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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합도 스크랩 일본도 이야기
싸울이 추천 0 조회 850 09.06.06 11: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코시라에(こしらえ)와 시라사야(しらさや)

코시라에(こしらえ)

일본도가 다른 도검들과 구분되는 특징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도검 자체가 아닌 도검의 장식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에 있어서도 타 도검들과 그 특성을 달리 합니다.

일본도의 장식이라는 것은 다른 도검들과 마찬가지로 도신 이외의 부분으로 칼집, 손잡이, 코둥이 및 기타 금속 부품이 포함되는 것인데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후에 별도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일본도의 외장을 코시라에라고 하는데 본래 코시라에의 의미는 만듦새라는 의미로 도검에만 사용되는 말은 아닙니다.

따라서 코시라에는 도검을 장식하고 사용하기 편리하게끔 해 주는 각종 부품들을 의미하는 도장구(刀裝具)를 이용한 도검의 외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흔히 도신의 휨(소리)이 크고 수평으로 패용하는 일본도를 타치(太刀)라고 하며 휨이 적고 사선으로 수직 패용하면 카타나(大刀, 刀)라고 하는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코시라에가 타치용인가 카타나용인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일본도의 형태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표를 보면 타치와 카타나를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타치는 휨이 크고 칼 자제가 더 긴데 비하여 카타나는 휨이 적고 칼 자체도 짧은 편입니다.

또한 슴베 부분이 카타나의 경우는 거의 직선인데 비하여 타치는 슴베 부분도 곡선을 이루며 휘어져 있습니다.

일본도에서는 타치, 카타나 등의 큰 칼은 총칭하여 다이토(大刀)라고 하며 와키자시, 탄토 등은 작은 칼이라고 하여 쇼토(小刀)라고 하며 이는 외형적인 크기가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상기 도표를 보면 쉽게 각종 도검의 종류가 구분이 되지만 실제 이 도표의 해당 도검들은 모두 대표적이면서 전형적인 것을 예로 든 것입니다.

즉 크고 작음으로 분류하는 다이토, 쇼토 식의 분류는 비교적 쉬운 것이지만 타치와 카타나는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변화한 것이기 때문에 과도기적 양식을 가진 도검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타나처럼 생긴 타치도 있을 수 있고 타치와 비슷한 카타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도신만을 놓고 보기 보다는 완전한 외장을 갖춘 형태로 구분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데 그러한 일본도의 외장 - 코시라에 -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타치와 카타나의 코시라에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사진에서 상단의 도검이 타치이며 하단이 카타나가 됩니다.

세부 장식에 있어서도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두 형태의 코시라에를 보면 가장 큰 차이는 검집의 끈을 묶는 방식입니다.

타치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수평으로 패용하는 것이므로 보통 칼집에 두 개의 고리를 만들어 여기에 끈이나 사슬 등을 묶어 띠를 만든 후에 이를 허리띠에 수평으로 겁니다.

이렇게 해서 타치는 수평으로 패용하며 칼을 빼기 쉽도록 칼날이 아래를 향하는 하향형이 됩니다.

이와는 달리 카타나는 칼집에 보통 하나의 고리를 두고 여기에 사게오라는 검집끈을 묶게 되며 칼 자체는 허리띠에 수직 또는 비스듬히 꽂아서 휴대하게 되며 칼날의 방향은 위를 향하는 상향형이 됩니다.

이렇게 코시라에의 차이에 의해서 쓰임새나 용도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타치와 카타나는 일본도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크므로 코시라에 역시 타치와 카타나를 중심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 타치의 코시라에를 살펴 보겠습니다.

타치의 코시라에를 보면 그 외장 자체가 카타나에 비해 화려한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는 타치가 전장에서의 무구로써 뿐만이 아니라 의장용으로도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코시라에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원래의 각각의 명칭에는 코시라에라는 이름이 붙지만 이는 후에 생겨난 개념이므로 코시라에라는 명칭을 생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細太刀(ほそだち - Hosodachi) : 타치의 외장은 크게 실용적인 병장용과 장식적인 의장용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호소다치 형태는 간단한 의장용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화려한 장식 등은 되도록 생략하였으며 단순한 형태들이 많습니다.

