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해조 20대 후반. 지방 3류대 출신의 백화점 판매관리부 대리. 돈없고 빽없고 인물도 내세울 것 없는 보통 남자. 지방으로 좌천되던 날, 애인에게도 채인다. 그런데, 자포자기한 심정에 인생을 막 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희안하게도 꼬였던 인생사가 풀리기 시작한다.
고부장 40대 후반. 해조가 새로 발령을 받은 지방백화점의 창고담당 부장. 말이 창고담당이지, 실은 찬밥덩어리, 뒷방 늙은이 처지이다. 한때 본사에서 잘 나가는 부장이었던 그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마침내 본사 인사부장으로 금의환향한다.
나애숙 본사 시절 해조의 애인. 해조가 지방으로 좌천당하자 해조를 차버린다.
조부장 본사 판매관리부 부장
최부장 지방 백화점 판매관리부 부장 양과장 판매관리부 과장 전신권 판매관리부 직원 강미나 20대 초반. 판매관리부 직원. 뛰어난 미모를 갖춘 그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남성들이 베푸는 호의와 친절에 익숙해 왔다. 그러나 탁해조는 그녀 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 아니, 오히려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해조가 그녀로선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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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화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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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하주차장 입구
지하주차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차량들 속에 탁해조의 고물승용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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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하주차장
고물승용차에서 내리는 탁해조, 휘파람까지 불며 기분 좋은 모습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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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무실 복도
게시판 앞에 서 있는 나애숙, 커피잔 들고 심각한 얼굴로 공고문을 읽고 있다. 저쪽 복도에 나타나는 해조, 애숙을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싱글벙글 다가온다.
해조 (주위를 둘러보고는 조용히) 애숙씨, 이따 저녁에 우리 회 먹으러 갈까? 애숙 (못마땅하다는 듯 돌아본다) 해조 오랜만에 소주한잔 하게. 퇴근하고 거기루 나와. 애숙 혼자 실-컷 드세요.
휭하니 걸어가버린다.
해조 (의아한 표정으로 보다가) 어젯밤에 전화 안해줬다고 저렇게 토라지나. 너도 여자라 이거지.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다 풀어줄게. 귀여운 것.
조부장 상무님이 직접 지시한 일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자료를 보여주며)이걸 좀 봐. 자네가 관리하는 매장만 매출이 뚝 떨어졌어. 내가 잡아주고 싶어도 그럴만한 건덕지가 있어야 할 것 아냐. 해 조 ......! 조부장 요즘 마산백화점이 위기라니까 거기 가서 실력발휘 좀 해봐.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어. 해 조 (난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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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백화점 여성의류매장
해조, 굳은 얼굴로 사물이 든 박스를 들고 지나가는데. 판매 여사원들이 그를 쳐다보며 귓속말을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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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비상계단
사물박스를 든 채 비상계단으로 나오는 해조, 계단을 내려서다가 발을 헛디뎌 사물함을 떨어뜨리는데, 각종서류와 책, 노트, 펜,... 사물이 계단으로 쏟아지고, 그 위로 해조가 계단을 굴러 아래에 처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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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까페
해조,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얼굴은 깍여 상처가 나 있고, 온몸이 쑤시고 뻐근한 듯 몸을 비튼다. 안으로 들어서는 애숙, 차가운 얼굴로 해조 앞에 앉는다.
애숙 축하해요. 마산이면 바닷가죠. 좋아하는 회 실컷 먹겠네요. 해조 애숙씨까지 왜이래. 위로는 못 해줄망정... 애숙 할 얘기 있어요. 해조 위로주 사겠다구? 그래, 기분도 그런데 어디 가서 한 잔 하자.
애숙, 탁자 위에 통장을 내놓는다. 해조, 흐뭇한 얼굴로 통장을 펼쳐본다.
해조 이제 세 번만 더 부으면... 이천만원이... 와우! 3년 전에 이거 만들 때는 언제 다 채우나 깝깝 하더니만... (통장에 키스하는)쪽! (건네주며)잘 보관해. 애숙 싫어요. 해조 싫다니? 애숙 우리... 그만 끝내는 게 좋겠어요. 해조 뭘 끝내? 애숙 헤어지자구요. 해조 (믿기지 않은듯)하하하... 무슨 소리야? 가을에 적금타면 결혼하기로 했잖아. 애숙 우리 미래를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안 떠올라요. 털털거리는 고물차도 싫고, 3년 만기 2000만원짜리 통장이 겨우 희망인 이런 생활, 정말 신물이 나요. 거기다 마산까지 가서 살자구요? 해조 지금 농담하는 거지? 애숙 농담 아니예요. 해조 (기가 차는)하! ...너무 잔인한 거 아냐? 꼭 오늘 이래야겠어? 애숙 (일어서며) 미안해요. 찻값은 내가 계산할게. 해조 (황당한).........
해조의 차, 느긋하게 1차선으로 달리고 있다. 덜덜거리며 세월아 네월아 달리는데, 뒤에서 차창을 온통 썬팅을 해서 안이 보이지도 않는 고급승용차가 빵빵거리며 쌍라이트를 깜빡거린다. 그러던가 말던가 여전히 여유로운 해조의 차. 고급승용차, 열이 나는지 옆으로 지나치며 차창을 내린다. 깜찍한 아가씨가 운전하고 있는데,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아가씨 야이 새끼야, 운전 똑바로 해. 추월선에서 빠지란 말이야! 어디서 똥찰 가지구! 해조 뭐야! 야, 차 세워! 차 세워!!
고급 승용차가 갓길 쪽으로 빠진다. 뒤따르는 해조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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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고속도로 갓길
고급 승용차가 갓길에 멈춰서자, 해조의 차도 뒤따라와 멈춘다. 차에서 내리는 해조, 씩씩거리며 고급승용차의 운전석 옆으로 다가간다.
해조 이봐, 아가씨. 아까 뭐라 그랬어? 좋은 차 타면 다야?
그때 승용차의 문이 열리고 조폭같은 덩치의 남자들 세명이 내려선다. 놀라 눈이 휘둥그래지는 해조, 겁에 질려 주춤주춤 물러난다. 덩치들, 위협적으로 해조를 둘러싸는데,
해조 그래, 이 개자식들아. 쳐라, 쳐! 나도 살고싶지 않은 놈이야! (그들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어서 쳐! 치란 말이얏! 조폭1 뭐 이런 새끼가 있어.
하면서 주먹과 발길질로 해조를 무참하게 난타한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해조, 벌떡 일어나 웃옷을 벗어던지며 다시 그들에게 머리를 들이민다.
해조 그래, 이 자식들아. 죽여라, 죽여! 아주 본 김에 패죽여라. 어서 죽엿!
해조의 광분에 질리는 덩치들. 조폭1의 발길질에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해조.
조폭1 이거 순 또라이 아냐? 가자!
조폭들이 차에 오르자, 그들의 승용차가 출발한다. 벌떡 일어나 뒤따라 달려가는 해조.
해조 야 이 자식들아, 거기 안 섯! 서!
뒤따라 달려가다가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는 해조, 분을 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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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마산 백화점 앞
해조의 자동차 달려와서 멈춰선다. 차에서 내려서는 해조, 상처 난 얼굴로 백화점 건물을 올려다본다. 심란한 듯 담뱃불을 붙여문다.
최부장 E 당분간 창고일을 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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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사무실
해조, 최부장 앞에 서 있다.
해조 차, 창고 일이라뇨? 최부장 여긴 서울하고 또 다르니까, 창고부터 파악하란 얘기지. 해조 하지만, 제 전문은 매장관리 쪽인데... 최부장 관리쪽에서 실패했잖아. 그리고 탁대리, 서울에서 여기까지 밀려왔으면 바닥을 본 거야.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로 해. 신입사원시절로 다시 돌아가란 말이야. 해조 (화가 치민다)...
