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의 역사
주후 61~64년 네로황제가 신도시건설야망으로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리면서 박해가 시작되었다. 갈수록 심해진 박해를 피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지하무덤으로 숨어들어가 예배하고 생활하면서 카타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박해는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거의 300년 동안 끊이지 않았다. 이때 형성된 지하 카타콤의 통로의 총연장 길이는 약 900km 이다. 300년 동안 약 600만 명의 순교자가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로마주변에는 약 60여개의 카타콤이 현재까지 발견되었다.
카타콤 속의 순교자들
카타콤으로 불려지는 지하묘소는 성도들의 피난처였다. 건장한 어른에서 연약한 어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가장 무서운 박해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시체가 매장되어 있는 땅 밑바닥에서의 생활이 죽음처럼 비참하였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낮에는 밖에서 생활을 하다가 저녁에 모여서 격려와 위로의 말을 서로 나누고 또한 새로운 순교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부러워하는 그들이었다. 지상으로부터 기독교인의 모습이 사라진 것 같이 보였던 맹렬한 박해는 그들의 신앙을 더욱 강화시키고 빛나게 했다. 기독교인이라고 시인하면 죽음을 의미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는 것 때문에 화형 당했다. 그리스도가 지신 곤욕의 십자가를 그들도 등에 지고 그리스도를 따랐다. 그러기에 수백만의 순교자를 내었지만 로마 기독교의 세력은 조금도 약화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