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예정론
A. 예정론 서술
1. 예정론 개념과 정의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자신의 가장 현명하고도 거룩한 뜻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일체의 사건을 자유롭게 불가변적으로 예정하신다. 그러나 그 결과로 하나님이 죄의 창조자가 된다든지 피조자의 의지에 폭력을 가하는 존재가 된다든지 또는 제2 원인의 자유와 우연성이 탈취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정되는 것이다”
2) 칼빈의 이중예정 정의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라고 부르는데, 이 작정에 의해 하나님은 친히 각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을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결정하셨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상태로 창조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는 영생이, 어떤 사람에게는 영벌이 작정되어 있다. 이와같이 사람은 각각 혹은 이런 종말에, 혹은 저런 종말에 이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증명, 혹은 사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기독교 강요3.21.5)
2) 예정교리의 목적
예정교리는 하나님의 목적은 절대 무조건적인 것으로서 유한한 피조물에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 자신의 영원하신 뜻에 따라 작정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자연의 운행을 작정하시고 역사의 과정을 가장 세미한 부분까지 지배하시는 위대한 왕으로 나타낸다. 하나님의 결정은 영원불변하며 거룩하고 지혜로우시며 주권적이다. 이 결정은 단순히 자연계의 운행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에서부터 심판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전체 사건 에 미치며 또한 성도와 천사, 사악한 자와 음부에 있는 악귀의 전 활동까지 포괄한다.
3) 유한한 만물의 목적
유한한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며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의 현시를 제한하거나 방해하는 어떠한 상태도 발생시킬 수 없다.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은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단 4:35)
4) 멜랑톤(Melanchthon)
모든 일(우리가 외면적으로 행하는 일뿐 아니라 내면적으로 사고하는 사상까지도)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되어진다. 그리고 기회나 운명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의 예정을 철저히 깨닫는 길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첩경이다
5) 비숍(Bishop)
세계는 되는대로 움직이고 도한 사건들이 맹목적인 혼란과 무질서한 상태로 난무하는 것같이 생각되나 하나님은 모든 원인과 결과의 연쇄를 보고 아신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우연한 것이나 뜻밖의 것이란 전혀 없다.
6)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창조될 모든 것들의 존재의 결정, 다시 말해 어떤 것은 산나물이 되고, 어떤 것은 나비가 되고, 어떤 것은 사슴이 됨을 결정함과 같이 인간에게도 어떤 자는 남자로, 어떤 자는 부자 혹은 가난한 자로, 백인 혹은 흑인과 유색인, 가인 혹은 아벨과 같이 태어나도록 결정한 것은 천상과 지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예정이다.
7) 핫지(A. A. Hodge)
새로운 신학은 구신학이 편협하다고 주장하여 여호와의 예정을 현대의 진보된 문화의 불신을 받게 된 학파들의 낡아빠진 허구물이라고 이를 배격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부엉새가 일시적인 일식(日蝕)의 어두움을 밤으로 착작하고 그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경솔하게 독수리를 조소하는 일과 같은 것으로서 지금 처음으로 있는 일은 아니다 (Popular Lectures on Theological Themes, P. 158)
8) 예정론을 명확히 증거하는 성경구절
행 4: 27-28.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엡 1: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롬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고전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행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행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시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2. 예정론의 역사
3. 예정에 관한 성경의 용어
B. 예정의 창시자와 대상들
1. 창시자
예정의 작정은 의심할 바 없이 전 부분에 계획과 의지에 있어서 한 분이신 삼위 일체의 세 위격의 협력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구원의 경륜에 있어서 예정의 주권적인 행동은 좀 더 특별히 성부에게로 돌아간다.
2, 예정의 대상들
1) 모든 선하고 악한 인간들
2) 선하고 악한 천사들
① 성경은 거룩한 천사들과 그들의 첫 지위를 지키지 않은 사악한 천사들에 대하여 말할 뿐만 아니라, 선택된 천사들에 대하여 분명히 언급함으로써 또한 선택되지 않은 천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② 어떤 이들은 단순히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거룩하게 남아있었던 천사들을 지복의 상태로 확정되도록 결정하셨으며, 반명에 다른 천사들은 상실되도록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③ 하나님께서는 충분한 이유로, 창조시에 어떤 천사는 견인의 특별한 은혜를 부여하시고, 다른 천사에게는 그 은혜를 철회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④ 인간들의 예정과 다른 천사들의 예정과 다른 것은 인간들의 예정이 타락후 선택설(infralapsarian)으로 간주될 수 있는 반면에, 천사들의 예정은 타락전 선택설(supralapsarian)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천사들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거나 예정되지 않았으며,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거나 예정되었다.
3)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① 성부의 성자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영원전부터 그에게 쏠려 있다.(벧전1:20, 2:4)
② 중보자의 자질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의 선하신 기뻐하심의 대상이셨다.(벧전 2:4)
③ 성자는 신자들이 ?받을 것인 바 하나님의 특별한 형상으로 입으셨다.(롬 8:29)
④ 모든 영광으로 가득찬 그의 나라와 그 나라를 소유할 수 있도록 제정되었다.(눅 22:29)
C. 예정의 부분
1. 선택
1) 선택의 개념
(1) 선택의 성경적 개념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주권적인 선하신 기뻐하심 속에서 또한 인간들 속에 아무런 공로가 없으므로 일정수의 인간들을 영원한 구원과 특별 은혜의 수령자들이 되도록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행동이라고 정의된다. 간단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벌콥)
(2) 선택과 겸손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묵상하는 일이 없다면, 진실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진지하게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원리에 대한 무지는 하나님 영광을 손상시키며 참 겸손을 제거해 버릴 것이다.(칼빈)
(3) 구원(선택)의 네 가지 근거
유효적 원인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실제적 원인은 그리스도며, 궁극적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이다. 형식적 원인은 복음 전파이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에게 흘러 나온다.
(4) 선택의 세가지 요소(칼빈)
a. 선택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선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다.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의 선택은 창세 전에 수립된 영원한 계획과 관련돼 있다. 선택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구원을 받고 그들이 영광에 이르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게 될 때 비로서 성취될 것이다.
a) 칼빈은 그리스도 자신을 선택의 계획자로 생각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을 중보자로 개입시키실지라도, 그는 성부와 공통으로 선택에 대한 권리를 가진 것으로 선언하였다. 요3: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는 택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들로 간주하며 그리스도를 우리의 선택의 거울로 보았다.
b) 성령께서는 이 교리의 교사이며 성경에 영감을 주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의 구원 사역은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을 수행해 나간다는 것이다.
b. 선택은 하나님의 작정적 사역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은 인간의 선택보다 선행하며 아담의 타락보다도 선행한다. 또한 그것은 천지창조보다도 선행한다.
c. 선택은 특정적이다.
