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4장
고난과 외로움 가운데 직분을 다하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향해 나가라
(찬송 164장)
2023-10-19, 목
맥락과 의미
디모데 전후서는 사도 바울이 후배 목사 디모데를 가르치기 위해 보낸 편지입니다. 목사 직분에 대해서 잘 배울 수 있습니다. 목사직은 모든 직분의 모델이 됩니다. 이 서신을 통해 장로와 집사의 직분, 가장의 직분, 그리고 직장에서의 직분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4장은 3장에 이어서 말세의 난폭성과 배교를 경고합니다. 그 가운데 말씀을 지키라고 가르칩니다.
1.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명령: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복음 전하라(1-5절)
2. 바울은 인생의 마지막을 지내면서 천국 영광을 바라봄(6-8절)
3.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9-18절)
1.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명령: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복음 전하라(1-5절)
사도는 엄히 명합니다. 2:4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했습니다. 딤전 5:21에서도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앞에서 엄히 명했습니다. “엄히 명한다”는 ‘증언한다’는 뜻입니다. 앞에 강조하는 말(접두사)이 덧붙어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생명과 죽음을 선고하는 하늘의 법정을 염두에 두고 말합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증언합니다. 사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명령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심판자가 되실 것입니다. 장차 그분께서 나타나실 것을 생각합니다.
또 그분이 온전히 이루실 나라를 생각하며 명령합니다. “그의 나라”는 18절에서 주님께서 바울을 구원하셔서 들어가게 하시는 그곳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바울이 후배 목사인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 나타날 것을 바라보며 명령합니다. 모든 시대의 목사, 모든 시대의 교회에 엄히 명하는 말씀입니다.
명령의 내용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설교하고, 가정을 심방하여 복음을 나누고, 또 전도하는 데 힘쓰라고 합니다. “힘쓰라”는 ‘곁에 서라’는 뜻입니다. 17절, 주께서 내 “곁에 서셨다”는 말과 같습니다.
17절에서 사도 바울과 협력하던 자들이 다 떠났습니다. 바울은 사자처럼 잔인한 사람들에게 씹어 먹히듯이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주님께서 사도의 곁에 서셔서 구원해주셨습니다.
후배 목사 디모데도 항상 주님의 곁에 서 있으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목사의 곁을 끝까지 지키시듯이, 목사도 충성스럽게 주님 곁에 서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잘 받아들일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관계없이 전해야 합니다. 주님 곁에 서서 주님과 함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는 먼저 말씀의 내용을 잘 가르칩니다. 그리고 “경책”(책망)합니다. “경계한다”는 강하게 꾸짖는다는 뜻입니다. 목사 디모데는 진리에 도전하는 자, 복음에 반대하는 자를 강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책망하는 것도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해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를 복음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설득하지 않습니다. 협박하여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오직 말씀을 반복하여 가르침으로 책망합니다.
목사 자신이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가장 강력한 변화의 수단인데 이것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화를 내거나 얼러도 효과가 없습니다.
다만 온유하게 참으면서 말씀을 계속 공급하여 책망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지게 해야 합니다. 물러서지 않고 인내로 가르쳐야 합니다.
3절 앞부분에 한글 성경에는 “왜냐하면”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말세의 때는(3:1) 이미 사도들의 시대에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참지 못한다, 관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씀을 싫어합니다. 목사는 인내로써 가르치지만 교인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 싫어합니다.
자기 귀를 즐겁게 해줄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사욕”, 곧 자기의 탐욕을 따라주는 “스승”, 즉 가르치는 사람을 많이 둡니다. 죄와 회개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은 싫어합니다. 대신에, 물질과 쾌락과 정서적 안정을 주고 자기를 인정해주는 교사를 많이 옆에 둡니다.
3:6에서 탐욕적이고 사납고 거짓을 말하는 자들이 여성도들을 유인하여 포로로 잡는 일을 말했습니다. 그 여성들은 욕심에 이끌리고 죄를 중히 “졌습니다”(소류오). 이 말이 4:3,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에피-소류오)에도 나옵니다. 진리를 몰라서 거짓 스승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떠납니다.
우리 자신도 진리를 싫어하는 탐욕적 경향이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반복하여 복음을 듣고 예배에 집중합시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순종합시다.
이 시대는 진리에 무관심합니다(4절). 목사 자신이 먼저 진리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충성되게 전해야 합니다. 고난을 받으며 복음 전도자의 일을 해야 합니다. 맡은 직분을 끝까지 완수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을 전합시다. 고난받는 것이 목사 직분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반드시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2. 바울은 인생의 마지막을 지내면서 천국 영광을 바라봄(6-8절)
지금까지 사도는 선한 싸움을 다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복음 전파하는 일은 마치 싸움을 싸우듯이 힘겨운 과정이었습니다. 목사는 편안하게 성경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운동 선수가 시합에 나서듯이, 고난 가운데 인내하면서 맡은 일을 끝냅니다. 온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고 담대히 서야 합니다.
