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구속(double-bind)이 난무하고 있다고들 한다. 일상화되었다고도 한다. '이중구속'은 무엇을 뜻하는가. 한 사람이 둘 이상의 모순된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개념은 1956년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제시했다.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다. 1956년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연구소에서 조현병 환자 가족의 의사소통을 지도하면서 이중구속이 조현병(schizophrenia)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참으로 무서운 대화법이다. 날마다 사회를 시궁창으로 만들어가는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은 이중구속의 원흉들이지 않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가정이나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상호 모순되는 메시지를 보내면 자녀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속 반복되게 되면 결국 미쳐버릴 것 같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그렇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건설적인 제안을 많이 하라는 등으로. 하지만 정작 제안을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회의 중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든지 하라고 해서 하게 되면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의 경우에는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니 누구든지 본심을 숨길 수밖에 없잖은가. 그런데 제안을 안 하면 안 한다고 난리다. 이러니 현대인들은 눈치만 발달할 수밖에. 그래서 순진무구한 인간다운 사람들은 멍청이로 전락 돼 버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중구속은 대체로 어렸을 때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 손님들이 와 있을 때 아이가 “엄마, 나 친구와 같이 놀고 와도 돼? 아직 숙제는 못 했어.”. 이때 엄마는 “으응 놀다 와.” 손님들이 있는 데서는 이렇게 말하지만 표정은 화가 난 얼굴로 아이를 째려본다. 이때 아이는 ‘놀러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치 없는 아이는 놀고 왔다가 엄마에게 타박당하기 십상이다. 아이들로서는 이런 상황들이 쉽게 이해될 리가 없을 것이다. “거짓말하지 말라.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남에게 듣기 싫은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부모님의 메시지를 받고 자란 아이가 “이 옷 어때?” 하고 엄마가 물을 때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이에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서 질문할 때는 말이다. 이러니 나날이 눈치만 보는 왜소한 인간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잖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학습되어간다. 아이가 이런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면 자신이 잘못한 것 같기도 해서 죄책감이 들기도 할 것이다. 자신감 역시 떨어진다. 그러면서 눈치만 발달하게 된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 밤늦은 시간. 잠자리에서 낮에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수다 떨다가 남편에게 “괜찮아? 계속 이야기해도 돼?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하고 물을 때, 피곤한 모습의 남편은 (시계를 보면서)“괜찮아. 계속해.” 하면서 솔직하지 못한 대화가 지속될 때 이 부부의 행복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페르소나(Persona)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페르소나를 자신의 본성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동일시하면 자신의 본모습(Self)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신체적・정신적 문제들이 생겨서 열등감이나 갖가지 애로사항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본 모습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로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페르소나가 판치는 세상에서 셀프(Self)만으로 살 수도 없잖은가. 이미 우리 사회가 속도를 내면서 변질되어 가기에. 그래서 셀프와 페르소나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 둘 사이의 밸런스를 잡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