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도 그렇고 한옥마을도 그렇고 옛 한옥 건축물을 구경할때면 늘 드는 아쉬움이 있다.
중국은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처럼 돌도 깍아서 두고 인공 폭포도 두어 매우 화려하다.
일본은 바위, 모래, 이끼를 이용하여 바다를 형상화하고 갈퀴를 긁어 파도모양을 만드는데,
이를 '가레산스이' 정원 문화라고 한다. 역시 모래바닥에 정갈하게 그어진 선이 주는 특유의 멋이 있다.
그런데...
한옥 마당은 정원이라 부를 것도 없이 그냥 허허 벌판이다. 풀한포기 없이 진짜 모래뿐이 없다.
이 점이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무슨 모래가 달궈져 기압차를 만들어 뻥뚫린 구조인 대청마루에 바람이 통한다는 둥...
풍수지리적으로 입구 자 口 마당에 나무나 풀을 심으면 피곤할 곤 困자가 되어 좋지 않다는 둥...
선듯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단지 이것 뿐일까? 그렇게 얄팍한 이유로 비워두었을까?
그러던 와중 '판'이란 글자를 접하고 마당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었다.
판과 마당을 연결지어보자.
판은 글자 뒤에 붙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자리와 그 장면을 표현하는 순우리말이다.
아이들이 뛰놀면 놀자판, 그러다 싸우면 싸움판, 도박하면 노름판, 씨름하면 씨름판이 되는거다.
이 판은 곧 한옥의 마당이다. 마당에서 놀면 놀자판이 되는거고 마당에서 먹으면 먹자판, 마당에서 노래하면 판소리가 된다.
이제 마당은 텅비어 모래만이 굴러다니는 허허벌판이 아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만나 관계하는 작은 우주다.
우주는 가만히 있는 듯 하면서도 음과 양이 끝없이 움직이며 변화를 만든다.
오늘은 비가오고, 내일은 손님이 찾아오고, 어느날은 바람이 불다가도 다른 날은 햇빛이 만든 따스함으로 체워져있는 공간.
따라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굳이 상징적인 무엇인가가 있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따라서 집주인이 마당을 바라보는 상상력의 크기가 곧 마당에서 벌어지는 판의 크기인 것이다.
이 상상력, 하늘과 땅과 인간이 만나며 만들어지는 작은 차이에 민감하지 않는 이들에게 한옥의 마당은
그냥 비어있고 뭔가를 체워넣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나 역시 '판'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마당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상상력에 대한 빈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더 나아가서 어쩌면 한옥 내부가 텅 비어있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옥의 특징은 뭔가 수납장이나 책상 외에는 그렇다 할 가구가 없다는 점이다.
당장 우리 문화에는 침대가 없다. 침대 비슷한거로 평상이 있는데
이 평상조차 지금의 침대가 아니라 그냥 펴놓은 자리다.
"온돌때문에 두꺼운 이불 깔고 자서 그런거 아닌가요?"
물론 이유가 되겠다만 어쩌면 한옥의 방도 하나의 우주와 판으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불깔면 잠자리, 책상 두면 공부하는 곳, 음식 두면 식사자리가 되는거다.
그래서 중앙을 늘 비워두고 가구역시 모두 벽으로 밀어 붙여놓은 것이다.
방 중앙역시 마당처럼 무엇으로 용도를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가능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눈을감고 한옥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고 상상해보자. 마당과 담장 너머로 보이는 자연을 떠올려보자.
자연, 집, 인간이 끝없이 관계하며 일어날 무수한 만남과 사건들을 상상해보자.
상상력의 크기만큼 텅빈 마당과 방이 풍부하고 창의적으로 체워지지 않을까?
어쩌면 이게 동양 미학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