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비(王妃)
이 월 순
나는 왕비가 되었다. 이쯤 되면 어리둥절하시지요? 별 이상한 여자 다 보겠네. 정신이 혹시 어떻게 잘못된 게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나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정신은 온전했다. 내가 입을 벌려 말만 하면 즉시즉시 다 들어주었다. 왕비, 공주보다도 더 신속히 내 말에 복종했다. 어느 왕비가,
“내 옷 입혀 줘, 바지 끈을 풀어, 바지 끈을 더 꼭 매, 물 줘, 음료수 아침햇살, 동충하초, 토마토 주스, 오렌지 주스, 밥상 치워, 밥이 너무 맛이 없어, 저 밥상이 반가운 밥상이 아니라, 태산 같은 걱정거리 밥상이야, 나 맛있는 칼국수 좀 시켜다 줘, 밥 먹기 싫어 환장하겠네.”
“나 화장실 갈래, 양말 신겨, 이불 덮어, 머리 감겨, 목욕할 거야, 가그린 주세요, 채호기 시집을 주세요, 손톱을 깎아주세요, 안경 줘, 성경 찬송가 줘, 불 켜, 불 꺼, TV KBS1켜!”
우리 가족들이 간병인으로 모두 다 빠짐없이 순서를 짜서 돌아가며 23일 동안의 병원 생활을 왕비 모시듯 했다. 개인 사정상 정 안 되는 날에는 호스피스 자격증을 가진 상당교회 송 권사님이 수고를 해 주셨다.
왕비가 된 이유는 고혈압약을 15년 동안 복용해 오던 중 1999년도에 약 1km즘 되는 교회에 새벽 기도를 갔다 오다 우측 뇌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마침 새벽 기도 교우들을 운행하시던 이웃 침례교회 목사님께 발견되어 즉시즉시 병원으로 옮겨 청주 성모병원 신경과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왼편은 완전마비가 되었고, 이제는 오른쪽 성한 손 하나로 컴퓨터를 치면서 간병인들의 봉사 생활을 적어 보려 한다. 그러나 너무너무 느리고 답답했다. 큰아들 - 청주백화점 건너편에 벨로체피아노 아리아 악기사를 경영 - 과 큰며느리 - 흥덕 초등학교 교사 - 는 그래서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장자라는 책임감은 대단했다. 아침이면 악기사에 출근하는 길에 꼭 들리고 저녁 열 시쯤이면 아이들 남매를 데리고 제 색시가 해 주는 보호자 밥을 들고 네 식구가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다. 그렇게 피곤하고 힘든 중에도 3일 밤을 병실 그 불편한 보호자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며 간병을 했다.
둘째 아들과 작은 며느리는 일을 모두다 뒤로 미루고 직장 휴가를 내고 아이들 남매는 오창 처가에다 맡기고 병원으로 찾아와 간병을 하고 있었다.
큰며느리는 밤에 찾아와 나를 휠체어에 태운 채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기고 손톱 발톱을 깨끗이 깎아주고 갔다. 작은며느리는 평일엔 남편은 서울에, 아이들은 친정에, 나 때문에 뿔뿔이 이산가족이 됐다. 그러나 티 없이 상냥하게 간병을 잘했다. 작은며느리는 나를 변기에 앉혀 놓고 머리도 감기고 목욕을 시켰다.
큰딸 미옥이는 욕조에다 따뜻한 물을 하나 가득 받아 놓고 혈액 순환 잘 되게 들어가서 하라는 것이었다. 팔다리가 힘이 없어 말을 듣지를 않으니 욕조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우리 두 모녀의 힘을 다 빼놓았다. 막내 철성이는 처음에 머리를 감기는데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통만 내 침대 옆에 바싹 갖다놓고, 소파 방석을 하나 떼다 쓰레기통 위에 놓고, 그 위에다 온수를 받은 플라스틱 대야를 올려놓으니 내가 누워 있는 머리가 마침맞게 닿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 잠깐만 머리를 들고 계셔요.”
하면 그동안에 다시 물을 떠 오고 해서 머리를 말끔히 감아 닦아 눕혀 놓고 이제는 로션을 발라 토닥토닥 두들겨 놓고는,
“엄마! 엄마 참 행복해 보인다. 나도 이렇게 행복한 때가 있었어요?”
“그럼 너는 더 행복했지. 젖을 먹이면서 한참 젖이 돌아 나올 때는 주사기에 물 나오는 것 같이 내 쏟거든. 이때 젖을 네 얼굴에다 대면 너는 간지러워서 얼굴을 찡긋찡긋 꿈틀거렸어! 그리고 네가 따뜻하게 싸 놓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오줌 기저귀로 얼굴을 닦아주면 피부가 얼마나 고운지, 우윳빛 같았어. 누구에게나 이런 행복한 유아 시절이 한 번씩은 다 있었을 거야.”
막내는 나에게 입 운동, 혀 운동을 시킨다며 철학가의 명언과 유명한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말들을 한 토막씩 읽어주며,
“엄마! 입을 크게 벌리고 발음이 정확하게 천천히 따라하세요. 엄마 재미있지?”
하는 것이었다.
막내가 사정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가 며칠 후에 왔기에 누나의 목욕 방법을 이야기했더니,
“나도 그럼 그렇게 해 봐야지.”
하면서 뜨거운 물을 욕조에다 하나 가뜩 받아놓고는 나를 데리고 가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손을 넣어 보니 너무 뜨거웠다. 그래서 찬물을 더 받았더니 철철 넘쳐흘렀다. 철성이가 부축을 해도 나는 젖 먹던 힘이 다 들어야 했다. 간신히 미끄러지듯 욕조에 덤벙 들어앉는 순간 물난리가 났다. 내 몸의 부피만큼 물이 한꺼번에 넘쳐서 병실 바닥까지 강을 이룬 것이었다. 막내는 밀대 걸레를 찾아다 물을 다시 화장실로 몰아넣느라 평소보다 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어느 주간 목요일이었다. 제 아버지만 없는 자리에 온 가족이 모였다. 모두 사정이 있어서 막내가 목요일날 간병을 하겠다고 하는데 갑자기 큰며느리가
“가만있어봐! 우리 이번 기회에 아버님께서 하루만이라도 어머님 옆에서 간병을 하시게 하자.”
모두가‘그러자’고 의견이 합쳐지고 막내 철성이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제가 있을라고 했는데 번역을 해야 되는 약속도 있고 서울에 가야 돼요. 아버지가 목요일은 오셔야 되겠어요.”
그래서 새벽 기도 설교를 부 목사에게 맡기고 하룻밤 간병을 하는데 이때까지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 밤은 모처럼 고마움을 느껴보는 밤이었다. 이것은 전적 우리 아이들의 효심에서 만들어진 일이지 남편의 자의가 전연 아니었다.
병마로 인해 왕비가 된 후 평소의 생활에서 전에 없던 감동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밤이던 낮이던 아무 때나 생각하고 말만 하면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주위에 모든 사람들. 내 위치는 정말 공주가 따로 없으며 왕비가 바로 나인 양 쉴 새 없이 요구하고 명령한다.
그러나 공주도 왕비도 다 싫어요! 하나님! 전에 내게 건강 주셔서 마음대로 팔 흔들고 걸어 다니며 가족을 위해 봉사하며 생활하던 그때가 너무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