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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부 히말라야로 출발...
Date : 2002-7-20
06시 20분 기상.
오늘 09시경 드디어 출발한다. 임대장 한테서 500루피짜리로해서 18,000루피를 받았다. 이렇게 돈을 분산해 두는것이 좋다고 한다. 어제밤에 순천향 대학팀이 원정을 마치고 여기 IMF에 보고차 들렀나보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빨아서 널어놓은 나의 옷가지가 실내로 들어와 있다. 원정이 끝나고 여행차 네팔로 떠난다는 순천향 팀을 보니 무척 부러운 마음이 앞선다.
09시 15분쯤 대절버스로 출발.
델리 시내를 벗어나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달리는데 에어컨은 없지만 창문 바람이 시원하다.
다음달 30일쯤 등반이 끝나니 거의 40일간의 바깥생활이 시작된다. 네팔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긴 그래도 건설의 현장이 많다는거...그런데 가도가도 사람들 투성이다. 거기에 어지러운 가게, 집들...
17시 못미쳐서 어느 고을의 호텔에 도착. 도미토리인줄 알았는데 3명씩 에어컨 나오는 방에 들어갔다. 우리 버스마저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거의 시간차 운행이다. 중앙선을 넘어서 추월은 예사고 정면에서 차가 서지 않으면 박치기 상황인데도 용케 서로를 피해서 달려간다.
이러다 베이스캠프까지 몸성히 갈수나 있을려나?...
여기는 Utarkesh주 Rishikesh라는 타운이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는데 양이 너무 적어서 자꾸 시켜먹게 되었다.
어머니도 보고싶고 조카들 오영이와 오태도 보고싶다. 시골도 가봐야 하니 나는 한국가서도 참 바쁘게 생겼다.
Date : 2002-7-21
05시 30분 기상.
만재가 깨웠다. 날이 흐리다. 06시 30분 식사. 07시 출발. 조시마트란 동네까지 10시간을 달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 거리가 200킬로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험한 길인가 상상이 간다.
간밤에는 잠을 잘 잤다. 혹시나 가족들 꿈을 꾸는게 아닌가 했는데 전혀 꿈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린 에어컨 속에서 잠을 잤지만 버스기사와 조수, 그리고 셀퍼는 이 더위에 차안에서 잠을 잤듯하다. 뒤바뀐 인생들...인디아의 비극이라고 할까?...
08시 45분.
아직도 산속이다. 깎아지른 절벽. 1,150까지 올라갔다가 10시 58분 밥먹기 위해 작은 마을에서 쉰다. 고도는 740으로 떨어져 있다. 작다고는 하나 어디나 사람은 들끓는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밥먹고 버스로 돌아오는데 거지들이 구걸을 한다. 손선생이 잔돈을 주는게 보인다.
지금 돌사태가 나서 대기중인데 표지판에 이렇게 나와있다.
Joshimath 34km
Govindghat 54km
Badrinath 78km
Mana 82km
머리가 어지럽다. 웬종일 덜컹거렸기 때문이리라. 계속 절벽길이 계속되고 고도는 지금 1,460이다. 날씨는 이제 많이 선선해졌다. 도로주변에 동네가 나타나면 거의가 가게이다. 먹는가게, 마시는 가게...아마 인구가 많다보니 한평짜리 가게같은 작은 곳도 장사가 되는가 보다.
16시 25분 현재 오도가도 못하고 꽉 막혀있다. 아마도 길이 막혔나보다. 돌사태라도 났었나?... 차에 탔던 사람들이 나와서도 기다리고 차안에도 있고 시끌시끌...
18시경 드디어 오늘의 목표 조시마트 도착. 고도 1,970에 800밀리바 시원한 날씨.
07시경 버스에 몸을 실었으니 거의 11시간만에 도착이다. 시카르 여행사 지점도 있고 여기서 포터도 수배하고 그런다. 긴옷을 하나 꺼내 입었다.
20시 9분 저녁식사 끝.
포카리알 연락관이 늦게 들어와서 따로 밥을 먹는다. 여기서도 허가를 받아야 캐러반이 가능하다.
오랫만에 한국음식(우리가 이제 직접 만들어 먹는다)으로 배를 채웠더니 포만감이 엄습한다. 잘려고 했는데 병남이하고 만재가 내기장기 둔다고 부산하다. 빨리 끝내라...병남이가 이기면 나도 1달러 먹는다.
Date : 2002-7-22
06시 기상.
어제 0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어 그런지 몸이 무겁다. 바같엔 개스가 가득. 비는 그쳤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Neelkanth호텔이다. 오늘 하루 쉬면서 경수하고 여선생님 2분과 함께 고소적응차 3천정도까지 올라갔다 오기로 했다. 만재하고 손선생, 연락관은 입산허가 받기위해 경찰서로 군부대로 국립공원관리소로 갔다오기로 했다.
지금 고도는 2,285 스키리프트가 있는 로프웨이 전망대에서 쉬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좀 춥긴하지만 고소내의를 입고 반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따뜻하다.