衛府太刀(えふだち - Efudachi) : 에후다치는 헤이안 시대의 근위부 관리들이 패용하던 외장의 타치로 병장용과 의장용 형태가 모두 존재합니다.

에도시대에 들어 와서는 에후다치의 의장용 형태를 다이묘들이 의식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毛拔形太刀(けぬきがたたち- Kenukigatatachi) : 이 형태는 손잡이의 속이 비어 있어 훤히 보이는데 마치 그 모양이 족집게와 비슷하다고 붙여진 명칭입니다.(케누키는 족집게를 의미합니다)

케누키가타타치는 상고도시기의 직도에서 이후 고도기의 만도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적 형태인데 도신과 자루를 같은 쇠로 제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후에는 에후다치에 케누키 형태의 메누키를 사용한 제품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兵庫鎖太刀(ひょうごぐさりたち - Hyogogusaritachi) : 카마쿠라 시대 전기부터 유행한 형태로 주로 상류 무인층에서 선호한 병장용 외장입니다.

칼집 고리와 띠의 연결 부분에 쇠사슬을 사용하여 구사리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실용적인 외장 중에서 특히 견고함과 중후함이 강조된 형태입니다.

黑造太刀(くろづくりだち - Kurozukuridachi) : 자루와 칼집에 흑색 옻칠을 하여 견고성을 높히고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한 대표적인 병장용 도검의 형태입니다.

革包太刀(かわづつみだち - Kawazutsumidachi) : 자루와 칼집을 가죽으로 덮어 씌우고 다시 그 위에 옻칠을 한 것으로 습도에 내한 내구성을 높힌 것이 특징입니다.

칼집 위에 감는 가죽끈(타치에서는 이를 와타리마키(渡卷)라고 합니다)도 가죽끈으로 매듭을 만들어가며 감았습니다.

쯔바(코둥이)도 가죽을 압축하여 만들거나 쇠판에 가죽을 대어 제작한 것이 특징입니다.

絲卷太刀(いとまきたち - Itomakitachi) : 이토마키는 실로는 감는다는 의미인데 칼집의 상부(칼을 넣는 쪽)에 감는 끈(와타리마키)을 자루에 감는 실과 같은 색상의 실을 사용한 형태입니다.

카마쿠라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모모야마 시대 이후가 되면 주로 다이묘들의 의식용으로써 사용되었습니다.

금속장신구들(쯔바,셋파,카시라,메누키,후치 등)은 적동(금과 동의 합금으로 접착성, 안정성 등이 우수하여 고급 재질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칼집은 킨나시지누리(金梨子地塗 - 표면처리 방법 중에 하나로 칼집 등에 먼저 옻칠을 하고 그 위에 금분, 은분 등을 뿌린 후에 다시 투명한 색상의 옻을 입히는 기법입니다. 이 때 금분과 은분의 치밀한 조합이 마치 배 열매를 잘랐을 때 과육의 표면 부분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인 명칭으로 매우 호화로운 고급 장식 기법입니다. 이러한 표면처리를 나시지누리라고 하는데 특히 금분만을 사용하였을 경우에는 킨나시지누리라고 합니다)로 표면을 처리하였고 금구에 있는 문양과 칼집의 문양이 동일하게 들어 갑니다.

일본도의 장식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격조높은 고급 장식으로 상급 무사나 다이묘 등의 권위 등을 나타내는 의장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대략적인 타치의 여러 외장형들을 살펴 보았는데 실제로 위에 열거한 예들은 비교적 보편적인 경우이며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외장형들이 존재합니다.

타치는 이미 고도기의 후기에 들어 와서는 무기로써 사용되기 보다는 귄위, 권력, 신분의 상징으로서의 의장용으로 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다이묘나 막부의 고위 인사들에게 있어 타치는 의식용 용구로써 사용되어 졌으며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 막부라는 정치체제가 굳어지면서 정국이 안정되자 미적 추구가 반영되어 타치는 계속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현재에 이르러서도 작품으로써의 타치는 여전히 많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타치와 카타나 모두 전장에서 사용하였던 무기들이지만 카타나는 보다 보편적인 무기였던 것에 비하면 타치는 본질적으로 기병들의 일기토 접번을 위한 무기로 비교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장에 있어서도 타치 쪽이 훨씬 더 화려하고 장중한 것들이 많으며 부속으로 사용되는 금구(金具 : 금속제 부속품의 총칭) 및 기타 장식들도 훨씬 정교하고 복잡합니다.