서류정리를 하던 강미나가 해조를 돌아본다.
최부장 창고에 가면 지난달에 서울에서 내려온 고부장이 있으니까, 같이 손발을 잘 맞춰 봐. 서로 위로도 해가면서. 언젠가는 본사로 금의환향해야 할 것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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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창고 일각
고부장과 해조, 땀에 쩔은 작업복 차림으로 짜장면을 먹고 있다. 해조, 짜장면을 먹다가 울분에 젓가락을 집어던진다.
해조 아- 씨, 짜증나네. 이거 뭐야, 넌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는 소리 아냐. 그래, 나간 다. 더러워서 나간다. 내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는 줄 알어?
벌떡 일어서자, 묵묵히 짜장면을 먹던 고부장이 해조를 잡는다.
고부장 이것 봐, 나갈 때 나가더라도 짜장면이나 먹고 가. 해조 지금 짜장면이 문젭니까. 고부장님은 자존심도 없으세요? 본사에서 총무부장, 인사부장, 판매관리부장까지 지내신 분한테 창고담당이 뭡니까? 이 회사는 윤리도 도덕도 없습니까? 윤리 도덕은 제껴두고라도 능력, 능력 있으신 분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대우할 수 있냐구요? 고부장 (먹으며) 한번 실수했잖아. 해조 아니 우리가 뭐 신입니까? 사람인 이상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그리고, 그게 내 욕심 때문에 그런 겁니까? 다 회사를 위하려다 그런 것 아닙니까. 고부장 짜장면 다 불어. 이거라도 먹어둬야 나중에 힘을 쓸 것 아냐. 해조 필요 없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그동안 이놈의 회사에 몸 바치느라 즐기지도 못했는데... 새 직장 구할 때까지 실컷 놀고 먹고 신나게 지낼겁니다. 고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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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백화점회의실
사장, 전무, 상무, 이사, 부장, 과장, 대리들 둘러앉아 있고 말석에 우리의 탁대리 모습도 보인다.
최부장 첫째도 친절, 둘째도 친절, 셋째도 친절. 현재 우리 백화점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친절입니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모든 사원이 '고객은 왕이다'라는 인식부터 머리에 심어야 합니다. 사장 말로만 고객은 왕이다. 친절해라, 친절해라,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방법을 생각해봐, 방법을.
해조가 일어선다. 약간 삐딱하게 건방진 태도로 얘기한다.
해조 고객이 왕이다. 그건 틀린 말입니다. 고객이 무슨 왕입니까?
모두들, 웅성거리며 놀란 눈으로 해조를 쳐다본다.
최부장 (놀란 얼굴) 이봐 탁대리,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해조 무슨 말을 하다뇨? 간부의 일원으로서 의견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조용히 좀 해주세요. 최부장 아니, 저 사람이... 고부장 ......! 해조 고객이 왕이 아니라, 진짜 왕처럼 대접 받아야 할 사람은 판매 여사원들입니다.
간부들이 모두 웃는다.
최부장 이것 봐 탁대리, 사장님도 계신데 지금 장난하나? 해조 아 정말, 좀 조용히 하세요. 최부장 (일어서며)사장님, 죄송합니다. 탁대리, 나하고 같이 밖으로 좀 나가. 해조 제가 왜 부장님하고 같이 밖으로 나갑니까? (무시하고)죄송합니다. 제 말은... 판매여사원들이 회사로부터 왕처럼 대접을 받아야 손님들에게 친절해진다 이겁니다. 막말로 남편한테 얻어터진 마누라가 시집 식구한테 잘합니까? 남편한테 사랑받고 대우받는 마누라가 시집 식구한테도 잘한다 이겁니다? 최부장 이것 봐. 그거와 이건 다른 문제야. 해조 다르긴 뭐가 다릅니까? 최부장 이 사람이 점점... 사장 자네가 본사에서 내려온 탁대린가? 해조 네. 사장 흘려들을 얘기만은 아니로구만. 탁대리, 그럼 자네가 구체적으로 기획안을 제출 해봐. 해조 네에? 기획안을요? (혼잣말) 씨-, 그냥 해본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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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판매관리과(마산)
최부장, 양과장, 전신권, 강미나 등 판매관리과 직원들, 모두 식사하러 나가는 중이다. 의례 그래왔다는 듯 구석자리 고부장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신권 (해조에게) 식사 안해요? 해조 (서랍 뒤적이며) 먼저들 가. 양과장 (비아냥) 종업원이 왕이다. 우리가 왕이란 말이지? 한 번 잘 해봐. 흐흐흐...
해조, 그러던가 말던가 신경도 안 쓰는 눈치. 자리 정리하곤 고부장에게 간다.
해조 고부장님, 나가시죠? 고부장 아니, 난 도시락 싸왔어. 해조 순대국이나 하나 시켜 놓고 같이 드시죠, 뭐. 고부장 (고마워서) 그럴까, 그럼?
두 사람, 같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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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삼겹살집(밤)
고부장과 탁대리, 소주 마시면서 심중을 토로하는 중이다. 두 사람 다 술이 약간 올라있다.
해조 저 말입니다. 누구보다도 착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월급받으면 꼬박꼬박 적금도 부었구요, 저한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서, 안 돌아가는 머리 굴려가며 맨발로 뛰었다 이겁니다. 근데 이게 뭡니까? 직장에선 좌천당하고 결혼 약속한 여자한테 차이고... 도대체 어떤게 정석인지 모르겠다 이겁니다. 저요, 이제부턴 제 맘대로 살겁니다.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대로 하고. 그러다 어느 날 머리깍고 탁! 산에 들어가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고부장 탁대리. 그래도 자넨 탁! 산에 들어가버릴 용기라도 남았구만.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날 보게. 여기 밀려와 있는지가 벌써 얼만가? 자식들 때문에 찬밥 취급받으면서 사표도 못 던지고... (긴 한숨). 해조 부장님 앞에서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요, 세상 사는게 참 만만치가 않네요. (절규하듯) 전 이제부턴 다르게 살겁니다. 거꾸로 살거라구요!! 고부장 그래서 고객이 왕이 아니라 종업원이 왕이라고 한건가? 해조 직원들이 대접받아야 되는 건 사실 아닙니까! 소신대로 한번 뱉어봤는데 기획안 씩 이나 제출해 보라네요. 아이 참, 골치 아프게... 고부장 한번 잘 만들어봐. 누가 아나? 우리가 대접받을지. 일리가 없는 얘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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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도로
해조, 고물차 끌고 출근하는 길이다. 해조의 차 본네트에서 펑 소리가 나며 연기가 오른다. 해조, 차를 길가에 세우고, 본네트를 열어보니 연기가 자욱히 오른다. 손으로 연기를 저으며 캑캑거리는 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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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은행
해조, 핸드폰으로 서울의 애숙과 통화중이다.
해조 우리 완전히 끝난거 맞아? 분명히 말해! 나, 적금 해약해서 차 사버릴거다. 애숙 (소리) 맘대로 해요. (매몰차게 먼저 전화 끊어버린다)
해조, 전화 끊고 창구로 다가가 통장과 도장 내민다.
해조 (단호하게) 이거 해약해 주세요. 직원 (통장 보더니) 어머, 3개월 밖에 안 남았는데, 아깝네요. 해조 그냥 해약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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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자동차 영업소
영업사원과 함께 전시된 중형차를 둘러보는 해조.
