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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한 선택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부학교”라는 안내문이 <녹색평론>을 읽던 내 눈에 확 들어왔다. 비상출구 표시등과 같았다.
“이거야! 정말 하고 싶었던 건데...!” “아니야, 지금 내 상황에 무슨 농사...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잠시의 망설임은 오래가지 못했고, 내 오십 평생에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내려졌다.
“이 시대 왜 농사인가?”로 시작한 개강 특강. 석유에 기반한 이 시대의 성장신화는 이미 정점을 찍었으며, 원전의 대안도 다른 에너지로의 대체가 아닌 ‘유기농’이라고 명쾌하게 결론짓는다. 야마시다 소이치의 <市民皆農>이라는 책이 소개되었는데, “에너지의 고갈이 오히려 지속가능한 삶이 오게 한다.”는 내용이 반신반의를 자아낸다. “에너지의 힘이 아닌 사람의 힘이 더 필요한 시대가 오며, 게임기를 잃은 아이가 밖에 나가서 놀게 된다.”고 하는데, 과연 스마트폰을 잃은 젊은이들은 시골 가서 농사를 짓게 될까?
일심빌딩 7층 강의실. 벽면에 걸린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정농회의 37년이란 짧지 않은 역사와 변치 않은 초심을 말해주고 있었다. 녹색 바인더 첫 장에 끼워진 옛스런 타이프체의 정농회 강령.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삶을 바른 농사를 통해 살기로 다짐하는 그 무게가 천지와 같은 무게로 다가왔다. 간결하지만 오롯한 뜻을 모은 입학식과 함께 아주 특별한 가을학교가 시작되었다. 정농회 ‘그 옛날’의 원로들과 선배들의 한마디 인사말씀들은 땅을 닮아 참 겸손하고 따듯했다.
주중 화목 두 차례 저녁강의와 주말 현장학습의 두 축으로 진행된 6주의 일정은 빡빡했지만 알찼다. 특히 2박 3일씩 4차례에 걸쳐 강원, 충청, 호남, 영남 국토 전역을 누볐던 주말 현장방문학습은 가을빛에 아름답게 익어가는 우리 산야의 넉넉한 품에 안기는 대박 행운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첫 주말 화천 시골길 따라
칠흑의 길을 뚫고 도착한 무월산방(撫月山房)에서의 첫 밤. 먹어도 먹어도 들어간다는 유기농 옥수수를 먹으며 둘러앉았다. “귀농하지 마. 못 먹고 살아...!” 찬 물부터 끼얹는다. 이건 가란 얘긴지 말란 얘긴지... 혹시나 손쉽고 편안히 뭐 되는 게 없을까 기웃거리는 두더지 머리를 돌직구가 내리친다. 바른 농사로는 돈 벌지 못한다는, 헛 욕심 부리지 말라는 선언이다. 환상을 접으니 정신이 들고 위안마저 된다. “그래... 귀농을 못해도 내 잘못만은 아니야...”
아침이 밝아 내다본 산방의 집채가 가파르게 경사진 계곡 비탈에 절묘하게 서 있다.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짓다니... 천지의 이치(理致)에 따라 터를 닦고 땅을 일구면 험산 척박함은 아무 문제가 아니 되는 것일까? 그렇게 한 해 한 해 지어온 화천 시골집, 그리고 조금은 세련미를 더해 태어난 2세 같은 한울빛농장. 투박하고 거칠지만 지혜롭고 꿋꿋하게 순환질서에 따른 유기농을 지키며 자립적인 삶을 개척해가는 곳이다. 사회적 약자들, 병든 이들과 함께해온 행동하는 삶, 실천적인 믿음의 모습에 고개가 숙여졌다. 볏단을 묶어 나르고, 탈곡을 돕고, 고추를 따고, 낫질로 녹두와 수수를 베며... 심고 가꾸어온 수고는 모른 채, 도운답시고 어설픈 손을 놀리며 잠시 수확의 기쁨을 저마다 누려본다.
주일 아침이다. 정농회의 모임은 처음부터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것이 전통이었다고 한다. 오늘 시골집 예배의 찬송가는 <이 세상 어딘가엔>. “이 세상 어딘가엔, 남이야 알든 말든, 착한 일 하는 사람, 있는 걸 생각하라, 마음이 맑아진다.” 형식파괴의 예배가 오히려 마음을 더 숙연하게 한다. 술술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건강특강이 이어졌다. 의사도 잘 모르는 흥부네 자연건강법은 교과서적인 지식이 아닌 직관적인 지혜에서 나온다. 에두르지 않고 정곡을 찌르는 단순 명쾌한 언설이 호소력을 더했다.