12시 23분 3,010에서 점심으로 고소식 비빔밥 먹고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직 별 고소증은 오지 않는다. 개스가 왔다갔다, 햇빛이 왔다갔다 한다. 바람도 조금 있는 상태.
내려 오다가 스키장 리프트 있는곳에 전화시설이 있길래 시도를 했더니 뉴질랜드만 되었다. 집사람 왈, 가게 계약건 때문에 빨리 오라고 난리다. 이미 산쪽으로 들어왔는데 이거 난감하다 그러다가 팀에 빨리 한국으로 철수하는 여선생님이 있어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합의를 했다.
내려오니 또 날씨가 더워진다. 호텔왔더니 내일 포터들에게 배당할 카고 25kg을 맞추느라 부산하다. 우리는 1,000kg 즉 40명분을 계약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셀퍼들의 자체 부엌 장비로 인해 한 6명정도 포터가 더 필요하게 생겼다.
나는 여기 시카르 여행사에 내 비행기표 갖다주고 조정하느라 바쁘고...근디 날짜가 조정되면 뭐 페널티차지를 물어야 한다나? 아마도 제일 싼걸로 끊은 영향이겠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까 아람이의 목소리가 아주 밝았는데 이빨 교정한다고 이빨 2개를 뺐다고 하더니만 그것 때문에 그러나 싶으다.
Date : 2002-7-23
05시 55분 기상.
경찰선지 어딘지 마지막 체킹을 끝내고 08시45분에 대절버스로 출발. 45명의 포터와 그 포터를 써포트하는 8명의 다른 포터, 도합 53명이 다른 버스나 버스나 짐차를 타고 출발.
오늘은 계곡으로 뚝 떨어졌다가 다시 고개를 하나 넘어서 캐러반이 시작하는 동네까지 간다. 이곳저곳 동네를 지날 때 마다 허가증 검사도하고 도로사정땜에 대기도 하고 그런다. 그럴때마다 장사꾼들이 버스의 창문으로 다가와 호객행위가 대단하다.
어느 동네에서는 트레커들이 줄을 지어 산을 오르기도 하고 그중에는 나귀인지 말인지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것이 이제 네팔하고 비슷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깎아지른 벼랑, 그 갈라진 틈사이로 구름과 하늘이 숨바꼭질을 한다.
11시에 중간 기착지 Badrinath에 도착. 3,095미터. 검문소가 있고 차들이 많다. 썩은 빙하도 있고 바람도 이제 차다. 화장실이 없어 차 세워두고 길거리에서 해결.
12시 30분 3,155미터의 Mana도착. 여기가 캐러번 시작점이다. 여기서 포터들에게 짐을 나누어주고 회색빛 빙하물이 흐르는 흔들다리를 건너 차우캄바 베이스로 출발한다.
13시 51분. 포터들의 중간쯤 자리를 잡아서 이동하는데 갑자기 포터들이 모두 짐을 두고 다시 다리건너 가길래 왜저러나 했더니 점심먹으로 간단다. Slowly, slowly라고 외치는 포터가 있어 Faster, faster로 응답해줬더니 씨익 웃는다. 바보들...먹고 출발했으면 좋았을텐데.
우리도 미숫가루로 점심 해결.
햇빝이 나서 이젠 얼굴이 따갑다. 빙하녹은 흙탕물이 콸콸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한참이나 쉬었다.
15시 37분. 점심먹고 조금 이동했는데 또 쉰다. 오늘은 멀리 눈앞에 보이는 폭포까지 가서 야영을 한단다. 바람은 시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차갑기도 하다.
19시 4분 목적지 도착.
쿡인 바상셀파는 능숙하게 식당텐트 건설하고 포터들 짜파티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우왕좌왕 카고백에 정신이 팔려있다. 내가 보기엔 텐트만들기 보다는 밥하는게 더욱 중요할듯한데 다들 오늘 잠자리 만드는라 부산하다.
손선생은 어지럽다고 그러더니 밥도 안먹고 엎어져 잤다. 이현숙 선생님도 먹은거 전부 토하고 정신이 없는가보다. 저녁으로는 비빔밥 고소식을 데워 먹었다. 맨날 이거저거 닥치는대로 먹다보니 주변 오만데가 먹는것으로 덮여있는 느낌.
지금 고도는 3,540미터. 여기 오는데 힘이 들어 죽을뻔 했다. 아침도 비리비리하게 먹은 데다가 점심도 늦게 선식인지 뭔지 미숫가루 하나 먹었더니 평지는 몰라도 오르막을 올라올 때는 힘이 무지 들었다.
쉬는 시간 빼고 약 4시간 정도 걸어 들어온거 같다. 그리고 포터들중 6명이 내려갔다. 뭐 힘도들고 급료도 적어서 그렇다는데 누구말이 정말인지 모르겠다. 이 사람들은 식사로 짜파티 2장정도 먹고 견딘다고 한다.
오는 도중 비상식을 안챙겨 놓은게 그렇게 후회가 되었다. 나의 핸드백을 뒤지니 비타민 파우더 3개가 있어 그거 하나씩 먹고 이정미 선생님이 주는 포도당 알약 2개먹고 그랬다.
