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구문학 14호 원고
김봉집
(시조)
1. 깡깡이 아짐 · 6
김용채
끊어진 가방끈을 끌어안고 울던 소녀
무슨 한 맺혔길래 뱃전 저리 두들기나
제 곡조 잃은 노래는 깡깡이만 켜는데
녹 슬은 배 껍질을 떨어내는 아낙네야
쥐꼬리 일당 쪼개 그냥저냥 살면 되지
입 벌린 솥 전을 안고 소고춤을 추는가
영선동 아지매가 길을 묻는 어둑 저녁
눈 내린 비탈길에 쌀 한 봉지 연탄 한 장
찢어진 세월의 끝에서 산그늘이 내린다
2. 미운 일곱 살
김봉집
키 크고 돈도 많은 백수 되게 해주세요
초등학교 일학년이 달님에게 보낸 편지
그 소원 들어줄까요 앞니 빠진 일곱 살
3. 내시의 강
- 파경 속의 나에게
김봉집
꼿꼿이 뻗어 가는 원뿌리 확 잡아챈다
자존심 빠개 놓고 치러지는 한판 승부
풋 사내 푸른 욕망이 무참하게 꺾인다
뭉크의 절규 속에 까치놀이 뒤집히고
통점을 후벼 파는 손톱 세운 푸른 영혼
노을 진 허공을 찢어 옹이 흔적 덮는다
애액을 한입 물고 소고춤을 펼친 천지
오열 속 튀는 피가 날 시퍼런 칼을 씻고
솔잎에 달빛을 꿰어 해묵은 정疔* 깁는다
* 정疔 = 흔히 얼굴에 나는 악성 종기.
(평론) 사설시조(辭說時調), 그 아름답고 깊은 강
문학평론가 김 용 채
1. 사랑채에 솟는 싹
가슴에 궁글 둥시러케 뚫고 왼기를 눈길게 너슷너슷 꼬아
그 궁게 그 너코 두 놈이 두 긋 마조자바 이리로 훌근 져리로 훌젹 훌근훌젹 저긔 나남즉 대되 그는 아모쪼로나 견듸려니와
아마도 님 외오 살라면 그 그리 못리라
- 대은 변안열, 불굴가, 전문
穴吾之胸洞如斗(혈오지흉동여두) 貫以藁索長又長(관이고색장우장)
前牽後引磨且戞(전견후인마차알) 任汝之爲吾不辭(임여지위오불사)
有欲奪吾主(유욕탈오주) 此事吾不屈(차사오불굴)
고려 공양왕 원년(1389년) 10월 11일 이성계의 생일날, 주안상을 가운데 놓고,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대은 변안열(大隱 安烈) 그리고 후일 이씨조선을 창건한 이성계(李成桂)가 마주 앉았다.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李芳遠)도 배석한 자리였다. 이방원이 시 한 수를 읊는다. 하여가(何如歌)이다.
이런들 엇더며 저런들 엇더리
萬壽山(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리
우리도 이갓치 얼거져 百年(백년)까지 누리리라」
포은이 답가를 한다. 단심가(丹心歌)이다.
이 몸이 주거주거 一百番(일백번) 고쳐 죽어
白骨(백골)이 塵土(진토)되야 넉시라도 잇고업고
님 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마지막으로 대은이 화답한 작품이 저 유명한 불굴가(不屈歌)이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각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이때 여기에서 시조 셋이 탄생한다. 앞에 제시한 대은 변안열의 불굴가도 그중 하나이다. 불굴가는 진본청구영언에 실려 있고, 덧붙인 한역본은 대은의 5세손 희리(希利)가 편(編)한 전가록(傳家錄)에 실려 있는 한역본(?)으로, 경기도 남양주군 진건읍 용정리 701-1번지 대은공 묘역의‘불굴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본고에서는 이 불굴가를 중심으로 그 문학적 맥을 같이하는 사설시조(辭說時調)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불굴가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데 아직 확실하게 정리된 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는 「불굴가는 고려말 변안열의 작품으로서 사설시조로 분류된다.」는 명제를 일단 수용하고 이를 전제로 삼는다. 이에 대한 학문적 시비는 관련 학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따라서 본고가 전제로 하는 이 명제가 「참」으로 성립되지 않을 때에는 그 즉시 본고의 생명도 다하는 것으로 미리 양해하겠다.