둘째 주말 아리땅을 넘어 오리 마을로
서천의 아리랜드는 잔잔한 스토리가 있는 평화의 동산이었다. 늦은 밤 도착하자 멋진 가을밤의 가든파티가 준비되어 있다. 맛있는 유기농 고구마에 전어구이까지 모두의 입이 즐겁다. 세계의 중심되는 땅이 되기를 기도하며, 창조의 섭리에 따라 땅을 일구어오길 60여년. 지금은 농촌체험 교육농장과 생명살림 치유센타를 운영하면서, 지속가능한 자연의 비밀과 생명력을 찾고, 아름다움을 가꾸는 농장을 꿈꾼다. 동백꽃 붉게 물들일 봄철 꼭 다시 찾고 싶은 곳.
오리농법을 도입하여 유기농 벼농사의 선풍을 일으킨 선구자의 뜨거운 열정은 “찾아가는 도심 속 농업학교”로 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벼야! 어젯밤에 춥지 않았니?” “벼야! 붙어! 붙으라니까!...” 교정 화분에 벼를 키우며 쓴 아이들의 애틋한 농사일기는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교육이 농업과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담은 채 홍성으로 두 번째 답사길에 올랐다.
오후 시간 3개조로 나누어 농가를 방문했다. 소농(小農)으로 무투입-자연농을 고집하며 ‘선농(仙農)일체’의 마음으로 도를 닦듯 밭을 일구는 지식인 농부를 찾았다. 자연농 밭농사는 풀과의 전쟁. 이날의 미션은 쑥대밭이 된 밭의 잡초를 호미로 뽑고 이랑을 내고 돼지파를 심는 일. 잠시 땀을 식히며 들이키는 오리쌀 내포막걸리의 맛이란... 꾸러미 형태의 직거래를 하는 ‘고압적(?) 자연농사’가 또 어필하는 틈새시장이 있어 보였다. 농사를 통해 장애어린이를 교육하는 농가를 방문했던 팀도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홍동면의 요즘 화두는 '마을만들기'였다. 저녁시간 마을사람들이 '마을활력소'라는 특이한 이름의 회관에 모여 진안에서 초청한 외부강사를 모시고 강의를 들으며 생각을 모은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호프집에 모여 못 다한 얘기꽃을 피우며, 유기농법 속에도 생각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한다. 홍동만 해도 원주민 농민들과 외부에서 들어온 귀농자들의 서로 다른 접근이 공존한다. 바라는 삶과 철학에 따라 지역과 규모, 품종 등에 따라 농사는 달라질 수 있다. 좀 더 많은 소출을 거두어 이익을 남길 요량을 할 수도, 자급자족에 만족하며 남는 정도를 최소한 판매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정농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이 옳다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 나은 홍동의 내일을 함께 기원한다.
황금빛 벼가 익어가는 문당리 들판은 넉넉하고 아름다웠다. 여기까지 와서 풀무농업학교를 못 보고 갈 수는 없어 몇몇이 남았다. 꾸미지 않은 수수한 교정을 햇살 안고 걸으며 생각한다. 결국 교육을 통해 정신을 깨우칠 때 역사가 바뀌고 내일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홍동이 세워지기 까지 풀무를 세우고 지탱해온 큰 스승들의 정신이 큰 자산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는 말을 풀무 출신들은 꼭 하는 것 같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멋진 농부의 산실!? 지금이라도 아들을 하나 더 낳을 것 같으면 꼭 보냈으면 하는 학교다. 언제라도 와서 살고 싶은 곳... 홍동의 예쁜 마을지도를 보며 다시 길을 나선다.
3주차 변산과 벌교 나들이
연이은 3주차 주말 농촌기행. 재미도 더해 간다. 이대로 1년 52주를 전국 농촌을 돈다면 그냥 농부박사가 될 것도 같다. 젊은 애들 헛공부 시키지 말고 농촌체험 계속 돌렸으면 정말 좋겠다.