그에 비하여 카타나는 보다 보편적이며 에도 막부 이후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검술 유파 등의 영향을 받아 해당 유파에 적합하게끔 제작되었고 호신용 수단으로써도 상당 기간 사용되었으므로 장식적인 요소가 타치에 비해 비교적 덜 한 편인데 이번에는 카타나의 여러 외장형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A. 天正ごしらえ(Tensho-Goshirae) : 전국시대에 들어와 카타나가 본격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달된 외장으로 자루를 가죽끈으로 감고 칼집에 검은 옻칠을 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장식성을 배제하고 간결함과 실용성을 중시한 형태로 현재 일본 외에서 생산되는 대량 생산식의 보급형 일본도들은 대개 텐쇼고시라에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B. 半太刀ごしらえ(Handachi-Goshirae) : 무로마치 시대 후기로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유행하였으며 일본도가 타치에서 카타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태입니다.

이러한 형태를 보면 타치 형태에 가까운 도검에도 외장은 카타나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 보다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한다치고시라에는 무사들의 정복에 패용하는 형태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에도 시대에 들어와 무사들의 정식 복장으로 대도와 소도를 함께 패용하는 것이 정착되었는데 성에 입구까지는 대소도를 모두 차고 성에 들어 가서는 소도만을 패용는 것이 보통입니다)

C. 打刀ごしらえ(Uchigatana-Goshirae) : 본래 카타나는 우치가타나의 준말이며 우치가타나 고시라에는 카타나의 외장을 총칭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카타나가 본격적으로 널리 사용된 것은 전국시대에 들어 와서였으며 의장용이 아닌 전장의 무구로써 사용빈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에 초기 카타나의 외장은 장식성을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실용적인 면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상기의 텐쇼고시라에처럼 가죽끈 또는 천으로 손잡이를 감고, 칼집도 흑색 옻칠인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었습니다.

그 후 에도 막부가 성립되면서 안정기에 들어서자 의장 또는 장식적인 요소가 발전하게 되어 칼집도 주칠(적색 옻을 입힌 것), 킨나시지누리 등의 고급스러운 외장들도 등장합니다.

또한 무사의 수련 등의 이유로 하여 검술이 성행하게 되어 각 유파의 특성에 따른 카타나들도 등장하게 되어 점차 그 외장들이 다양하게 발전합니다.

D. 腰刀(KoshiGatana) : 남북조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유행한 양식으로 다이토인 타치 등의 대도에 비해 보다 소형의 보조 도검을 小脇差(こわきざし - Kowakizashi)라고 하였는데 이를 코시가타나라고도 하였습니다.

일본도를 생각할 때 흔히 카타나와 와키자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오히려 타치보다도 큰칼과 작은 칼의 관계로 유추하여 카타나와 와키자시가 더 알려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와키자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무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큰 칼이 파손되거나 가벼운 차림일 때 호신용으로 사용되었던 보조 도검이 그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대에는 대도인 타치에 대하여 조금 작은 정도인 카타나를 보조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후에 에도 시대에 들어와 무사의 복장 규정에 의하여 대도와 소도가 나뉘어지고 카타나는 대도, 와키자시는 소도로 분류합니다.

와키자시는 대략 칼날의 길이가 30cm ~ 60cm 정도의 카타나 형태의 도검으로 탄토 등에는 쯔바가 없지만 와키자시에는 쯔바를 갖추는 것이 보통입니다.

다만 와키자시에는 카타나처럼 코가이(こうがい), 코즈카(小柄) 등의 금속 장식이 생략되므로 카타나의 쯔바처럼 중앙의 구멍 외에 좌우에는 구멍이 뚫려져 있지 않으며 쯔바 자체의 크기도 작은 편입니다.

이 코시카타나는 쯔바가 붙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후대의 와키자시와 구분이 됩니다.

E. 小さ刀こしらえ(Chiisagatana-Koshirae) : 치이사가타나는 두 종류의 도검을 가리키는데 먼저 첫 번째로는 카마쿠라 시대부터 비롯되는 와키자시보다는 크고 카타나보다는 작은 형태의 코시가타나의 일종이었으며 후에 와키자시로 변모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탄토(短刀)이면서 쯔바를 갖춘 형태의 칼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 설명하는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의미가 됩니다.

