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장편소설 민음사
2018년 2월13일 김효숙
<82년생 김지영> 작가가 누군지도 알기 전에 우리나라 진보 정당의 원내 대표가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선물한 책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랬기에 관심을 끌었고 어떤 내용일지 조금은 짐작을 했다. 누군가는 쉽게 잘 읽혀서 좋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타리 같아서 아쉬웠다고 했다. 내겐 어떻게 다가올까? 왠지 읽고 싶기도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글을 참 쉽게 썼다. 그랬다. 너무 쉽게 빨리 읽혔다. 그렇지만 이것은 진짜라고 강조하듯이 각주에 나오는 신문기사와 각종 자료들은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소설인지 다큐인지 자꾸 헷갈렸다. ‘그러지 않았어도 차라리 참고문헌으로 뒤에 한꺼번에 모아 놓았으면 그리 불편하지도 읽기에 거슬리지도 않았을 텐데’라고 딴지라도 걸고 싶다. 그랬다면 그냥 소설로 끝나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대통령 축하 선물이 되지 않았을 지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쉽다. 작가는 어떤 의도로 썼을까? 소설 독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80년대에 태어난 김지영이 60년대 말에 태어난 김효숙과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냥 내 이야기 같았다. 이상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분당과 일산이라는 신도시가 들어서기 이전 80년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택에서 살았고 88올림픽과 6월 항쟁 이전에는 노동자들의 임금도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사는 게 그만그만 했으니 생각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던 건 아닐까 스스로 애써 다독여 본다. 하지만 95년생 나의 딸 송현지와도 걸쳐지는 부분이 꽤나 많이 보여서 많이 씁쓸했다.
상업학교를 나와 오빠의 뒷바라지를 하라던 엄마에게서 간신히 얻어낸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장의 마지노선이 교대를 나와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 이 일이 김지영의 언니 김은영에게도 일어났고 2018년 현재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물론 교사라는 직업은 중요하고 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여자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최상’이라는 수식어가 모든 것을 다 물리치는 일은 이제 그만 되풀이 되면 좋겠다. 70년대, 80년대 지긋지긋하게 외우던 ‘국민교육헌장’에도 나오지 않는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여 ~’.
오미숙 여사가 아들을 바라는 시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하던 모습은 95년 4월 큰 동서가 큰 딸아이를 낳고 시어머니께 죄송하다며 자신의 친정어머니와 함께 고개를 들지 못하던 그 모습 때문에 내 맘에 콕 박혀서 빠져나가지 않는다. 물론 동서는 세 자매를 낳고 여전히 시어머니께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고 있다.
95년생 송현지가 스물네 살이 되었다. 자랄 때는 99년생 아들 송시현과 구분 없이 키우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딸과 아들을 동등하게 키우는 데 왜 노력을 해야 하는 건지 내 안에도 이미 불공평한 잣대가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이겠지. 그렇지만 82년생 김지영처럼 동생에게 양보하고 동생이니까 져주고 동생이니까 돌봐주고 그렇게 남동생과 다르게 자랐다. 내 딸은 좀 더 다르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염려 역시 그 만큼 크다.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살아가기는 많이 좋아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취업에서 불리함을 겪으면서 깨달아간다.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나면 여자의 세상과 남자의 세상은 한없이 멀어져 간다. 가정은 함께 꾸려가야 한다. 요즘은 대부분이 함께 일을 하니 집안일도 함께 하는 것이 더욱이 당연하다. 69년생 김효숙도 갖가지 부업을 하며, 악다구니를 쓰면서 아이들을 키우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날마다 남편에게 했던 말 아니 외쳤던 말이 있었다.
“왜 도와준다고 하는 거야? 우리 같이 사는 거 아니었어?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라고!”
하지만 2012년 김지영의 남편 정대현도 김지영이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말한다.
“내가 도와줄게.”
김지영은 자신의 속마음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불편부당한 것을 표현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잘 되어 갈거라고.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은 꽁꽁 갇혀 있다가 터져 버린다. 힘들게 걸어온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아이 엄마로서 살기로 작정하고 그 삶에 매몰되어 있다가 어느 날 커피 한 잔을 길에서 마신 죄?로 ‘맘충’이 된 순간이었다. 김지영은 자신의 목소리를 엄마의 모습으로, 선배의 모습으로, 친구의 모습으로 풀어내고는 기억조차 못한다. 오히려 정신과 상담을 신청해준 남편에게 고마워한다.
병원에서 상담하는 의사도 처음 보는 증상이라 갸우뚱 했지만 김지영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이해한다. 또 전문가의 길을 포기하고 육아를 전담하는 자신의 아내의 힘겨워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깨달았다고 토로한다. 자신은 무언가 다른 척 하지만 그 뿐이다. 함께 일하던 상담사가 임신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음엔 미혼 여성을 뽑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69년생 김효숙과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95년생 송현지가 살아가는 세상의 겉모습은 많이 변했다. 날마다 달라지는 세상을 좇아가기도 버겁다. 그런데 그 안에서 살아내는 모습은 너무도 많이 닮아 있다. 교육받은 세계와 현실의 괴리는 너무도 커져 버렸다. 왜 나만 집안일을 해야 하고 동생을 돌봐야 하고, 상업학교에 가야 하냐며 속상해하던 바로 내가 한 몫 거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김지영의 시어머니가 되어, 남편 정대현이 되어, 상담 의사가 되어...
지금 내가 95년생 송현지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 뿐 이다.
“엄마는 결혼을 해서 너희를 낳아 지금처럼 사는 것이 행복해.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 아이를 낳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도 선택이라고. 그냥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살 수 있으면 좋겠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선택이 될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간다고 생각한다.
현지 엄마에서 김효숙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지금 이미 한 발자국을 내딛은 거라고.
이렇게라도 김지영을 응원해본다.
첫댓글 김효숙씨 화이팅!!!
모두 모두 화이팅!♥
언니의 살아온 세월이 느껴졌어요...
지금 너무너무 멋지십니다~~~
이상과 현실을 좁혀가야 할텐데 ~
그게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