사원 지금이 좋은 기횝니다. 대기시간 없이 바로 출고할 수도 있구요, 차값의 절반은 3년 후에 나눠 내실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행운권에 당첨되면 차값 전액을 현찰로 돌려 드립니다. 혹시 누가 압니까? 행운의 주인공이 될지..... 해조 내 사전에 행운이란 말은 아예 등록도 안돼있어요. 사원 어떻습니까? 차체가 아주 매끈하죠? 연비도 좋고. 해조 (선뜻) 계약합시다. 사원 (반색하며) 결정 잘하신겁니다. 계약서 작성하실까요?
영업사원, 해조를 테이블로 안내한다.
사원 할부는 몇 개월로 할까요? 해조 (시원시원하게 수표 꺼내놓으며) 일시불로 합시다. 사원 (감격해서) 역시 화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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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판매관리과
최부장, 양과장, 전신권, 강미나가 갓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루루 몰려들어온다.
최부장 (생수통 쪽으로 가며) 날이 왜 이리 덥냐? 양과장 그러게 말입니다. 올핸 아주 초장부터 푹푹 찌는데요? 최부장 점심을 짜게 먹었나, 왜 이리 물이 먹히지? 전신권 아까 육계장이 좀 짰어요. 최부장 그렇지? 강미나 제가 시원한 것 좀 뽑아올까요? 최부장 그래 주겠어? 강미나 (활짝 웃으며) 커피 한잔 뽑으려는 참이었어요.
미나, 온 방안이 환해지는 것 같은 미소를 던지고 사무실을 나간다.
최부장 아휴, 그냥 얼굴만 이쁜 게 아니라 맘까지 이뻐요. 양과장 좌우지간 여잔 이쁘구 봐야돼. 전신권 사내에 강사모란 모임까지 생겼다니깐요? 최부장 강사모가 뭐야? 전신권 강미나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모임. 최부장 하여간 우리 관리과의 꽃이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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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복도
해조, 자동차 키를 탁탁 던졌다 받으며 걸어오고 있다. 마주 오고 있는 미나 보인다.
미나 음료수 드실래요? 해조 댁이나 마셔요.
해조, 건둥건둥 스쳐 지나가버린다. 미나, 그런 해조의 뒷모습을 못마땅한 듯 잠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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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판매관리과
해조, 들어와 자리에 앉아 업무 준비를 시작한다. 어느새 고부장도 구석 자기 자리에 들어와 앉아있다. 미나, 음료수 캔 세 개를 들고 들어와서, 최부장, 양과장, 전신권에게 돌리다가 고부장을 본다.
미나 어머, 하나가 모자라네? 고부장 ...난 됐어. 미나 죄송해요. (자리에 앉는다) 해조 (기분 상해서) 그렇다고 그냥 앉으면 어떡해. 미나 네? 해조 당연히 하나 더 뽑아와야지. 미나 전, 그냥 고부장님이... 해조 강미나씨! 최부장님 게 없었으면 그냥 자리에 앉았겠어? 최부장 (본다)...... 고부장 (난처해서) 아니, 난 괜찮아. 탁대리, 왜 이러나? 해조 괜찮기는 뭐가 괜찮습니까? 고부장님, 같은 사무실에서 점심 먹을때도 자기들 끼리, 음료수 마실때도 자기들끼리. 이래도 되는겁니까? 세상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말이야...(미나에게) 미나씨도 그러지 마! 예쁘고 인기 있으면 다야? 먼저 사람이 좀 돼 봐. (자리에 앉으며)나이도 어린 게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강미나, 그만 얼굴을 감싸고 뛰쳐나가 버린다. 고부장도 무안해 어쩔 줄 몰라하다 슬그머닌 나간다.
최부장 거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왜 시끄럽게 야단이야, 탁대리! 강미나씨가 얼마 나 무안하겠어? 해조 그러시는게 아닙니다. 솔직한 말로 판매과 사람들, 고부장님 왕따시키잖아요? 아닙니까? 양과장 이 사람이, 정말 왜 그러나? 최부장 됐어. 그만들 해. 쓸데없는 소리들 그만하고. 탁대리! 자네 그... 획기적이고 엉뚱한 기획안이나 빨리 올려. 사장님이 고대하고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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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비상계단
강미나,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다. 전신권, 옆에서 달래고, 곧이어 양과장까지 와서 위로한다.
전신권 미나씨가 이해해. 탁대리님 원래 막가파잖아. 양과장 그래, 미나씨. 똑같이 본사에서 밀려온 처지라 신경이 곤두선거겠지. 그냥 거 있잖아... 변, 그래 변 밟았다고 생각해. 강미나 아니예요. 솔직히 제가 잘못했죠 뭐.
아동복 누구야? 장난감 저 사람이 서울에서 내려온 탁대리님이야. 아동복 어머 어머, 너무 터프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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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포장마차(밤)
해조와 고부장이 술을 마시고 있다.
해조 한 잔 하세요. 고부장 나 때문에 자네까지 미운 털 박혀서 되겠어? 하고싶은 말이야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목구멍으로 기어오르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어디 그런가... 해조 저요, 이제 그딴 눈치 보고 안 산다니깐요. 하다하다 정 안되면 머리 깍고 산에 들어가 버린다고 했잖아요. 고부장 이 사람 툭하면 산타령은... 그 기획안이나 잘 한번 만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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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해조의 자취집 앞(밤)
해조, 비틀비틀 걸어오고 있는데, 자취집 대문 앞엔 쇼핑백을 든 강미나가 기다있다.
미나 늦으셨네요. 해조 (놀랍다) 아니, 미나씨가 웬일이야? 미나 낮엔 제가 죄송했어요. 해조 (퉁명) 알면 됐어. 근데, 그 일 때문에 찾아왔어요? 미나 (쇼핑백 내밀며) 이거. 해조 뭐예요? 미나 아침 잘 안드신다면서요? 빵인데... 유명한 집에서 사왔어요. 아침에 드세요. 해조 됐어요. (하면서 자취집 문을 열쇠로 따는데) 미나 (그 뒤에 대고) 저 차 한잔 주시면 안돼요? 해조 잘가요.
미나 앞에서 문이 쾅 닫힌다. 난감한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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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회의실
사장, 상무, 이사, 최부장, 양과장을 비롯한 임원진들 지켜보는 가운데 해조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제일 구석진 자리엔 고부장의 모습도 보인다.
해조 우리 백화점 매출이 극히 저조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제가 분석한 바론 판매직 여사원들의 자긍심과 사기를 진작시켜 주는게 급선무라고 봅니다. 지난 넉 달간 각종 세일과 고객 감사제 명목으로 판매사원들은 단 하루도 쉬질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매출이 는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우선 한 달에 두 번씩 순서를 정해 직원들을 쉬게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판매량 증가에 따른 인센티브제를 과감하게 도입해 직원들의 사기를 충전시켜주고, 마지막으로 여직원 휴식공간을 확충해서 마음대로 도시락도 먹고 퉁퉁 부운 다리도 잠시 쉴 수 있도록 하는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종업원을 왕처럼 대접해주자는 겁니다. 이상입니다.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사장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나머지 사람들도 따라서 박수를 치는데, 해조, 이런 성공이 낯설기만 하다. 구석자리 고부장, 진심으로 박수를 치며 기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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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백화점 여성복 매장
해조, 지나가자 여사원들 소근댄다.
사원1 저 사람이 우리 휴게실 만들어준 탁대리야. 사원2 휴일도 챙겨준다잖아? 사원1 어머, 너무 멋지다아. 사원2 요즘 세상에 저렇게 소신있는 남자가 흔하니? 아후, 난 저런 남자 너무 좋더라. 사원1 꿈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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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백화점 엘리베이터 앞
해조, 걸어오다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것을 보자, 얼른 뛰어들어 마지막으로 올라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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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 틈에 섞여있던 강미나, 해조에게 목례를 한다. 해조, 그런 강미나를 미처 못봤다. 문이 열리자 먼저 나가버린다. 뒤따라 내린 강미나,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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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판매관리과
해조, 기안서류를 작성하느라 몰두하고 있는데, 그런 해조의 책상위에 놓이는 커피 한잔. 해조 의아해서 올려다보면 미나다.