보통 탄토는 칼날의 길이가 30cm 전후인 작은 칼로 쯔바가 없는 아이구치(合口)형태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치이사카타나와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쉽게 이해하시려면 아래의 사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 모두 소도지만 상단의 치이사가타나는 카타나와 비슷한 외장을 갖추었고 하단의 아이구치 코시라에는 쯔바 등이 생략되어 보다 간략한 형태가 됩니다.

아이구치라는 말은 칼을 칼집에 넣을 때 칼집쪽의 금속구와 칼자루쪽의 금속테두리가 딱 맞는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흔히 비수 종류를 아이구치라고도 합니다.

아이구치는 칼집의 형태에 따른 분류인데 보다 정확하게 나누면 아이구치 형태와 노미구치 형태가 있습니다.

위 도표를 보면 우측의 아이구치 타입은 칼을 자루에 넣었을 때 후치카네와 구치카네와 딱 맞게 되는 것에 비해 노미구치 타입은 구치카네의 끝 부분이 후치카네에 삽입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突兵ごしらえ(Doppei-Goshirae) : 돗페이 고시라에는 에도 막부 말기에 이르러 서양식 군대 편제 및 훈련 방식을 도입하면서 생긴 도검 형태입니다.

이 형태는 일반적인 카타나처럼 허리띠에 꽂을 수도 있고 타치처럼 수평으로 착용할 수도 있는데 칼집과 칼자루의 끝이 뾰족한 것이 특징입니다.

2.大小ごしらえ(Daisho-Goshirae) : 다이쇼 고시라에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 등장하는 에도 시대의 표준 도검 형태로 무사들의 정규 패용 도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대소도를 함께 패용하는 것으로 대도는 카타나, 소도는 와키자시를 가리킵니다.

보통 칼집은 유광의 흑색 옻칠로 처리하였으며 칼자루는 백상어피를 씌운 후에 검은 천으로 감아 마무리하였습니다.

칼자루의 끝은 카타나의 경우에는 평평한 형태로 와키자시는 뾰족한 형태이며 쯔바 및 후치는 적동 재질이며 쯔바에는 특별한 문양을 넣지 않은 무문처리를 하였습니다.

카시라는 소뿔로 제작하였으며 미도코로모노(三所物)라고 하여 메누키(目貫), 코가이(こうがい), 코즈카(小柄) 등을 필수 악세사리로 하였는데 이러한 사항은 대체로 규정으로써 정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즉 무사들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도검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다이쇼 고시라에는 정규 복장시 착용하는 정규 도검으로 볼 수 있습니다.

3.尾張ごしらえ(Miwari-Goshirae) : 미와리는 도쿠카와 가문의 고향으로 전래되는 검술의 적합하게끔 만들어진 형태입니다.

전체적으로 작은 형태로 칼집은 두터운 편이며 칼자루와 카시라는 소형인 것이 특징입니다.

4.薩摩ごしらえ(Satsuma-Goshirae) : 사쓰마는 현재 일본 큐슈의 가고시마 현에 해당되는데 일본의 정치 중심인 교토나 도쿄 등으로부터 매우 떨어진 변방 지역을 간주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비교적 중앙 정부의 간섭이나 영향을 덜 받았고 현지인들도 다른 외부 세력에 대하여 폐쇄적인 고립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다만 일본이 아닌 해외의 다른 국가들과는 무역 등을 교류를 하였는데 일본의 다른 지역들은 시대 상황에 따라 영주가 자주 교체된 것에 비하여 사쓰마 지역은 시마즈 가문이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기까지 800여 년을 지속적으로 지배해 왔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른 지역과 다른 특성을 가진 사쓰마에는 고유한 문화와 전통이 자리잡았는데 그 중 하나가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를 연상케 하는 군사중심적인 엄격한 무사도와 확고한 신분 질서 등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사쓰마는 일찍부터 그 용명을 일본 전역에 널리 떨쳤으며 비록 도쿠카와 막부 체제를 받아 들이기는 했지만 도쿠카와 막부와 맞먹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죠슈와 손을 잡고 막부를 타도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사쓰마에는 오랜 무가적 전통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검술도 발전하게 됩니다.