포터가 김치통을 들고 오길래 그거 열어서 김치도 꺼내먹고 그랬다. 내일은 비상식을 챙겨서 모든 대원들한테 나누어 줄 예정이다. 가장 나이 어린 경수는 잘하긴 하는데 경험이 부족한듯...먼저 올라왔다가 이현숙 선생님 배낭을 받으로 갔다. 그래도 제일 부리나케 다니고 있다. 이빨은 닦았는데 발을 못 씻어서 찝찝하다.
Date : 2002-7-24
05시 기상.
어제밤엔 02시부터 머리가 아파 잠이 오지 않았다. 04시쯤 텐트 밖에 나갔더니 개스가 꽉 끼어있었고 05시부터 20분정도 비가 왔다.
내가 식량담당이 되어서 바상셀퍼의 부억텐트에서 같이 밥을 하고 계란, 된장국으로 식단을 구성하여 제공 하였다. 압력밥솥에 물을 많이 부었더니 그 풀풀 날아다니던 long grain도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06시 56분. 지금 부산하게 텐트철수하고 움직이고 그러고 있다. 비가 온 관계로 땅이 젖어 있어 나의 신발도 푹 젖어 버렸다. 고어텍스 신발이 집에 있었는데 아낀다고 안가지고 왔다가 지금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
08시 30분에 출발한다고 그랬는데 출발을 하고보니 08시다. 바람이 좀 불고 간간이 햇빛이 비치는 날씨. 30분쯤 가서 휴식중이다.
포터들 중에는 키가 160도 안되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슬리퍼신고 온 사람들도 있고. 한뼘이 조금 넘는 밀가루 짜파티 2장을 먹고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음부터는 원정을 오지 않는게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09시 17분. 유명한 Satophanth 글래셔에서 이제 왼쪽 게곡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가는 쪽은 깎아지른 벼랑과 너덜길의 연속이다. 지금현재 고도 3,705미터에 643mb, 섭씨 22도를 가르키고 있다.
10시 55분에 폭포 무지 많은데까지 왔다. 도합 10개는 되어 보이는...한국에 있었으면 하나같이 대단한 볼거리가 되음직한 곳이다. 고도 3,940미터. 이제 썩은 빙하 사이를 자나간다. 좀전에는 모레인 지대의 날등을 타고 왔다. 2년전 네팔에서 임자체 베이스로 들어갈 때 생각이 난다. 무지 춥고 힘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선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고 후미는 한참 뒤쳐져 있다. 난 중간이다. 13시 31분. 어지럽고 힘도없고 물도 없고해서 한참 쉬었다. 그냥 엎어져 잤다. 자고 났더니 선두가 도착한 야영지에서는 그 윗쪽에 있는 폭포로 머리 감으로 간다는 무전이 왔다.
고도 4,085 이제 맥박이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움직임도 점점 힘들어졌다. 맥박을 재어보니 104개까지 올라가 있다. 아마 밤중엔 더 오르리라.
14시 40분에 캠프장 도착.
무식하게 걷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거의 탈진 상태에다가 오늘 식수공급을 적게 받아서 선식인지 미숫가룬지도 못먹고 쉬었다가 걸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래도 우리 원정대 중에선 3착을 했다.
좀 쉴려고 하는데 쉬지도 못하게 만재가 계속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럴 때는 차 한잔 돌리고 푹 쉬게 하는게 정석인데 어떻게 저렇게 팀을 운영을 하는지 답답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밥을 했다. 우리 버너는 항상 문제가 있어 셀퍼들의 버너를 이용해서 카레밥을 해먹었다. 밥먹고 반찬통 다 내어놓고 깨끗하게 씼었다. 고추장 새는것도 딴데 옮기고...
관자놀이 쪽이 많이 아프다. 손선생은 또 일찍 잔다. 조금씩 차우캄바 산군이 보이는데 눈은 별로 없고 시커먼 벽이다. 하나님 살아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소서...
여자분들 3명은 나이가 있어 그런지 무척 힘든 산행을 하고 있다. 지금 시각 18시 7분이니 뉴질랜드는 24시 37분이다. 모두들 꿈나라로 갔을 시간. 또 하루가 간다. 내일은 더욱 힘든 하루가 될거 같다.
Date : 2002-7-24
05시 기상.
오늘 02시부터 머리가 아파 잠이 오지 않았다. 04시쯤 텐트 밖에 나갔더니 개스가 꽉 끼어있었고 05시부터 20분정도 비가 왔다.
내가 식량담당이 되어서 바상셀퍼의 부억텐트에서 밥을 하고 계란, 된장국으로 먹어 치웠다. 압력밥솥에 물을 많이 부었더니 그 풀풀 나는 알랑미가 그런대로 먹을만 해다.
06시 56분. 지금 부산하게 텐트철수하고 움직이고 그러고 있다. 비가 온 관계로 땅이 젖어잇어 나는 신발을 다 젖었다. 고어텍스 신발이 집에 있었는데 아낀다고 안가지고 왔다가 지금 굉장히 후회한다.
