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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 의 보 감 원문보기 글쓴이: 며루치
허임의 침구학 4 - 침구경험방 본문해설
침뜸에도 보사(補瀉)가 있다
내경’에서 말한 “남으면 사하고, 부족하면 보한다(有餘者瀉之, 不足者補之)”라는 말은 침뜸보사에 대원칙이다. 침뜸이 병을 치료하는 것도 음양의 허와 실이라는 병리상태를 보사수법을 통해 조정하고 평형을 찾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침의 보사법은 매우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보사법의 유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단식보사법
· 염전(捻轉)보사법 ― 침을 무지와 식지로 교체하면서 돌려주는 조작에 따른 보사. 무지가 앞으로 식지가 뒤로 가면 보법. 무지가 뒤로 가고 식지가 앞으로 가면 사법.
· 영수(迎隨)보사법 ― 침을 놓는 방향에 따른 보사. 침끝을 경맥 순행 방향으로 하면 보법. 순행 반대 방향으로 하면 사법.
· 호흡(呼吸)보사법 ― 침감이 이르게 한 후, 환자의 호흡에 따른 보사. 환자가 숨을 내 쉴 때 침을 꽂고 숨을 들이쉴 때 빼면 보법. 반대로 숨을 들이쉴 때 꽂고 내쉴 때 빼면 사법.
· 개합(開闔)보사법 ― 침을 뺀 후 침구멍을 막는 것에 따름 보사. 출침시 신속히 침구멍을 막으면 보법. 침구멍을 막지 않거나 침을 흔들어 구멍을 크게 하면 사법.
· 서질(徐疾)보사법 ― 침을 꽂고 빼는 속도에 따른 보사법. 빨리 꽂고 천천히 빼면 사법, 천천히 꽂고 빨리 빼면 보법.
2.복식보사법
· ‘내경’의 보사법 ― 단식보사법을 배합하거나, 손동작(누르고, 돌리고, 밀고)을 배합하는 방법.
· 소산화법, 투천량법, 양중은음법, 음중은양법, 청룡파미법, 백호요두법 등
3. 배혈보사법
배혈보사법(配穴補瀉法)이란 손의 기술을 이용하는 수법(手法)보사와는 달리 혈자리 선택을 통해 보사를 하는 방법이다. 이는 혈자리마다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침구경험방’에서는 역대 의서에 나오는 몇 가지 경우를 인용하고 있지만 규칙화된 체계는 보이지 않는다. 그 예를 들어본다.
· 눈알이 아프면서 눈물은 안 날 때 ― 중완, 내정을 모두 오래 유침했다가 즉시 사한다.
· 피를 뱉어 속이 손상된 데 ― 어제사, 척택보 (갑을→천금→자생→신응)
· 인후는 붓지 않았어도 열이 막고 있어 무엇을 마시면 코로 다시 나올 때 ― 합곡, 연곡을 함께 오래 유침하고 즉시 사한다.
· 심열이 있어 잠을 못 이룰 때 ― 해계사, 용천보
· 심장이 아프면서 얼굴이 파랗게 되어 죽으려고 할 때 ― 척택침, 지구사
· 식갈(食渴) ― 삼초수, 위수, 태연, 열결을 침으로 사한다.
· 허해서 나는 땀(虛汗) ― 합곡보, 부류보, 하삼리보
· 두통 및 눈병으로 눈이 빨갛게 된 증 ― 모두 사법을 쓴다.
· 신체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할(不仁) 때 ― 먼저 경골을 취하고, 후에 중봉, 절골을 모두 침으로 사한다.
· 허한 사람의 구토 ― 기해보
· 태아가 위로 심장을 핍박하여 답답한 데 ― 보합곡 사삼음교
· 젖이 안 나올 때 ― 소택보
4. ‘침구경험방’의 침보사법
허임은 서문에서 “보사의 방법을 밝히 드러내는 것(發明補瀉之法)”이 책을 저술하는 한 이유라고 말할 정도로 보사법에 관심을 보인다. 그의 침자보사법은 독창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가 어떤 보사방법을 사용하였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5분 깊이를 찔러야 할 혈자리라면 2분을 찔러 넣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2분을 넣고 또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1분을 넣는다. 환자로 하여금 숨을 들이쉬게 하면서 침을 뽑고, 곧바로 손으로 침구멍을 눌러 진기(眞氣)를 보존한다. 이것이 보법이다.”