다만, 하여가는 단심가와 불굴가를 답가로 유도해 낸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 내용상으로는 대립적이지만 그 형태나 의미구조는 이 세 작품이 일치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구조적으로는 부합하는 노래라는 것이다. 이 경우 창(唱)은 하여가이고 화(和)는 단심가와 불굴가이며, 창-화 되는 각각의 노래는 결국 같은 장르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이 세 작품은 같은 장르인 시조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전승 과정에서 하여가와 단심가는 정격의 노래(平時調)로 정착되었고, 불굴가는 변격의 노래(辭說時調)로 정착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2. 불굴가, 긴 잠 깨다
이 노래의 심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맥락을 전제로 해야 한다. 역사적(사실적) 맥락과 예술적(미적) 맥락이 그것이다. 역사적 맥락에 대하여는 앞에서 살펴 본 정도에서 멈추고, 이후 미적 맥락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얼핏 보면 이 노래에서 구현되는 미학은 비장미(悲壯美)나 숭고미(崇高美)라 할 수 있다. 전단에는 분명히 비장미가 구현되어 있다. 자아를 압도하는 운명적인 힘에 의해 자신의 존재 전체를 투기하는 데서 생겨나는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후단에 이르면 숭고미로 승화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재하는 인간 이상의 인간’을 모방한 것을 비극으로 보기는 하였지만, 모방 된 ‘인간 이상의 인간’이 비장만으로 한정되는 인간상은 아니다. 그 내면에는 분명 비장으로부터 승화된 미적 범주인 숭고 또한 구현되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되새겨 볼 대목이다.
불굴가에는 두 개의 가정이 핵심 내용으로 들어 있다. 하나는 육체적 고통이라는 극한상황의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임과의 이별이라는 또 다른 상황의 가정이다. 전자는 물리적 고통이고 후자는 심리적 고통이다. 이 노래에 표현된 육체적 고통은 정도로 보아 죽음 이상이다. 그런데 화자는 그러한 육체적 고통보다 심리적 고통을 훨씬 괴로운 것으로 단언하고 있다. 죽음 이상의 두려움과 고통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시가 비록 현실의 진술과 다른 의사진술(pseudo-statement)이라고 해도 임과 이별하는 것을 죽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롭다고 말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답의 핵심은 미래가정으로 이루어진 이 노래의 문법에 있다. 미래가정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노래들은 현재 상황을 역으로 암시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현재, 임과 함께 있으며 둘은 사랑에 의한 행복의 극치를 맛보는 중이다. 그러한 화자의 유일한 걱정은 ‘있을 수 없는’, 임과의 이별일 것이다. 임과 함께하는 행복이 극진할수록 ‘가상적으로나마’ 이별의 쓰라림은 자신의 내면을 위협한다. 미래시제의 가상인 이별의 아픔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는 죽음, 그것도 최대한으로 과장된 죽음을 끌어와야 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방어기제(自己防禦機制)라 한다. 따라서 이 노래는 현재진행형의 행복한 사랑 노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종교적 의례, 즉 제의적(祭儀的) 숭엄성의 흔적과 이를 희석시키는 유희성(遊戱性)이 동시에 들어 있다. 전자의 증거로는 ‘왼기’를, 후자의 증거로는 ‘의성어(훌근, 훌젹, 훌근훌젹)’를 들 수 있다. 지면의 제한 때문에 상세히 살펴 볼 수 없음이 아쉽다. 묶어서 말하면, 소재들 사이에서, 대상과의 관계에서, 관조자와의 관계에서 각각 구현되는 조화미를 가곡 창사의 기본 미이자 표출 미로 볼 수 있다면 숭엄성과 유희성을 동시에 갖춘 불굴가야말로 조화의 아름다움을 이상적으로 구현한 노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대은 변안열이 지은 것으로서 창작 당시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한역(漢譯)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한역으로부터 재번역 되었든, 아니면 애당초 창작 시점부터 구비전승되었든, 결국 조선조 후기의 청구영언에 실릴 수 있었으며 창작 시점과 기록 시점의 불굴가는 거의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 노래는 당대에 유행하던 연가풍의 대중가요였다. 함께 올린 하여가나 단심가 등과는 달리 비유가 주된 표현법으로 되었다. 따라서 이 노래가 대중들에게는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이것은 더 많이 유행될 수 있었던 조건이었다. 예술적 맥락에서 분석할 경우 이 노래에 사용된 표현법은 고금을 통하여 우리말 노래에서 많이 쓰이던, 방어기제적 역설이다. 그리고 그러한 표현법을 통하여 부각시키고자 한 주제는 사랑의 믿음과 환희이다. 결국 이 노래는 변안열의 작품이라는 역사적 맥락에 놓고 보아도, 흔히 존재하던 사랑의 노래라는 예술적 맥락에 놓고 보아도,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우리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노래라는 것이 바로 불굴가의 장점이자 특수성인 것이다.
