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쓸데없는 썰 풀기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군대 이야기보다 재미없다는 레지던트 1년 차 이야기입니다 ㅋㅋ
사실 남 고생한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분위기 전환 겸!
참고로 이건 병원마다 분위기가 달라요. 그냥 제가 수련 받은 병원은 이랬다~ 정도로 봐주세요.
1. 100일 당직
이건 제가 마지막에서 2번째였고, 이제는 사라진 전통이에요.
100일 정도는 폐쇄병동에서 살면서 환자들과 생활을 같이 해야 한다.
폐쇄병동에서 못 나가는 환자들의 고통을 너희도 같이 느껴야 한다.
그 외 뭐 여러가지 이유로 3월 1일 땡 하고 레지던트 1년 차가 시작되면 병원을 못 나갑니다.
그리고 병원 생활도 잠깐 컨퍼런스 할 때 빼고는 계속 폐쇄병동 내부에 있습니다.
할 일이 떨어지면 병동에 큰 홀이 있는데 거기서 환자들과 같이 놀고... 과자도 먹고.
병동 내부에 불법 개조한 당직실이 있는데, 거기서 자고 환자들 쓰는 샤워실에서 씻었습니다.
정신과 환자분들은 저녁에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자다가 일어나서 보호실로 넣어서 주사도 놓고...
100일 당직이 6월달에 끝나는데, 이 날 술을 진탕 먹는 해방식이라는 것을 하는데...
그날 당직이라서 못 갔던게 아쉽습니다 ㅠㅠ
여튼 이거 하면서 신기했던게, 선배들이 별다른 감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걍 100일은 이렇게 한다~라고 정해주기만 하거든요?
사실 선배들도 다 조금씩 나갔었고, 그런 이야기도 해주고... 뭐 예전만큼 군대스러운 것은 사라졌어서.
그런데 아내가 놀러와서 저녁에 잠깐 나가려고 하니까
그 병원과 병원 바깥의 경계선에서 제가 고민을 하고 있더라구요.
이게 나가도 되는건가....
여튼 이렇게 노예가 되어가는군- 하는 생각과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사회가 개인을 통제하는 과정이 이렇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2. 퐁퐁당 응급실 당직
저희 년차는 3명이어서, 1년간 매 3일에 한 번 응급실을 24시간 책임지는 응급실 당직을 1년간 섰습니다.
이걸 2일에 한번 서는 병원은 퐁당 당직, 3일에 한번 서면 퐁퐁당이라고 합니다.
하루 0~4명 정도 방문하는 정신과 환자가 응급실로 오면 응급의학과가 저희를 부릅니다.
그러면 이제 내려가면....
절반 이상이 자살시도 환자입니다. 조용~하게 누워 있는 경우가 많죠.
가족들은 옆에서 울고 있고ㅜㅠ
여하튼 어떤 환자든 문진이 한 30분 정도 걸리고, 환자를 파악한 것을 의무기록에 적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2, 3, 4년 차 선생님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해야 합니다.
환자 보고를 줄줄줄 읊다 보면 이제 태클이 하나씩 들어옵니다.
이 태클을 잘 방어하면, 환자를 충분히 파악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대답을 못하면.... 엄청나게 혼나고, 다시! 가 걸리면서 환자 문진을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공부하고 고민하고 정리해서 다시 보고를 하고...
처음에는 응급실 환자 한 분 정리하는데 4시간씩 걸렸던 것 같습니다. 당직날은 거의 날밤 ㅠㅜ
이제 전문의가 되니까 30분도 안 걸리는 일인데 ㅋㅋ
그때는 선배들도 가르친다고 아주 세세한 내용까지 꼬치꼬치 물어봐서 엄청 오래 걸렸네요.
가끔은 난동을 부리는 분이 오십니다. 그러면 이제 점진적 완화 기법을 써 보다가 안되면 결국은 주사 ㅠ
보호자 하고 면담해서 입원 절차를 밟습니다.
정신과 폐쇄병동 입원은 인권 문제 때문에 입원 시에 서류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거 확인하고, 교수님 컨펌까지 받아야해서 교수님 보고 준비할 때는 살이 바들바들 떨리지요...
여튼, 배우는 것은 뭐든지 고생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 상황이 되어야 필요 지식이 쑥쑥 들어오는 느낌?
3. 첫 환자 면담
저희 병원은 담당의가 거의 매일 면담을 합니다.
100일 당직일 때는 어차피 일요일에도 집에 안 가니까 일요일에도 했죠.
이후로는 약간은 요령 부려서 토요일에 2배하고 일요일은 쉬기도 하고 ㅋㅋ
면담실이라고 환자와 의사 둘만 들어가서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둘의 대화가 이루어지지요.
3월은 1년차가 입원환자를 안 받습니다.
병동 적응하고 응급실 환자 보면서 공부도 하면서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지요.
4월이 되서 첫 환자를 받았습니다.
조증이 있는 분이었고... 조증이 있으면 증상으로 말이 많습니다.
첫 면담을 2시간을 들어드린 것 같아요. 진짜 귀에서 피가 난다는 느낌이...
사실 이게 치료적으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처음인데 뭘 아나요. 환자분이 말하니 들어드려야 된다는 생각이었죠.
환자분이 말하면서 자는 상태가 되어서야 첫 면담이 끝났습니다 ㅋㅋ
여하튼 1주일 만에 그분의 인생을 거의 알았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다른 환자분들 말은 듣는 것이 어렵지 않더라구요.
