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산이슬입니다.
황진이(黃眞伊)의 무덤 앞에서 읊은 시조 한 수.
「청초(青草) 우거진 골에 자다 누엇다, 홍안을 어두고 백골(白骨)만 무쳣 이, 잔(盞)자바 권(勸)리 업스니 그를 슬허 노라」
백호 임제는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본관이 나주였다.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하여 스승이 따로 없을 정도로 어디에도 억매이지 않고 술과 여자 사이를 배회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임종하는 어머니의 부탁에 따라 글공부에 매진 몇 번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하였다.
22세 되던 어느 겨울 날,
성운 남이흥을 알게 되어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의 길에 정진하게 된다.
중용을 800번이나 읽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결과 28세에 생진 시에 합격하고 이듬 해 알성시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오른다.
그러나 서로 헐뜯고 비방하고 질시하면서 편당을 지어 공명을 탈취하려는 속물들의 비열한 몰골들이 그의 호방한 성격에 용납되지 않았다.
벼슬에 관심은 차차 멀어졌고 환멸과 절망과 울분과 실의가 가슴 속에 사무쳤다.
결국 10년간의 관직생활을 그만두고 전국을 유람하면서 술과 여자를 탐 하는데 가는 곳마다 숱한 일화를 남겼다.
관직에 있을 때 서도병마사로 임명되어 임지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에서 위 시조 한 수를 읊고 제사를 지냈다가 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직 당한다.
기생 한우(寒雨)와 주고받은 시조 한우가.
평양감사시절 평양기생과의 로맨스.
술과 여인을 좋아했던 기인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생각해 보면,
그는 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세속과 타협하지 못 했을까?
그는 왜 세상이란 자기 밥그릇을 위하여 아귀다툼을 벌이는 험한 곳인 줄 몰랐을까?
그는 왜 세속에 억매이지 않고 고고하게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는 왜 눈이 두개인 사람이 눈이 한 개인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병신이란 사실을 몰랐을까?
저 세상에 가서라도 험한 꼴 보지 않고 고고하게 살고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