하나님의 작정사역은 특수하고 특별하다. 그것은 특정한 개인들과 관련되 있다. 이 작정은 선택된 각 개인들을 위한 그러한 목적을 성취시키는 수단을 제공한다.
2) 선택의 목적과 방법
선택의 목적은 이중적이다. 선택의 최종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고, 직접적 목적인 우리의 성화이다. 엡 1:4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영광은 최고의 목적이며 우리의 성화는 이차적인 것이다. “Soli Dei gloria!”
선택의 방법은 복음전파이다. 누가 선택받은 자인줄을 알지 못함으로 만나는 모두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3) 선택의 특징들( 5 point - Tulip)
(1) Total Depravity
a.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사람은 스스로 죄에 빠짐으로 구원을 얻을만한 선행을 행할 의지력을 아주 상실해 버렸다. 그러므로 자연인은 선에서 멀어지고 죄로 죽었으니 자력으로는 회심할 수 없을 뿐아니라 회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b. 원죄(The Original Sin)
타락 이래로 모든 인간은 죄의 저주아래 있게 되었고, 그릇된 원리에 따라 활동하게 되었으며 전혀 하나님을 경애할 수도 없고 또한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아무 일도 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타락 이래 모든 선에 대하여 부적당하고 무능력하며 반대하는 자가 되어 전적으로 악으로만 경주하게 되었다.
벨직 신앙고백(Belgic Confession) - 진정한 선을 행할 수 없다. 사랑의 동기와 믿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선은 근본적이고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볼 때 악과 다를바 없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때부터 죄인이며 동시에 자원하여 범죄하는 죄인이다. 그의 무능력은 자진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수행할 수 없는 무능력이다.
c. 루터의 자유의지
“실질을 읽어버린 자유의지란 하나의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결국 잃어버린 자유는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그의 구원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선악간의 어느 것이든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지 못하였고 다만 악의 대소를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었을 뿐이니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자유의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도 그 자체가 도덕적으로 선한 어떤 행동들을 할 수 있는 생득적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동기가 전적으로 그릇될 수 있기 때문에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행동도 할 수 없다.
날개를 다친 새는 하늘을 날아다닐 자유는 가지고 있어도 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
타락한 인간은 한결같이 그 행동에 있어서 강제로 범죄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로 죄를 범하고 또한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d. 성령의 주권
타락한 인간이 갱생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그의 마음의 변화인데, 그것은 오직 언제 어디서나 그가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역사 하시는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주권적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이 내적 변화없이 중생치 못한 사람을 개혁시키고자 하는 것은 마치 선박의 침수하는 곳들은 수리하지 않고 들어온 물만 퍼내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죄의 길들려진 사람을 고치려는 것은 마치 에디오피아인의 검은 피부를 백색으로 변하게 하고, 표범이 그 반점을 없이하려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e. 아담의 타락
핫지(A.A. Hodge)의 “인류 타락론”- 새로 출생한 자는 미발육의 영아로 태어난다. 그런데 그 한 영아에게 직접 공평한 시험을 부과하신다는 것은 일의 성질상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류의 수호자로서 또는 인류의 최선의 이익을 위하여 아담을 대리자(혈육적 자손 각 개인의 대표자)로 하여, 최선의 환경 아래에서 전 인류에게 시험을 부과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더불어 ‘행위언약’을 맺으셨다. 즉 완전한 복종(행위)을 조건으로 한 영원한 생명의 계약을 아담 및 그가 대표하는 모든 인류와 맺으셨다. 복종하게 되면 영 원한 생명이 보상이었고 불순종은 사망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 약속된 보상인 영원한 생명은 아담이 창조시에 받았던 것보다 더 큰 것을 포함하는 은혜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면 아담을 대표로 하는 전인류는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거룩함과 행복의 상태로 올라갔을 것이다.
아담은 마귀에게 직접 유혹을 받아 타락한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한 후에 스스로 결정하여 죄를 범한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충분한 의식가운데 자신의 아내의 불순종 행위를 같이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행동은 실제에 있어서 임의적이요 도전적인 반역이니 이로써 그는 공공연하게 하나님 대신 악마에게 충성하기로 한 것이다.
f. 대표의 원리
① 인간은 대표의 원리를 잘 알고 있다. 국민들은 그들의 대표자 안에서 행동한다.(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군수, 군의원, 면장) 그래서 악한 임금이나 대통령을 가지면 국민전체가 고통을 받는다. 가장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부모는 그 자녀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표자적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② 찰스 핫지 - 이 대표의 원리는 성경 전체에 가득차 있다. 아담의 죄악이 그의 후손에게까지 전가된다고 하는 교리는 고립된 교리가 아니다. 출 34:6-7 “아비의 악을 자녀의 삼, 사대까지 보응하시겠다” 가나안에 선고된 노아의 저주가 후손에게 이르렀다. 에서가 판 장사 기업은 후손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성약에서 배제되었다. 모암과 암몬, 다단과 아비람, 아간, 다윗의 집에 칼이 영영히 떠나지 않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의 후손들까지 위한 것이다. 롬 5:19 “한 사람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③ 영아들이 병으로 앓거나 죽는 일이 있음을 많이 본다. 이것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셔서 무죄한 자를 벌하신 것이든지, 아니면 이 영아들이 죄를 지었든지 이 둘 중 하나인데, 그러면 이 영아가 어떻게 범죄하였는가? 그에 대한 바른 설명은 그들이 아담 안에서 범죄 하였다는 것밖에 없다.
④ 댑니(R.L. Dabney) - 하나님을 성약의 머리인 아담에게 가장 공평하고도 호의적인 시험을 부과하신 자로 믿는 교리와 아무 시험도 없이 더구나 태어나기도 전에 인간을 정죄하신 자로 믿는 교리 중 어느 것이 하나님께 더 영광을 돌리는 교리인지 판단해 보라. (Theology, p.330)
g. 성경 구절
창 6:5 “사람의 악함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뿐이라”
렘 17:9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롬 3: 10-18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 …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마 7:17-18 “나쁜 열매가 좋은 열매 못 맺는다”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롬 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된다.”
요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h. 예화
칼빈, 익사 - 3,000피트가 넘는 마리아나 해협의 맨 밑바닥에 빠져 익사
칼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떨어진 자
알미니안- 3층에서 떨어져 갈빗대 3개 부러졌으나 생명은 살아 있다.
칼빈 - 뿌리가 뽑힌 나무
(2) Unconditional Election
a. 선택이란?
선택의 교리는 총괄적인 예정론의 특수한 적용 즉 죄인 구원의 문제에 적용된 예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이란 절대자이시며 도덕적 제일 위이신 하나님의 행위이므로 그것은 곧 그가 구원하시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영원불변하고도 유효한 결정임을 보여준다.
작정(Foreodination) -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은 이것으로 전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작정하신다.
