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끝난 뒤 유남규는 주춤했다. 허리, 어깨 부상이 찾아왔고 소속팀 동아생명과 갈등도 있었다. 탁구에 회의를 느껴 1년 동안 거의 탁구채를 잡지 않았다. 이 무렵 치고 올라온 선수가 김택수였다. 김택수는 19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이었다. 유남규와 김택수는 따로 또 같이 한국 탁구를 짊어졌다. 단식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펼쳤고 환상의 복식조를 이뤄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다. 두 선수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다.
왼손과 오른손 펜홀드 드라이브 전형의 맞대결은 녹색 테이블을 뜨겁게 달궜다.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김택수에게 유남규의 그늘은 크고 짙었다. 두 선수의 복식조는 언제나 ‘김택수-유남규 조’가 아닌 ‘유남규-김택수 조’로 불렸다. 유남규는 김택수를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저 잘 따르는 친동생처럼 여겼다. “재미있는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선수가 택수밖에 없었다. 택수는 실업팀에 입단한 뒤 7-8년 동안 나를 이기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택수가 치고 올라오면서 라이벌 관계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거다.” 둘은 현재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국가대표팀과 실업팀 지도자를 거쳤고 지난 9월 나란히 대한탁구협회 이사가 됐다. 탁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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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남규에 대해 정말 잘 몰랐네요...김택수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잘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