 부른다. 또 뭘 괴롭히고 사람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부르나 싶어 올라갔다. 한 선생에게 1년 동안 일할 기회를 주었는데 운영을 잘 못해서 4월말부로 식당에서 잘렸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다. 그런데 불쌍해서 대학건물 청소부로 발령을 냈으니 청소를 하든가 그만두던가 하란다. 식당에 내려갈 때 예상했던 일이라 작년보다는 충격이 덜한 것 같았지만 또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식당집사님들이 그만두라고 한다. 아들과 부모님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 모욕감, 곤욕, 배신감……. 또 몇 날 며칠 분하고 억울하고 잠도 못자고 소설 같은 이 현실에 절망하고 있는데 부학장이 찾아와서 왜 청소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다닐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고 했더니 자신의 충성심을 얘기하며 왜 청소를 못하냐고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나도 67세인데 며칠 해봤는데 괜찮다고 한다. 엉겁결에 청소를 시작했다. 머리에서 이건 아니다 싶은데. 청소아주머니가 몇 달 동안 없었기 때문에 학교전체가 먼지 투성이었다. 제일 먼저 1층 교직원화장실을 청소했다. 울면서 청소했다. 물을 세게 틀어놓고 집에서도 안하던 청소. 하나님께서 내가 청소를 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을 시키셨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내가 미쳤나보다. 일주일 넘게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허리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다. 대학생들이 내가 청소를 하니까 송구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사장님이 5월부터 120만 원짜리 청소부로 발령을 냈다”고 했다. 학생들이 또 수군수군. 내 얘기가 좍 퍼졌다. 창피하다. 하지만 난 당당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3일을 일하고 나니 몸에 이상이 왔다. 잠을 못자고 밤에 아무도 모르게 울면서 밤을 지새우다가 아침이 되면 나와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청소했다. 현실을 부정하려고, 잊으려고.
5월 8일 생리가 있었다. 많이 어지러웠지만 학교에 갔다. 청소를 조금 했는데 너무 아파서 양호실에 가서 누웠다. 장샘에게 얘기했다. 교장부인이 양호선생이다. 11시 30분에 밥 먹으러 가자고 해서 식당에 내려갔다. 부학장이 점심 먹고 보자고 한다. 며칠 일해 놓고 시위 하냐고 묻는다. 아파서 그랬다고 했더니 아프면 집에서 누워있지 학교는 왜 나왔냐고 아픈 사람이 점심은 제일 먼저 와서 먹냐고 하면서 이사장이 한 선생 불쌍하고 사랑해서 건물 청소부 일자리를 줬으면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지 사랑을 받으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게 일해야지 나 같으면 몸이 부서져라 일 하겠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한 선생은 얼마 못가서 그만둘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나를 주시하고 있단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나. 내가 따져 물었다. 정년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사람을 이렇게 대할 수 있냐고 묻자 그건 밖의 일이고 우리 학교는 다르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학교가 더러워서 고등학생에게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 이사장 욕먹이는 것이라고 한다. 너무 어이가 없고 분노가 치밀어서 뺑뺑 돌지만 또 미친 듯이 8시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쓰러졌다. 교장도 청소 일에 관심이 있는지 화장실점검표를 만들어 붙이라고 했다. 참 대단한 학교다. 부학장, 실장, 교감도 청소에 대하여 눈에 불을 밝히고 나를 감시한다. 식당에서 김밥을 먹으라고 불러서 청소하다가 내려갔는데 교감이 전화가 왔다. 어디 있냐고 한다. 식당이라고 했더니 빨리 오란다. 내가 마치 교실을 더럽혀서 학생들의 원성이 높다는 것이다. 교실은 몇 달째 청소를 안 해서 왕먼지가 뭉쳐있고 널브러진 휴지에 바닥은 거뭇거뭇하다. 또 분노하여 무언가 보여주겠다며 4개층의 교실 11개를 쉬지 않고 빗자루 질을 해댔다. 많은 먼지를 마셔가며 미친놈들! 그 날 이후로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아서 한 달간 고생했다.
5월 28일 또 부학장 호출. 이사장 들먹이며 청소강요, 내가 노예도 아니고. 청소 잘못된 곳을 지적질할 곳이 없으니 근무태도를 가지고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한다. 어째서 이 학교는 나에 대하여 이다지도 관심이 많던가? 점심시간에 평소에 양호실에서 쉬는데 교장사모가 근무하는 날이라 여선생들이 쉬는 찜질방에 가서 쉬었다. 행정실 모양이 나중에 왔었는데 일렀던 모양이다. 나더러 근무시간 내내 쉬지 말고 걸레를 들고 눈에 띄는 곳에 있으란다. 내가 화장실청소를 할 때면 학생들이 나에게 알려준다. 부학장이 또 왔다 갔다고 부학장이 되어서 할 일이 없어 여직원 청소하는 것이나 감시 하냐고 한다. 학생들과 또 처음 보는 교수들도 나를 보면 인사를 한다. 선생님처럼 열심히 일하시는 분은 없다. 몸도 약한데 쉬시면서 하세요. 더 날씬해지면 안 된다고. 덕분에 학교가 너무 많이 깨끗해졌다고.