예정(Predestination) - 작정의 일부로서 인간의 영원한 운명 즉, 천국과 지옥으로 선택(election)과 유기(abandon, probation)하는 것을 말한다.
b.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또한 그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을 얻도록 예정되고 어떤 자들은 영벌을 받도록 예정되었다. 이렇게 예정된 천사들과 사람들은 정확 불변적으로 계획되고 그 수효는 너무나 확정적이고 결정적이어서 조금도 가감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의 영원 불변하신 목적과 오묘하신 계획과 기쁘신 뜻대로 영생하기로 예정된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으니 이 선택은 피조자 속에 예견되는 신앙, 또는 선행, 도는 신행(新行)의 견인(堅忍) 기타 어떤 조건이나 이유로 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나온 일이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은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와 찬송을 기리기 위함이다.
c. 알미니안
① 조건적 선택, 예지예정,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을 자를 미리 아셨고, 그 예지의 근거로 신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선택하신다.
② 그들은 중생이전에도 선을 행할 능력이 충분하므로 성령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예수님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③ 인간이 먼저 선택하고 나중에 하나님이 인간을 선택한다는 것.
④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 선이나 악 또는 그리스도를 선택할 자유
⑤ 칼빈은 노예의지 - 인간은 자유하며(100%) 다만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행하는 자유가 있고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에 단 한가지도 거슬리지 않으신다.
d. 선택의 종류
① 개인적 선택
성경은 선택이 개인의 미덕과는 관계없이 이미 과거에 있는 일로서 전혀 주권적 행위임을 시사한다. 롬 9:11-13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② 민족적 선택
a. 하나님은 분명히 어떤 민족(유대민족)을 택하여 타민족보다 훨씬 큰 영적, 지상적 축복을 받게 하신다. 암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으니”
신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선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은혜로 선택하심 -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7-8)
b. 구라파 선교 - 바울은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성령께서 마게도냐로 가게 하심.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복음을 받을 특권을 세계의 한 지역에는 주시고 다른 지역에는 주시지 않으셨다. 만일 바울이 아시아로 갔었으면 아시아에 있는 티벳이 구미 제국보다 먼저 문명화 되었을 것이다. 복음이 구미에 먼저 확장되고 아세아 주는 흑암 가운데 방임되었던 사실은 전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었다.
③ 외부적 수단에 대한 선택
복음을 듣고 읽는 것과 또한 하나님의 백성과 사귀며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건설되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선택이다. 아이가 부한 나라, 부한 가정환경, 축복의 가정에 성장하도록 하는 은혜의 선택.
④ 천직에 대한 선택
혹은 정치가가 되게 하고, 의사, 변호사, 농부, 음악가, 공인이 되게 하는 특별한 재능과 개인적 미, 지능, 성향 등의 품성이다. 이것은 인간의 의욕을 불문하고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부여하신 것이다.
e. 알미니안
알미니안파는 제일 형의 선택은 부인하고, 제이, 제삼, 제사 형의 선택은 인정하는데 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외적 조건들이 그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적어도 복음을 듣지 못할 환경에 처한 사람의 운명은 십중팔구 멸망될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f. 커닝행(W. Cunningham) - 외부적 특권과 구원을 주시는 은혜는 하나님의 세계 통치속에 세워져 있는 불변의 관계가 있다. 전자의 부인은 후자의 부인이다. 우리는 성경의 대의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 행사의 결과로 구속적 은혜를 받을만한 방편을 얻지 못하면 동시에 믿어 구원을 얻게 되는 기회와 능력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확증할 수 있다. (Historical TheologyⅡ, Ⅰ. p.467)
g. 바울 - 반대론자들에게
롬 9:19-20 “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지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겟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러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h. 성경 구절
롬 8:29-30 - These five golden links(워필드)
“하나님이 미리 아신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
요 6:37, 39 -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
요 15:16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행 13:48 -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알미니안의 선두주자인 유니테리안주의 와 소시너스는 “믿는자는 다 영생을 주기로 작정되더라”로 번역함
엡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롬 8:29, 30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 미리 정하셨으니 ...”
살전1:1-10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딤후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3) Limited Atonement
a. 제한속죄란?
그리스도께서 전인류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바치셨는가, 아니면 선택한 자들만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셨는가 하는 점이다. 즉 그리스도의 희생의 목적은 전 인류를 다 구원하시기 위함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사람들만 구원하시기 위함인가 하는 점이다. 알미니안주의자는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하고, 칼빈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한다.
“제한 속죄”라는 용어보다 “제한 구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그 뜻이 명료하다.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서 - “…택함받은 백성 외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으며 효력있는 부르심을 입고 의롭다 하심을 얻으며 양자가 되어 성결함을 받아 구원될 자가 한 사람도 없느니라”
b. 그리스도의 속죄에 무한한 가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속죄의 가치와 능력 어떤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전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었다면 전 인류가 구원을 받을 만큼 무한한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제한되는 것이다.
c. 둘 다 제한한다.
알미니안이나 칼빈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분명 제한한다. 칼빈주의자들은 속죄의 범위를 제한하여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알미니안파는 속죄의 능력을 제한하여 그리스도의 속죄 그것만으로는 실제로 아무도 구원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칼빈주의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양적으로 제한하나, 알미니안주의는 질적으로 제한한다.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그 귀한 보혈을 흘렸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말하면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d. 찰스 핫지
아담의 죄는 단순히 모든 인간에 대한 유죄 선고를 가능케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실제적 유죄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의는 단순히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능케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위하여 죽으신 실제적 구원을 확실케 하신 것이다.
e. 알미니안의 속죄 성질
선택된 자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할 수 있는 그들의 권리를 행사한다면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겪으신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은 단 한 사람도 구원치 못할 수도 있으며, 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이들이 영원히 멸망당할 수도 있으며, 그들을 위하여 준비된 천국의 유업을 받을 수도 없으며, 하나님 자신은 그의 구속사역에 있어서 완전한 실패하실 수도 있다는 말이다.
f. 속전(보속)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지, ‘모든 사람들을 위해’라고 하지 않음을 유의하라.
속전은 그것이 지불되고 승인되었을 때, 위하여 지불된 자들을 필연적으로 자유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이 피탁자들만이 아닌 전인류를 위한 것이라면 그 공로는 전인류에 적용되어 아무도 영벌을 받지 말아야 한다.
