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는 물 억새의 야성(野性)
이 골짜기에 와서 먼저 한 일은 개울에 손을 대는 일이었다. 여름 장마철이면 아래 개울 위 개울 할 것 없이 사방이 물 밭이라서 물길을 어느 한쪽으로 돌려야 했다. 주위의 산에서 자연스레 내려오는 개여울이 좋아 보이기는 했지만 여름 한 철이 문제였다. 사람이 살 집을 짓고 찻길을 만들려니 무엇보다 개울이 정돈되어야 했다. 처음 집 안채를 위해서는 윗 개울을 정리했고 아래 쪽 바깥채 코이노니아의 집을 위해서는 아래 개울을 정리 하였다. 아래 개울은 논에 닿아 있었는데 개울물이 넘쳐 논의 절반은 이미 흙더미가 되었다. 흙으로 덮인 곳은 흙을 더 채워 밭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주위를 석축으로 쌓아서 연못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동안 논으로도 밭으로도 사용하지 않아 늪처럼 바뀌어가고 있던 여기저기에 억새가 자라고 있었다. 가끔씩 아래 마을 아저씨가 경운기를 끌고 와서는 소 먹일 여물로 한두 짐 해 가곤 했다. 소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면서. 이렇게 하여 결국은, 양 옆을 돌 축대로 쌓은 개울이 있고 그 옆은 밭 그리고 그 너머 연못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십 여 해를 지나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한 두 해 전부터 개울 바닥에 억새가 자라는가 싶더니 지난해를 거쳐 올해는 온 개울이 푸른 억새로 덮이고만 것이다. 이러다 개울물이 막히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아마 일부러 억새를 키우려고 해도 이렇게 잘 자라지는 않았으리라. 놀라운 억새의 힘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갈대인가 억새인가 구별이 가질 않았다. 어떻게 다른지를 찾아보니, 갈대는 길이가 좀 더 길고 꽃술이 누런 갈색으로 불규칙하며 억새는 이 보다 좀 짧고 꽃술이 옅은 색으로 일정하며 곱게 늘어져 있다. 억새는 맨 땅에서 자라고 갈대는 습지에서 자란다. 갈대는 강에서 억새는 산에서 자란다는 정도의 차이. 그러나 물을 좋아하는 물 억새도 있다는걸 보면 이 둘은 같이 벼과로 같은 종류의 풀이다. 연약함의 상징이며 흔들림의 상징이 갈대이지만 그것은 가을 갈대의 늘어진 꽃차례를 말함이고 갈대든 억새든 그 뿌리와 줄기는 얼마나 억센지 모른다. 억새야말로 가히 억세다. 돌과 모래뿐인 개울 바닥을 아랑곳 하지 않고 뿌리를 내리는 그 생명력이란 참으로 놀랍다. 위로 1-2미터 가지를 세우는 억새는 그와 함께 땅으로도 그 만큼의 가지를 뻗는다. 위 보다 땅 옆으로 뻗으며 뿌리를 내리는 힘이 더욱 크다. 며칠 지나면 어느 새 여기저기 뿌리를 쳐 놓았다. 개울 뿐 아니다 그 옆 새롭게 만든 밭도 지금 억새와의 전쟁이다. 풀이든 나무든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태세이다. 그냥 놔둔다면 몇 년 안가서 이 밭은 억새로 뒤덮일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쑥의 그 번식력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는데 억새 앞에서는 그런 쑥도 맥을 쓰지 못한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고 비 온 다음 대나무의 그 왕성함도 억새를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비가 오든 말든 상관없이 뻗어가는 전천후 형이니까. 이런 억새를 농작물에 그 가운데서도 벼농사에 접목하면 어떨까 싶다. 소출은 적더라도 무 농약으로 손쉽게 얼마든지 키울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논밭이든 개울이든, 잡초 더미든 나무숲이든, 비가 오거나 말거나 위로 아래로 또 옆으로 굳세게 뻗어가는 억새에게서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본다.
우리는 무엇에 길들여지는가. 무엇이 우리를 길들이는가. 늑대가 길들여 애완견이 되고, 야생마가 길들여 애마가 된다. 돌고래가 길들여져 사람들 앞에서 온갖 재주를 부린다. 그동안 서울대공원에서 조련사에 길들여져 온갖 재주를 부리던 돌고래를 야생의 상태로 돌려보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제주 앞 바다 임시 가두리로 보내져 방류 연습을 하던 남방 큰 돌고래 ‘삼팔이’가 가두리를 탈출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슬포 인근 해역에서 다른 돌고래들과 잘 어울려 다니는 모습이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또 다른 돌고래들도 곧 방류 시킬 것이라고 한다. 돌고래뿐이랴. 호랑이도 사자도 코끼리도 무대 위에서 온갖 재주를 부린다. 무엇 때문인가. 먹이 때문이다. 먹이 앞에서 모든 동물은 순한 양이 된다. 어디 동물뿐이랴.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도 야생 동물을 길들이면서 자신도 함께 길들여져 간다. 먹거리 앞에서 다들 양같이 순해지는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먹거리가 우리의 십자가이다.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들을 십자가랍시고 짊어지고 다닌다. 예수의 영성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치 않는 삶, 들의 야생 나리(우리가 아는 백합화 이미지와는 다른)처럼 사는 삶에서 나왔다. 이 예수의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례 요한에게로 가야한다. 그가 입은 낙타 털옷을 입어보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그가 먹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어봐야 한다. 그렇게 광야 생활을 해봐야 한다. 사막으로 가야한다. 거기에서 그가 말하는 광야의 외침 바로 그 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세례 요한의 그 거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요한 19:5) 빌라도가 가리키는 손과 세례 요한이 가리키는 손은 다르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예수상은 누구의 손에 의해 가르켜지는 예수인가? 그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서 16세기 교회 개혁 화가 그뤼네발트(M. Grunewald)는 이젠하임 제단화를 그렸다. 그와 같은 시대의 화가로 “기도하는 손”으로 잘 알려진 뒤러(A. Durer)가 그린 것은 어린 시절 함께 화가의 꿈을 키운 친구의 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그리고 싶어 한 것은 바로 세례 요한의 손이었다.