여름 방학 때 올해는 얼마나 더웠는가? 가만히 있어도 폭염과 긴장마로 땀들을 많이 흘렸다. 나는 방학 때 빈 교실 몇 번씩 청소하고 학교가 생긴 이래 청소한 흔적이 없던 곳 같은 반대쪽 계단과 지하 2층 전체를 구슬땀을 흘려가며 먼지를 맡으며 청소를 했다. 자기들은 문 꼭 닫고 에어컨 틀어놓으면서 나는 선풍기 하나만 달라고 해도 무슨 선풍기냐며 청소나 하란다.
어떤 날은 맘을 비우고 ‘그래 청소나 하자 내가 청소에 이런 재능이 있었나. 하며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하는 생각도 했다. 어떤 날은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왜 그 놈들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그들의 노리개가 되었지 하며 한심한 생각도 한다. 나는 정말 바보인가 보다. 뭐가 무서워서 뭐가 두려워서 화장실 냄새를 맡으며 락스와 놀고 있지. 휴지와 대화하면서 말이지.
부학장이 어느 날부터인가 청소감시를 멈추었다. 대신 중고 행정실에 남자선생이 나를 감시한다. 건물의 한 부분을 죽어라 청소하고 잠시 쉬면은 전화가 오던가. 올라오던가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왜 청소안하고 쉬냐고. 추석 연휴 때 재량휴업일에 나와서 청소를 하란다.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학교에서 나가 농협에서 화를 식히고 다시 학교에 들어와서 퇴근하였다. 고분고분하니까 사람을 뭐로 보고. 재량휴업일에 놀았다. 추석이 지나고 출근하자 행정실로 오란다. 대학교와 중고 행정직원이 모여 조회를 한다. 실장이 왜 안 나왔냐고 소명을 하란다. 내가 왜 나오냐 다 쉬는데 했더니 중고, 대학 각 1명씩 나와서 교대를 했는데 너는 뭔데 교장말도 안듣냐 응분의 조치가 있으니 나가보란다. 오후에 이사장님이 부르셨다. “오늘 어떤 여자 분이 왔다가 갔다. 너보다 젊고 키도 크고 튼튼한 여자인데 너처럼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 여자 분이 대학건물을 둘러보더니 자기는 3시간이면 전체 청소를 마칠 수 있다고 했다. 시급 7,00원만 달라고 한다. 하루에 21,000월이다. 한 달이면 얼마지?” 하신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목구멍까지 이 말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여러 가지가 내포된 말씀이다. 그래서 월급을 깎겠다는 것인지? 해고하겠다는 것인지? 끽소리 말고 청소나 열심히 하라는 얘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사장님도 나도 말없이 한참을 서있었다. 내가 먼저 “이사장님, 저 청소할 곳 많아요. 나가서 청소할게요. 하고 도망치듯 이 사장실을 나왔다.
그 다음날 실장과 이사장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침에 휴지수거를 하고 있는데 허리가 뜨끔했다.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어쩔 줄 모르겠다. 법정 허리가 된 것 같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해 왔다. 병원에 가야 하지만 미련하게 참았다. 말하기가 싫고 무슨 소리 듣는 게 자존심이 참아서 죽을힘을 다해 참고 청소를 열심히 했다. 11시쯤 장 선생에게 말하고 한의원에 가서 물리치료와 침을 맞았다. 계속 아팠다. 오후에도 얼굴을 찡그리며 참고 일했다. 저녁에 집에 와서도 아파서 쩔쩔 매었다. 뜨거운 찜질을 했다. 앉아서 저녁 먹기도 힘이 들었다.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학교 있을 때보다 몇 배나 더 아팠다.
다음날도 참고 뻗정허리를 한 채 청소를 부지런히 마치고 장선생에게 병원에 간다고 했더니 “왜 맨날 아프냐? 꾀병아니냐”고 한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병원에 가라고 한다. 지들은 아프면 아무 때나 병원가면서 비정규직 청소원이라고 너무 하는 것 아닌가? 뭐라고 하고 참았다가 12시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오니 1시가 넘었다. 교내 체육대회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있었다. 대학생들이 여러 과에서 서로 오라고 한다. 점심 함께 먹자고 자기네가 준비한다고. 나는 학교에서 안 보낼걸요 했다. 장선생에게 물어보았다. 수석이나 닦으면서 정상근무를 하란다. 그 다름날을 재량휴업일. 모두 안 나오는데 나만 나와서 또 정상근무를 지시한다. 이사장이 금요일날 놀라면서 어제도 나왔는데 오늘도 또 나왔냐고 한다.
