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은 어떻게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다윗을 사랑할 수 있었나?... 부모와 자식, 연인 간의 단순한 사랑은 왜 불완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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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Then David fled from And Jonathan had David reaffirm his oath out of love for him, because he loved him as he loved himself(삼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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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명의 삶> 묵상 본문에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특별한 사랑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은 단순히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윗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을 요나단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사랑이었다고 생각된다.
동성애자들은 동성 간인 이 둘의 사랑이 동성애였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둘의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도 육적인 사랑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이 둘의 사이에 존재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그런 신적이거나 영적인 사랑에 가까운 사랑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누군가 타인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는 사랑은 하나님을 거치는 사랑, 하나님을 사이에 두는 사랑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런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부모와 자식 간이나 친구 간, 연인 간에 그런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랑과 이 사랑 간에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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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말씀하신 분이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이미 그러한 사랑으로 사랑한 사람 같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 기자가 굳이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을 발견한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처음부터 하나님 사랑을 전제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중심이 없다면 나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듯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적은 경험할 수 없다. 사실은 예수님이 그러한 사랑을 이미 남과 같은 나에게 베푸시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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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웃을 사랑하되 정말 내 생명을 사랑하듯 사랑하나? 이런 사랑의 정도는 나의 하나님 사랑의 정도와 진정성을 드러낸다고 봐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또한 육적이기만 한 이기적인 사랑이어서는 안 된다.
자기를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사랑으로 남을 사랑하는 일은 이미 비신자들에게도 많다. 예를 들어 부모의 자식 사랑은 실은 자기를 이기적으로 사랑하듯 자기 몸에서 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기 쉽다.
연인간의 사랑도 서로 상대방이 자기 스타일 곧 자신이 육신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어서 택한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미 그러한 전제에 제한되어 있는 육적인 사랑이기 쉽다.
이것은 곧 내가 그 상대방을 사랑하는 기준이 나의 어떠함, 그러니까 나의 취향이나 스타일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런 기준을 전제로 한 사랑은 사실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육적인 모습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를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방식으로 남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이기적이지 않게 사랑하려면 나를 신적인 사랑으로 사랑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더 온전히 배우고 체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내게 그러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눈으로 나를 보게 되고, 그러는 만큼 진정으로 나 자신이 예수님께 존귀한 존재임을 알게 되면서 나 또한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먼저 이기적이거나 육적인 사랑이 아닌, 예수님을 사랑할 때 내가 얻게 되는 그 사랑의 눈으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게 중요하다. 그런 건강한 자아가 회복되어 있지 못하면 남을 사랑한다 하면서 도리어 상처를 주게 되기 쉽다. 하나님의 사랑이 배어 있지 못한 채 자기 식으로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님 안에서 내 자아가 건강해져야 예수님이 남인 나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셨듯 그렇게 나도 남을 내 생명처럼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 안에서 자아가 건강해진다는 건 예수님 안에서 내가 예수님과 연합되어 나를 부인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그럴 때만 나는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으로 타인을 진정으로 내 생명처럼 사랑할 수 있다.
나를 이기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면 내 기분이나 처지가 내 맘에 안 들면 타인에 대한 그 사랑도 금세 시들해지기 쉽다. 그 사랑에 대한 동력이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로 건강하고 견고하게 세워나가기 어렵다. 늘 나 자신의 처지나 기분에 좌우되는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나의 사랑이 건강하지 못한 때는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때와 일치하는 것 같다. 그럴 때 그 온전치 못한 사랑은 이웃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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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4장에 보면, 요나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적으로 의지한 구약시대 인물의 한 전형으로 소개된다. 그가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 한 사람과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에 직접 들어가서 그들을 칠 때 그는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느니라”(삼상 14:6)는 말을 한다. 이런 모습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담대하게 그분만을 의지하는 요나단의 신앙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그 배경 아래에서 오늘 이 말씀, 곧 요나단이 자기 생명처럼 다윗을 사랑했다는 표현이 나올 수 있었다. 성경 기자가 아무에게나 이런 표현을 써줄 것 같지 않고 또 아무나 실제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우리 공동체의 모든 지체들도 이번 학기 온수회에서 나눠질 모든 제자훈련 과정과 기도회를 통해 요나단이 다윗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그러한 신적인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 같이, 내 생명같이 사랑하는 사랑을 연습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연합의 삶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제자도에 더욱 익숙해질 수 있도록 훈련받아가길 바란다.
- 안환균 목사, 그말씀교회 3월 8일 온라인 수요기도회 제자훈련 묵상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