예) 조폭마누라 - 명계남이 양아치와 give(문서)-take(신은경과 부하들)
g. 그리스도 희생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만일 그리스도의 죽음이 전인류를 구원할 의도였다면 사람들 중에 멸망하는 자들이 많이 있음이 어찜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신 능력이 모자라시든지 혹은 그 계획대로 실행것을 원치 않으심이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목적은 사변적이며 실패할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전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기로 작정하셨으나 후에 그 계획이 성취되지 못할 것을 아시고, 믿고 회개할 것이라고 예견된 자만을 선택하셨다 말한다. 하나님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의도하시며 또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은 전적으로 그에게 의존하는 존재인 피조자의 결의와 행동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일을 하실 리가 없다. 고로 우리는 멸망받을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저들의 구원을 목적하시지도 않으시며 성취하시려고 수단을 강구하시지도 않으신다는 말할 수 있다.
h. 하나님의 예지론으로 논증
하나님의 마음은 무한하시며 그의 지혜는 완전하시지 않은가? 하나님은 구원얻을 자가 누구인지를 예지하시기 때문에 멸망할 자가 누구인지도 예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 멸망이 예견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칼빈의 말처럼 “결코 돌아오지 않으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는 자를 초대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지를 인정하면서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을 위해 죽으셨다고 주장하는 자는 하나님을 어리석은 자로 만들뿐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자이다.
i. 커닝행 - 인류 전반에 미치는 은총
특정적 구속이나 제한 속죄를 주장하는 자는 전인류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으로 말미암은 중요한 은택이 전인류, 심지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까지도 미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속적이며 부대적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을 때 벌써 그에게 예견된 것이었고 전인류가 그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것도 그의 계획중에 있었다. 이 축복은 그리스도의 중보 즉 그의 수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내려진 축복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Historical TheologyⅡ, p.333.)
j. 성경구절
(1) 보편 속죄를 의미하는 듯한 구절 (알미니안)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겔 33:11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마 11: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계 22:17 “...듣는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자도 오라 할 것이요...”
요 2;2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죄를 대신하셨다고 말하는 성구
요 4:42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주이심
고후 5:14-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딤전 2:6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버린 바 되셨다.
(2) 제한 속죄를 의미하는 구절
자기 백성(마1:21), 자기 양(요10:15), 자기친구(요 15:13), 교회(행 20:28), 신부(엡 5:25)
요 10:15, 26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너희가 나의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 하도다”
롬 9:13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암 3:2 -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 이 둘 성경에 있으니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과 구원하시는 방법을 깨달을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3) 답변
성경이 종종 세상 또는 모든 사람이란 용어를 함축되고 제한된 의미로 사용
예1) 배가 파선됐을 때 모든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할때, 배안의 사람이지 세상 모든 사람은 아니다.
예2) 누가가 가이사가 명하여 “천하”로 다 호적하라
요 12:22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이때 모든 사람은 세상모든 사람이 아니다.
(4) 복음 전파에 방해
전도자가 청중에게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다”라고 말할 수 없으면 복음 전파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 스펄젼 - 모든 열방과 족속과 사회 속에 자기 백성을 두고 계시며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의 죄를 제거시켰다고 생각하면 복음전파에 힘이 된다.
- 모든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전도자 부담이 너무 크다.
- 우리가 해야 할 의미는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 전부이다.
- 그리스도의 속죄는 실제적으로 택자들의 죄를 해결하였기 때문에 택자들 편에서 응답하는데 실수 가 있을 수 없다.
- 그러므로 제한속죄는 복음의 방해가 될 수 없다.
(4) Irresistible(Efficacious) Grace
a.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무릇 영생하기로 예정된 자들은 작정하시는 때에 말씀과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 또한 저희의 마음을 밝히사 하나님의 도(道)를 때달아 저희의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유순한 마음을 얻게 하시며 저희의 뜻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저희를 세워 모든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시며 그리스도에게 유효하게 나아가게 하신다. 이것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기꺼운 마음으로 자롭게 나아가는 것이다. 이 유효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으신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이니 반드시 성령을 힘입어 새롭게 된 후에야 이 부르심에 응하게 된다.
b. 소요리문답서
유효적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써 그 일로 인하여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밝히사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며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권하사 복음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능히 받게 하시는 것이다.
c. 유효적 은혜란?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호의이다. 불가항력적이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택하실 때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사 그들을 사랑 받기 싫어하는 자리로부터 변화시키실 때 아무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d. 중생의 필연성
(1) 펠라기안주의(Pelagianism)
a. 5세기 어거스틴 시대의 이단
b. 인간이 전혀 부패한 것이 아니요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부패하지가 않다고 함.
c. 인간이 선을 행하는데 도와줄 성령이나 성령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필요 없다.
(2) 반 펠라기안주의(Semi-Pelagianism)
a. 칼빈주의와 펠라기안주의 사이의 중간입장으로 반펠라기안주의 또는 알미니안주의
b. 반펠라기안주의는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도 무죄할 수 있다는 펠라기안주의 반대하고,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여 성령의 불가항력적인 사역없이는 단 한가지도 선행을 할 수 없다는 칼빈주의를 싫어함.
c. 절충 - 인간은 약간의 선이 남아 있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약간의 능력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자연인은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불가항력적 방법으로 은혜를 주시지 않고 협력한다.
d. 하나님은 당신의 결코 침범하실 수 없는 영역(당신의 의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도록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당신만이 해야할 일입니다.
e. 인간이 먼저 회개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중생케 하신다.
(3) 비판
a. 저들에게 궁극적 결정자는 인간이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용납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그에 관해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다.
b. 영혼의 중생은 우리 안에서 행해지는 어떤 일이지 우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어떤 행위는 아니다. 이것은 영적 사망에서 영적 생명으로 이르는 돌연적인 변화이다. 우리는 이것을 의식조차 못하니 이것은 의식작용 보다 더 깊은 곳에서 이루어진다.(성령이 임으로 불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c. 나사로 살리심 - 나사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라 피동적으로 무덤에서 나온 것처럼 중생받은 영혼도 단순히 피동적으로 성령의 사역에 응할 뿐이다.
e. 초자연적 변화(중생)
실명된 눈은 아무리 많은 빛이나 강도가 센 빛을 비춘다해도 그 시력을 회복할 수 없듯이 죄에 죽은 영혼도 복음의 진리를 아무리 많이 들어봐야 그로 인해 영적 시력을 회복할 수는 없다. 의사의 수술이나 기적으로 시력을 회복하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것처럼 영혼도 중생하기 전에는 결코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다 없다.