작자 변안열 (변安烈)은 고려 충숙왕 3년(1334년)에 원(元)나라 심양(瀋陽)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대은(大隱), 별칭 원천부원군이다. 공민왕이 등극을 위해 환국할 때 노국대장공주를 수장으로 배행. 고국인 고려로 환국한 이후 고려를 위해 충성하다가 1390년 정월 16일 사망하였다. 황 패강 단국대 교수에 의해 명명된 불굴가의 국문 노래가 <진본청구영언>의 만횡청류 항에 549번째로 실려 있다. 이 이전에는 <大隱先生實紀 권1 ‘歌’>(대은선생실기 권1 가) 및 변희리(대은공의 5세손)의 <전가록>에 실려 있고, 진본청구영언, 악학습령, 해동가요, 가곡원류, 교주가곡집에는 거의 같은 모티프의 우리말 노래가 실려 있다. 이 중 변희리의 <전가록>은 불굴가의 창작 배경과 상황을 노랫말과 함께 상세히 적고 있다.
3. 흔들리는 사설시조의 효시 ‘장진주사’
盞(잔) 먹새그려 또 盞(잔) 먹새그려
돗 것거 算(산) 노코 無盡無盡(무진무진) 먹새그려
이 몸 주근 後(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流蘇寶帳(유소보장)의 萬人(만인)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白楊(백양)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비 굴근 눈 쇼쇼리
람 불 제 뉘 盞(잔) 먹쟈고.
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람 불제 뉘우 엇디리
- 정철, 盞(잔) 먹새그려(將進酒辭) 전문
장진주사는 사설시조로서 멋진 권주가에 해당하는 시조이다. 사람이 한 번 죽고 나면, 거적을 덮어 지게에 짊어지고 가거나, 유소보장 호화로운 상여에 만인이 울면서 따라가거나, 일단 북망산천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외롭고 쓸쓸하고 을씨년스럽기는 매한가지가 아니냐. 부귀와 영화도 살았을 적의 일이지 한 번 죽어지면 모든 것이 다 일장춘몽이다. 공수래공수거 하는 인생, 그러니까 살아생전에 후회 없이 즐겁게 지내보자는 것이다. 초반부의 꽃을 꺾어서 술잔 수를 세면서 즐기는 낭만적이고 풍류가 넘치는 정경과, 후반부에 그려진 무덤 주변의 삭막하고 음산한 분위기는 대조적이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인생무상을 느끼게 한다. 현실에 대한 무기력감과 퇴폐적인 정조로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북망산천의 묘사는 영상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이 작품은 현재까지 사설시조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본고 초두에서 살펴본 불굴가가 사설시조로서 자리매김한다면 여태까지의 통설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즉, 사설시조의 효시는 대은 변안열의 불굴가로서 현재까지 사설시조의 효시로 알려진 정철의 장진주사 보다 창작연대가 약 1.5세기 앞서게 되고, 평시조와 동시대에 발생하였으며 최근 일부 시조시인 중에서 (정격시조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사설시조를 시조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흐름에 대하여도 충분한 재검토를 필요로 하게 한다. 이 문제는 시조 학계의 관련 석학들에게 당면과제로 제공한다.
작자는 정철(鄭澈, 1536~1593)호는 송강(松江)이다. 이조 명종~선조 때의 문신이요 시인이며 서인파의 거장이다. 호탕하고 원숙한 시풍은 가사문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송강집, 송강별곡, 추록유사 등의 문집을 남겼다. 그의 작품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장진주사 등은 조선 문학의 압권이다. 이 작품은 송강가사에 실려 있다.
4. 이름 없는 별들, 그 하나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 요 개치 얄믜오랴
뮈온 님 오며 꼬리를 홰홰치며 뛰락 리 뛰락 반겨서 내고 고온 님
오며 뒷발을 버동버동 므르락 나으락 캉캉 즈져서 도라가게 다
쉰밥이 그릇그릇 난들 너 머길 줄이 이시랴
- 작자 미상,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 전문
이 작품은 임을 기다리는 야릇한 심정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사설시조이다. 시적화자는 자신이 기르는 개가 미운님은 반겨 맞고 고운님은 짖어서 쫓아 버린다고 원망한다. 임이 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오지 않는 임에 대한 미움으로 변했는데, 임을 직접적으로 원망하지 않고, 그것을 죄 없는 개한테 옮겨서 원망한다. 의성어(캉캉)와 의태어(홰홰, 뛰락, 리 뛰락, 버동버동, 므르락 나으락)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얄미운 개가 하는 행동을 소박한 서민적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이와는 달리 해석하는 견해도 있어 소개한다.