08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했다가 출발을 하는데 보니 08시다. 바람이 좀 불고 간간이 햇빛이 비치는 날씨. 30분쯤 가서 휴식중이다.
키가 160도 안되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슬리퍼신고 온 사람들도 있고. 한뼘이 조금 넘는 밀가루 짜파티 2장을 먹고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음부터는 원정을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든다.
09시 17분. 유명한 Satophanth 글레셔에서 이제 왼쪽 게곡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가는 쪽은 깎아지른 벼랑과 너덜길의 연속이다. 지금현재 3,705미터에 643mb 22도씨를 가르키고 있다.
10시 55분에 폭포 무지 많은데까지 왔다. 한 10개는 되려나?...한국에 있으면 하나같이 대단한 볼거리가 되음직한 곳이다. 3,940미터. 이제 썪은 빙하 사이를 자나간다. 그전에는 날등을 타고 왔다. 2년전 네팔에서 임자체 베이스로 들어갈 때 생각이 난다. 무지 춥고 힘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선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고 후미는 한참 뒤쳐져 있다. 난 중간이다. 13시 31분. 어지럽고 힘도없고 물도 없고해서 한참 쉬었다. 그냥 엎어져 잤다. 자고 났더니 선두가 도착한 야영지에서 윗편에 있는 폭포로 머리 감으로 간다는 무전이 왔다.
고도 4,085 이제 맥박이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움직임도 점점 힘들어졌다. 맥박을 재어보니 104개까지 올라가 있다. 아마 밤중엔 더 오르리라.
14시 40분에 캠프장 도착.
무식하게 걷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거의 탈진 상태에다가 오늘 식수공급을 적게 받아서 선식인지 미숫가룬지도 못먹고 쉬었다가 걸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래도 우리 원정대 중에선 3착을 했다.
좀 쉴려고 하는데 쉬지도 못하게 만재가 계속해서 방방 뛴다. 이러래는 차 한잔 돌리고 푹 쉬게 하는게 정석인데 어떻게 저렇게 운영을 하는지 답답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밥을 햇다. 우리 버너는 항상 문제여서 셀퍼의 버너를 이용해서 카레밥을 해먹었다. 밥먹고 반찬통 다 내어놓고 더러운거 씼었다. 고추장 새는것도 딴데 옮기고...
관자놀이 족이 많이 아프다. 손선생은 또 일찍 잔다. 조금씩 차우캄바 산군이 보이는데 눈은 별로 없고 시커먼 벽이다. 하나님 살아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소서...
여자분들 3명은 나이가 있어 그런지 무척 힘든 산행을 하고 있다. 지금 시각 18시 7분이니 뉴지랜드는 24시 37분이다. 모두 꿈나라로 갔을 시간. 또 하루가 간다. 내일은 더욱 힘든 하루가 될거 같다.
Date : 2002-7-25
06시 12분 기상.
모두가 엎어져 있다. 일찍 일어나서 김치찌개 만들었다. 오바이트 하는 사람도 보인다.
08시쯤 출발예정.
10시 12분 현재 계속 너덜지대를 지나가고 있다. 고도 4,255미터. 아까 쉬면서 배가 고파서 점심으로 싸온 토스터를 꺼내 먹었다. 정말로 맛이 없다. 시커멓게 타고.
이제 내 한몸 추스리기도 힘이 들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빨리 내려가는 날이 왔으면 하는 마음뿐...
11시경 BC예정지 도착. 싸토판스라고 불리는 호수옆인데 좀 더 BC를 올릴려고 임만재 대장은 정찰을 나간 상태. 이곳이 BC예정지로 적당하긴 하지만 4,250밖에 안되어서 내가 보기엔 좀 더 위로 올라가는게 좋아 보인다.
간밤엔 뉴질랜드에서 아팠을 때와 유사한 그런 꿈을 계속 꾸었다. 1(하나, One)이 계속되는...0시쯤 타이레놀 하나 먹고 잠을 잔거 같다. 새벽엔 늘상 그랬듯이.
18시 1분. BC부엌 텐트안.
점심겸 저녁으로 김치찌개에 런천미트 하나 넣었더니 맛이 좋다. 내일 아침은 뭘먹나 그런다.
옷 갈아 입었다. 18시에 6시간을 더하면 24시30분 모두들 자고있을 시간이다. 식량텐트를 따로 하나 설치했는데 먹을걸 여우같은 종류가 건드린다고 해서 스키폴대 하나 준비해서 식량텐트에서 내가 자기로 했다. 나혼자 여기서 잘 수 있을까?...
20시다.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를 하나 쳤다. 오늘 너덜길은 무지 힘들었다. 오르락 내리락 모레인 지대의 계곡이 많아서 더욱 그랬다. 여기 BC가 4,250밖에 안되니 천상 ABC로 짐을 끌어 올려야 한다. 그래서 고소포터가 27, 28, 29, 30, 31, 1일까지는 사용이 되는데 하루에 500루피씩 지급하기로 했다.
그것도 하루에 한번만 짐 올리면 되는 일이다.
