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관의 추억
최 화 웅
단관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의 건물에 스크린이 하나뿐인 극장을 말하거나 젊은이들이 단체관람을 줄여 쓰는 말이다. 열 개 이상의 스크린을 걸고 수많은 칸막이방과 각종 부대시설을 둔 대형 멀티플렉스가 등장한 이후 부산의 경우 남포동과 광복동, 중앙동 일대에 그 많았던 단관극장들이 하나 둘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고 간판을 내렸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의 진출과 백화점에 경쟁적으로 들어선 대형멀티플렉스극장에 밀려 단관극장은 위축과 퇴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단관극장은 대형서점에 밀린 작은 책방과 대형할인마트에 짓눌린 재래시장이나 동네슈퍼 꼴이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어린 날 단체관람의 추억이 서린 단관극장은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부산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단관극장은 평소 행인의 발길이 뜸한 중구 대청동 4가 영선고개 입구에 자리 잡은 가톨릭센터 1층 ‘아트씨어터 씨엔씨’와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옆 가람아트센터 지하 1층 국도앤가람예술관 등 두 곳이다. 그곳에서는 어렵고 철학적이며 염세적이라는 독립영화와 희소가치가 있는 영화, 예술영화와 작품성이 높은 영화를 상영하거나 대관 공연을 하고 있다. 단관극장은 흥청거리고 시끌벅적한 멀티플렉스와 달리 숨을 죽인 채 몸을 낮추고 있다. 초라한 모습에 입을 다물고 자리를 지킬 뿐이다. 교복을 입었던 학창시절 지나치기마저 무서웠던 좌석 뒤편의 임검석이 어느 날 사라지고 차르르 차르르르 돌아가던 영사기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극장 입구마다 대문짝만하게 그려놓은 영화간판도 볼 수 없다. 세상은 그렇게 머물지 않고 바뀌어 갔다. 이제 이날로그 시대의 향수는 그리움으로 남은 것이다. 그러나 단관극장에 이르는 한적한 길은 지금 낙엽 진 노란색 은행잎으로 한창 물들어 있다. 은행잎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며 황금빛 군무를 연출할 때는 지난날 괴테와 마리안네가 나누었던 그 뜨거웠던 사랑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길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도 위의 낙엽을 밟으며 걸어야 온몸으로 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계절의 흐름을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장에는 별리의 아름다움이 넘쳐흐른다.
나는 소박한 단관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좋아한다.
그것은 단관극장을 아끼는 나의 작은 관심과 애착이기도 하다. 젊은 날에는 무슨 일이 그리도 많아서 시간에 쫓겼던지 느긋하게 영화에 빠질 수 없었다. 그 때에 비하면 요즘의 일상은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책장을 펼치며 때로는 연주회장을 찾고 영화를 보고 즐기는 여백이 많은 나날이다. 가톨릭센터가 리모델링을 끝내고 2009년 6월 개관한 아트씨어터 씨앤씨(Art Theater C+C)에서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의미와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와 기독교인이면 꼭 봐야 할 ‘밀양’과 시를 통해 역겨운 현실을 이겨내는 삶을 그린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면서 나름의 감동의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내 삶을 뒤돌아보게 한 구수환 감독의 ‘울지마 톤즈’와 이라크전쟁의 비극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정을 통해 담아낸 ‘바빌론의 아들’을 보면서는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더구나 미사가 없는 월요일 저녁 한 달에 한번 이곳에서 마련되는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에서 안내하는 사회교리를 통해 나의 너의 삶과 믿음의 자리를 짚어보는 것이다. 아트씨어터 씨앤씨 개관 1년 전인 2008년 6월 남포동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은 부산 유일의 단관국도극장이 대연동에서 가람예술관과 손을 잡고 국도앤가람예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새 둥지를 틀고 아름다운 동거를 시작했다. 국도앤가람예술관은 평소에는 상영관이다가 기획 또는 대관공연이 잡히면 공연장이 되는 대안문화공간이다. 그곳은 내가 사는 곳과 가까워서 언제라도 영화 보러가기가 좋은 곳이다. 부산문화회관 옆길을 따라 오르면 오른편에 클래식 카페 필하모니와 모차르트 레스토랑이 있는 가람아트홀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 빨간 벽돌과 담쟁이가 매력적인 예술영화전용관이 자리 잡고 있다. 첫 인상은 지하카페 같다. 계단을 내려가면 5~6명이 들어서도 비좁은 공간에 매표소와 원두커피까지 파는 소꿉장난 같은 매점이 있다. 벽면 게시판을 가득 메운 사진과 영화포스터, 상영시간표와 오가는 곳이 분명하지 않은 길 잃은 엽서들이 입장객을 반긴다. 극장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이동식 스크린이 걸린 무대를 중심으로 반달 모양의 좌석 143석이 정겹게 놓여 있다. 나는 이곳에서 알프스 산맥 1,300m 고지의 봉쇄수도회 수도원의 사계와 침묵수행을 소개하며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부터 온다.”고 일러주던 무려 3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을 세 번이나 보면서 오염된 자신을 정화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끝없는 질문을 던진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와 여운이 강했던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 그리고 오랜만에 깊은 생각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도 볼 수 있었다.
극장과 식당, 비디오가게와 쇼핑시설을 갖춘 복합상영관이 이른바 멀티플렉스다.
내 또래가 왁자지껄한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들어서면 우선 이질감부터 느낄 것이다. 그럴 때면 구수하기 이를 데 없는 어린 시절의 향수가 묻어나는 단관극장의 추억을 되살려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는 옛 그리움에 흠뻑 빠져보는 것이다. 방학이 임박했거나 학기말이나 시험 마지막 날 단체관람을 위해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그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도 밑도 끝도 없는 기대와 설렘으로 마냥 들떴던 기억이 새삼 온몸에 되살아 날 것이다. 나는 국도앤가람예술관의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12,000명에 달하는 회원들은 단관극장을 지키는 파수꾼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언제라도 상영시간표에 맞춰 찾아가면 한 잔에 천 원 하는 원두커피를 들고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는 회원카드는 내게 있어서 무임승차가 가능한 도시철도 복지교통카드만큼 소중하고 고맙다. 영화는 일상의 매너리즘에 젖은 우리에게 일탈의 유혹과 흥미진진한 경험을 안겨주면서 새로운 삶의 경험에 도전하게 한다. 극장문화는 우리의 생각과 인생을 관통하는 삶을 추스리는 존재 양식이 된다. 영화는 인생의 거울로 우리를 비추듯 단관 극장에는 오늘도 꿈 많았던 어린 시절의 스토리를 담은 필름이 돌아갈 것이다.
첫댓글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멋쟁이 선생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비오 국장님, 국장님의 글을 읽으면 늘 '그리움'이 떠오르곤 합니다.
영화표를 사기 위해 자주 줄을 서서 기다렸던 시절이 그리움으로 묻어 나옵니다.
위대한 침묵을 세번씩이나 보셨다니......감히 짐작이 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신부님! 영화 '위대한 침묵'을 다운로드 받아서 다시 보려고 갖고 있습니다.
언제 부산으로 내려오시면 함께 봤으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위대한 침묵'을 통해
침묵의 미학에 빠질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