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코미디 황금시대를 일군 희극배우/구봉서
장석용(영화평론가,경희대 강사)
희극배우 구봉서는 1926년 11월 15일 평양에서, 부친 具然孫과 모친 崔明善 사이에서 치과의료상을 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돌이 지나 상경하게되었다. 그 때문에 여러 악기를 사서 다룰 수 있었던 그는 김용환 악극단의 단원이 되었고, 개성공연에서 동칠이 대역으로 데뷔하여 54년간 코미디언으로 살아오고 있으며,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무대에 열연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는 가족사의 많은 아픔을 접고, 순발력과 한을 소화해내며 오로지 연기에만 몰두해왔다. 그에게 막둥이란 애칭을 붙여준 출세작 『오부자』,『돌아오지 않는 해병』,『수학여행』,『웃어야 할까, 울어야할까』,『남자식모』등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한국코미디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눈물을 알지 못하면 웃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웃음방정식이다. 특징 없는 얼굴로도 천재적인 언어구사력과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대본구성력까지 갖추고 있던 그는 데뷔 후 타이밍이 계산된 디테일한 연기로 곧장 스타로 부상되었다. 이의 밑받침은 물론 많은 독서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의 시나리오는 내용이 부실한 것이 많았고 주연배우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잦았다.
50년대 악극단에서 본격적으로 코미디의 뿌리가 형성된 우리의 코미디는 희극을 수용하는 사회로 바뀌면서 50년대 후반 영화에 자연스럽게 진입하게 되었다. 1956년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의 히트는 희극영화 신드롬을 낳았다. 수십 개의 천막극장에서 애환을 같이 나누던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희극배우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이 황금시대는 6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사회풍자가 짙은 많은 영화들을 제작하였다.
70년대 영화 침체기에 많은 희극인들은 TV로 진출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구성과 개그가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춘 것들이어서 옛날 코미디의 진수를 맛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역사가 말해 주듯 구봉서의 코미디 위의 삶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제 코미디가 개그와 동일어로 쓰여지는 현실에서 코미디언들은 슬플 수 밖에 없다. 가벼운 몸짓, 깊이 없는 일회용 말장난 프로그램들은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이 틀림없다. 지난 해,<그 때 그 쇼를 아십니까>(박상규 연출,이기범악단)에서 향수에 젖게했던 그는 악극, 영화,TV와 라디오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그가 없으면 작품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왕년의 구봉서는 10여 편의 영화에 동시출연을 해야했던 전성기도 있었다.
사실 한국의 60년대 코미디계의 트로이카인 구봉서, 곽규석, 배삼룡의 존재가 없었다면 코미디의 부흥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들은 서민의 애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요즘의 개그와는 다른 페이소스와 향수권 신장에 큰 역활을 해왔다. 뚱뚱이 양훈, 홀쭉이 양석천, 비실이 배삼용, 막둥이 구봉서, 살살이 서영춘, 후라이보이 곽규석, 합죽이 김희갑등의 애칭은 그들의 브랜드가 어떠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서영춘의 존재는 코미디영화의 기름진 들판을 일구는 전환점이 되었다.
사실 5․60년대의 전국의 천막 극장쇼에서 그들을 보는 기쁨은 요즈음의 TV에서 접하는 그들과는 별개의 맛을 지니고 있었다. 저녁밥을 일찍 먹고 극장에 오거나 장날의 그들과의 만남은 서민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춤과 악단 반주도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크럽』같은 흥분과 일체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기억에 남는 영화는 대원영화사의 유한철 각색,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아닐까 한다. 11명 해병 분대원들의 인천상륙작전 무용담에서 장동휘, 최무룡, 이대엽이 공동출연한 이 영화가 숱한 상을 휩쓸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쟁의 허무와 인간본능을 다룬 이 영화는 제3회 대종상(감독상, 녹음상, 신인상),제1회 청룡상(감독상, 특별상),제7회 부일영화상(촬영상)을 수상했다.
그가 정신없이 출연해온 여러 영화작품들중 『구봉서의 벼락부자』(1961,감독 김수용,구봉서․도금봉 주연),『단벌신사』(1968,감독 김기풍,구봉서․최지희․서영춘 주연),『남정임 여군에 가다』(1968,감독 김화랑,남정임․구봉서․서영춘 주연)등은 최근에 영상자료원에 의해다시 관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챨리 채프린의 예술을 존경하는 구봉서는 6․25 전쟁 당시 정훈부대에서 최은희,배삼룡,석금녀씨등과 활동하기도 했으며,두 배우 지망생의 무작정 상경기를 다룬 『남자는 안팔려』(1963,감독 임권택 감독,)에서 여장을 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고,웨스턴 코미디 『당나귀 무법자』에서 서영춘과 콤비를 이루며 막걸리를 파는 싸롱에서 잔을 비우는 씬에서 그의 능청스런 입담은 고단위 개그였다.그와 호흡이 가장 잘 맞은 배우는 역시 곽규석이었다고 술회한다.
50년 넘게 코미디를 해오면서 아직도 여전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구봉서는 소재 제한이 없고 코미디를 코미디로 봐줄 수 있는 건전한 사회를 원한다. 훌륭한 희극작가가 많이 나오고, 코미디의 사회풍자 기능도 강해지고, 후배들도 연구를 많이하는 풍토를 바란다. 고증없는 악극이 정석으로 비춰지는 것도 문제라고 그는 지적한다. 명퇴란 그에게 있을 수 없다.
77년 곽규석과 출연한 농심라면 CF <형님먼저,아우먼저>는 그들의 인기가 여전함을 입증했다. 최근 MBC베스트극장 『좁은문』(1995년,3월3일 방송, 최창욱 연출)에서도 그의 진가는 드러난다. 역시 연기자들의 저력은 무서운 것임을 일깨워준 몸으로의 실천은 후배들에게 많은 교훈이 되었다.
권력과 금전에 연연해 하는 요즈음 세태와 비교해 국민들의 건강한 웃음을 위해 가정을 희생하며 오로지 코미디 외길로 살아온 그가 존경스럽다.
모든 사랑할 대상에 대한 늦은 반성으로 한국기독연예인선교단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특히 효사상을 강조하고 있으며, 장로 신분으로 여생을 국․내외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참 희극인이다.(2001.영상문화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