바람소리가 싸늘하다. 과연 오늘 여우와의 싸움이 벌어질런지 말런지 기대가 되는 가운데 대원들 중 경수하고 병남이는 상태가 안좋다. 손선생은 아깐 안먹더니 좀전에 일어나 남은 밥을 먹는거 같았다.
밖이 시끌시끌해서 나갔더니 이정미 선생님 임무인 물을 끓이지 않았다고 만재가 난리다. 그동안 눈밖에 났던 행동까지 마구마구 이야기해서 이 선생님 내일 당장 내려가겠다고 시끌시끌...
어떻게 될려나?...아직 등반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Date : 2002-7-26
05시 30분 기상. 간밤에 여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양송이 스프하고 어제 먹다남은 밥과 김치찌개로 아침을 해결. 병남이의 상태가 가장 안좋다. 그래서 AC캠프의 건설에 내가 나가야할 상황까지 이러렀다.
지금 07시 식사가 끝나고 ㅔ출발 준비중. 08시 47분에 ABC건설팀으로 임만재 대장, 손대출, 김숙임 선생님 그리고 연락관인 스리다 포카리알이 출발.
내가 비상식으로 육포에 모나카에 여러가지를 챙겨주었다. 이 나라 사람인 연락관은 소고기를 안먹으니 다른걸로 보충. 난 다행히 빠졌다. 이 양반들 언제쯤 복귀 할려나?...
장독대를 만들었다. 쓰레기장도 만들고 식탁도 만들고. 김치통도 땅에 묻고. 그리고 깃발도 달았다. 펄럭이는 태극기와 여러가지를 보니 비로소 베이스캠프다운 모습을 보인다.
한잠 자고 있는데 비가 후득후득 떨어진다. 어제 널어놓은 빨래는 언젠간 마르겠지 그러면서 그냥 뒀다. 하기사 비누로 빤것도 아니니 아쉬움도 없다.
나는 어제부터 자꾸 욕지기가 나고 위장도 받아주지 않아서 안남미를 죽이라고 쑤어 먹었는데 고도관계로 완전히 끓여지지 않아서 맛이 없다. 다른 대원들은 점심으로 라면 먹었다. 이 라면을 바상셀퍼는 입맛에 맞는지 좋아하는 눈치다.
무전으로 16시쯤 온다는 ABC건설팀이 거의 18시가 되어서 손선생과 김숙임 선생님은 초주검이 되어서 왔고 만재하고 연락관은 그럭저럭 빵빵하다.
저녁을 하는데 압력밥솥의 뚜껑이 잘 안닫혀 어쩔수 없이 물많이 넣고 죽을 끓였다. 그리고 찌개로는 고추장 양념 풀고 양파넣고 런천미트 넣어서 급조한 정체불명의 찌개를 했다. 난 그전에 내가 먹던 죽을 두컵 정도 먹어 치웠다.
내일은 ABC로 부식수송에 나가야 할 듯... 낮에는 얼굴이 무척 부은 느낌이었는데 낮잠이라고 잠깐 자고 났더니 덜한 느낌이다.
여기서는 싸토판스 호수의 물을 떠와서 취사를 하는데 돌가루가 녹아있어 그런지 물을 끓일 때 보면 물안에 반짝거리는게 많다. 그래서 물빛이 옥색인가 보다.
저녁먹을 때 보니까 우리 베이스 위의 언덕위로 나무줏는 사람이 두사람 있었다. 고장난 우리 버너 대신에 내일 들어오는 고소포터의 버너를 우리가 사용하기로 했다. 아까 죽 끓이다가 버너불이 확대되어 키친텐트 다 태워 먹을 뻔 했다.
21시 29분. 598밀리바. 맥박을 재어 봤는데 아직도 95개나 뛰고 있다. 오늘은 아스피린을 안먹고 한번 자 보자 그러는데 자꾸 하나(1, One)와 관련된 꿈을 꾸게되어 또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가지고 온 영어 사전 뒤적이다가 깔아놓은 매트리스가 시원찮아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거리다가 배가 고파 주변에 뭔가 하나 손에 걸리는거 봉투 찢어서 낼름 먹었다.
하나님께 오늘 처음 무릅까지 꿇고 기도했다.
Date : 2002-7-27
05시 30분 기상.
간밤에는 매트리스 문제로 한참이나 뒤척이다가 0시 넘어서 잠이 들었는데 03시 30분쯤 소변이 마려워 잠이 깼다. 좀전에 해니꿈을 꾼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막 좋아졌다. 배가 좀 아프다. 요새는 아침 먹기전에 밀어내기를 한다. 인도식으로. 맥박을 재었더니 80으로 떨어졌다. 이게 꾸준하지 않고 들쑥날쑥이다.
07시 50분 출발.
08시 38분에 4,330까지 올라왔다. 593밀리바. 이정미 선생님 뒷골이 땡긴다고 수지침요법으로 손바닥 어디엔가 피를 좀 뽑아내고 다시 출발. 날씨는 좋다. 차우캄바도 새벽엔 자기 몸을 보여주더니 지금은 개스로 산정이 덮여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오다가 보니 우리 BC에서 좀 더 위로 물도 있고 풀밭도 있는데가 있어서 조금 더 BC를 올릴수 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 말로는 I봉보다 III봉을 먼저 건드린다고 했다. I봉은 진입자체가 어려워 보인다.