하나님은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으셨다. 최초로 인간 아담이 의로운 자이면서도 자력으로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면 타락후의 인간이 어떻게 자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원문제를 인간에게 맡겨 두시지 않고 자기 수중으로 회수하신 것이다.
f. 알미니안의 결점
알미니안의 큰 결점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의 필연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중생이란 각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점진적인 변화로서 도덕적 신념이나 진리의 일반적 힘에 이끌려서 죄인의 마음의 의도가 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죄인인 인간이 자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며 인간과 그리스도는 구원의 협력자가 된다.
g. 톱레이디(Toplady)
알미니안주의의 구원관은 전능자를 하나의 무모한 의욕과 시험과 노고를 하는 자로 만드는 교리이다. 이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죄인을 다 구원하시려다가 죄인들에게 방해를 받고 거듭 실패하시는 분이다. 성령은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자유의지를 뒤쫓다가 패전한 대장이나 실패한 정치가처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못한 채 면목없는 패주(敗走)를 하던가 아니면 굴욕적인 파면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h. 알미니안주의 견해
(1) 헨리 C. 쉘돈(Henry C. Sheldon)
우리의 논점은 영생을 위해 개개인의 배타적이며 무조건적으로 선택한다는 주장에 대항하여 구원의 기회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2) 모라소니안 신조
성부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차별이나 예외 규정 또는 편애없이 모든 곳의 모든 인간에게 예수의 희생을 선물로 주신 것이요, 성자 하나님의 사랑은 전세계의 죄를 위하여 진정한 화해의 제물로 자신을 주신 일이요, 성령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사람의 영혼에 적용하는 그의 인격적, 계속적 사역이다.
→ 결론은 ① 모든 인간이 똑같이 구원을 얻든지 아니면 ②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하시는 모든 일은 아무 소용이 없어서 결국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가 자기를 구원하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던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3) 장키우스(Zanchius)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일을 행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속죄로 용납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자신의 자유의지와 선행으로 구원얻을 수 있다고 말하니 이것은 바로 우리가 날 때부터의 자연적 능력으로 현세에서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4) 위필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는 주 하나님이신가 혹은 우리들 자신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 지 구원해주시는가 혹은 단순히 구원의 길만 열어주고는 구원얻고 못얻는 것은 완전히 우리의 선택에 맡기시는가? 이것이 기독교냐 아니면 자력구원주의냐의 분기점이 되는 질문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믿는 자들만이 복음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The Plan of Salavtion, p.108)
i. 인간의 자유행동력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유효적 은혜교리는 “인간이 그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하나님에게 강요되어 구원얻게 된다는 뜻으로 결국 인간을 기계로 전락시킨 교리이다”라고 반대론자들은 말한다.
“불가항력적”이란 말은 어떤 강합적인 능력이 인간에게 역사함으로써 인간의 의지나 욕구에 반하여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는 인상을 주어 좀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기꺼이 그렇게 할 마음을 갖게 되어 임의적으로 회심에 이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제로 구원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계시를 받아 하나님, 자신, 그리고 자신의 죄에 관한 모든 것들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j. 일반은총
피택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특별 은혜와는 다리 “일반은총”이란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주시는 성령의 일반적 감화가 있다. 하나님은 선한자와 악한 자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시며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비를 내리신다. 즉, 건강, 물질적 번영, 일반적 지능, 예술적 재능, 상업 및 발명의 재능 등이 가장 일반적인 축복이다.
일반적으로 택함받지 못한 자들이 택함을 받은 자들보다 여러면에서 축복을 훨씬 더 풍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그들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이다.
일반은총은 죄의 원천을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회심은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휼리트(Hewlitt) 박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나 지축을 진동하는 뇌성으로 두덤에 있는 시체가 소생될 수 있는가?
사무엘 G. 크레익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려하지 않는 비기독교적인 교육이나 문화는 인간을 영리하게는 만들지만 인간의 성격을 변화시킬 능력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대접의 밖은 깨끗케 할 수 있으나 대접안은 깨끗케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옛 유대인의 속담에 쓴 열매를 맺는 나무를 캐다가 에덴동산에 옮겨 심고 에덴동산의 물을 주고 천사 가브리엘로 하여금 지키게 해보라. 그래도 그 나무는 여전히 쓴 열매를 맺을 것이다.
k. 성경 구절
요 6:37, 44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여기서 “이끈다” 말은 그물로 고기를 잡을 때 쓰는 말
요 10:16 “이 우리에 들질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 할 터이니...”
아직 우리에 속해 있지 않는 자들은 성령의 불가항력적인 역사로 이끈다
(5) Perseverance of the Saints
a.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하나님이 사랑하기로 하여 유효적으로 부르시고 성령으로 깨끗하게 하신 자들은 전적으로나 궁극적으로 은혜의 상태에서 타락될 수 없다. 오히려 최후까지 보존되어 영원히 구원얻게 된다.
b. 견인의 의미
일단 참 그리스도인이 되면 두 번 다시 아주 타락하여 멸망하는 일은 없고, 비록 일시적으로 죄에 빠져 들어 가는 일이 있다해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서 반드시 구원 얻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 도피한 자들은 구원에 있어서 절대 안전하다. 홍수나 죄악과 사탄의 권세가 역습 한다고 해도 그들은 멸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견인하여 창세부터 그들을 위해 예비된 하늘의 집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 그 누구도 선택된 자들을 하나님의 수중에서 빼앗을 수는 없다.
중생할 때 일어나는 영혼에 부여된 새생명은 불멸한 것이다. 이 변화를 역전시켜 새 생명을 잃게 할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님의 초자연적 행동 밖에는 없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천부와의 부자 관계를 상실할 수 없는 것은 마치 육신의 자녀가 그 부모와의 관계를 상실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c. 성도의 견인은 인간의 선행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있다.
(1) 바울
바울은 신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가르친다.(롬6:14) 우리가 만일 구원의 적은 한 부분이라도 자기 행위로 획득해보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다”(갈5:3)
하나님의 그 백성에 대한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사랑이 그들의 궁극적 구원에 대한 보증이다. 그 사랑은 받는 대상에게 어떤 매력을 근거로 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여기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회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2) 로버트 L. 댑니(Robert L. Dabney)
“믿는 자를 유효적으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이요 과분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 불변인 것처럼 결과 또한 불변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그 유효적 은혜를 죄인에게 주실 때 그 죄인이 전적으로 부패한 자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거스리는 자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따라서 그가 회심한 후에 다시 망언의 죄, 불신실의 죄를 범한다고 해서 그것이 원인이 되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그의 마음을 바꾸시어 주시던 은혜를 철회하실 수도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Theology, p.690)
(3) 찰스 핫지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 비교할 수 있다. 어머니는 그녀의 자녀가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이 그녀로 하여금 자녀를 사랑할만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게 할 것이다. (Systematic TheologyⅢ, p.112)
(4) 루터
하나님의 예정은 견고하고 확실하므로 그 예정을 필연적 결과도 변동될 수 없는 것으로 반드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너무 연약하여 만일 구원이 우리 손에 맡겨진다면 거의 아무도, 아니 전혀 아무도 구원얻지 못하고 오히려 사탄에 사로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d. 참 신자도 일시적으로 타락하여 범죄할 수 있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신자는 한시라도 범죄하는 일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슬프게도 신자는 너무 자주 죄를 범한다. 최선의 신자라도 일시적으로 타락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아주 타락하여 멸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극히 약한 신자에게조차도 그의 견인의 은혜를 주셔서 그를 궁극적 배교로부터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다윗, 베드로의 일시적 타락)
스트롱은 크리스천은 등산하는 사람이 비록 이타끔씩 미끄러져 내려오지만 항상 정상을 향하여 다시 올라가는 것과 같으나 중생치 못한 자는 아래를 향하여 항상 미끄러져 내려 가기만 한다.
