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척의 시간
신재미
분당중앙공원에서 꽃무릇 촬영하다
꽃과 꽃 사이에서 잠든
어른을 봤다
얼마나 피곤 하셨으면 잠이 드셨을까
돗자리를 폈으니 준비된 잠자리다
배 위에 올려놓은 거친 손등에
살아온 시간이 꿈틀꿈틀
모자에 얼굴은 가려졌어도
폐인 목주름 사이로
깊게 파고 든 세월
조작 할 수 없는 세월 흔적 채취다
평생 구축해 놓은 삶의 축적
고단한 생이라 쓰고
얼룩무늬 지도를 그린 손
다음 세상으로 가는 길 묻지만
붉은 꽃들은 물결을 이루며 살랑살랑
이승의 행복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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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신숙미장원 앞을 지나다
흰털 보슬보슬 부풀어 오른 꽃을 봤다
쪼그려 앉아 이리저리 살피는데
어르신이 지나다 목화잖아
젊은이, 이건 꽃처럼 보이지만
꽃이 아니라네.
어르신 말씀에 궁금증이 풀렸다
기쁨이 가슴을 채웠다
처음 보는 꽃인 줄 알았는데
목화라니 놀랍다
꽃 지고 난 자리 열매가 맺고
열매가 다시 피어 꽃이 된 목화
수확 시기가 되면 씨앗 한 톨 얻어야겠다.
소중한 식물 자세히 공부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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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세상을 보는 방법
호숫가 거닐다
노을 속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떼를 보았다
흐트러짐 없이 날아가는 풍경
까치발 돋음을 시켰다
눈빛, 하늘에 둔 몸
기우뚱하더니 결을 세우는 억새위로 넘어졌다
억새 뿌리에 핀 야고가 웃었다
꽃 속에 숨긴 보름달이 웃었다
꽃과 억새 사이 아슬아슬한 경계에 누워
은빛 적신이 춤추는 하늘을 보았다
수평을 고집하던 삶에서 보지 못한 황홀함
대지가 등 받혀주고서야 보았다
때로 직립의 삶을 벗어나
자연의 품에 깃들어 볼 일이다
숨겨 둔 자연의 보물을 볼 수 있으니까
약력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강서지부(강서문협 부회장, 편집국장)
짚신문학, 한국통일문인협회 사무국장,
샘문그룹 부이사장, 청하문학 감사, 계간문예 중앙위원
옛정시인회 2대회장
수상: 강서문학상 본상 외 다수
시집 『춘당지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