미나 드세요. 고부장님께도 드렸어요. 해조 나하텐 이럴 필요없어. 앞으로 이러지 마.
미나, 살짝 웃곤 자기 자리에 가 앉는다. 해조, 미나의 저의를 모르겠다. 다른 직원들도 고개 갸우뚱. 미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기 일에 열중하는데, 순간 요란한 빵빠레 소리와 함께 팔등신 도우미 두명과 자동차 영업사원 등장한다. 어리둥절한 직원들. 도우미들과 영업사원, 해조 앞으로 다가간다.
영업사원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탁대리님. 저희 한양자동차 행운의 이벤트 주인공으로 뽑히셨습니다. 해조 행운의 주인공이라뇨? 영업사원 (007백을 올려놓으며) 차값 전액을 환불해 드립니다. 저도 너무너무 기쁩니다. 제 고객 중에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요! 해조 네? 영업사원 (007백 열며) 현금 1800만원입니다.
직원들,깜짝 놀란다.
양과장 천팔백만원!!! 전신권 (자기가 더 흥분해서) 맞다. 신문에서 봤어. 이 달에 새 차 구입한 손님 중에 한명, 컴퓨터로 추첨해서 차값을 돌려준다. 그거 맞죠? 영업사원 잘 알고 계시는군요. 양과장 그러니까 여기 탁대리가 그 행운의 주인공? 도우미들 (노래 부른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오늘의 이 기쁨을 축하합니다. 최부장 어이구, 탁대리, 어젯밤에 무슨 꿈 꿨어? 축하해!
직원들, 축하한다며 박수를 쳐주고, 해조는 얼떨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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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단란주점(밤)
해조의 횡재를 축하하는 술자리. 판매관리과 직원 모두가 모여 거나하게 술판들을 벌이고 있는데... 오랜만에 고부장도 최부장과 술잔 나누고... 양과장, 무대에서 열창 중이다. 신권은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막춤을 추고 있다. 미나는 해조 옆에 앉아서 대구포도 찢어놓고...
해조 저 오늘 아주 기분 째집니다. 오늘 제가 쏠테니까 팍팍들 드십시오! 고부장 참,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만. 최부장 난 생전가야 천원짜리 복권 한 장도 안되던데... 고부장 창고 먼지나 마시면서 푹푹 썩는 청춘이, 이런 날도 있어야죠. 양과장 (노래 마치고 해조를 끌어내며) 오늘의 주인공도 한곡 뽑아야지.
부서원들의 환호성과 박수 속에 무대에 오르는 해조, 그럴듯하게 노래 한곡을 열창하는데, 그런 해조를 보는 미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미나, 해조 곁에 다가가 듀엣으로 함께 부르며 해조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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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창고 안 (낮)
해조와 고부장, 음료수 마시며 땀을 식히고 있다.
고부장 어제 계산 꽤 나왔지? 해조 좀 나왔죠. 고부장 허투루 써버리지 말고 잘 모아뒀다 결혼자금이나 해. 해조 결혼은 무슨... 고부장 강미나씨, 은근히 자네한테 관심 있는 모양이던데... 해조 전 여자에 대한 기대, 다 버렸습니다. 비젼이 있다 싶으면 간사스럽게 아양을 떨고, 비젼이 없다 싶으면 금방 다른 놈 찾아 고무신 거꾸로 신잖아요. 요즘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순정이 없다니까요. 전 그런 여자들이 싫습니다. 고부장 그렇다고 술값으로 다 날려 버릴 거야? 해조 어차피 생긴 공돈, 증권에나 박아두려구요. 고부장 증권에 대해서 아는 것 좀 있어? 해조 그동안 은행에 차곡차곡 적금 부으면서 착실하게 살았다고 했잖아요. 증권회사 문턱에도 안가봤습니다. 고부장 그럼 증권은 하지마. 해조 남들 다 하는 데 저라고 못할 것 없잖아요. 고부장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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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증권회사
해조, 직원에게 상담을 하고 있다.
증권 코스닥에 한번 투잘해보시죠. 석원정밀이라고 한때 30만원까지도 치솟았던 준데, 무상 증좌하고 나서 지금은 많이 떨어졌거든요.
해조 얼마나 ? 증권 현재는 한 3만원도 안돼요. (컴퓨터 검색하더니) 현재가 2만 7천원이네요. 해조 그래요? 증권 어떡하시겠습니까? 해조 (007백 올려놓으며) 까짓거, 던져 봅시다.
직원이 열려진 007백 속의 돈을 보고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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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백화점 안 여성의류매장
매장 전체가 뭔가 활기를 띈 분위기다. 손님도 북적거리고.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친절하게 웃고 적극적으로 손님을 맞는다. 사장단과 최부장, 탁대리 함께 매장을 둘러보며 아주 흥분해 있다.
사원1 손님, 어서 오세요. 최신 디자인인데요, 손님은 피부가 고와서 잘 어울리시겠어요. 이런 옷 아무나 소화 못하거든요. 손님 아가씨가 너무 친절해서 한번 입어봐야겠네? 사원 1 그러세요. 이쪽으로 오십시요. 손님 (웃으며) 그래요. 한번 입어보지 뭐.
사장 음,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야. (탁대리 어깨 두드리며) 탁대리, 아주 수고했어. 최부장도!!
치하하고 가는 사장단의 뒷모습에 대고 최부장, 계속 인사를 하며 황송해한다. 최부장, 탁대리를 치하한다.
최부장 자네 정말 수고 많았어.
해조, 이 모든 일들이 실감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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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백화점 주차장(저녁)
해조, 자기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데, 여성의류 매장 판매사원 아가씨 둘이 뛰어온다.
사원1 탁대리님, 퇴근하세요? 해조 응. 사원2 차 너무 좋다아. 사원1 어느 방향으로 가세요? 해조 어, 난 시내 쪽. 사원1 어머, 잘 됐다. 우리도 시내 나가는데. 사원2 저희 좀 태워주시면 안돼요? 해조 글쎄. 사원1 탁대리니임. 해조 알았어. 알았어. 타. 사원들 아이, 신난다.
두 아가씨, 냉큼 올라타고, 해조의 승용차 경쾌하게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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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판매관리과 앞 게시판(아침)
출근하던 해조, 게시판 앞에 직원들 모여 웅성거리는 것을 보고 뭔가 싶어 본다. [창고담당 고우석 부장 명 본사 인사부장]
직원1 기사회생이란 말이 딱 맞는구만. 직원2 그러게 말야. 말이 부장이지, 본사에서 부장 씩이나 하던 사람이 창고에서 썩은 게 벌써 몇달째야. 직원1 의지의 한국인이야 . 저렇게 살아나다니. 직원3 이럴 줄 알았으면 잘 좀 보여놓는건데.
해조, 흥분해서 사무실로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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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판매관리과
부서원들의 축하받으며 악수하느라 정신이 없던 고부장, 들어서는 해조를 보고 다가간다. 진한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해조 축하드립니다. 고부장님. 와! 진짜 기분 끝내주네요. 고부장 고마워. 탁대리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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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갈비집(밤)
고부장의 환송회 자리다. 고부장에게 술을 권하고 음식을 권하며 갖은 아부들을 해대고 있는데, 해조는 그런 모습들이 마음에 안 들어 연거푸 술 만 들이킨다. 미나는 그런 해조에게 은근히 술을 따라주고.