사쓰마에는 크게 두가지 검술 유파가 있었는데 각각 지겐류(示現流), 노다치지겐류(野太刀自顯流)가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 검술 유파는 사쓰마에서만 알려졌는데 노다치지겐류는 지겐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원류는 같지만 노다치지겐류는 보다 실전적인 성향이 강하여 지겐류는 상층 무사들이 노다치지겐류는 하급 무사들이 주로 수련하였다고 합니다.

두 유파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 유파는 잔기술이 적은 대신 처음 한번의 크게 후려치는 동작이 특징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칼을 세워 들고 비스듬히 내려 꽂는 이 동작은 오랜 수련 끝에 이루어지는 숙달돠는 것으로 단순하면서도 매우 위력적인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쓰마 지겐류의 위력에 대해서는 사쓰마가 천황파에 서서 막부파와 싸운 보신(戊辰)전쟁에서 드러 납니다.

당시 사쓰마 무사들과 싸워 사망한 막부파 무사들의 시체를 보면 사쓰마 무사들의 공격에 대해 칼로 막았던 칼의 쯔바가 이마에 꽂혀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막부파의 무장 조직이었던 신선조의 조장이었던 콘도 이사미는 다음과 갈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쓰마 무사들과 싸울 때에는 무조건 첫 공격을 막지 말고 피하라"

이렇게 위력적인 검술이었던 지겐류 검법은 기술 자체는 의외로 단순하였는데 앞서 말한 후려치는 동작이 기본이 됩니다.

이러한 검술의 영향을 받아 사쓰마의 칼(사쓰마 고시라에)은 다른 지역의 칼과는 몇가지 구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단 사쓰마의 칼은 다른 카타나들에 상당히 장중하고 간결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힘을 실어 내려치는 기법이 크게 발달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위 도표에서 보듯이 다른 칼보다 훨씬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도신만이 긴 것이 아니라 칼자루도 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쓰마의 카타나는 칼날의 길이가 약 84cm ~ 90cm 정도로 매우 긴 편으로 현대의 수련용 카타나들의 칼날 길이가 72cm 전후인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위 사진은 일반적인 거합도와 사쓰마 카타나의 크기를 비교한 것으로 상단이 표준 사이즈의 거합용 일본도, 하단이 사쓰마 카타나입니다.

사쓰마 카타나는 대형이라는 점에 외에 휨이 매우 적고 세부적인 면에서도 다른 칼들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우선 대형의 도신에 비해 쯔바의 크기가 작은 편이며 대표적인 쯔바의 형태로는 사각형이 알려져 있으나 그 외의 원형 쯔바들도 존재합니다.

일본도는 칼자루도 도신처럼 조금 휘는 형태가 많은데 사쓰마 카타나는 칼자루의 휨이 없으며 칼자루의 쯔바족 테두리인 후치 부분이 보통 적동제인데 사쓰마 카타나의 그것은 철제로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칼자루에는 상어의 어피를 씌우는 것이 일반적이나 사쓰마 카타나에는 어피 대신 소가죽을 씌우고 그 위에 옻칠을 한 후 면끈을 감는데 면끈을 감을 때에도 일반적인 일본도처럼 교차하여 감는 것이 아니라 마무리를 위한 후치/카시라 쪽을 제외하면 한 방향으로 감아 나갔으며 장식적인 용구이지만 미끄럼을 방지하는 메누키도 생략하였습니다.(위 사진의 하단 참조)

또한 대개의 일본도 자루는 가운데가 오목한 편이나 사쓰마의 칼자루는 거의 직선형이라는 점에서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도에는 카에리즈노(反角)이라고 하여 칼집의 중단 쯤에 조그만 돌기가 있는데 이는 칼집에서 칼을 뺄 때 허리에 찬 칼집이 같이 딸려 나오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부분입니다.

위 사진의 상단 우측의 사진이 사쓰마 칼집의 카에리즈노인데 일반적으로 형태와 달리 凸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카에리즈노를 설치한 목적은 칼집이 허리띠에서 쉽게 딸려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사쓰마카타나의 카에리즈노는 거꾸로 보다 쉽게 칼집이 빠져 나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근접거리에서 칼을 뽑지 않고 칼집을 앞으로 뽑아 칼자루의 끝부분(카시라)으로 상대를 가격하는 기법에 사용하는데 원래 사쓰마의 칼이 다른 번들의 칼들보다 길다는 특성이 있어 이를 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쓰마 카타나는 그들만의 고립성과 고유의 검술(지겐류,노다치지겐류) 등에서 영향을 받아 다른 번의 일본도들과는 구분되는 특성들이 많은데 쯔바에 장착된 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쯔바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끈을 연결하여 칼집과 연결합니다.