09시 09분 ABC에 이르는 등산로 표식기를 세우고 쉬고 있다. 병남이와 경수가 우리보다 조금 앞에서 작업을 하면서 간다. 날씨는 좋다. 아직까지 모레인 지대의 연속이고 물이 흘러나와서 작은 연못을 이룬곳도 있다.
내 위장에 이상이 있는지 속이 더부룩하고 뭔가를 삼키면 식도를 거쳐 위장에 이를 때 까지 아프다. 아마도 뉴질랜드에서 아팠던 몸이라 회복이 안된데다가 여기와서 더욱 안좋아졌나보다.
13시 10분. 4,420에서 쉰다. 무지 걸었는데도 ABC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곳에선 눈앞에 보여도 한참 걸어야 하는데...이제 날은 흐리고 바람도 조금 불어서 움직이면 추워진다.
우측의 차우캄바 주봉 즉, I봉 하단부는 흡사 아이거 북벽의 하얀거미처럼 만들어져 있다. 눈도 없지만 몹시 지저분하다. 가끔 돌 쏟아지는 소리도 들리고 모레인 지대 곳곳에 빙하 녹은 물이 도랑처럼 흐르고 있다.
14시 21분. ABC 도착. 4,535미터. 577mb. 얼음위에 텐트가 만들어져 있다.
18시 06분.
밖에는 비가 온다. 꽤 오랫동안 오는 거 같다. 토요일이면 뉴질랜드는 0시 36분이다. 모두 꿈나라로 갔을 시간. 곧 장인어른이 뉴질로 들어가시니 그러면 내가 좀 안심이 될듯하다.
텐트안에 여자분 두사람이 같은 방향, 나하고 경수가 같은 방향으로 잠을 청했고 병남이는 텐트안에 있는 식당칸에서 잠을 청한다. 5명이 텐트안에서 복닥거리니 잠이고 뭐고 밤새 이야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Date : 2002-7-28
05시 19분 기상.
간밤엔 어떤 외국인의 지독한 환대에 몸둘바를 모르는 꿈을 꾸었는데 잠을 제대로 못잔거 같다. 아무래도 나한텐 배게가 중요한듯...
날은 꾸물한 상황이고 어제 밤엔 위가 좋지 않아서 수지침하는 이정미 선생님이 내손 4군데 발 2군데의 피를 뺐는데 그렇게 시커먼 피가 나오는걸 이제까지 보지못했을 정도였다. 어제부터 별로 먹은것도 없이 있을려니 힘도 없고 자신도 없어지고 그랬다. 빨리 내려가서 약이나 먹어야겠다는 생각.
아침에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뉴질랜드 우리 집 잔디를 다시 깎는 꿈을 꾸었다는 기억으로 무척 기뻤었다. 맥박이 거의 보통인 66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띵한건 마찬가지지만. 경사진 텐트안에서 4명이 복작거리고 있자니 이거 또한 극기훈련의 하나인거 같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짐을 올리고 수송해야할지 모르지만 내몸은 내가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어제 저녁엔 밥먹고 먹을만한 1회용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동결비빔밥의 말라 비틀어진 쌀로 숭늉을 끓였는데 순수한 숭늉맛이 아니라 양념한 숭늉맛이 나와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먹는다. 물많이 넣고. 엄청 퍼진 이 라면도 먹히질 않으니 진짜 내몸에 이상이 있긴 있나보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날이 점점 화창해지고 있다.
아침먹고 바로 출발. 나는 모레인 지대를 가로 질러서 지름길을 만들어 내려가고 나머지 대원들은 어제 왔던길을 찾아서 내려간다. 짐을 다 비우고 내려오는데도 이거 영 죽을 맛이다. 이런 몸으론 이번 등반이 어렵다는걸 직감한다.
12시쯤 내려왔었나? 잡아놓은 양으로 산제를 지내고 나는 뻗어 버렸다. 사람들 웃고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배가 무지 고프다. 그래서 아까 사람들이 맛있게 먹던 양고기를 양념에 찍어서 혼자 정신없이 먹다가 속이 안받아주어 토해 버리고 손선생하고 같이 동결 김치비빔밥을 물을 많이 넣고 죽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모여들고 술도 먹고 그런다.
다 모여 있을 때를 빌어 고소포터들 일이 끝나고 내려갈 때 나도 같이 내려 가는게 좋겠다고 그러니 모두들 조금만 더 참으면 몸도 좋아지지 않겠냐고 한마디씩 한다. 그말도 맞는 말 같지만 전에 없이 못먹고 못자고 하니 하루하루가 괴로움의 연속이다.
히말라야가 좋아 여기 왔건만 이놈의 히말라야가 고통만 준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만 싶다. 매일 나에게 찾아오는 그 불멸의 밤과 지긋지긋하게 하나(1. One)가 계속되는 그 꿈속에 거의 돌아버릴 지경인데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구나.