변산에서 우리는 강골 정농 부부-안쪽이 한 수 위다-와 그 대를 이어 농사에 뛰어든 썩 준수하게 잘 생긴 젊은 농부를 만났다. 여름 농사일이 너무 힘든 한 때 근처 저수지 낚시 온 사람들 보며 자기도 속 편히 낚시나 했으면 할 때가 있었다는 솔직한 말이 가슴에 닿았다. 아직 열기로 후끈한 하우스에서 수확을 막 끝낸 고추대와 지지봉들을 뽑는 일을 도우며, 혼자는 힘겨웠을 수고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앞으로 어떤 농사를 지어가야 할지 고민도 많겠지만, 마침 이번 생명농부학교에도 예상 밖으로 많이 참여하고 있는 10대 20대의 기특한 청년들을 포함해서, 아무쪼록 이 땅에 정농의 길로 나서는 스마트한 젊은 농부들이 더 많이 나오고, 또 그들이 땀 흘려 하는 수고만큼의 대가가 돌아가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모두의 기대 속에 들른 곳은 '신비원(神秘園)'. 그곳엔 이름처럼 자연을 신비로 여기는 농부 가족이 산다. 농장을 들어서자 양파, 대파, 고추, 배추와 무 등 갖가지 채소를 심은 밭이랑이 정갈하고, 비탈을 따라서는 온갖 과일과 꽃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이렇게 예술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또 많은 수고가 따랐을까? 지난 7년간 농약과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도 쓰지 않는 철저한 무투입자연재배로 일관하였다. 팔겠다는 생각보단 식구들이 먼저 좋은 것 먹으며 다품종 소농으로 자립하며 살겠다는 생각이란다. 농원 위쪽 언덕을 오르자 저만치 격포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바위 위에 둘러 앉아 농부 철학자의 얘길 듣는다. "햇빛을 받고 사는 식물이지만, 크는 건 달이 뜨는 밤이에요..." 우주를 호흡하며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자연농사를 통해 더 큰 영성에 이르는 삶을 찾는 구도자를 우린 만났다.
변산해안도로와 가을 햇살 눈부신 주암호를 거쳐 벌교로 가는 국도길 드라이브는 멋졌다. 잠시 들른 곳은 대규모로 유기농 논농사를 하는 우리원. 침수유기농법과 육종기술개발 노력을 통해 '오색미'라는 창의적인 건강 컨셉의 쌀을 생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음료와 유기농가공식품에 이르기까지 산뜻한 포장의 상품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더해져 크게 기업화를 이루어가는 발전모델을 보여주었다.
정심원(正心園)은 목사님이 목양(牧羊)이 아닌 양계(養鷄)를 하는 농장이었다. 자연양계는 비닐을 안 씌우고 한 겨울에도 보온을 안 한다. 예상 못한 양계 강의였지만 재미가 있다. 농사건 축산이든 물과 온도 그리고 영양분 이 세 가지의 불균형이 병을 부른다. 야마기시 방법의 자연양계의 세 가지 요점은 계사에 햇빛이 들어오고 바닥이 훍이라야 하는 것과 발효사료를 먹이는 것, 평당 10마리 이하로 키우는 것이란다. 학대하여 사육한 동물이 아닌 그야말로 착하게 잘 기른 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주일 아침 예배시간 창세기 11장 "바벨문화의 종말" 설교는 생명농부학교 개강 이래, 이 시대 우리 문명에 대한 반성과 관련하여 일맥으로 관통되는 요약의 말씀이어서 울림이 컸다.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흙을 대신하여... 하늘에 닿게 하려 했던 문명..." 그 불평등한 거대도시의 종말은 혼란이요 흩어지고 무너지는 것이었다.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는 기름의 과잉으로 망하게 생겼다. 문제는 기름때다. 우리의 환경과 몸을 병들게 하고 있는 석유와 식용유의 기름때. 생명의 문화는 흙을 좇아가는 삶이다. 그 현장실습으로 우리는 짓던 중이던 찜질방 흙집의 갈라진 틈을 흙반죽을 이겨 열심히 메웠다.
이제 이 길이 맞다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음악에 농사 얘기가 어우러진다. 1970년대의 살벌한 정치적 상황에서 증산 바람을 거슬러 ‘사람에게 해로운 농약과 제초제를 어떻게 뿌리냐’며 유기농을 시작한 정농회 결성의 역사와 선구자들의 면모, 일본 ‘애농회(愛農會)’와의 관계, 플리머스형제운동(Plymouth Brethren)에서 받은 신앙적 영향 등에 대한 강의는 뜻 깊은 의미가 있었다. 양평 유기농 단지가 만들어진 얘기는 물론 쿠바의 유기농, 북한농업지원에 이르기 까지 우리나라 유기농 역사의 산증인을 만났다. 언젠가 못 다 들은 얘길랑 양수리 두물머리에 가서 베토벤 9번 교향곡에 딸기쨈을 먹으며 또 들으면 좋겠다.