최부장 자, 고부장님. 한 잔 더 합시다. 오늘 아주 밤새도록 마셔보자구요. 고부장 어, 이거 술이 오르는데. 양과장 오늘같이 좋은 날 좀 취한들 어떻습니까? 전신권 걱정마세요, 고부장님. 제가 책임지고 댁까지 모셔드립니다. 고부장 (주춤주춤 일어서며) 안돼. 그만 마셔야지. 낼 모레 서울 가려면 준비할 것도 많고. 최부장 아니, 고부장. 왜 이러세요? 고부장 (일어나 붙잡는 양과장도 뿌리치고 나가며) 아니, 됐어. 오늘은 그만 해산!!
나머지 사람들, 할 수 없다는 듯 주섬주섬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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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밤거리
판매관리과 사람들 택시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는데, 마침 빈 택시 한 대가 온다. 고부장 먼저 올라타고.
양과장 괜찮으시겠어요? 어이 전신권씨가 모셔다드리지.
전신권, 따라 타려 하는데, 고부장이 손을 저어 만류한다.
고부장 아니, 아니, 난 탁대리랑 갈거야. 탁대리, 타지. 양과장 가만, 미나씨도 같은 방향인데, 같이 타고가지 그래. 해조 (귀찮다는듯) 강미나씬 신권씨가 데려다 주면 되잖아..
따라 타려던 미나, 그만 머쓱해진다. 해조, 택시 문 닫고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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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택시 안
고부장 2차 가야지? 해조 좋-죠. 고부장 미나씨도 태워올걸 그랬나? 해조 팬들 많은데요, 뭘. 어련히 알아서들 모실라구요. 고부장 자넨 아무 관심도 없나, 저런 미인한테? 해조 제 차례 씩이나 돌아오겠어요. 미인들 비위 맞추는거, 생각만 해도 피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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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술집
분위기 있는 바에서 고부장과 해조,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고부장 카, 술 맛 좋다. 마산 내려와서 마신 술 중에 최고다. 해조 진짜 술맛 납니다, 오늘. 고부장 자네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봐. 괜히 산에 들어가네 마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이런 시도 있잖은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해조 아닙니다. 아무 기대도 안 할겁니다. 세상이 날 거부하면, 나도 거부해준다 이겁니다. 고부장 어허, 이 사람 아주 단단히 틀어졌구만. 해조 (술 따라주며) 한잔 더하세요, 부장님. (마시며) 크,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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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해조의 방 (새벽)
취한 해조, 비틀비틀 들어와선 침대에 걸쳐눕는다. 한숨 푹 쉬던 해조, 애숙에게 전화를 걸면, 잠에 취한 목소리의 애숙 전화받는다.
해조 행복하냐? 애숙 (소리) 누구세요? 해조 목소리까지 잊었구만! 애숙 (소리) 지금 몇신데 전화예요? 나 너무 피곤해요. 자야겠어요.
애숙, 일방적으로 전화 끊는다. 해조, 뚜뚜 소리만 나는 전화 끊고 돌아누우며,
해조 나도 피곤하다 임마.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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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해조의 방 (오전)
아침 햇살이 침대머리를 눈부시게 비추고 있는데, 해조 정신없이 곯아떨어져 있다. 간밤의 숙취가 역력한 모양새다. 전화벨 요란하게 울리면, 해조, 더듬더듬 알람시계를 매만지다 정신을 수습해 전 화를 받는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차 안. 미나를 조수석에 태운 해조가 운전하고 있다. 억지로 끌려나온 해조, 연신 하품 해댄다.
미나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요. 탁대리님, 어때요? 상쾌하죠? 해조 (귀찮다)응. 미나 이 음악 어때요? 컴퓨터로 다운받아 편집한거예요. 해조 그래, 좋아. 미나 탁대리님은 토막말 밖에 못 하세요? 해조 응? 미나 응, 그래, 그런 말 만 하고 있잖아요. 해조 그러게 집에서 쉰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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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해안도로
경쾌하게 달리는 해조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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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해조의 차 안.
미나, 운전하고 있고, 해조는 아예 뒷좌석에서 곯아떨어져 있다.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골고 있는 해조. 미나, 백밀러로 그 모습을 흘끔흘끔 보다가 어이가 없는지 그만 피식 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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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들판
파란 풀밭에 피크닉용 담요 펼쳐져 있다. 그 위에 피크닉 바구니까지 펼쳐놓는 미나. 먹음직스런 샌드위치며 오렌지 쥬스, 과일 등을 꺼내놓는다.
해조 이게 다 뭐야? 미나 (오렌지 쥬스 따라주며) 숙취엔 비타민이 좋대요. 해조 (쥬스 마신다) 미나 하늘 좀 봐요. 정말 맑아요. 해조 (벌렁 누우며)좋다. 하늘만 보고 살면 좋-겠다. 땅값이야 오르락내리락 널을 뛰지만 하늘은 어디 그런가? 그냥 맘대로 편한 대로 누구든지 보고 즐길 수 있잖아? 미나 (그런 해조를 지긋이 보다가) 탁대리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데요? 해조 무슨 소리야? 미나 매장 여직원들 요새 난리잖아요. 해조 내 알바 아냐. 미나 기분이 어때요? 해조 잘 알거 아냐. 강미나씨도 인기하면 남들한테 안 빠지잖아. 미나 탁대리님은 참 독특해요. 해조 나야 독특하지. 그렇게 보일 거야. (자조적으로 웃는다) 미나 남자들, 보통 괜찮다싶은 여잘 보면 참 잘해주거든요. 그런데 탁대리님은 좀 달라보여요. 나한테 왜 그렇게 톡톡 쏘고 그래요? 일부러 그러시는 거예요? 해조 난 여자한테 알랑방구 뀌고 그런 거 못해. 아냐,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해! 그렇게 하기가 싫어. 그러니까 미나씨도 여왕처럼 받들어주는 남자들 찾아가.
미나, 해조의 말에 서운해 눈물을 글썽인다.
해조 미나씨, 왜 그래? 미나 저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울음을 터트리며 누워 있는 해조의 배 위에 엎드린다. 놀라는 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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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판매관리과
최부장 자리가 비어있다. 나머지 직원들, 오후의 나른한 시간을 경제신문도 보고 컴퓨터로 주가 검색도 하면서 보내고 있다. 해조는 스포츠신문 보고 있다.
양과장 (컴퓨터로 나스닥 상황 체크하며) 젠장, 진짜 골때리는 세상이라니까. 나스닥까지 신경쓰면서 살아야돼, 이거? 강미나 그러게 증권을 왜 하세요? 양과장 말두 마. 나두 후회가 막급이야. 그동안 날린 돈 생각하면 발도 못 빼겠고. 죽을 맛이라니까. 전신권 남들 돈 벌었단 소리 들으면 눈 뒤집히지. 월급쟁이 어디서 몫돈 만져보겠어. 그냥, 쌈짓돈에 보너스까지 탈탈 털어서 한번 질러보는거지. 강미나 그래도 개미들은 결국 털리게 돼있어요. 양과장 그렇긴 한데, 한번 발 담그면 뺄 수가 없다니까. 이게 꼭 마약같은 거라구. 전신권 (경제신문 보며) 완전히 노나네. 양과장 (같이 들여다보며) 뭔데? 석원정밀? M&A 설 때문에 그러지? 참, 이런거 사논 자식들은 얼마나 좋아, 그래! 전신권 탁대리님. 그때 그 돈 어떡하셨어요. 007가방. 해조 (신문 만화보고 키득대며) 주식 샀어. 전신권 그래요? 재미 좀 봤어요? 해조 (건성으로) 몰라. 사라는 거 그냥 샀어. 양과장 뭐 샀는데? 해조 (건성) 뭐드라? 무슨 정밀이었는데... 전신권 (화들짝 놀라) 혹시 석원정밀? 해조 (무대리 만화보다 키득) 그런가... 양과장 (깜짝 놀라) 뭐? 탁대리. 진짜야? 해조 (그제서야) 왜요? 뭐 잘못됐습니까? 양과장 이 사람아, 잘 못 되기는...지금 그 주가 코스닥 황제주아냐. 얼말 때 샀는데? 해조 2만 7천원이던가? 8천원이던가... 전신권 (놀라) 헉, 지금 얼만 줄 아세요? 해조 (놀라) 몰라. 전신권 7만원이 넘어요. 7만원! 해조 7만원?! 양과장 야아, 이 사람 이거 완전히 패풀리는구만. 전신권 얼마를 번거야, 도대체.