지금 시각 22시 01분. 뉴질랜드는 04시 31분 월요일이고 서울도 01시의 월요일이다. 장인어른은 코앞에 닥친 비행기 여행으로 잠을 설치고 계시리라...
나는 또 날짜 동그라미 하나를 지운다. 왜 잠이 오지 않을까?...이 원정이 주는 황당함 인가? 아니면 나의 민감한 감수성인가? 산에 들어오면 짐승처럼 되어야함을 익히 경험하였는데 왜 그 본능적인 마음가짐이 이루어지지 않는걸까? 가족에 대한 집착일까? 두고 온 여러가지 내가 못다한 일의 여운인가?
이제 다시는 원정을 떠나지 않으리...오늘 하루를 지금 이 시간만 생각하면 되는 단순무식함이 나에게서 빠져나가버린듯한 느낌...얼굴은 퉁퉁 부어있고 볼펜을 잡은 손도 마치 어린 시절 그 추운 의성의 겨울날 부어있던 동상 걸린 손을 연상 시킨다.
근태가 갑자기 생각났다. 빨리 가서 '근태이야기'를 마무리해야지...그래야 나도 그에 대한 짐을 하나 벗는 느낌이 될 것 같다.
저 물소리. 마치 설악산에 있는듯한 사토판스 호수의 물소리는 BC의 정겨움을 알려주고 있건만 너무나 기계문명에 익숙해 버린 나에게는 그런 낭만마저 이제는 남아있지 않는듯하다. 이젠 나의 이 산행이란 행위도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손선생 옆에서 자다가 하도 답답해서 나는 경수가 있는 텐트로 옮겼다. 아무래도 여기가 넓고 바깥 공기가 솔솔 들어와서 좀 상쾌하다.
Date : 2002-7-2
골이 띵하다. 밤새 잠은 못자고 물소리만 들은거 같다. 많은 생각을 했는데 결론은 고소포터들 내려갈 때 같이 내려 간다는 것이었다. 만재가 허락을 할지 모르겠다만 매일 밤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등반에 도움도 안되고 하니 나 스스로 미칠 지경이다.
새벽에 밥하러 나온 임대장한테 이야기하니 또 그런 이야기 한다는 투로 자꾸 달랜다. C1건설이 되면 내가 여선생님들 데리고 올라가는 계획을 세운듯 하다. 물론 짐도 옮겨야 할것이고.
내 의견을 일단 전달은 했으니 포터의 도움이 없더라도 즉, 혼자의 몸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금으로 2,000루피정도 있고 달러도 공금이지만 500정도 가지고 있으니 자금은 그런대로 마련된 듯.
매일 밤이 고통이다. 잠은 안오고 머리는 아프고...맨날 마무리를 잘하자고 소리치던 내가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답답하다. 이렇게 돌아가게되면 부끄러워서 다음엔 한국에도 못들어갈 판이다.
C1 건설을 위해 여선생님 두분하고 나를 제외한 5명이 출발준비를 한다.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는데 날씨가 나쁘다고 출발을 보류한다.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말야...
그러다가 한숨들 자고 나서 모두 출발했다. 손선생하고 악수를 하면서 나...갈거야 눈빛으로 이야기한다. 잘해...몸조심하고.
이 양반들 떠나고 나도 언젠지는 모르지만 떠날 준비를 한다. 동결비빔밥 4개를 넣었다. 아침 든든하게 먹고 출발해서 점심, 저녁, 다음날 아침에 점심정도 먹고나면 사람사는데로 나가지 않을까 한다. 내일 아침 난 누가뭐래도 이곳을 떠난다고 굳은 결심을 해본다.
혼자 델리까지의 여정이 어떻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면 더욱 마음이 고조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저것 꼭 필요하지 않는걸 뺐는데도 짐이 제법된다. 이건 바상셀퍼를 줘야겠네...
뉴질랜드를 떠난지 오늘이 22일째이고 인도 들어온지 16일째다. 어떻게 보면 아이고...이 미친 놈 이제 조금만 지나면 먼저 이곳을 빠질텐데 그걸 못참고 이게 뭔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21시 44분. 여선생님들 아는게 민화투밖에 없어 진짜 오랫만에 민화투를 같이 쳤다. 그러다가 정부연락관도 합세해서 민화투를 치는데 어롭쇼? 이 사람이 1등이다.
웃고 떠들고 있자니 내일 떠나는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아마 이렇게 생각할 거 같다. 저거 어제까지 잘 놀더니 갑자기 웬 변덕이냐고...날이 많이 추워졌다. ABC에서는 여기만큼 편안한 밤을 보내진 못하고 있으리라...
내가 보기엔 C1건설은 어떻게 되겠지만 C1이후는 등반선의 연결이 어려울듯...그렇다고 차우캄바 1봉으로 등반을 바꾸기도 쉽지 않을거고-거기도 길이 없어 보였다, 제발 사고나 안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같으면 지난번 카멧등반 허가가 보류되었으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상태에서 차우캄바를 건드리던지 아님 확실한 가능성이 있는 대상지를 선정할텐데 인도산악연맹에도 차우캄바의 자료가 없고, 여행사에도 없고, 당연히 한국에도 없는 무모한 등반을 우리는 하고 있는 셈이다.
