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홍콩의 한 기관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국가를 대상으로 외국인의 생활환경을 조사한 결과 필리핀은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3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필리핀 이민국에 따르면 이 나라에 거주하는 한국인 교민 수가 무려 10만 명에 이른다는 점은 이런 생활환경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리핀의 국토면적은 한국의 약 3배인 30만㎡, 인구는 2배가 조금 넘는 9000만 명에 육박한다. 땅 크기는 작은 편이 아니지만 필리핀은 한국 못지않게 인구문제가 심각한 국가다. 국도 전체가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지다 보니 쓸 만한 땅이 별로 없고, 인구증가율이 연 2%가 넘어 인구과밀화가 악화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집을 짓거나 공장을 만들 땅이 별로 없다보니 필리핀은 자연스럽게 토지에 관해 외국인에게 폐쇄적인 국가가 됐다. 1987년 제정된 필리핀 헌법에 따르면 외국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고, 현지인 지분이 60%이상인 사업체만 토지를 취득할 수 있다. 임차는 외국 기업에도 허용되며 임대기간은 최대 50년에 추가로 25년간 연장할 수 있다.
외국인은 토지 소유할 수 없어일부 이주 컨설팅 업체에서는 외국인이라도 법인 이름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며 편법을 안내하기도 하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난센스임을 알 수 있다.
필리핀에서는 외국인이 법인을 100% 소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법인 지분 50% 이상을 소유하는 것조차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허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외국인은 편법을 동원해도 토지는 소유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반면 콘도미니엄은 외국인도 다른 동남아 국가들처럼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제약이 따른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해마다 외국인 투자 제한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그 리스트에 외국인이 40퍼센트까지 소유가 가능한 분야로 콘도가 명시되어 있다. 100가구가 건설된 콘도의 경우 40가구까지만 외국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인이 필리핀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다면 외국인도 살 수 있는 일부 콘도로 범위가 좁혀질 수밖에 없다.
투자의 중심은 역시 수도인 메트로 마닐라다. 7개의 시와 10개의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는 메트로 마닐라는 일몰 광경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닐라만 입구에 있다. 이곳에는 2004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요즘 수많은 콘도가 건설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카티 지역은 마닐라 최고의 상업지역으로 필리핀 굴지의 재벌기업은 물론,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가 밀집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고급 콘도미니엄과 주택단지들이 배치되어 있다. 한국인들 또한 이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마카티 지역에서는 한국 식품점이나 상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70㎡ 콘도 분양가가 1억5000만원당연히 가격은 필리핀에서 가장 비싸다. 최근 분양한 마카티 락웰센터의‘원 락웰’이라는 고급콘도는 방 2개짜리 70㎡(약 21평)의 분양가가 1억5000만 원, 127㎡(약 40평)짜리는 3억 원에 이른다. 지은 지 몇 년 지난 콘도들도 그리 싸지 않다. 이 지역의 40평대 콘도들은 2억원 정도는 줘야 구입할 수 있다. 월세도 비싸다. 가구가 포함된 방 2개짜리 콘도의 월 임대료는 150만 원을 호가한다.
파식 지역 역시 투자 유망지역이다.‘오르티가스’와 그 근처인 ‘발리발데’ 지역에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백화점들이 많이 있는 지역으로 마카티와 퀘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집값은 이 지역 역시 필리핀에서는 꽤 비싸다. 127㎡대(40평대) 콘도들의 가격이 2억 원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마카티 지역을 벗어나면 집값은 크게 내려간다.
퀘존 지역의 경우 타운하우스 형태의 264㎡(약 80평) 크기의 한 콘도미니엄은 약 1억8500만 원에 매물로 나와 있고, 현재 분양 중인 68㎡(약 20평) 규모의 레지던스는 약 1억3000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임대를 원한다면 방 3개짜리 콘도들은 대체로 월 50만∼70만 원 선이면 임대가 가능하다. 다만 이 지역은 마카티와 비교해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는 단점을 고려해야 한다.
짓다 만 콘도 많아 … 투자 요주의단독주택 위주인 파라탸케 지역도 집값은 싼 편이다. 135㎡(약 45평) 규모의 콘도는 1억 원 미만이면 구입할 수 있다. 다만 이 지역도 교통체증이 심하고, 물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한 곳이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임대료도 방 3개짜리 콘도는 5070만 원에 구할 수 있다.
이 밖에 그린힐과 산후안, 만달루용 등에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으나 투자처로 그리 권할 만한 곳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필리핀에서 부동산으로 시세차익이나 임대수익을 얻기 원한다면 1순위 투자처는 마카티 지역이다. 그 다음으로는 파식 지역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나머지 지역은 투자보다는 거주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망하지 않는 지름길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카티에서 집을 살 때도 꼼꼼히 살펴야 할 부분이 있다. 현재 공사 중인 콘도일 경우는 콘도를 분양한 사업자에 관해서 미리 세심한 조사를 해야 한다. 부실한 회사일 경우는 공사가 진척되지 않아 의외의 손해를 볼 우려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짓다 말고 버려진 콘도나 빌딩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정도다. 필리핀에는 한국처럼 주택공제조합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잘못 투자했다가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되면 원금도 건지기 힘들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심 미 자유기고가
◇부동산 구매 Tip ◇
물탱크 용량까지 확인해야
1. 물 사정을 확인하라.
필리핀에서 물은 없어서 고통스럽기도 하고, 너무 많아서 괴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우선 상하수도 사정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비가 안 올 때는 수돗물이 끊기는 일이 빈번하다. 반대로 비가 많이 올 때는 홍수피해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새로 지은 대형 건물이 아니라면 계약하기 전에 상수도 사정과 함께 물탱크의 용량까지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게 좋다.
2. 집 주변의 빈민가를 확인하라.
필리핀은 치안이 좋지 않고, ‘밤손님’의 방문이 생각보다 잦다. 특히 부촌으로 이름난 지역이라도 주변에 빈민가가 있는 쪽은 밤낮으로 문단속에 신경을 써야 할 정도다. 위험을 피하는 방법은 역시 돈을 들이는 것이다. 마을 입구부터 경비가 외부인을 차단하는 빌리지나 대형 콘도미니엄은 그나마 안전한 편이다.
3. 계약서를 재차 확인하라.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는 매매 가격과 관리비 등을 두 번 세 번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있지만, 집에 하자가 있거나 계약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을 때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 현지인들과 거래할 때에는 상대방이 짜증을 낼 정도로 단어 하나까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