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있게 먹어라
역사상 가장 풍성한 식탁을 누리는 현대인들의 필수적인 고민이 되어버린 다이어트. 문명 비평가 웬델 베리는 이 다이어트가 문명 전체 차원의 중대한 문제라고 말한다. <출처: Gettyimages>
오늘날 다이어트는 온 국민의 고민이 되다시피 했다. 거리에는 온갖 먹거리들의 유혹이 넘쳐난다. 정신줄 놓고 있으면 허리띠 한두 칸 늘어나는 것은 금방이다. 다이어트 관련 산업도 날로 번창하고 있다. 식이요법, 헬스클럽 등, 체중을 줄이고 몸매를 잡아준다는 광고도 곳곳에서 눈길을 잡아끈다.
늘어나는 체중이 인류의 고민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성한 식탁을 누리는 세대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해도 좋겠다. 하지만 농부이자 문명 비평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 1934~)의 생각은 다르다. 그에 따르면 다이어트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는 문명 전체가 건강해지느냐 불행해지느냐가 달린 중대한 문제다. 늘어지는 뱃살은 자연과 사회 전체에 죄를 짓는 일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책임 있게 먹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공장식 농장의 비극
웬델 베리는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이 한때는 살아 있는 생명이었음을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예전과 견주면 고기값은 아주 싸졌다. 이제는 가난한 이들도 고기반찬을 먹는 일이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고기값이 누구나 먹을 수 있을 만큼 싸졌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미국의 농부이자 문명 비평가인 웬델 베리. <출처: (cc) David Marshall at ko.wikipedia.org>
요즈음 닭, 소, 돼지 등, 식용 가축은 공장식 농장(factory farm)에서 ‘대량생산’된다. 이곳에서는 동물들을 한곳에 모아 가두고 ‘과학적’으로 관리한다. 그러면서 동물들의 체중을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늘린다. 이러는 가운데 말 못한 짐승들은 어떤 대접을 받을까?
“식품 산업의 입장에서는 …… 소비자가 자신이 먹는 햄버거가 생의 대부분을 제 배설물이 질퍽한 사육장에 갇혀 있던 비육우(肥肉牛)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서 좋을 리 없다. 접시에 담긴 송아지 고기 커틀릿이 몸을 돌릴 공간이 없는 사육 칸에서만 살던 송아지의 살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좋을 게 없다.”- 웬델 베리 지음, 이한중 옮김, [온 삶을 먹다],
낮은산, 2011, p.302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며 자란 가축의 고기는 값이 쌀 리 없다. 대량생산이 어려운 탓이다. 내 앞에 놓인 음식들이 한때는 살아 있는 생명이었을 것을 떠올려보라. 가격을 따지기에 앞서,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서 자란 동물의 고기일까?”를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경제적인 잣대로만 모든 것을 가늠하는 순간, 다른 생명들의 고통을 무시하기 쉽다. 웬델 베리는 ‘사소한 일을 제때 실천하는 일의 중요함’을 여러 번 강조한다. 우리가 마트에서 ‘싼 것, 보다 양이 많은 것’을 카트에 더 많이 담을수록 동물들의 고통도 커진다.
먹거리도 한때는 생명이었다
식용 가축들이 공장식 농장에서 대량생산됨으로써 우리의 식탁에 싼 가격으로 고기반찬이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식탁에 오른 채소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건강할 수 있을까? <출처: Gettyimages>
어떤 이들은 웬델 베리의 충고를 가볍게 무시할지 모르겠다. 나 살기도 힘든데 어째서 동물의 건강 따위까지 신경 써야 한단 말인가 하며 말이다. 그러나 먹거리가 된 생명과 나 사이의 관계를 소홀히 할 때 내 몸의 건강도 무너진다.
싸고 기름진 음식은 내 허리에 지방을 그득하게 쌓아놓을 테다. 늘어나는 뱃살은 다이어트와 운동 등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게 만든다. 이렇듯 자연과 생명을 배려하지 않는 식습관은 내 삶의 질을 확실하게 떨어뜨린다.
채소와 과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자연에서는 너른 땅에 한 식물만 자라는 경우가 없다. 오렌지나 양배추 밭이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진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나 수입되는 농산물들은 이렇게 길러진 것들이 많다. 이런 상태에서 작물들을 과연 ‘자연적으로’ 기를 수 있을까?
똑같은 식물만 모여 있을 때는 질병이나 해충이 퍼지기도 쉽다. 그래서 엄청난 농약을 뿌려야 한다. 또한, 이렇게 엄청나게 생산된 작물은 농장 인근에서만 소비되지 않는다. 대도시까지 옮기고 운반하는 데도 적잖은 화학적인 처리가 필요할 테다. 이렇게 해서 식탁에 오른 채소와 과일을 먹는 사람이 과연 건강하기 쉬울까?
식탁에 오를 생명들을 대접하라
웬델 베리는 “몸 가진 생명체 사이의 인과관계”를 깨인 눈으로 바라보라고 호소한다. 이제는 농업도 ‘산업’이 되었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농기계를 사용해서 농축산품을 쏟아내는 시대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대에 포장되어 쌓여 있는 음식만을 보곤 한다. 때문에 사람들이 그들의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들이 한때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망가진 내 몸매만큼 땅 또한 농약과 화학비료로 황량해지고 있다. 숱한 가축들 또한 ‘집단강제수용소를 닮은 지옥’인 공장식 농장에서 고통받는다. 이 모두는 “내가 소비자로서 선택한 일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음식을 고르고 먹어야 할까? 불어나는 체중과 나빠지는 건강이 걱정이라면 식탁에 오를 ‘생명’들을 제대로 대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