대학에서 외부 사이버대학생들 상대로 실습비를 받고 실습지도를 한다. 사회복지와 유아교육실습지도이다. 오육백명 가량 되는데 일요일에 5번 정도 나와서 한다고 한다. 아들이 군입대를 했다. 10월 2일 수요일에 군사훈련 수련식이 있어서 부모초청이 왔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선뜻 휴가를 내 주었다.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안 보내주면 어쩌나?
금요일날 요번주 일요일에 실습이 있으니 평일에 휴가 다녀 왔으니 일요일날 나오라고 한다. 싸구기 귀찮아서 일요일날 8시30분에 나왔다. 아무도 없다. 9시부터 시작되는 모양이다. 나쁜 놈들 9시에 출근하라고 하지. 쉬지않고 대학건물과 중고등학교 두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바쁘게 청소와 휴지수거를 했다. 오전 오후로 나뉘어 학생들이 이동하는 바람에 쓰레기가 많았다. 몇 주가 지났는데 또 일요일에 실습이 있으니 나오라고 한다. 못나간다고 남자직원에게 말했다. 일요일날 마음은 편하지 않았지만 출근거부를 하였다.
월요일 출근하자 실장이 “왜 일요일날 안 나왔어요? 한 선생은 교장선생님 명령도 안 지켜요? 안 나온다고 분명히 말해야 다른 사람을 쓰던가하지” 하면서 궁시렁거린다. “몸이 아파서 안 나왔어요? 하고 청소만 했다. 부학장이 10시에 보자고 한다. “한 선생, 왜 일요일날 안 나왔어요? “제가 왜 일요일날 나와야 하지요? 저는 노동자로서 쉴 권리가 있어요. 청소를 시작하면서 몸무게도 3kg이나 줄고 어깨며, 무릎이며 관절이 아파 죽겠어요. 그리고 휴일 일을 시키려면 수당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수당을 왜 줘요. 한 선생 불쌍해서 이사장님이 일을 줬으면 감지덕지해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야지. 사람이 양심이 없어요. 한 선생 아니라도 사람 쓰고 토요일 쉬라고 하면 아무 소리 없이 일요일날 일해요” “부학장님! 엄밀히 말하면 그 실습이 대학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 그러는 별도로 그 사람들에게 돈 받고 하는 거니까 필요하면 그 돈에서 사람사서 청소시키시면 되잖아요. 제가 청소다 해 놓았는데 월요일 아침에 와서 정신없이 청소하는 것은 제가 봉사 하는 것이잖아요?” 부학장 갑자기 흰 A4용지 한 장과 볼펜을 내밀며“그렇게 청소하기 실으면 오늘 날짜로 사직서를 써요”한다. 기분 같아서는 멋지게 사직서를 쓰고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제가 왜 써야 하지요?” 잠시 정적이 흐른다. 부학장님 어투를 부드럽게 하면서 “그럼 앞으로 윗사람 말 잘 들을 거요? 안 들을 거요?”나는 침묵했다. 부학장님 화를 내면서 “이사장이 그렇게 한 선생을 사랑하고 배려하면 사람도리를 해야지 불쌍해서 정규직원대우를 해 줬더니 책임자 회의를 해서 한 선생 월급을 깎아야 갰으니 알아서 해요” 나는 화가 너무 나서 “알아서 하세요. 하고 문을 꽝 닫고 먼저 일어나서 나왔다.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너털웃음이 나왔다. 신나게 찬송가를 부르며 일했다. 대학생 몇 명을 붙들고 이사장이 한 얘기를 들려주며 하소연을 하였다.
11월 7일 수능일이다. 중고행정실은 한명도 안 나오고 대학행정실은 신입남자직원 한명과 부학장님이 나왔다. 나는 점심 먹고 1시까지 출근해서 일하라고 한다. 또 일요일날 나와서 일하라고 한다. 행정실장에게 일요일날 나와서 일하면 수당을 주느냐고 물어보았다. 무슨 수당이냐고 한다. 왜 안주냐니까 교장에게 가서 말하란다. 갈까 말까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자존심 상해서 그만두었다. 나오지 말까? 또 얼마나 볶기고 모진 소리를 들으려고 포기하였다. 일요일에 나와서 청소를 바쁘게 쉬지 않고 했다. 나는 청소부로 무능력자로 비정규직으로 굳어지고 있다. 길들여지는 바보가 되고 있다.
첫댓글 사랑 합니다.
바보가 정말 바보일가요?
그러게요 정말 바보일까요? 어려운 문제네요...
세상을 보면 제렇게 할수없는데 세상을 보지 못하니 괴물이 따로 없구나
세상에 님은 더할나위 없이 천사랍니다
남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니까요 힘내시고 걷다 보면 희망이 가슴안으로 들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