노아는 잣나무에 역청을 칠하며 하나님을 만났으며, 아브라함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나님을 만났다. 이삭은 세 번씩이나 우물을 파면서, 야곱은 들판의 베갯머리 돌에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의 불붙는 떨기나무 앞에서, 다윗은 어두운 막벨라 굴속에서. 신약의 인물도 마찬가지다. 어디 세례 요한 뿐이랴. 갈릴리의 거친 파도와 싸우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었다. 사십일 동안 사탄과의 씨름으로 더욱 탄탄해진 광야의 야성이 갈릴리의 야성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스승이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었다. 이미 정치와 종교와 경제와 교육과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도시인은 예수의 거친 영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갈릴리는 편리함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거친 야성의 본향이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과 갈릴리는 늘 대척점의 위치에 자리한다. 예수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때로는 채찍질 맞아 마땅한 소굴이며, 때로는 품 안에 안고 울어야 할 탕자일 뿐이었다. 갈릴리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때 뿐 아니라 지금도 인간은 예루살렘을 지향한다. 유대교 뿐 아니라 기독교도 예루살렘을 지향한다. 유대교 제사장 뿐 아니라 가톨릭 신부나 개신교 목사도 너 나 할 것 없이 예루살렘을 지향한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거기에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 야훼 하나님이 계셨는가?
‘민중 신학’의 시각으로 보면 갈릴리에는 민중이 있었다. 예수는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과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고위층의 자제를 제자로 삼고자 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하늘에서나 누릴 온갖 부요를 이미 이 땅에서 누리고 있었기에. “가난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바로 여러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배부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에게 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웃고 있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에게 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슬퍼하고 울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6:20-21, 24-25 박창환 역)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를 예루살렘의 시민들 가운데 과연 몇이나 좋아했을까? 갈릴리의 민중은 갈릴리 물가에서 억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라야 진정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선포는 일종의 개벽 사상이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이른바 천지개벽을 꿈꾸는 사상이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세상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메시아 대망사상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을 믿는 신앙이다. 일본 치하의 눌림에서 벗어나고자 신천(新天) 신지(新地)의 도래를 태극기로 깃발 삼아 외치던 삼일의 정신이다. 대일본제국이 이렇게 빨리 무너질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그 낡아빠진 혼이 아니었다.
오늘 우리가 ‘시민 불복종 저항’을 말하고 ‘환경운동’을 말하기 150년 전 헨리 데이빗 소로우(H. Thoreau)는 하버드 출신의 명예를 버리고 월든의 숲으로 들어갔다. “문명인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집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집은 감옥이다. 그를 압박하고 속박하는 감옥. 그를 보호해 주는 편안한 안식의 쉼터가 아니고 말이다. 집을 정복하고 그 속에 편안히 앉아 있는 법을 배우며 지붕과 벽이 하늘과 나무와 땅처럼 자연스럽게 서로를 안고 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빨리 달려가려고만 하는 이들이여. 아침 해에 전율하지 않는 이들이여. 그래서 인생의 봄을 가버리게 하고 있는 이들이여...” 살아 있을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했으며 팔리지 않는 작가였던 그는 생전에 <콩코드 강에서의 일주일>과 <월든>의 단 두 권의 산문집 밖에 펴내지 못했지만, 지금 물질문명과 낡은 정신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언자로 재해석 되고 있다. 그의 예언 정신은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앞서고 노예제도를 바꾼 링컨을 앞섰기 때문이다.
“세계를 보존하는 힘은 야성이라는 자연 속에 있다. 모든 나무들은 야성을 찾아서 그 뿌리를 뻗으며, 인류를 품어줄 생명의 보약과 생명의 돛배는 숲과 야생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다...나는 숲을 믿는다. 초원을 믿는다. 밤을 믿는다. 옥수수들이 훌쩍 자라는 밤을... 야생은 어떤 사람도 결코 지배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독립적인 인간들이란 길들여지지도 않으며 사회에 의해서 결코 파괴되지도 않는 야생의 인간들이다.” <소로우의 노래> 강은교 엮음 85-86쪽
야성이 곧 영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