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대통령상 2개 수상 국악인 이경화
판소리와 설장고춤으로 대통령상 수상
전설적인 농악명인 이주완선생의 딸…신명의 ‘설장구’ 명인
2013. 09.12(목) 16:54 | |
대통령상이 걸린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각기 다른 부문으로 대통령상을 거머쥔 명인의 이야기다. 해마다 전국의 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 수상자가 쏟아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부문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전무후무하다고 알려진다.
국악인 이경화(59). 그는 지난 6월 제 24회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부문 대통령상에 이어 바로 제 18회 한밭국악전국대회에서 무용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특히 무용부문은 ‘설장고춤’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는데 심사위원들조차 넋을 잃었을 정도로 ‘신명의 무대’를 펼쳤다. 시상식이 끝난 뒤의 앙코르 무대에는 대회장과 심사위원들까지 올라와 얼싸안고 춤을 추는 진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사실 그녀는 49년 전인 1964년 10살 때 대통령상을 받은 적이 있다. 아버지와 함께 참여했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호남농악’이 대통령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는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고 전한다.
| 설장구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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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이경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너무 유명한 국악인이다. 이미 어려서 텔레비전 방송을 수없이 탔고 2006년 장고춤 대한명인지정, 2007년 세계 51개국 세계명인교류 ‘설장고’ 명인명무 지정, 2008년 미국 컴벌랜드대학 명예예술학 박사학위 수여 및 문화예술분야 공로상 수상(미국 부시대통령)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상과 이력을 쌓았다. 요샛말로 스팩이 짱짱하다.
이경화는 전라도 농악 상쇠명인이던 이주완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친의 가락을 듣고 춤사위를 배웠다. 이주완은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12발 상모를 돌렸던 12발 상모의 최고예인이자 전설적인 상쇠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 명치대에 유학했으면서도 농악이 좋아 악기를 만들어 농악을 치고 농악단을 이끌었다. 말년에는 전남대 풍물패를 지도한 적도 있다. 대목수였던 이주완의 아버지는 그런 그가 환장하도록 미워(?) ‘이주완을 잡아오면 현상금을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경화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4살 때 소고를 만지고 6살 때 장고채를 가지고 놀았다. 7살 때 광한루국악대전에서 소고춤으로 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여수 오동도 국악경연대회에서 설장고춤으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어려서부터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서울 극동 무용예술단 오경화 단장에게 발탁돼 3년간 사사했는데 경화라는 이름은 오단장이 지어준 것. 살풀이 승무 북춤 초립동 장고춤 한량무 등 갖가지 춤사위를 배웠다. 이후 광주의 홍갑수 선생에게 춤을, 공대일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웠으며 13세때 박동진 선생에 판소리 적벽가를, 오정숙의 춘향가를 사사했다. 오정숙 선생 사후에는 오선생의 바디를 이은 민소완(전주대사습이사장)을 스승으로 삼았다. 또 진주 김병환 선생에게 설장고 48가락을 배웠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48가락을 치는 사람이 이경화 이외에 거의 없다고 알려진다. 24가락 사이에 잔가락을 한 번씩 더 쳐야하는 세기(細技)가 필요한 것. 그래서 이경화의 설장고가락을 듣고 어깨를 들썩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눈도 못보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 이경화 선생 미 부시대통령 문화-예술분야 공로상 수여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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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젊은 시절 동남아 순회공연, 일본 엑스포 70만국박람회 공연, 서울 대한극장 공연을 펼치며 기량을 연마했다. 2006년 장고춤 대한명인 지정, 2007년 세계명인교류대회 설장고의 명인명무로 인정받았다. 그해 광주에서 이경화 국악인생 46주년 공연을 가졌으며 2008년 국립국악원에서 제 60회 한국의 명인명무전 무대에서 설장고 춤을 추었다. 또 미국 컴벌랜드대학 명예예술학박사를 받았으며 부시미국대통령으로부터 문화예술분야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폈다.
국악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는 60~70년대로 설장고와 춤, 소리를 비롯 못하는 것이 없는 전천후 활동을 폈다. 풍물 공연자에서 전통춤꾼으로 그리고 소리꾼 등 종합예술국악인으로 자신의 활동기반을 확장해가는 시기다. 또 공연예술을 대중화시킨 시기이며 당대 내로라하는 명인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국악세계를 구축했다.
이경화는 지난 1990년부터 현재까지 이경화 국악예술단을 결성, 부친과 자신의 풍물예능을 전수시키는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국악에 재능이 있는 10여명만을 제자로 받아 자신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 해외공연도 활발하게 전개했으며 최근에는 이주완 풍물 발굴 및 보존 활동을 위해 많은 사비를 들여 ‘이주완의 풍물굿과 이주완의 예술세계’(민속원 간)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경화의 설장고 가락은 9명으로 구성된 풍물세상 굿패마루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 설장고 이외에도 살풀이, 지전무, 한량무, 입춤과 같은 전통무용을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길러낸 제자는 굿패마루의 진준한, 이세라, 유송일, 이정석, 이우정, 조미연, 박정숙, 정지하, 이영실, 김산 등이다. 특히 수제자는 진준한은 이주완 풍물의 곡예적 성격을 나름대로 소화해 공연하고 12발 상모와 무동을 태우고 쇠놀음 혹은 상쇠놀음을 하고 있다.
이경화는 지난해부터 제주도에 명인박물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 명인박물관은 1만 5천여 평 규모의 부지에 세계명인들이 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메인으로 하여 부대시설로 국악공연장, 명인음식촌, 야시장, 쇼핑센터까지를 갖춘 문화공간을 만들어 제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국악예술과 맛을 전하고 싶다는 구상이다.
| 미 공화당 로페즈 회장으로부터의 공로상을 전수받고 있는 이경화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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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화는 현재 사단법인 한민족전통예술연구회장, 이경화국악예술단장, 대한명인회 수석부회장, 월드마스터조직위원회 세계 명인 중 1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침공부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잠을 깨워주고 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2시간 동안 혼자서 소리를 하고 춤을 추면서 자신과의 사투를 벌였습니다. ‘목’을 이기기 위해서는 ‘타고난 목’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춤은 언제 어디다 내놓아도 자신이 있는데 소리는, 날씨나 몸의 컨디션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목을 이기기 위해 연습 밖에 없었다며 오늘의 영광을 남편 박흥철씨에게 돌린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무등산자락에서 ‘무등산흑염소탕’집을 운영하면서 아내의 뒷바라지에 자신을 걸었다. 이경화는 오는 2015년 국악인생 55주년을 맞아 전국순회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박원지 기자>
■주요 약력
| 판소리 경연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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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광주 용전 출생 / 1961년 남원 광한루 국악대전 소고춤 대상수상 / 1962년 서울 어린이 무용 경연대회에서 소고춤 대상 수상 / 1963년 서울 극동 무용예술단 입단-오경화 선생 사사 / 1964년 김병환 선생 설장고 48가락 사사 / 여수 오동도 국악대전 설장고 춤으로 대상 수상(5년 연속 수상) / 명창 박동진 선생 사사 / 1970년 일본 엑스포 70 만국박람회 대공연에 극동무용단 소속으로 참가 / 1971년 박동진, 이은관, 안비취, 묵계월, 김영철 등과 꽃피는 민속백일장 전국순회공연 / 1996년 이경화 국악인생 35주년 공연(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 2000년 이경화 국악예술단(사, 한민족전통민속예술연구회) 설립 / 2006년 대한민국 대한 명인 부분 ‘장고춤’ 지정 / 2007년 세계 51개국 세계명인교류 ‘설장고’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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