정신이 번쩍 든 해조, 스포츠 신문을 내던지고 신권이 보던 경제신문을 빼앗다시피 움켜쥐고 본다. 미나도 눈이 동그래져서 보고, 양과장과 신권은 은근히 배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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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오피스텔
해조가 새로 이사한 오피스텔이다. 10평 정도의 자그만 실내. 하지만 전에 거처하던 썰렁한 자취방에 비하면 궁궐이다. 냉장고에 자그마한 식탁까지 갖추고 제법 우아한 독신의 풍모를 풍기는 분위기. 해조, 편한 옷 입고 박찬호 야구중계를 보고 있는데, 현관벨 울린다.
해조 (나가며) 누구세요? 미나 (장 본 것 들고 들어서며) 저녁 아직 안 드셨죠? 해조 (퉁명스럽게) 웬일이야? 미나 이사를 했으면 집들일 해야 할 거 아니예요? 해조 아이 참, 부담스럽다는데 이러네. 미나 부담스러울거 없어요. 탁대리님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야구나 보세요. 해조 (에라 모르겠다는 듯 TV 앞에 앉으며) 참-. 미나 잠깐만 기다리세요. 맛있는 저녁 지어드릴게요. 그 대신, 다음 휴일에 우리 기차여행 떠나요? 해조 난 싫어. 잠이나 푹- 잘거야. 미나 안돼요. 벌써 표 다 끊어놨단 말이예요. 휴일 기차표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해조 누가 내 표까지 사랬어? 짜증나게 자꾸 그러지 마. 미나 (단호하게) 몰라요. 이번엔 꼭 가야돼요.
해조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다저스 팀의 홈런에 괴성을 지르며 박수치고 야단이다. 미나, 마치 자기 집 주방인 듯 천연덕스럽게 요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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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관광열차 안
정선 5일장을 향하는 관광열차 안. 부부 혹은 연인끼리 온 팀들이 많아보인다. 짧은 여행을 나선 사람들의 가벼운 흥분이 느껴지는 기차 안 풍경. 홍익판매원, 수레를 밀고 지나가는 모습도 보이고... 미나와 나란히 앉은 해조, 좌석에 머릴 기대고 잠을 청하는 중인데, 미나, 삶은 계란을 까서 해조에게 권한다.
미나 이것 좀 드세요. 해조 (자느라) ..... 미나 눈 좀 떠봐요. 잠자러 왔어요? 해조 (찢어지게 하품한다)...... 미나 밤에 잠 안자고 뭐했어요? 해조 축구 봤어. 미나 스포츠가 그렇게 좋아요.
해조, 대답도 못 하고 다시 잠에 빠져들고, 미나는 그런 해조를 보다 피식 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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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정선 장터
활기가 넘치는 시골 장터의 풍경들. 푸성귀 몇 개를 펼쳐놓은 촌부, 직접 만든 도토리묵을 파는 할머니, 무공해 산채를 사가라며 붙잡는 시골 아낙, 토종닭을 앞에 놓고 앉은 파파노인, 모두가 정겨운 모습들이다. 미나, 이 모든 것들이 신기하기만 한데, 해조는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어슬렁어슬렁 따라다닌다.
미나 (해조에게) 빨리빨리 좀 따라오세요. 무슨 남자가 걸음이 그렇게 느려요? 해조 (어슬렁 어슬렁) 아, 참 피곤하게 구네. 미나 (강아지 파는 좌판앞에 앉아 강아지를 안아보는) 어머, 너무 귀엽다. 그쵸?
하면서 돌아보는데, 해조가 보이질 않는다. 강아지를 내려놓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찾아다니는데, 해조, 구멍가게 파라솔 밑에서 앉은 자세 그대로 졸고 있다. 미나, 어이가 없다.
미나 (해조 앞자리에 풀썩 앉으며) 어휴, 잠충이야, 잠충이!
해조, 입맛까지 쩝쩝 다셔가며 조는데, 미나는 왠지 그 모습이 밉지가 않다.
미나 (혼잣말) 아무래도 내가 정상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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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최대포집(밤)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찌그러진 불판들 위에 돼지껍질이 지글지글 익고 있는 허름한 대포집. 족히 수십년은 되었을 성 싶은 자명종과 뿌연 벽거울, 찌그러진 양은 그릇들이 이 집의 역사를 말해준다. 노동자인 듯 싶은 사내들이 목청껏 떠들어가며 돼지껍질구이를 안주로 삼아 깡소주들을 마시고 있는데, 실내에 여자라곤 해조와 마주앉은 미나 한명 뿐이다. 미나, 이 집 분위기가 몹시 불편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조,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식이라는 듯 돼지껍질구이를 쩝쩝 씹으며, 소주도 따라 마신다.
미나 여기가 정말 맛있는 집이에요? 해조 (불판위의 껍질구이 가리키며) 요게 뭔지 알아? 미나 ..... 해조 이게 말이야, 돼지 몸통 중에서 가장 맛있다는 그... 돼지껍데기라는 거야. (한점 집어주며)자, 먹어봐. 미나 (질색하며)싫어요. 해조 어서 먹어봐. 얼마나 맛있는데? (젖가락으로 집으며) 요기 요기 젖꼭지 좀 봐! 미나 (울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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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창고 안
해조, 장부 대조하며 물품들을 검사하다 티셔츠들이 가득 담겨있는 상자를 풀어본다. 폴로형 셔츠를 꺼내 들고 유심히 살펴본다. 뭔가 이상한 듯, 장부를 다시 뒤져보며 표정이 심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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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판매관리과
관리과 직원들 보이지 않고, 최부장 혼자 자리에 앉아 서류 검토하고 있다. 해조, 물품장부와 티셔츠를 들고 들어온다. 최부장의 책상 앞에 버티고 서는 해조.
최부장 뭐야? 해조 (셔츠와 셔류 던지듯 놓으며)저, 이 물건 입고 못 시켜요. 반품결제 해주십쇼. 최부장 (보던 서류만 계속 보며)이상없는 물건이야. 내가 책임져. 해조 제가 지금 어디서 오는 줄 아세요? 청파동 지하공장까지 다 둘러봤습니다. 최부장 (흠찟)...... 해조 가짜상표를 붙이려면 물건이나 제대로 만들든지... 조잡스럽게 이게 뭡니까? 최부장 자네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해? 응? 아주 간이 배밖에 나왔구만. 조직이라는 게 뭐야? 사회생활을 그정도 했으면 눈치라는 게 있어야지. 해조 눈치 코치 없어서 여기까지 굴러왔지만요, 전 못합니다. 최부장 (격해서) 그렇게 융통성이 없으니까 창고에서나 굴러먹지!! 해조 (열받은) 지금 말 다했어요?