<희망의 농사> 특강과 함께 농부학교도 후반부에 접어들고 있다. 농업이 없는 국가가 없고, 농민이 없는 국민이 없으며, 농촌 없는 도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규모에 심취해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에서는 농사지어서 살기는 어렵고, GMO의 범람 속에 ‘절망의 먹거리’들이 건강에 미치는 심각성은 커져만 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면서도 먹고, 몰라서도 먹고, 알고도 먹고,... 자유롭질 못하다.
그러나 소비자 각성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고, 친환경 유기농업만이 희망이요 대세인 시대가 오고 있다. 이 길이 생명을 살리는 길이요, 바르게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홀푸드 마켓(Whole Food Market)이라 불리는 유기농식품 매장이 국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국내에서도 생협 중심의 꾸러미운동이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농업의 방향을 시사해 준다. 이 방향이 옳은 것은 이제 확실하다. 다만 돈 있는 사람들만 먹는 유기농 틈새시장만으로 만족해도 될까 하는 점은 또 다른 고민의 지점이다.
20년만 나이가 젊다면, 농촌 가서 유기농사 짓겠다는 70대의 전 농림부장관님. ‘지금 내가 그 나이인데... 확 가버려?’ 그러나 아직 내가 우선 할 수 있는 것은 장관님을 따라 도시농업에 투신하는 정도이리라. 아니 더 있다. 정농 정신으로 앞서 농사짓는 이들에게 박수를 치고 공감하며, 감탄도 하며 열심히 사도 먹고, 또 떠들고 다니는 일이다.
“온전한 농산물을 재배해서..., 발효식품으로 만들어 두고두고 먹고..., 소득도 올리고..., 생태도 살리고..., 그게 내 꿈이다.”고도 하셨는데, 내 꿈도 그렇다. 먹거리로 사람을 살리는 꿈... 한의학에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먹거리와 약이 서로 한 뿌리라는, 음식이 곧 약이라는 말이다. 음식으로 병을 고칠 뿐 아니라 병이 되는 것을 사전에 막아 미병(未病)을 치료하는 식의(食醫)야 말로 상의(上醫)가 아니겠는가? 이 꿈도 정농을 통해 이루어가면 좋겠다.
환대와 배려를 새 발판으로
애초 생명과 건강이 땅에 관계된 일임을 생각하며 정농생명농부학교를 노크했다. 지금까지 강의를 통해 또 생생한 현장학습을 통해 바른 농사를 짓겠다는 정농 선배들의 올 곶은 몸부림을 보며, 바른 농사가 무엇인지, 또 어떤 정신으로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농사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수년, 수십 년의 세월을 땀과 눈물로, 때론 좌절하고 아파하며 인내해왔을 정농 농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우리가 잠시 본 것은 고생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 혹 우리가 그 결실만 낭만으로 쉽게 보고, 오랜 참음의 과정들은 섣부르게 가벼이 보지 않았는지...
좋은 기획으로 생명농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준 정농회에 감사한다. 매 강의 때마다 열정어린 강의를 해 주신 강사님들, 현장학습 때마다 바쁜 수확기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맞아주시고, 생생한 체험을 얘기해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시며, 먹여주고 재워주시기까지 환대해주신 여러 정농회 선배님들의 호의를 잊지 못할 것이다. 지난 몇 주 분에 넘치는 호강을 했다. 매 강의 때마다 동참하셔서 등 뒤에서 힘을 실어 주시고, 물심양면을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여러 정농 선배님들께도 존경을 표한다.
무엇보다 전 일정을 학생들과 동행하며 자상하게 챙겨주고 헌신적으로 섬겨준 스텝진 모두에게 큰 신세를 졌다. 참 감사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먹고 자고 뒹굴며 돈독한 정을 키웠던 열여섯의 우리 1기 동학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매사 밝은 웃음으로 궂은 일 마다 않고 자발적으로 솔선했던 우리였기에, 형편과 처지는 다르지만 앞으로도 서로 연대하고 응원하며 나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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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매번 열심히 적으시더니 이런 자세한 후기를 쓰셨군요. 아직 젊으시니 용기를 내어 귀농 하시길~
수고많으셨어요~
학생장님 덕분에 더 잘 교육 마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마지막날 밤 음악회때 학생장님의 새로운 모습... 특히 못잊을 거에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