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James Casebere
"제임스 케이스비어(James Casebere) 한국 사진전"
(글 : 사진평론가 장한기)
서울에서도 번잡한 도심을 조금 벗어나, 주변의 고궁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따라, 다소 한적한 길을 오르다 보면, 주변에 몇몇 갤러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 갤러리들은 서울에서도 수준 높은 작가들의 작품을 유치하여 전시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작품 컬렉션을 하는 소장 가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가 그 곳을 찾았을 때는 가을비가 한차례 지나간 10월 말경의 어느 한산한 토요일 오후였다. 목표로 한 “제임스 케이스비어”의 작품을 관전하기위하여 발길을 옮긴 곳은, 아담한 현대식의 고품격 석조건축물로 조성된 갤러리 인(Gallery IHN) 이었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니 중앙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로 확 트인 높다란 갤러리가, 마치 자동차가 비치는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훤하게 시야를 밝혀 주었다. 데스크의 안내를 받으며 먼저 우측 갤러리로 들어서니, 시야 정면의 벽면에 또 하나의 대형 조형물인 '케이스비어'의 작품이 앞을 가로막고 버티고 서 있었다. 가로183 세로228cm의 대형 작품 앞에 서니, 첫 느낌부터가, 거대한 건축물의 로비 안으로 들어서는 듯 한 웅장함이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은 관조자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초현대적인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매혹적인 구성과, 관조자를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의 감성이 초현실적인 공간미학의 분위기에 매료되는 시각은 불과 단 몇 초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었지만, 중세 유럽의 건축물을 촬영하여 국내에서 선보인 '캔디다 회퍼'의 작품과도 유사성을 띠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케이스비어'와 '회퍼'의 작업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구조물과, 미국과 유럽이라는 지형적 차이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동시대의 사진가로서는 이질적인 환경에서도 동질성의 소재를 통한 사유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제임스 케이스비어'는 1953년 미국의 미시건 주 랜싱 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중서부 지방과 캘리포니아에서 자라고 교육 받았다. 성숙한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은 미시건 주립 대학과, 미네아폴리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79년 칼아트에서 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한 직후인 1980년대의 뉴욕에서 부터였다. 당시 신진포스트모던작가들로 기획된 “페인팅제네레이션”에서 신디셔먼, 리처드 프린스, 로리 시몬스, 바바라 크루거, 로버트 롱고, 등과 함께, 정통 순수 포토그래피를 거부하고,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관념미술에서 부상한, 기록사진에 대한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진이라는 매체를, 재 정의 하였던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1980년대의 뉴욕의 예술가들은 제도적, 문화적, 전형에 대한 고찰이, 그들의 관념적 시각과 창작과정을 규정짓는, 자아 비평적 시각에 도취되어 있었으며, 아방가르드(Avant-garde:전위)는 이론 중심으로 치우쳐 있었고, 포토그래피, 행위예술, 비디오아트와 같은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을 현대미술 담론의 최전방으로 부각시켰던 장르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시기에 제시된 그들의 사진적 담론은, 단순히 사진은 렌즈를 통하여 투영된 형상을 자연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위적으로 구성된 인공성과 임의성을 강조하여 표현하였으며, 아티스트 자신들도 진실이나 현실을 포착하였다는 주장 따위는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 '제임스 케이스비어'의 작품전은, 터널과 인적 없는 실내풍경, 빛이 흐르는 아치 방, 그리고 가장 최신작인(레반트 The Levant)연작 등, 크게 세 부류의 최근작을 소개 하였는데, 이것은 '케이스비어'의 지난 십년간 변화 되어온 그의 작품 경로를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번에 선보인 그의 작품은 소재가 지닌 포토제닉한 특성에 따라, 흑백과 컬러로 구분하여 표현 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작품의 특징은, 하나의 작품 속에 다양하고 복합적인 기호를 내재시켜, 순수사진의 기록성을 초월하는 이질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경향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컬러나 흑백이나 어느 것 하나, 인공의 빛을 사용하지 않은 채, 자연에서 채광되는 조그만 창살을 통하여 비춰진 자연광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흑백작품의 경우는 가장 모던한 경향의 소재로서, 건물 내부의 단순한 구조물을, 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의 근원인, 수직 수평의 창살과, 기울어져 떨어질 것 같은 창틀, 직선을 이루면서도 곡선으로 휘감아 돌아가는 계단의 선들을 작품 속의 기호로 삽입하여, 그만의 작품의 특징을 독특하게 표출해 내고 있었으며, 컬러사진에서는 직선 보다는 곡선으로 형성된 터널 내부의 조형물의 돌출부분이나 광선의 문양이 하나의 기호로 작용되어, 그의 작품세계의 매개물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가장 최근에는 건축물의 지하터널 내부공간에 물을 투입하여, 자연의 빛과 물이 교차하는 지점의 반사 빛을 이용한, 지하공간의 조형물의 새로운 변화를 그의 작품 속으로 끌어드려 형상화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건축 유형과 모티브에서 비롯된 심리적 파생물을 그만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파헤치고 있는 케이스비어는, "자신의 작품세계는 무의식과 감성의 차원 뿐만 아니라, 물리적 차원 까지도 탐구하고자 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이 주류를 이루던 1980년대 이후, 삼십 여년 간 줄곳 건축 조형물사진의 기호학을 탐구해온 '제임스 케이스비어'의 모던한 작품성향과, 중세 유럽 건축물의 유형학적 조형사진을 탐구해온 독일출신 캔디다 회퍼의 작품성향이 쌍벽으로 이루며, 서로 다른 이론과 사상을 제시하면서도, 예술이 지향하는 방향은 동질성을 추구하며 한 곳으로 귀결됨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한국디지탈포토포럼(KDP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