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오지마을...함양 두지터마을
칠선계곡 깊숙이 숨어있는 마을
김종직은 그곳을 무릉도원이라 했다
용유담을 거쳐 칠선계곡으로
지리산 칠선계곡 깊숙이 몸을 숨긴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두지터'로 가는 길에 엄천강이 흘러내리며 만든 거대한 소(沼)가 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전설이 전해오는 용유담이다. 벼랑에 펼쳐진 기암괴석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신선들의 놀이터였다는 이야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천왕봉에서 발원하여 마폭포를 시작으로 칠선폭포 등 7개의 폭포와 선녀탕과 용소 등 33개의 소와 담(潭)으로 이루어진 칠선계곡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비경이지만, 지리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험난한 코스이기도 하다. 5백여 년 전 천왕봉 등정 길에 올랐던 김종직은 "닭과 소 등을 기르며 나무를 베어내고 밭을 일궈 벼와 기장, 콩과 삼을 심고 살면 바로 무릉도원"이라 했다.
'두지터'는 지형이 쌀뒤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옛날 가락국 마지막 왕이 피난와 국골에 진을 치면서 식량 창고로 이용 했다는 말도 전해온다. 국골 옆에 있는 '어름터'는 석빙고로 쓰였다 한다. 추성동에서 칠선계곡으로 가는 길목 두지터마을에는 옛날 화전민들이 잎담배를 말리기 위해 흙벽돌로 지은 건조장이 옛 흔적으로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6가구 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두지터에서 사람만나기가 쉽지 않다. 민박집도 생겼고 휴대폰까지 터지는 문명의 혜택이 있지만 그래도 오지다.
걸어서 오르는 '두지터' 가는 길
칠선계곡 초입에 있는 추성리의 지명은 옛날 가락국 마지막 왕이 이곳에다 성을 쌓고, 성의 이름을 추성이라 했다는데서 유래한다. '추성'이라고 하는 길조의 별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지명이 붙여졌다는 말도 전해온다.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할 때 가락국 마지막 왕이 군마를 이끌고 이곳에 들어와 훈련시키고 피난처로 이용했다는 성터와 높이가 10m나 되는 망을 보던 망석(望石)이 지금도 추성리에 남아있다.
마천면 추성마을은 마을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오지다. 여상열(63) 추성리 이장에게 미리 연락을 해두었으나 마을에 도착해 전화를 하니 주민 대부분이 마을 결혼식 잔치에 나가고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찾아 나설 수밖에.
예전보다 넓어진 마을길을 따라가면 칠선계곡의 우렁찬 물소리가 사계절 들리는 추성교가 있다. 한창 지리산을 오르내렸던 오래전 추성교 인근에는 작은 찻집이 있었다. 이상향을 좇아온 도회지 청년이 지리산에서 채취한 약초로 차를 끓여 주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이다. 지금은 그도 선녀(?)를 만나 떠나고 찻집은 민박집으로 변해 추억만 남아 있다.
추성교 인근에 주차하고 칠선계곡 두지터로 향했다. 두지터로 오르는 1.2km 길은 걷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한봉' 치고 산나물 채취하며 생활
두지터로 가는 들머리의 콘크리트길을 오르다 이른 아침부터 손님 맞을 준비하던 '산오름휴게소'에서 휴게소지기 곽상오(60) 씨가 귀한 차가 있다며 한잔하고 쉬어가라고 권했다. 휴게소 현관 앞 나무의자에 앉으니 건너편 산자락에 서암정사가 보인다. 곽 씨는 마천면 벽소령마을이 고향이다. 도회지 생활을 하다 5년 전 홀로 계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외가인 이곳에 정착했다.
부부가 '한봉'을 치고, 산나물도 채취하며 민박을 운영해보지만 생계가 어렵다고 한다. 자신만이 만들어 팔고 있다는 차를 한잔 내왔다. 벌집에 각종 약초를 넣어 만든 차라고 한다. 마당에 세워둔 '한봉' 벌통 2개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두지터 초입에 휴게소를 열고 있는 이종균(56) 씨는 진해가 고향인데 9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차량통행이 안되어 건축자재를 헬기로 운반해서 집을 짓다보니 건축비가 많이 들었다고 한다. 가끔 집이 있는 진해에 가기는 하지만 외로운 마음을 길손에게 토로한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각종 버섯을 박물관 유물 보관하듯이 유리 상자에 넣어두고 자랑했다. 이 씨가 건네는 진한 오미자차를 마시며 지리산의 기운을 느꼈다.
벌초 온 재종형제 옛추억 되새겨
9대째 추성동 마을에서 지리산에 기대어 사는 허상옥(56) 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결혼해서 살고 있다. 농사를 지으며 약초를 캐고 자연이 주는 만큼 받으며 살고 있다. 산속에 벌통을 놓아두었던 '한봉'이 병으로 전멸하다시피 했다며 하소연했다.
한 휴게소에서 칠선계곡 바람을 맞으며 망중한을 보내고 있는 청장년을 만났다. 6촌간이라는 김동근(50)·김진옥(37) 씨다. 고향에 벌초하러 왔다며 마음씨 고와 보이는 주인에게 1만 원을 건네며 막걸리를 청했다. 막걸리 두 병과 칠선계곡에서 기른 싱싱한 고추와 채소가 된장과 함께 나왔다. 막걸리 한 잔을 권하며 옛날 어릴 때 두지터 담배건조장에 장작불을 피우고 보초를 섰던 추억을 들려주었다. 나중에 추성동 마을로 이사를 했고, 지금은 객지에 살고 있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지게를 세워놓고, 작두로 풀을 썰고 있는 문창권(86) 어르신을 만났다. 한국전쟁 당시 포병부대 통신병으로 참전했다는 어르신은 참전용사 연금 20만 원으로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16살 때 해방을 맞은 어르신은 "그 때 해방이 되지 않았으면 만주로 갈려고 했다"며 윗세대가 겪은 우리의 현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부인 석기도(78) 씨와 스물한 살 때 결혼해 아들 셋을 낳고 평생을 지리산에 등을 대고 산다.
30년 세월에도 변함없는 약초꾼
두지터에 가면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명함에 '대한명인 자연가'라고 표기한 문상희(59) 씨다. 30여 년 전, 날짜도 잊어버린 어느 가을날 지리산을 종주하다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고 칠선계곡으로 내려왔다. 그 때 문 씨 초막에 와 있던 산행 후배를 우연히 만났고, 문 씨가 귀한 삼겹살에 곡주까지 대접해 주어 허기를 면했던 행복한 추억이 남아있다.
강산이 세 번 변한 세월이 흘렀건만 문 씨는 여전히 약초꾼이며, 영원한 지리산 사람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도 그를 잠시 만나고 헤어지면서 다음에 다시 오기로 했다.
두지터에서 내려오는 길에 산나물과 농산물을 내놓고 마을길가에 앉아 있는 박애자(81) 할머니를 만났다. 마을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마을 방송을 듣지 못했다며 서운해 했다.
주말에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지리산에서 채취한 각종 산나물과 말린 약초를 파는 할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