그렇게 되면 쉽게 칼을 뽑을 수 없게 되는데 여기에는 사쓰마 무사들의 독특한 철학이 투영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겐류의 가르침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 칼이란 되도록 빼지 않는다.

*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칼을 빼야 한다면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한 번에 상대를 쓰러 뜨러야 한다. 두 번, 세 번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첫 번째 공격을 의심하지 말라, 두 번째 공격은 곧 패배이다.

* 칼은 적을 베는 것이며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지겐류의 영향으로 인해 사쓰마의 칼은 매우 실전적인 형태를 갖추었고(두텁고 긴 도신, 튼튼하고 긴 칼자루, 장식성의 배제) 엄격한 수양을 통한 절제미(쯔바와 칼집을 묶는 끈)를 엿볼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쓰마는 일본의 수많은 번 중에서도 아이즈 번과 더불어 군사적인 면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었고 대의명분보다는 실리에 입각한 독자적인 행동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었면서도 새로운 정부 체제에 반대하여 세이난(西南)전쟁을 일으켜 몰락하고 맙니다.(이 부분은 미국 영화인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薩摩のさやわり(Satsunma no saywari)

일본은 칼의 나라인 만큼 칼에 관한 속담이나 관용구도 많은데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薩摩のさやわり란 말은 직역하면 사쓰마식 칼집 부수기라는 의미가 되는데 사쓰마 무사들은 어지간한 일로 칼을 뽑지는 않지만(앞서 설명한 사쓰마식 쯔바와 칼집 연결끈 참조) 일단 칼을 뽑으면 칼집을 부수어 다시 칼을 허리에 꽂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죽을 각오로 싸운다는 뜻이 되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발전하여 일단 일을 시작하면 물러서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사쓰마 무사의 비장함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카타나의 여러 외장형을 살펴 보았는데 전국시대로부터 에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형식적으로는 막부에 의한 중앙 통치 체제를 취하였지만 실제로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이 지방관을 중앙 정부에서 파견하는 형식이 아닌 일종의 지방 자치 체제였습니다.

따라서 각 지방의 고유한 특색이나 검술 유파 등의 영향을 받아 일본도 역시 각기 지방이나 유파의 개성을 반영하여 발전하였습니다.

앞서 소개한 것은 그 일부로 이 외에도 더 많은 형태의 일본도 외장이 존재하는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위 사진은 히고(肥後) 코시라에라는 형태입니다.

히고는 현재의 구마모토(熊本) 지방으로 이 지방의 영주였던 호소카와 산사이(細川三齊)에 의해 비롯되었습니다.

호소카와 산사이는 일본의 유명한 승려이자 다도가였던 센리큐(千利休)을 가르침을 받았던 영주이자 다도가였고 검술 수련가이며 도검 수집가이기도 했습니다.

호소카와 자신이 창안한 히고 코시라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 발도술에 적합하도록 일반적인 크기의 일본도보다는 다소 작은 칼들이 많았습니다.

2. 손잡이 자체도 짧게 만들어져 한 손으로 사용하게끔 편리하게 되었는데 이는 발도(칼을 빼면서 상대를 베는 이아이도의 대표 기술)에 있어 양손보다는 한손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며 보다 멀리 칼을 뻗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3. 보통 카타나의 금속 부품들은 적동제를 많이 사용한데 비하여 히고 코시라에에는 히고 지방 특유의 철제 제품들이 사용되었습니다.