스펄젼은 그리스도인은 배 위에 있는 사람이 때때로 갑판 위로 굴로 떨어지기는 하지만 바다에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e. 외부적 고백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보증은 아니다.
(1) 고후 11:14 “사탄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 사탄이 종이 가장 그럴듯하게 거룩하고 헌신적인 것 같으며 경건하고 열심히 의를 행하는 자처럼 자신을 변장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외부적인 고백이 반드시 그 영혼이 구원되었음을 보증해 주는 표는 아니다.
(2)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
(3) 막 7:6-7 “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4) 요일 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한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5) 마 7:22-23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6) 막 6:20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었다”
이런 자들은 얼마동안은 택함받은 신자들을 감쪽깥이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은 전혀 중생의 내적 체험이 없다. 단순히 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유형교회 속한 모든 교인이 무형교회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f. 알미니안주의의 불안감
자유의지를 고수하면서 참 신자가 구원의 은혜에서 아주 타락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알미니안 구조는 아무리 참 신자라 할지라도 현세에서 결코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현재의 구원’에 대한 보증은 가질 수 있으나 궁극적 구원은 다만 ‘희망’ 일 뿐이다.
즉 그들의 논리는 될 수 있는데로 빨리 세상을 떠나서 천국의 기업을 확보하는 일이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교우들이 타락하는 실례를 보면서 구태여 이 세상에 더 머물며 얼마되지 않는 나그네 생활을 위해 그의 영원한 구원을 내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의혹의 생태란 불행한 상태이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다는 보증이야말로 크리스천 생활에 최대의 위안중 하나이다.
g. 배교에 대한 성경의 경고 목적
(1)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진해서 하나님과 협력하게 하려는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겸손하고 각성하며 근면케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마치 부모가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타이르는 것과 같다.
(2) 어떤 행위의 의무를 우리에게 명하실 때는 반드시 우리에게 그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것이다. “내 신을 너희 안에 두어 너희로 내 법을 행하게 하리라”
(3) 이 경고는 신자에게 더 큰 믿음과 기도를 위한 자극제가 된다.
(4)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보다는 의무를, 자신의 힘보다는 약함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5) 성결의 필요성과 하나님께 대한 의존을 확실히 알게 하심이다.
(6) 불신자로 하여금 변명의 여지가 없게 하기 위함이다.
h. 성경구절
롬 8:38, 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
요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암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10: 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으 수 없느니라”
벧전 1:4,5 “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고후 4:8,9,14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주 예수를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렘 32: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히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말 3:6 “나 주 여호와는 변역치 아니 하나니”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유기(遺棄, reprobation)
1) 유기의 정의
(1) 칼빈
모든 사람은 동일한 운명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어떤 자들에게는 영생이 어떤 자들에게는 영벌이 미리 정해졌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목적 중 어느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 창조된 모든 인간은 생명 아니면 죽음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우리는 말하는 것이다. 그 반대인 유기가 없는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2) 루터
하나님께서 그의 공평한 의지로서 어떤 자들은 내버려두어 강팍하게 하시고 정죄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합리적인 성질과 현저하게 상반되는 것이다. 왜 어떤 자들은 구원하시고, 어떤 이는 멸망 당하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가 하시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고 한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전자는 구원하시고 후자는 멸망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라고 말한다.
(3) 벌콥
유기는 하나님이 그의 특별한 은혜의 작용으로 어떤 사람들을 지나가시고(pass by), 그들을 자기들의 죄에 대하여 벌하심으로 그의 공의를 드러내시기로 작정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으로 정의한다.
유기의 두 가지 요소
① preterition - 어떤 사람을 지나가시는 결정
② condemnation - 그들의 죄를 처벌하시는 결정
(4) 웨스터 민스터
하나님은 피조물에 대한 그의 주권적 능력의 영광을 위하여 그가 기쁘신 대로 긍휼을 베푸시기도 하고 억제하시기도 하는 측량할 수 없는 그의 의지의 목적에 다라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양케 하기 위해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을 간과(preterition)하시어 그들의 죄로 인하여 치욕과 진노를 받도록 정하신 것을 옳게 여기셨다.
2) 유기의 증거
유기론은 상황의 논리로부터 자연스럽게 추론된다. 선택의 작정은 필연적으로 유기의 작정을 함축한다. 만약 무한한 지식을 소유하신 전지하신 하나님이 영원히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의도하셨다면, 그는 사실상 또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기로 의도하셨다. 만약 하나님이 어떤 이들을 선택하셨다면, 그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하여 다른 사람들을 거절하셨다.
칼빈은 그의 친구들과 일부 동료 개혁자들까지도 그의 유기교리를 완화해 줄 것을 권고받았을 때, 선“택 자체가 유기와 대치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너무도 무지하고 유치한 것”이다고 말했다.(기독교 강요 3. 21. 1)
3) 유기의 성격(Fred H. Klooster) 칼빈의 견해
(1) 유기는 하나님의 작정 사역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계약에 의해 각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상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미리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사람들은 각각 어느 한편의 결말을 향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혹은 생명으로, 혹은 죽음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3. 21. 5) 따라서 성경이 밝히 보여주는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찍이 그의 영원불변하신 계획에 의해 어떤이는 멸망으로 결정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3. 21. 7)
그러므로 야곱은 에서보다 나은 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택함을 받아 버림받은 에서와 구별되었던 것이다.(3. 21. 7)
로마서 9:22-23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관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오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2) 유기는 특정적이다.
선택과 유기는 특정적이고 개인적이다. 야곱으로부터 구별된 에서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역시 그러하다. 하나님의 유기 작정이 분명히 개개인들과 관련된다 할지라도 칼빈은 그 유기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결코 어떤 개인을 들어 그가 결정적으로 유기된 자인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된다.
(3) 유기 교리는 원죄교리를 근거로 한다.
죄많고 반역적인 피조자의 세계에서, 아무도 구원얻을 만한 자격이 없다. 모든 사람을 다 간과하실 수 있었지만 은혜를 베푸사 어떤 자를 선택하시어 구원하신 것이다. 유기된 자들의 대한 은혜의 거절은 그들의 멸망에 대한 소극적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의사의 부재가 병자의 죽음에 대한 이유가 되긴 하지만 그 근본 원인은 아닌 것과 같다.(뵈트너)
4) 유기의 원인(칼빈)
(1) 유기의 원인은 죄가 아니다.
