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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론 04
디모데후서 2:7-13
주와 함께 죽고 사는 것
우리 성경의 바울 서신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 혹은 “그리스도 안”, “주 안”이라는 표현이 약 124회 정도 나오는데 여기에 “성령 안” 또는 “믿음 안”이라는 표현까지 생각하면 약 130회 이상 언급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주제요 또한 성도의 정체성을 짧은 표현 안에 넣어서 구원이나 새 생명을 나타내려는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서신은 단순히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만 전해주는 복음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진리의 아들이 된 자로서 진리를 넘겨주고 넘겨받는 관계가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7절). “내가 말하는 것”이란 좁은 의미에서는 병사, 운동선수, 농부에 대한 비유를 가리키고 넓은 의미에서는 디모데후서 전체를 가리킨다. “생각해 보라”라는 말의 ‘노이에오’는 ‘마음을 사용하다, 마음에 두다, 심사숙고하다, 이해하다’라는 뜻으로 앞에서 비유로 말한 것을 복음으로 깊이 숙고하여 마음에 두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에 두거나 새기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겠다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이 완성되는 것이다(참고 마 13:18-2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총명”이라고 번역한 ‘쉬네시스’는 ‘쉬니에미’(함께 놓다, 모으다, 이해하다)에서 유래하였는데 ‘(문자적으로) 정신적 집합’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지식, 지능, 지혜, 이해력, 통찰력’이라는 뜻이다. 주님께서 모든 일에서 지혜를 넘겨주실 것인데 그것은 이제까지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말한 복음과 세 가지 비유를 복음으로 잘 묵상하여 마음에 두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비록 사도가 복음을 말하지만 주님께서 말씀을 알게 하시는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복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8절). “내가 전한 복음대로”란 의역이고 직역하면 ‘나의 복음과 같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개역 한글판에서는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라고 번역하였고, 가톨릭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라고 더 쉽게 이해하도록 번역하였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1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였는데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롬 1:2)으로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다. 그런데 우리가 자의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라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그래서 “아들의 복음”(롬 1:9)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 1:1, 롬 15:19, 고전 9:12, 고후 2:12, 9:13, 10:14, 갈 1:7, 빌 1:27, 살전 3:2)이다.
그런데 이 복음이 바울 사도에게 주어졌기에 ‘나의 복음’이라고 선언하였는데 자신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복음이 된 사도가 믿음 안에서 진리의 아들에게 복음을 넘겨주었다는 것은 같은 복음이 되었다는 차원에서 말씀한 것이고 곧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아들들이 된 자에게도 ‘나의 복음’이 되는 것이다.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27)
“다윗의 씨”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것은 말씀의 성취이다(삼하 7:12-13, 눅 1:31-33). “죽은 자 가운데서”라는 말은 ‘죽은 자들로부터’라는 말이고, “살아나신”이라는 말의 ‘에게이로’를 수동태 완료로 썼으므로 ‘일으켜졌다’라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졌다’라는 말씀이다. “기억하라”의 ‘므네모뉴오’는 히브리어 ‘자칼’의 역어로 하나님의 언약 용어이다. 명령법 현재형으로 기록하여 주께서 친히 계속 이루어 가신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을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기억하라.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다. 이것이 나의 복음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신 것이 나에게 복음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 나의 죽음과 부활이 함께 일어나는 일이기에 나의 복음이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3-5)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9절). “복음으로 말미암아”라고 번역하였는데 직역하면 ‘그것 안에서’라는 말인데 8절 말씀과 연결하면 ‘나의 복음 안에서’라는 말이다. 여기서 “죄인”이란 일반적인 의미에서 ‘범인, 행악자’라는 뜻이다(누가복음 23:32에서 십자가의 두 강도에 대한 표현이다).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으로 일반 범죄자와 같이 취급되었다. “고난을 받았으나”라는 말의 ‘카코파데오’는 ‘불행을 당하다, 재앙이나 고난을 견디다’라는 뜻인데 현재형으로 쓰고 있다.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세상적으로는 불행이요 재앙이지만 바울 사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복음 안의 고난이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5-6)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라는 말씀은 ‘그 하나님의 그 말씀은 묶여있지 않다’라는 말이다. 이 말씀은 바울이 감옥 안에서도 자유롭게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기보다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말씀 자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10절). “택함 받은 자들”이란 택하심을 받은 자 안에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 예수 그리스도(눅 9:35, 23:35)께 합류된 자를 ‘택하신 자들’이라고 한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2-34)
“참음”의 ‘휘포메노’는 ‘휘포’(~아래)와 ‘메노’(남다, 머물다)의 합성어로 ‘살아남다, 머물다, 견디다, 확고 부동하게 있다, 참다, 기다리다, 견고히 서다’라는 뜻으로 ‘하나님 아래 머물러 견고하게 서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바울이 참고 견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견고하게 세우셨다는 것이다. “받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의 ‘튕카노’는 ‘(표적에) 맞히다, 명중하다, 성공하다’라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모든 것에서 하나님 아래 머물러 견고하게 세우신 것은 택하신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의 영원한 영광과 구원에 적중하여 성공하게 만드시기 위함이라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바울 사도가 드러낸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집인 교회로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11-12a절).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말은 ‘믿음의 그 말씀이여’라는 말이다(딤전 1:15, 3:1, 4:9). 이후에 말씀하는 네 가지 표현이 믿음의 그 말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믿음의 그 말씀에 의하여 ① 우리가 주와 함께 죽은 상태가 되었다면 ② 주와 함께 살 것이고, ③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견고하게 세워지면 ④ 주님과 더불어 왕 노릇할 것이다.
“12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12b-13절). 문자적으로만 보면 우리의 행동이 조건인 것처럼 생각되나 그런 말씀이 아니다. “부인”이라는 말 ‘아르네오마이’는 ‘거절하다, 부인하다’라는 뜻인데 둘 다 중간디포태로 썼다. 즉 우리가 주님을 거부하게 되는 것도 주님에 의해서이고 주님이 우리를 거부하시는 것도 주님에 의해서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인정하거나 거절하는 문제가 하늘에서 주님께서 인정하고 거절하시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님을 거절하는 것과 같이 주님도 우리를 거절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참고 마 10:33, 눅 9:26).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우리는 믿음이 아니지만 그분은 믿음으로 머물러 계시기에 자신을 거부할 수 없는 분이시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믿음이 아니기에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게 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 안에 거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믿음이신 분이 자기 자신을 거절하거나 거부하실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분이 은혜로 베푸신 생명이 취소되거나 다시 거두어 가실 수 없다는 뜻이다.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3-24)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그 안에 머물러 있게 하시고 우리를 날마다 주와 함께 죽게 만들고 또한 생명으로 살려 견고하게 세우시며 왕 노릇하게 하시는 것이 구원이다. 우리는 믿음이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만 믿음이시기 때문이다(20250223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