4. 카시라는 후치보다 작고 손잡이를 사슴 가죽으로 감았으며 칼집에 어피를 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같은 특성으로 인해 히고 코시라에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가진 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다도와 이아이 검술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시라사야(しらさや)

도신에 칼자루를 끼우고 여기에 하바키, 후치, 카시라, 셋파, 쯔바 등의 금속 부품을 부착하고 견고성을 높히기 위해 다시 칼자루에 어피 등을 씌우고 가죽끈 등을 감은 후에 옻칠한 칼집과 각종 패용 부품 등을 모두 갖춘 형태, 즉 이렇게 도검을 무구 또는 의식용 의장구로써 사용할 수 있게끔 완벽한 외장을 갖춘 것을 코시라에하며 위에서 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도에는 이와는 다른 형태의 외장이 존재하는데 이는 옻칠 등의 가공을 하지 않은 후백나무로 칼집과 자루를 만들고 칼자루에도 하바키와 목제 메쿠기로만 도신을 고정시킨 형태가 있습니다.

이를 시라사야라고 합니다.

코시라에가 도검을 사용할 수 있도록(전투용으로나 의장용으로나) 해 주는 역할을 한다면 시라사야는 도검을 보관하기 위한 역할을 합니다.

옻칠 등의 처리를 하지 않고 건조만 시킨 상태의 나무를 사용하여 칼집과 자루를 만들고 그 안에 도신을 수납하여 시라사야 상태로 보관하는 것은 장기간 도검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입니다.

보통 코시라에 형태의 도검들은 이미 칼자루, 칼집 등에 옻칠을 하고 금속구를 씌우고 그 위에 끈 등을 감아 고정시킨 것으로 주변의 습도나 온도 변화 등에 대하여 이를 흡수하고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코시라에 상태를 갖춘 후에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본도는 쉽게 녹슬기 마련인데 가공하지 않은 나무 칼집, 자루에 보관하는 시라사야 상태는 주변의 습기 등을 나무가 흡수하여 어느 정도 환경에 대한 조절 기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도검은 보다 오래, 보다 좋게 그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물론 시라사야 상태로 보관을 한다고 하더라도 너무 오랫동안 도검을 돌보지 않으면 도신에 녹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녹은 칼자루, 칼집의 안쪽 등에도 녹이 묻고 이물질로 오염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태에까지 이른다고 할 경우 코시라에 상태인 경우에는 분해하여 소제할 수 있기는 하지만 칼집이나 칼자루의 안쪽은 소제하기 어려워 폐기하고 새로 마련해야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라사야의 칼집이나 칼자루는 나무 두쪽을 아교로 붙인 것이므로 비교적 접착력이 약하므로 이음새 등에 칼이나 끌 등을 넣어 원래 상태로 분해할 수 있어 그 안쪽까지 소제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검을 장기간 사용하지 않거나 가치있는 골동품 도검일 경우에는 시라사야 상태로 보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위 사진처럼 도검을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시라사야 형태로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 때 원래 해당 도검의 코시라에에는 쯔나기(つなぎ - 대나무 또는 시라사야와 같은 재질의 나무로 도신을 만든 것, 현재는 대나무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를 도신 대용으로 넣어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현재에도 일본미술도검 전람회 등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시라사야 형태로 제작되며 코시라에는 판매 후 구입자가 원할 때 추가로 제작하는 옵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련용 또는 감상용 등으로 맞춤 제작을 할 경우에는 시라사야나 코시라에 모두 옵션이므로 두 가지를 다 주문할 수도 있고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시라사야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은데 에도 시대의 후기부터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사회 체제가 안정되면서 전쟁 자체는 줄어 들었지만 영주나 고급 무사들의 경우에는 대대로 물려 오는 소장 도검을 보관하기 위해서 시라사야를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있어 도검이란 비록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신분의 상징 그 자체이므로 도검 보관에 그만큼 신경을 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라사야가 일반화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로 폐도령(廢刀令 : 1867년에 제정된 일반인의 도검 패용 금지령으로 고위 경찰직, 군인 외에는 도검의 패용을 금지한 법률입니다)으로 인해 많은 무사들이 더 이상 칼을 패용할 수 없게 되자 보관을 위한 방편으로 시라사야의 제작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이와 동시에 앞서 설명한 쯔나기를 제작하여 원래의 도검에 끼워 넣었는데 이렇게 되자 시라사야와 구분하기 위하여 코시라에라는 용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즉 그 이전에는 특별히 코시라에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할 수 없었으며 주문시에 해당 도검의 속성과 장식 등을 정하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타나와 타치의 구분도 외장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물론 타치와 카타나는 고유의 속성으로 인해 도신의 형태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코시라에의 교체의 의하여 원래 타치였던 도검을 카타나로. 카타나였던 칼을 타치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에도 시대 후기 이전에는 도검을 별도 보관할 필요없이 원하는 사양의 제품을 주문 제작하여 사용하였으며 그 이후에 도검을 고이 모셔두고 보관할 필요가 있어 일종의 보관용 케이스인 시라사야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어 원래 사용 목적의 외장을 코시라에로 보관 목적의 외장을 시라사야로 구분하는데 이는 현재 일본도를 주문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A 시라사야 - 시라사야 형태로만 주문하는 경우에는 보통 소장용인 경우가 많습니다.