뭐든 처음에는 많이 해보는 것이 좋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4. 환자의 폭력
정신과 의사는 수련 과정에서 보통 3~4번 정도 폭력을 당한다고 합니다.
대부분 환자한테 맞죠...
저는 2번인데, 한 번은 갑자기 저녁 11시에 병동 출입문을 누가 두드려서 나갔더니, 이전에 입원했던 사람인데 지금 상태가 안 좋아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자다 일어나서 정신이 없으니까 일단 응급실 가서 입원절차 밟자고 했더니
느닷없이 들고 있던 볼펜으로 제 손을 찍어버리더라구요 ㅠ
다행히 볼펜 심이 나와있지는 않아서 손바닥 껍질이 벗겨지는 정도였는데, 많이 아팠습니다 ㅠ
두 번째는 퇴원시켰던 환자가 6개월 정도 후에 다시 입원했는데, 딱딱한 플라스틱에 집착을 하시더라고요.
이전 입원에서 많이 친해졌으니까 괜찮을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딱딱한 것은 던지면 다른 환자분들이 다치니까 사물함에 넣어두자고 가까이 가서 설득을 했는데...
주먹이 날아와서 배를 ㅠ
그래도 얼굴 안 맞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여튼 정신과 의사는 많이 맞고... 협박도 당하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환자분이 증상이 안 좋아서 때리는 것은 괜찮은데,
멀쩡한 보호자분이 성격이 안 좋아서 시비 걸면서 때리는 것은 정말 짜증 납니다.
응급실 주취자도... 응급실 의사들이 쌈닭이 되는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제 아래아래 연차는 덩치가 엄청나게 큰 남자애가 있는데,
그 아이는 안 맞더라구요... 역시 인간은 짐승입니다. 저는 약한 짐승 ㅠㅠ
5. 발표
정신과는 사실 개인정보 보호 등의 문제로, 선배가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운 과입니다.
수술과는 수술하는 것 보여주고, 하나씩 시켜보면 바로 옆에서 보면 되죠.
그런데 정신과는 면담에 같이 들어갈수도 없고...
그래서 발표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일단 환자에 관한 것만 해도...
입원 발표/퇴원 발표/응급실 환자 발표/문제 환자 발표/환자 증례 발표가 있고요.
그 외에 유명 논문 발표/논문 요약 발표/교과서 정리 발표 등등이 있습니다.
월~금 매일 아침 8시에 발표가 시작되죠.
그리고 환자 관련 발표는 1년차가 대부분 하게 됩니다. 나머지는 2~4년 차가 나눠서.
환자를 보는 방법 등에 대한 조언을 들어야 하니까요.
그러면... 3일에 한번 꼴로 발표가 생깁니다. 3일에 한 번 응급실 당직인데 발표까지 ㅠㅜ
제대로 안 하면 정말 엄청나게 혼납니다.
주먹으로 맞는 것도 아프지만, 혀로 맞아도 아파요.
이제 저도 혀로 때릴 수 있지만 ㅋㅋㅋ
특히 최고봉은 환자 증례 발표입니다.
이건 Case presentation이라고 해야 좀 더 웅장하네요.
여튼 이건 환자의 인생 전체를 정리하는 발표입니다.
이 발표를 처음 하면 이제 정신과 의사로 첫 발을 딛었다고 고기 먹으러 갑니다.
외과 쪽이 첫 수술하면 집도식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하튼 끝없는 발표 발표 발표, 당직 당직 당직하다 보면 어느새 1년이 갑니다.
이런 세월을 겪고 나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그렇기는 합니다.
여튼, 끔찍한 1년이었어요. 좋은 1년이기도 했구요.
우와, 쓰고 보니까 진짜 재미없네요. 글솜씨가 모자람을 느낍니다.
같은 내용도 재밌게 쓰는 분이 부럽네요.
혹 레지던트 1년차 생활에 대해 궁금한 것 있으면 댓글로 물어보셔도 됩니다 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첫댓글 잘봤습니다....선생님도 벌크업으로!!!!응(??!!)
운동은 너무 힘들어요 ㅠㅠ
크고 강한 사람이 있어야한다는거네요
병동에 마동석보다 큰 분있는데, 그 분이 있으면 병동이 평화롭습니다 ㅎㅎ
재밌게 봤습니다. 예전에 기자할때 대개협 회장하신 노만희 선생님을 잠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하고 이야기하면서 정신과의 고충을 여럿 들었지요. 그때 생각이 나네요 ㅎㅎ
오오 굉장한 경력... 대개협은 처음 줄임말보고 너무 웃겼습니다 ㅋㅋ
숱한 어려움을 겪으셨네요 리스펙트 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폭력을 겪어야하는 과정이라니...
환자분들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서... 나중에 엄청 사과하십니다 ㅎㅎ
아이고ㅠㅠㅠ 진짜 고생 많으세요...리스펙
감사합니다 ㅎㅎ
뭐든 다른 직종, 다른 세계의 속사정 이야기들은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죠. 이런 거 좋아요. ㅎㅎ
다른 과는 환자와 얽힌 이야기도 쉽게 하는데, 정신과는 그걸 풀면 안되서 더 재밌는 이야기는 올릴수가 없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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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보호로 도대체 어떻게 배우나 생각했었는데 엔드리스 발표를 하는 거였군요 ㄷㄷ
네 ㅋㅋ 지겹다고 느낄 쯤 4년이 끝났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