칼빈은 죄악된 행위가 하나님의 영원한 유기 작정의 원인, 혹은 근거가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주당하였다. 근거로 로마서 9:13 “야곱이 선행으로 인한 아무 공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 안에 받아들여진 것과 같이, 에서는 아직 아무 범죄로 인해 더러워진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움을 받았다”
칼빈은 이를 통해, 그들 두 사람이 아직 선과 악도 나타내기 전에 하나는 택함을 받고 아나는 거절당했다는 점을 유달리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예정의 근거가 인간의 행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다.
(2) 유기의 원인은 죄의 예지가 아니다.
유기의 원인이 잎으로 그가 죄를 행할 것을 미리 하나님께서 예지하신 것이라는 주장에, 칼빈은 성경적인 근거에 의해 그것을 거부하였다.
잠언 16:4 “여호와께서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The Lord works out everything for his own ends, even the wicked for a day of disaster)
칼빈은 “보라 모든 일이 처분권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므로, 구원이냐 죽음이냐의 결정권이 그의 권세 아래 있으므로, 그는 그의 계획과 뜻을 따라 사람들 중에 어떤이는 모태에서부터 확실한 죽음에 내맡기시고, 그들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도록 정하신 것이다. …… 생명과 죽음은 하나님의 예지의 행위라기보다는 그의 의지의 행위인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미리 알고 계셨다. 즉 그는 그것을 예지하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정하셨다. 그러므로 예지는 하나님의 유기 작정의 원인으로 간주될 수 없다.(3. 23. 6)
(3) 유기의 원인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이다.
만일 유기 작정의 근거가 유기된 자들의 죄악된 행위, 혹은 그 행위들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에 있지 않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칼빈은 유기된 자들도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 내맡겨진 것이라고 하였다.(3. 22. 11)
롬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게 하시느니라”
칼빈은 “하나님은 자기의 눈에서 간과(看過, 볼간, 지날과)된 자들을 유기(遺棄, 끼칠유, 버릴기)하시는데 그가 이와 같이 하심은 오직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예정하신 기업에서 그들을 제외시키려고 하시는 그의 뜻 이외는 다른 원인이 없다”
칼빈은 유기의 진정한 원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의 주권적인 뜻 이외에 다른 어떤 원인도 제시될 수 없을 것이다.
5) 알미니안의 대답의 궁색
여러 시대를 통하여 인류의 대부분이 은혜의 외적 수단조차 받지 못한채 그저 내어 버려져 왔음을 우리는 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면 이렇게 복음 듣지 못하고 망하는 자들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알미니안파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그들의 전체계를 붕괴시키는 난제요 또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난제에 봉착하고 만다.
커닝햄 “실제로 인류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유기되어왔다. 아니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하 알 수 있는 길로 나아가려 해도 나아갈 수 없는 장애물과 같은 환경속에 처해 왔었다. 따라서 칼빈주의자들은 알미니안의 보편은혜와 보편구속의 교리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옹호해주는 강력한 논증으로 간주해 왔다.”
예지예정을 주장하는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이 필연코 죄인으로 살다가 복음을 배척하고 회개하지 않고 지옥에 갈 줄을 예시하시면서 왜 그들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하나님이 열심히 그들을 천국으로 보내려고 함에도 멸망을 자청하여 지옥에 갈 사람들을 예지하면서도 일부러 그들을 창조하셨다고 말해야 한다. 또 하나님은 그들을 하늘나라로 들여보내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안되므로 영원히 슬퍼하신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6) 유기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택함을 맏지 못한 자들에 대한 정죄는 본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를 인간과 천사들 앞에서 영원히 나타내기 위해 기도(企圖)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영원적 현현(顯現)이다.
택자에게도 부수적인 목적이 있다.
① 자신들도 역시 형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배워 알게 한다.
② 그들의 받은 축복에 강력한 감사의 동기를 제공
③ 순결한 삶을 살려고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됨
④ 천국 기업을 받은 자들로서 성도간의 더욱 친밀한 교제를 갖게 함
⑤ 현세와 내세에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함
7) 성경구절
잠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신다. ”
벧전 2: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유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
벧후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없는 짐승 같아서 …”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3. 타락후 선택설과 타락전 선택설
1) 논쟁의 기원
(1) 펠라기우스
a. 사람을 창조하려는 작정
b.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모든 이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충분한 은혜를 부여케 하려는 작정
c. 예지된 신앙의 근거로, 선택과 유기의 작정
(2) 어거스틴
a. 창조
b. 타락의 허용
c. 선택의 작정
선택과 유기가 타락한 인간성 전제. 어거스틴은 타락후 선택설을 애호하였다.
2) 정확한 논쟁점(벌콥)
(1) 데이크(Dijk) 박사
단순히 인간의 타락도 역시 신적인 작정속에 포함되어 있었는지에 관한 문제에 관련된 차이점이었다. 인간의 타락을 가져왔던 인간의 첫범죄가 예정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단순한 신적 예지의 대상이었는가? 타락 전 선택설은 전자, 타락 후 선택설은 후자를 주장하였다.
(2) 소극적 논쟁점
a. 인간 타락이 작정이냐, 신적 예지인가
타락이 작정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하여 예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제 개혁파 신학 노선보다는 알미니우스주의자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타락전 선택설과 타탁후 선택설은 둘 다, 타락이 신적 작정에 포함되어 있으며 간과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동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b. 죄에 작정이 허용적인가
a) 타락전 선택론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죄에 관한 작정이 허용적이나, 그것이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을 확실하게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죄에 작정의 적극적인 요소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자초한다.
b) 타락후 선택론자들은 죄가 하나님의 작정에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하나, 작정이 죄에 관계되는 한, 그것이 적극적이보다 허용적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작정의 허용적인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스스로 알미니우스주의라는 비난을 자초한다.
c. 유기의 작정이 죄를 고려하는가
타락전 선택론자들은 폭군적인 하나님의 개념을 혐오하며, 어떤 이들의 간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의 행동이나, 유기의 이차적인 요소 즉 정죄는 공의의 행동이며, 분명히 죄를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주장한다.
논리적으로 간과가, 창조하고 타락하을 허용하는 작정보다 선행하고, 정죄는 이것에 뒤따른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타락전 선택론자들이 하나님이 유기의 작정에서 죄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적극적 차이
a. 예정의 범위
타락전 선택론자들은 예정의 작정속에, 창조되고 타락된 자가 아니라 창조되고 타락될 자로 나타난다.