B 코시라에 - 수련용, 장식용으로 목적으로 구입하는 경우에는 보통 코시라에 형태가 됩니다.

C 시라사야 + 코시라에 - 두가지 목적을 모두 만족시기키 위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위 사진은 현대도로써 코시라에와 시라사야를 모두 가지고 있는 소위 풀옵션에 해당됩니다.

사진상 시라사야의 도신에 끼워져 있는 나무 도신이 바로 쯔나기입니다.

신신도 시기 이후가 되면 경우에는 이렇게 되면 5. たなごばら形(Tanagobara-Gata) : 대체로 4번의 후나조코 가타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타나고바라 가타는 보다 직선적인 동선을 가진 슴베의 형태로 무라마사와 그 일문의 도장들이 많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타나고는 납자루라는 물고기이며 타나고바라는 납자루의 복부와 모양이 비슷하다고 붙여진 명칭입니다.

 

시코미 카타나(仕?み刀),시코미 즈에(仕?み杖)

일본도의 코시라에와 관련된 것으로 시코미 카타 또는 시코미 즈에로 불리우는 것이 있습니다.

시코미 카타나는 칼을 장치했다는 의미로 쉽게 생각하면 지팡이칼을 가리킵니다.

시코미 즈에 역시 칼이 장치된 지팡이라는 의미로 역시 지팡키칼을 의미하는데 영화 "자토이치" 등을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어쨌든 시코미 카타나나 시코미 즈에는 모두 지팡이처럼 생긴 외관을 하고 있는 도검을 말합니다.

위는 영화 자토이치 한 장면으로 맹인 안마사가 사용하는 지팡이칼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시코미 즈에는 이미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호신용이 주목적이었습니다.

폐도령이 포고되면서 경찰, 군인 이외에는 더 이상을 도검을 휴대할 수 없게 되자(경찰,군인들이 칼을 찬다는 것도 의장용이 주목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고위 관료들이 호신의 목적으로 시코미 즈에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메이지 유신 초기, 아니 20세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의 고위 관료들은 대개 무사 계급 출신이었으므로 검도에 대한 소양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코미 즈에는 기존의 작은 카타나 또는 와키자시 등을 개조하여 지팡이처럼 만든 것입니다.

시코미 즈에는 그 형태의 특성상 휨(소리)이 매우 적거나 직도형이어야 하며 쯔바 등의 부속구도 생략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 형태나 장식은 매우 단순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위 사진들은 시코미 즈에인데 실제로 당시 호신용의 목적으로 제작된 시코미 즈에들은 일본도처럼 일종의 주문 제작품들이므로 그 크기나 형태, 장식 등이 매우 다양합니다.

이러한 시코미 즈에 중에서 외관이 시라사야와 유사한 형태도 있습니다.

영화 "킬빌"을 보면 오렌 이시이나 그의 부하인 쟈니 모는 시라사야 형태의 칼을 휴대하며 이를 무기로써 사용하는데 이는 시라사야라기보다는 시코미 즈에 또는 시코미 카타나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단 시라사야는 어디까지나 보관에 목적에 있는 일종의 케이스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장식 자체도 거의 없고 무엇보다 도신과 칼자루의 결합이 사용의 목적을 둔 외장 형태인 코시라에만큼 견고하지 않으므로 이를 실제로 사용할 경우에 충격에 취약하다는 결점으로 인해 쉽게 파손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시코미 즈에(또는 시코미 카타나)는 일본도 코시라에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며 보관용으로 제작된 시라사야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외관상으로는 시라사야와 유사한 형태의 시코미 즈에라 할지라도 그 구조에 있어서는 훨씬 튼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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