이 작품의 시적 화자는 기생이며, 기생은 자기를 찾는 남성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늘 웃음으로 상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요 여자이기에 자신만의 색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기생의 남성 상대는 직업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직업적으로 상대하는 남성은 미운 님이어도 개가 꼬리를 치듯 애교를 부려야 하는 반면, 이성적으로 상대하는 고운 님은 자신의 가치를 우월적으로 드러내어 개가 캉캉 짖듯이 마음을 쉽게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돈을 받고 웃음을 파는 기생이야 남성들의 색을 충족시키면 그만이겠으나 그 남성이 자신에게 맞는 색의 대상으로 느낀다면 사회‧윤리적으로도 자신을 인정받고자 할 것이다. 그 사회‧윤리적 잣대가 바로 성리학적 질서에 따른 여성의 정절이다. 이 작품에는 미운님에 대해 돈을 받고 웃음을 파는 반면 고운님에 대해 성적인 선을 확고히 하면서 양반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절을 내세워야 하는 기생의 울지도 웃지도 못할 비애의 삶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개와 동일시하여 독자의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어 해학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이 시조는 작자 및 창작 연대 미상의 사설시조이다. 초장과 종장은 원래의 시조 형식을 갖춘 반면에, 중장은 그 파격(破格)이 충분히 인정될 만큼 길이가 확장되어 있다. 형식적 파격과 함께 내용에 있어서도 기존 사대부들의 시조에서 볼 수 없었던 자유롭고 발랄한 감정 표현, 일상적인 사실이나 감정을 소재로 하여, 참신하고도 기발하게, 조금은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출처는 청구영언(靑丘永言)이다. 이와 유사한 정서를 가진 작품 한 수를 더 소개한다.
바독이 검동이 청삽사리 중에 조 노랑 암캐 같이 얄밉고 잣미오랴
미온 님 오게되면 꼬리를 회회 치며 반겨 내닫고 고온 님 오게 되면 두 발을 벗디디고 콧살을 찡그리며 무르락 나오락 캉캉 짓는 요 노랑 암캐
이튿날 문밖에 개 사옵새 웨는 장사 가거드란 찬찬 동여 내야 주리라
5. 돌아보기
시조가 성립될 때까지의 모든 시형은 시조형식을 이루려는 준비였고, 시조가 성립된 후의 모든 시형은 시조형식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시조 문학의 성립은 한국 문학사상 일대 시기를 획할 만한 사실이라 하겠으나, 시조가 작품으로 나타난 것은 극히 막연하여 언제 어느 때부터 시조 문학이 형성되었는가는 판단하기 어렵다. 현재까지는 대체로 고려 중기에 발생하여 고려 말기에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라고 한춘섭 박사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조는 평시조와 엇시조 및 사설시조로 갈래 잡을 수 있는데, 평시조는 사대부층에서, 사설시조는 서민층에서 주로 발달했다.
유교적 윤리에 얽매이는 평시조와는 달리 사설시조는 인간의 본능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거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설시조는 주로 중인을 포함한 서민들이 향유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사대부들도 유흥의 공간에서라면 본능적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밝혀져 있지 않은 것은 그 내용상 익명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사대부들도 사설시조를 적지 않게 향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고의 첫 번째 연재에서 사설시조에 대한 자취의 극히 일부를 더듬어 보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설시조에 담긴 우리 민족의 숨결과 맥동이 도도히 흐르는 큰 강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미처 살펴보지 못하고 느껴 보지 못한 선현들의 작품의 향기가 무궁무진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설시조가 엄연히 우리 조상의 얼이 깃들고 피가 흘러 그분들의 가슴 속에서 이글거리던 불덩어리가 오늘날을 사는 우리 가슴 속에서까지 활활 불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분명히 우리 고유의 전래하는 노래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일부 시조시인들은 사설시조를 시조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려 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본고에서 논의된 사설시조와 관련하여 필자는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졸저 장편소설 「대은 변안열의 소설 불굴가, 김용채, 문학의식사, 1921」이다.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이 글은 기존의 연구 결과물을, 일부 그대로 인용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필자가 재구성한 것이다. 원작자에게 미리 허락받지 못하였음을 밝히며 용서 구한다. 김봉집)
김봉집(金蜂輯) 약력
・행정학석사(연세대), 공무원 정년퇴직(서울시청)
・시조시인(농민신춘), 문학평론가・소설가(문학과의식)
・다산목민문학상 외
・(사)한국문인협회 중구지부 창립 회원
・「숭어, 뛰다」(시조), 「고시조 산책 100선」(평론),
「소설 불굴가」(장편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