일촉즉발의 순간, 양과장과 신권, 강미나가 들어오다가 살벌한 분위기에 놀란다. 그들을 보고는 갑자기 해조의 멱살을 잡아끌고 나간다.
최부장 나왓! 양과장 부장님. 최부장 (화를 내면서) 아무도 따라오지 마! 알았지! 내가 오늘 개값을 문다. 해조 좋아요, 나가자구요!
최부장 탁대리. 한번만 눈감아주게. 내가 책임지고 반품시킬테니까 없었던 일로 해줘. 낸들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나? 팔순노모에다 자식놈들이 고2, 고3 연년생이야. 애들 과외비 내려면 내 월급 다 쏟아넣어도 어림없어. 해조 (기막힌)세상 그렇게 사는거 아닙니다. 그런 돈으로 과외시킨 애들이 똑바로 클 것 같습니까? 최부장 그건 자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내 맹세하지. 이번 딱 한번 뿐이었어. 부탁이네. 자네 한마디에 우리 다섯식구가 달려있네. 내가 이 나이에 어디로 가겠나! 응? (무릎을 꿇으며) 내 이렇게 빌테니까, 제발 없었던 일로 해주게. 해조 야, 치사의 극치를 달리는구만. 최부장 탁대리, 미안하네. 해조 (기분 더러운)에잇!!
해조, 반품결제서류를 최부장 앞에 던지고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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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판매관리과
해조, 불쾌한 얼굴로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다른 직원들 움찔,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 곧이어 최부장도 들어와 자기 자리에 앉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 순간, 양과장 자리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린다.
양과장 E 자네 본사 있을 때 오리지널 브랜드 기획안 낸 적 있어? 그게 뒤늦게 뜬 모양이야. 아주 폭팔적인 반응이라는데? 하여튼 좋겠어. (궁시렁) 창고 쪽 터가 좋은가?...
버스기사, 갑자기 라디오를 켜는데, 흘러나오는 노래는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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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본사 대강당
우수 사원들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되는 자리. 해조가 막 표창장을 받는 순간이다. 사장 옆에서 상장과 부상 등을 건내며 보좌하고 있던 애숙, 잠시 해조와 눈이 마주친다. 해조, 표창장 받고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뒷줄에 앉아있던
고부장 (귀엣말로)요즘도 산타령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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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동 복도
시상식을 마친 사람들,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그 틈에 해조와 고부장이 보인다.
고부장 서운해서 어쩌지? 찐하게 소주라도 한 잔 해야되는데... 하필 오늘 출장이 잡혀서 말이야. 해조 사장님까지 모신 출장인데 당연히 가셔야죠. 고부장님 이렇게 잘 나가시는거 보니까 저도 정말 든든합니다. 고부장 자네한테 할말이 있네. 이번에 과장승진 명단에 자네가 들어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처신을 잘해. 해조 (놀란다)그, 그게 정말입니까? 고부장 그러니까 머리를 깍네, 어쩌네, 그런 말 하지 말고 열심히 해.
해조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간다.
해조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부장, 가고 해조 신이 나서 걷다가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애숙을 발견한다. 어색하게 마주선 두 사람.
애숙 축하해요. 해조 고마워. 애숙 잘... 지내죠? 해조 그럼. 애숙씨는? 애숙 저두요. ...... 오늘... 내려갈 거예요? 해조 특별히 있을 이유가 없잖아. 애숙 ......!
그때, 다른 직원들 우루루 몰려온다.
해조 갈게. 애숙 ...네.
애숙, 저만치 가다 멈춰서서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살짝 돌아보는데, 그러나 해조는 뚜벅뚜벅 걸어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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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해조의 오피스텔 (아침)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는 해조, 연신 휘파람을 불고,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흐뭇하게 웃는,
해조 그래. 탁해조 아직 안 죽었다 이거야. (생각에)가만... 지금까지 내가 너무 막 살았어.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인간 탁해조의 인생이 새롭게, 근사하게 다시작되는거야. 자,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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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해조의 차 (출근길)
러시아워라 길이 많이 막힌다. 급하게 끼어드는 고물차 한 대. 해조, 놀라 크락션을 울린다.
해조 (놀란 마음에) 아유, 꼭 똥차들이 저런다니까. 개나 소나 다 기어나오니 길이 막히지.
그때, 앞의 고급승용차가 급정거하자,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앞차를 쿵 받는다.
해조 (난감하다).....
앞차에서 우락부락한 남자가 내려와 차를 내려다본다. 차에서 내리는 해조, 차를 살펴보면, 앞차와 해조의 차 범퍼가 망가졌다.
남자 아 자식,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해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자 명함 있어?
해조, 명함을 꺼내준다. 남자, 명함을 받아본다.
남자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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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판매관리과
최부장 이하 회의를 하고 있는데, 해조,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해조 죄송합니다. 최부장 왜 이렇게 늦었어? 표창 받은 사람은 이렇게 늦어도 되는거야? 해조 오다가 차가 부딪혀서 정비소에 넣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최부장 차가 부딪혀? 자네한테도 안좋은 일이 일어날 때도 있구만. 자, 회의 계속하지. 요즘 매출실적이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야. 뭐 좀 좋은 아이디어들 없어? 신권 (비꼬는) 참-신한 아이디어라면 탁대리님이죠. 최부장 그래. 탁대리. 뭐 떠오르는 거 없나?
모두 해조의 입 만 쳐다본다. 해조,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럽다.
최부장 참, 거. 그 팽팽 돌던 머린 다 어디로 갔나? 밤낮 증권 만 붙잡고 있지 말고 연구 좀 해요. 연구. 표창장 값을 해야 할 것 아냐.
해조, 이런 자리가 무척 곤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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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백화점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해조, 저쪽에서 사장일행이 오는 것을 본다. 사장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90도 각도로 인사하고 서있는 해조. 더 이상 예전의 껄렁한 탁대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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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판매관리과
해조, 자리에 앉아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다.
해조 전신권씬 어디 간거예요? 미나 거래처 사람이랑 미팅.... 해조 나간지가 언젠데 아직 안 들어와요?
마침, 신권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해조 전신권씨. 어제 그 서류 다 됐어? 신권 아직 좀 덜됐는데요. 해조 뭐 어려울 게 있다고 시간을 끌어요? 11시까지 마칩시다. 신권 (불퉁)알겠습니다. 해조 그리고 식품 쪽 재고파악은? 신권 아직... 해조 뭐합니까!
신권,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탁탁 서류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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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설렁탕집
해조와 미나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다. 해조,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먹고 있는데 미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숟가락질이 영 시원찮다.
해조 이젠 나도 맘 잡았어. 회사 일도 열심히 할거구...증권해서 번 것도 좀 있거든. 조금만 더 하면 제법 큰 아파트 하난 장만할 것 같으니까.
미나, 대답도 없이 영 시큰둥하다.
해조 왜, 입맛이 없어? 푹푹 좀 먹구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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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몽타즈
주식 현황판을 유심히 살피는 해조. 증권사 직원과 뭐라뭐라 열심히 상담도 하고. 경제신문도 이것저것 펼쳐놓고 구석구석 훑는다. 인터넷으로 나스닥 상황과 월 스트릿 뉴스 등을 검색하는 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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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백화점 앞(저녁)
자신의 승용차에 탄 해조, 백화점 쪽을 주시하고 있는데, 미나, 나오는 모습 보인다. 남자 사원과 얘기를 하며 뭐가 우스운지 깔깔대던 미나, 기다리고 있는 해조를 발견하곤 잠시 당황한다. 남자 사원과 헤어지고 차 쪽으로 오는 미나. 해조, 얼른 내려서 차 문을 열어준다. 미나, 올라타면서도 못마땅한 얼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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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레스토랑
고급스런 레스토랑 내부. 의자 빼서 미나가 앉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해조. 미나는 이런 해조의 변화들이 하나도 반갑지가 않은데.