1. 무대포 등반
2. 정보부족
3. 정찰의 필요성
나는 간다. 이런거 저런거 싫어서. 몸도 무지 아프고 앞으로 나한테 벌어질 일들이 태산이다.
Date : 2002-7-30
05시 13분 기상.
1시간 전부터 잠이 깨었다. 추위는 별로 없는데 머리가 빠개질듯이 아프다. 고소증세는 아닌듯한데 왜이리 아픈지 이유를 모르겠다. 위에 있는 대원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 갑자기 그들이 그리워진다.
이제 일어나서 체조 좀 하고 밥해먹고 두 여선생님께 간다그러고 만재한테 무전기로 알리고 연락관한테도 이야기하고 바상셀퍼 줄거 주고 난 떠날거다. 아마 1박 2일, 혹은 2박 2일이면 내려갈거로 예상이 된다.
이러다가 11일 여기를 떠나는 두 여선생님들하고 비슷하게 델리 들어가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냐만...
10시24분.
기세좋게 출발을 했는데 짐이 너무 무겁다. 호수가를 지나가는데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균형도 못잡고해서 위태하게 보였나 보다. 200미터 쯤 가고 있는데 연락관하고 바상셀퍼가 쫓아와서 만류를 한다. 짐도 많고 몸도 안좋고 혼자 가는게 위험하니 고소셀퍼들 갈 때 같이 가란다.
사실 카고백 하나에 내짐 전부를 넣었는데 뺄걸 뺐지만 너무 무거워서 이거 무리다 라는 마음이 들었었다. 길이나 좋으면 모르지만 모레인 지대를 오르락 내리락하니 30kg쯤되는데다가 배낭이 아닌만큼 내가 용빼는 재주가 있지 않는한 어려웠던 것이다.
이정미 선생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이스를 박차고 나왔을 때는 혼자지만 난 갈 수 있다는 심정이었는데 다시 베이스로 돌아오니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 쑥쓰러움으로 한참이나 멍하게 싸토판스 호수앞에 앉아 있고 서있고 그랬다.
연락관 스리다 포카리알이 와서 날 달랜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데 이럴땐 마치 형같다. 내일이나 모레 고소셀퍼하고 같이가는게 바람직하다고 그러면서 인디안은 산에서 혼자가도 괜찮지만 외국인은 위험하단다. 나쁜 놈도 많은게 인도라고 은근히 겁을 준다.
실종 = 죽음?
하하하 내가 보기엔 하루만 꼬박 걸으면 빠져나갈 수 있어 보이는데 말이야.
BC - Mana 20여km(도보)
Mana - Badrinath 4km정도(버스 혹은 택시)
Badrinath - Joshimatt 40여km( " )
Joshimatt - Rishikesh 200km정도( " )
Rishikesh - Delhi 200km정도( " )
텐트안에서 영어사전 보고 있는데(가지고 온 책이 이거밖에 없다) 포카리알이 놀러와서 같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마 이번 일을 통해서 나를 많이 이해하게된듯...
그 사람도 이번 등반의 성공여부를 낮게 책정하고 있었다. 자기도 길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그냥 베이스나 지키다가 갈수도 있을거 같다고 한다. 음...이 양반도 예상하고 있구나 싶었다.
가족얘기에다 인도, 한국얘기 등등등...인간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했던거 같다. 이 양반 말이 고소셀퍼가 내일이나 모레쯤 철수하는데 일정이 연장되면 자기하고 바상셀퍼가 데려다 주겠다고까지 한다. 고맙다.
점심으로 꿀꿀이 죽 같은거 해먹고 이현숙선생님과 사토판스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한라산의 백롬담을 한바퀴 돌던 때가 생각났다. 체력이 고갈되어 그런지 맨몸으로 도는데도 힘이 든다. 요샌 소화도 안되는데다가 뭐라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무지 불러온다.
이현숙선생님이 짐 간편하게 해서 가라고 조언한다. 아까 카고백 짊어지고 가는거 보니까 안스러웠다면서...미련하게 내가 뉴질랜드에서 가지고 온 짐에다가 원정대에서 받은 옷가지까지 다 가져갈려하니 무거울 수 밖에.
저녁에 ABC에 있는 만재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갑자기 무슨 뚱단지...차우캄바 I봉쪽에 또다른 ABC건설을 해주면 좋겠다나?...그거나 하고 내려가라는데...미치겠다. III봉도 될까말까한 지금 상황에서 I봉을 욕심내다니...여긴 다들 비실비실한 사람들밖에 없는데.
내가 그 의견에 반대. 포카리알 연락관도 그 의견에 반대해서 무전을 보냈다. 이 양반은 I봉은 이곳 방향에서는 어프로치가 안된다고 못을 박고 있다.
참 대단한 대장이다. 대원들의 상황보다는 오로지 등정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사람들을 활용할까? 하는 마음뿐인거 같다. 물론 성공하면 길이길이 빛날 대장이지만 내가 볼때는 운영의 묘가 아쉽다.
-제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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