타락후 선택론자들은 예정의 작정에서 이미 창조되고 타락된 자로 나타난다.
b. 작정의 논리적 순서
a) Supralapsarianism 타락전 선택론
= above or prior to the fall, double predestination, both election and probation
① 영생을 줄 자와 유기할 자를 미리 선택하시고
② 선택되고 유기될 자를 창조
③ 그들 모두의 타락을 허용
④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택자는 칭의, 유기된 자는 정죄
⑤ 적용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다
b) Infralapsarianism 타락후 선택론
= below or under to the fall, single predestination, only elction
① 창조
② 타락 허용
③ 선택
④ 그리스도
⑤ 성령
문제는 선택이 타락전에 이루어졌느냐 타락 후에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이다.
c) Post-Redemptionists (Sublapsarianinsm) 구속후 선택론
① 창조
② 타락 허용
③ 그리스도의 구속(보편구속)
④ 선택 (예지예정)
⑤ 성령
3) 타락전 선택설의 입장
(1) 지지하는 논증
a.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좀더 특별하게는 죄에 관계된 하나님의 주권성을 강조하는 성경의 모든 구절들에 호소한다.
a) 시11:1-7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b) 잠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c) 사10: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d) 렘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e) 마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f) 롬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9:19-21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특별히 토기장이의 비유를 강조한다. 창조시에 질그릇들의 성질을 결정하시는 그의 주권성을 강조하고 있다.
b. 예수님은 종종 자연을 비유
마 13:35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전부터 감수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c. 천사들에 예정
천사들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의 일이므로 타락전 선택설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어떤 천사들에게는 견인의 은혜를 허용하시고, 다른 천사들에게는 견인의 은혜를 거두시기로 작정하셨다. 그 작정을 의롭게 영광의 상태에서 전자의 확정과 후자의 영원한 멸망과 연결하시기로 작정하셨다.
(2) 반대 논증
a. 타락전 선택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만약 하나님이 직접적인 효율성에 의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도록 작정했다고 감히 말한다면 해결할 수 있으나, 어떤 타락전 선택론자들도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생각지 않고 단지 허용하기로 의도하셨다고 한다.
b. 인간은 신적인 작정에서 우선 ‘창조되고 타락될 자’로 나타난다. 작정들은 무엇보다도 단순한 가능성들, 즉 비존재적 실체들로 간주되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작정은 필연적으로 잠정적인 성격만을 가지므로 다른 작정이 곧 뒤따라야 한다. 창조하고 타락을 허용하는 작정과 선택과 유기의 작정.
→ 반론: 인간들의 실제적인 존재가 그들이 선택되고 유기될 때까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는 것이 사실인 동안에도 그들이 신적인 생각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c. 타락전 선택설은 유기자의 영원한 형벌을, 선택자의 영원한 구원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한다고 말하므로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든다.
그러나 작정이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들도록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낟.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로의 예정에 관하여 말하려는 것이지, 죄로의 예정을 말하지 않는다.
d. 유기의 작정이 선택의 작정과 아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주장은 반대되어야 한다. 죄가 유기의 작정에서 고려되지 않는 것은 거의 옳지 않다.
e. 타락전 선택론자의 체계로는 은혜와 중보자의 언약에 대한 훌륭한 교리가 해석 불가능하다. 언약과 중보자는 둘다 타락후 선택설로 생각될 수 있을 뿐이다. 중보자는 죄의 개입 이후에야 비로소 신적인 작정에 나타나며, 이것은 은혜 언약이 해석될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이다.
4) 타락후 선택설의 입장
(1) 지지하는 견해들
a. 선택의 대상들이 죄의 상태 가운데 있고,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연합 가운데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대상들로서 나타나고 있는 성경구절에 의존한다.
a) 마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b)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c)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d) 엡1:4-12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b. 이것은 타락전 선택설보다 덜 철학적이며 좀더 자연적이라는 사실을 주목하게 한다. 그것은 작정들의 실행에서의 역사적 순서와 조화를 이루는데, 그 순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 속에서의 순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온건하며, 진술상 덜 불쾌하며, 실제적인 삶의 요구들과 더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간주된다.
c. 댑니는 훨씬 균형잡힌 듯한 타락후 선택설의 체계가 실제로는 그 둘 가운데서 더 비논리적이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선택과 간과의 작정을 비실체들, 즉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조차도 단순한 가능성으로 밖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직 신적인 작정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언급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지적된다.
또한 타락전 선택설의 구성은 필연적으로 유기에서의 두 요소들, 즉 간과를 타락이전에, 정죄를 타락 이후에 놓음으로써 그것을 분리하는데 이점도 비논리적이다고 언급된다.
d. 개혁 교회들의 공식적인 표준에서 다른 견해를 정죄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타락후 선택설의 입장을 채택하였다. 도르트 신조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둘 다 타락후 선택설을 표명했다.
a) 도르트 회의
“세계의 기초를 놓으시기 전에 순전한 은혜로써 그의 뜻의 주권적인 기쁘신 뜻에 따라, 시원적 옳은 상태로부터 자신들의 잘못으로 죄와 타락에로 타락한 전인류 중에서 일정한 수의 사람들을, 영원전부터 택자들의 중보자와 머리로, 구원의 근거로 정해진 그리스도 안의 구원에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불변적 목적” 그러나 도르트 회의는 전택설을 정죄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였다.
b) 왜냐하면 상당한 신학자(Calvin, Beza, Piscator, Perkins)들이 다음과 같은 강력한 표현 “어떤 이들은 정죄되기 위해 창조되었다. 순수하게 보이는 이들도 유기되고 정죄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은 죄와 상관없이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죄짓는 사실을 의도하셨고, 그긋이 발생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을 부르심에 서는 신실하게 하지 않으신다.”
e. 뵈트너(L. Boettner)
무고한 인간 즉 죄인으로 생각되지 않는 인간이 사망과 영벌로 예정된다는 것은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인 성경적 신관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타락후 선택설은 하나님이 어떤 자를 멸망으로 정하시기 위해 창조하시느냐는 알미니안파의 이의 제기를 피할 수 있다. 어거스틴 이래로 선택교리를 주장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타락후 선택론자들이었다.
(2) 반대하는 의견들
a.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하나님과 죄의 관련성의 문제는 두 입장이 모두 다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b. 하나님이 죄를 의도하신 것이 아니고 허용하셨다고 주장할 때, 하나님이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단순히 인식만 함으로써, 타락이 그의 계획의 좌절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긍정적으로 대답하면 알미니안주의 진영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죄에 관한 작정을 허용적인 작정으로 언급하지만, 이 작정이 세상으로의 죄의 개입을 확실하게 하였다는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또한 왜 하나님이 죄를 허용하시기로 작정하였으며 그것을 분명히 했는가? 라는 질문에, 오직 신적인 선하신 기뻐하심만 말할 수 밖에 없으며, 이렇게 함으로 타락전 선택론자들과 완전히 일치하게 된다.
c. 타락후 선택설은 유기를 단순한 선하신 기뻐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 설명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실제로 유기론을 조건적인 작정으로 만들고 알미니우스 진영으로 나아간다. 신앙과 선행이 선택의 원인이 아닌 것과 같이, 더 이상 죄가 유기의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본질상 죄와 허물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가 타락전 선택론자들의 언어보다 더 부드럽게 들리지만, 또한 좀더 오해받기 쉽고 결국은 동일한 사상을 전달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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