저 멀리 앞으로 사도에게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었습니다. 이 영광은 사도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의로운 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주신 직분을 다합시다. 오직 온 힘을 다하여 달려간 자들만 천국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3.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9-18절)
사도 바울의 인생은 외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서 끊임없이 떠났습니다. 먼저 바울은 사역을 위해 동역자들을 떠나보냈습니다.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습니다(12절).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습니다(20절). 드로비모는 병이 들어 밀레도에 두었습니다(19절).
그런데 많은 사람이 사도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떠난 것을 10절과 16절에서 “버림받았다”라는 말로 반복하여 말합니다. 바울의 인생의 마지막 기간은 버림받는 기간이었습니다.
특히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사도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났습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습니다. 왜 떠나갔는지 이유가 불분명합니다. 사도가 처음 복음을 변호할 때 함께 한 자가 하나도 남지 않고 전부 떠나버렸습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13절). 주께서 그에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딤전 1:20에서 바울은 알렉산더를 후메내오와 함께 권징하여 교회에서 출교했습니다. 딤후 2:17에서는 후메네오와 빌레도가 교회를 전염병처럼 어지럽혔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을 소위 교인이라는 사람이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는 디모데에게 그런 배교자들을 주의하라고 합니다(15절). 하지만 그들을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16절). 주님께서 곁에 서셔서 계속해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이 떠나갔지만 사도는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을 힘껏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이 그 복음을 듣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를 사자의 입에서 건지셨음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앞으로도 주님께서 자신을 지키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악에서 건져내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복음을 떠나서 반대하는 자들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광으로 즐거워합니다. 주님께 영광 돌리는 찬송을 드립니다(18절).
마지막으로 사도는 신실한 동역자들끼리 평화의 인사와 친교를 나눕니다. 떠나간 사람들에게 미련을 두기보다는 복음 안에서 함께 하는 성도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브리스가, 아굴라, 오네시보로 등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안을 합니다. 사도와 함께 있는 으불로, 부데, 리노, 글라우디아 등의 인사를 전해 줍니다(21절). 주께서 디모데의 심령에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목사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오직 말씀 전파의 직분에 집중하고 고난을 기쁘게 감수해야 합니다. 모든 직분자, 집사, 장로, 가장이 할 일입니다. 부모로서 직분자가 할 일입니다. 직분자는 배반당하고 버림당하는 것이 직분의 한 부분입니다.
고난당하고 고생한 것 보다 힘을 주시고 직분을 감당하게 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영광 돌립시다. 신실하지 않은 자를 원망하기 보다 신실하게 함께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는 동역자를 인해 감사하고 서로 격려하며 나갑시다.
외로운 가운데 있으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만 책임지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깊은 친교를 나누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외로움을 아는 사람만이 참된 직분자,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년을 넘은 성도들은 앞으로 천국 갈 때까지 그냥 편할 것만 기대하지 맙시다. 이 땅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주님 주신 사명을 다할 각오를 합시다. 그때문에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로움을 경험해야 할 수 있습니다. 배신당하는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노년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엄히 명한다(디아-마르티로마이)
“엄히 명한다”(디아-마르티로마이)는 ‘증언한다’(마르티로마이)는 말 앞에 강조를 나타내는 말(디아)이 덧붙어서 된 말입니다.
<참고> 2절, 경계한다(에피-티마오, 꾸짖는다)
이 말은 마가복음 8:33에 나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돌아가지 마시라고 “항변하매”(8:32) 예수님께서 돌아서셔서 베드로를 “꾸짖으셨다”라고 한 것에 쓰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직후에 사단의 가르침에 유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지 말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깨우치기 위해 단호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 큰 은혜를 받은 후에 이런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목사는 주님을 대신해서 꾸짖어야 합니다.
<참고> 3절, 받지(안-에코마이) 아니하며
“받는다”는 ‘참는다’, ‘용납한다’는 뜻입니다. 형제자매들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에베소서 4:2, 골로새서 3:13). 또 바른 교훈을 받고 그대로 살아가기가 힘들더라도 “참고 용납하면서”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힘드니까, 아예 말씀을 거절하는 일이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고> 3절,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에피-소류오)
“둔다”(에피-소류오)와 같은 말이 3:6에서, 어리석은 여자들이 유혹을 받아 “죄를 중히 진다”(소류오)고 할 때 쓰였습니다. 그 여자들이 유혹을 받아 이단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음 때문만은 아닙니다. 자기의 사욕, 탐욕을 따르도록 허락해줄 거짓 스승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단에 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