해조 가재요리 예약해놨어. 미나 ...... 해조 총무부 이대리랑 친해? 미나 뭐가 궁금해요? 해조 그냥, 친한 것 같아서. 미나 도대체 요새 왜 이러세요? 해조 내가 뭘? 미나 매일 어디갔나 챙기고, 전화하고, 자가용으로 모셔가고 모셔오고! 해조 공주처럼 받들어 주잖아. 미나 나 그런거 싫다고 했죠? 탁대리님, 요새 변했어요. 그거 알아요?
애피타이저가 서빙되는 바람에 미나, 입을 다물지만 아직도 끓고있는 것이 많다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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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판매관리과
컴퓨터로 주가검색하고 있는 해조. 실망이 역력한 표정. 잠시, 입을 앙 다물었다간 전화를 집어든다.
해조 김과장님? 고객번호 일공일사삼팔둘번인데요, 신용으로 매수주문 좀 넣읍시다. 김과장 (소리) 위험부담이 좀 있을텐데.... 괜찮으시겠어요? 해조 (비장하게) 마지막 배팅입니다.
해조, 전화 내려놓는 순간, 최부장 씩씩거리며 들어와, 책상 위에 서류 탁 내던지며 앉는다. 열이 나는지 넥타이를 풀어 흐트리며,
최부장 아, 이거 정말 못해먹겠구만. 어이, 탁대리. 나 방금 사장님한테 깨지고 오는 길이야. 뭐? 종업원을 왕처럼 모시자구? 왕처럼 모셔줬더니 이것들이 아주 간댕이가 탱탱 붰어요! 요샌 아예 말들을 안 들어 먹는다니깐. 처음에만 약발이 좀 먹혔지, 매출은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해조,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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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복도 자판기 앞
전신권이 타 부서 직원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투덜대고 있는 중이다.
신권 참, 드러워서. 지가 과장이야, 부장이야. 그 잘난 대리단지 얼마나 됐다고 설쳐대긴... 직원 증권해서 떼돈 벌었다면서? 신권 돈이 많으면 또 지가 얼마나 많아. 10억을 벌었어? 20억을 벌었어?
미나의 집 앞에 주차된 해조의 차. 초조한 듯 담배 피우며 미나의 집 앞을 지켜본다. 택시에서 내리는 미나의 모습 보인다. 해조, 급하게 담뱃불을 끄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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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미나의 집 앞
미나 앞을 막아서는 해조.
해조 도대체 지금 몇시야! 미나 웬일이에요? 해조 이 시간까지 뭘하고 다닌거야? 미나 약속 있다고 했잖아요. 해조 (미나 팔을 잡으며) 도대체 왜이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미나 (눈 내려 깔고) 없어요. 해조 얘기 좀 하자. 미나 늦었어요. 내일 봐요.
미나,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망연히 서있는 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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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해조의 오피스텔
경제뉴스 시청하고 있는 해조.
뉴스 [증시가 끝도 모를 바닥을 향해 침몰하고 있습니다. 외국인과 기관들이 서둘러 매물을 내놓자, 덩달아 개미들까지 투매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화면 속에 파란색으로 가득한 주가지수판 보이는데, 해조, 텔레비젼을 꺼버린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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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백화점 내부
다시 처음처럼 한산한 모습. 직원들도 아무런 의욕이 없는 사람들처럼 맥이 빠져있고, 아이쇼핑하는 손님 만 간간히 눈에 띌 뿐 . 해조, 심란한 표정으로 매장 둘러보고 있는데 휴대폰, 울린다.
해조 여보세요? (당황스런) 아,네. 알았어요. (버럭) 알았다니깐요. (주위 눈치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곧 입금할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신경질) 글세, 알았어요. 알았어.
암담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끊는 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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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중고차 판매장
해조의 중형차, 수많은 중고차들 속에 섞여있다. 해조, 아쉬운 듯 자기 차를 한 번 어루만져보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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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카페(밤)
해조와 평상복 차림의 강미나가 마주앉아 있다.
미나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거, 저 싫어요. 해조 안 그래도 요즘 힘들어. 따뜻하게 좀 대해주면 안돼? 미나 정말 실망이예요. 해조 무슨 소리야! 미나 탁대리님은 좀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해조 ........ 미나 남자들, 좀 이쁘다 싶은 여잘보면 반응들이 똑같아요. 자동차 탈 땐 문도 열어주고 이런데 오면 의자도 미리 빼주고, 니가 최고다 니가 이쁘다 간이라도 다 빼줄 것처럼 말이죠. 해조 여자들이 원하는 거 아냐. 미나 아뇨. 전 안 그랬어요. 늘 남자들 그런 시선, 대접에 익숙해 있었지만 그게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요. 그러다 탁대리님을 봤죠.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는 남자. 생전 처음 나란 존재를 무시하는 남자. 해조 그래서? 미나 그런 점이 제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탁대리님도 그저 평범한 남자였을 뿐이에요. 아시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구질구질 한 일이 끝나버린 사랑에 목을 매는 일이죠. (일어서며) 서로 쿨하게 끝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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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포장마차(밤)
혼자 앉아 소주잔을 털어넣는 해조. 이미 잔뜩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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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지하도 계단(밤)
깊은밤 인적이 드문 지하도 계단을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해조. 늙은 거지 한명이 깡통을 앞에 놓고 앉아 있다. 해조, 주머니를 뒤져 2천원을 깡통에 넣더니, 거지 옆에 풀썩 주저앉는다.
해조 진짜 엿같은게 세상이야! 거지 ........ 해조 사는 게 도대체 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지... 거지 ....... 해조 요즘은요,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지... 그걸 도대체 모르겠어요.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그래 사는 게 별 거냐 포기하면 일이 잘 풀리고, 제대로 한번 살아보자고 열심히 일하면 망가지고... 도대체 살라는 겁니까? 말라는 겁니까? 거지 (빙그레 웃는다) 해조 열심히 한번 살아보려고 했는데... 이제 다 끝났다 이겁니다. 거지 (웃는 듯 마는 듯 끄덕끄덕)..... 해조 아저씨, 인생이 꼬일 때는 어떻게 해야되는 겁니까? 거지 ...... 해조 아저씨들도 인생관이란게 있을거 아닙니까? 거지 ...... 해조 뭐라고 한마디만 해보세요. 거지 ...... 해조 돈도 이천원씩이나 드렸잖아요.
거지, 히죽히죽 웃으며 귀가 안들린다는 시늉을 한다. 해조, 허탈하게 웃으며 비틀비틀 일어나 걸어간다.
고부장 (소리) 곧 서류가 갈건데, 탁대리가 이번에 과장승진을 하게 됐어요. 최부장 탁대리요? 그 사람 그만 뒀는데... 고부장 (소리) 네에? 언제요? 최부장 며칠 됐어요. 인생을 다시 생각해본대나 어쩐대나, 그런 소릴하고 가더라구요. 고부장 (소리)아직 여기까진 사표가 안 넘어왔으니까 빨리빨리 탁대리좀 수배해보세요. 최부장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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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이발소
이발사, 할 수 없다는 듯 해조의 머리에 이발기구를 들이댄다. 해조의 머리 한가운데로 뚫리는 고속도로. 해조, 결연한 얼굴로 거울 응시하고 있는데... 거울에 비친 뒷벽에 걸린 이발소 그림. 복돼지 그림이 조잡한 이발소 그림 여백엔 푸쉬킨의 싯귀가 선명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견디면 기쁨의 날이 찾아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