“5분 깊이를 찔러야 할 혈자리라면 5분을 찔러 넣고 잠시 멈추었다가, 2분을 뽑고 다시 잠시 멈추었다가, 2분을 뽑고 다시 잠시 멈추었다가, 환자로 하여금 숨을 내쉬게 하면서 침을 뽑아 사기(邪氣)를 이끌어, 맞으면서 빼낸다. 이것이 사법이다.”
이를 정리하면 허임의 침보사법은, 침을 3단계에 걸쳐 넣고 빼는(進退) 보사법에다가 호흡보사법, 개합보사법을 함께 쓰고 있다. 즉 보법은 3단계에 걸쳐 침을 밀어 넣고, 사법은 3단계에 걸쳐 침을 빼주어, 각각 진기(眞氣)를 보존하고, 사기(邪氣)를 끌어내는 방법을 기본으로 한다. 거기에다 침을 뺄 때 환자의 호흡을 보할 때는 들이쉬게(吸) 하고, 사할 때는 내쉬도록(呼) 하는 호흡보사법을 같이 쓴다. 아울러 보법에서는 침을 뺄 때 침구멍을 눌러주는 개합보사법도 같이 쓴다.
뜸 바로 뜨는 법
①뜸뜨는 적당한 시간
이른 아침과 오후는 곡기(穀氣)가 허핍한 때이므로 반드시 한 낮에 시행한다.
②뜸뜨는 장수의 결정
뜸뜨는 숫자를 장(壯)이라고 쓰는 것은 뜸봉 한 개의 힘이 어른 한 사람의 힘과
같다고 본 데서 나온 말이다.
· 사지(四肢)는 단지 풍사(風邪)만 없애면 되므로 7장∼7×7장하면 그친다.
· 배와 등은 500장:배꼽 아래가 오래 냉한데, 산가(疝), 기가 뭉친 데(氣塊), 복량(伏梁), 적기(積氣)와 같은 증상엔 뜸을 많이 떠야 한다.
· 거궐, 구미는 비록 흉복의 혈자리지만 7×7장을 넘지 않는다. 만약 쑥을 크게 해서 많이 뜨면 사람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심력이 없게 만든다.
· 머리와 정수리의 경혈에 뜸을 많이 뜨면 정신을 잃게 된다.
· 팔뚝과 다리의 혈(臂脚穴)은 침을 많이 놓으면 혈맥이 고갈되어 사지가 가늘게 여위어 무력해지고 정신을 잃는다..
· 혈자리에는 얕고 깊은 데가 있어, 얕은 경혈에 뜸을 많이 뜨면 반드시 근력을 상하게 되므로 3장, 5장, 7장에서 그친다.
③쑥의 작용에 대하여
허임은 쑥의 성질에 대해 “열이 있을 때 뜸을 뜨면 그 열을 발산시키고, 찰 때 뜸을 뜨면 그 찬 것을 온화하게 해준다. 또한 약물이 들어가면 상행하고, 뜸을 뜨면 하행한다”고 말한다.
④뜸을 뜬 후의 관리법
뜸을 뜬 후 생기는 상처를 구창(灸瘡)이라 한다. ‘자생경’에서는 뜸을 뜬 후 뜸자리가 헐어야 병이 낫는다고 보았고, 심지어 고름이 나야 효과가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뜸의 양이 많거나 자극이 세면 상처가 남을 뿐 아니라 덧날 수가 있으므로 조심하여야 한다. 물집이 잡힌 정도는 터지지 않으면 자연히 흡수된다. 그러나 구창이 오래도록 낫지 않으면 박하, 복숭아나무 가지, 버드나무 가지 등을 달인 물로 씻어준다.
⑤ 뜸의 보사법
· 뜸의 보법 ― 뜸쑥이 살에까지 타들어가 저절로 꺼질 때까지 기다린다.
· 뜸의 사법 ― 뜸쑥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살에 이르기 전에 쓸어버린다.
여러 가지 약물을 이용한 뜸법
뜸법 중 쑥을 직접 피부 위에 놓고 뜸을 뜨는 것을 ‘직접구’라 하고, 피부 위에 놓지 않고 여러 가지 약물을 놓고 그 위에 뜨는 방법을 ‘간접구’라 한다
①마늘뜸법
〈적응증〉 많이 아픈 종독, 아프지는 않고 마목한데, 마늘을 놓고 그 위에 뜸을 뜨면 울체된 독을 끌어내주는 효능이 있다.
〈방법〉 마늘을 3분 정도 두께로 썰어 종두 위에 놓고, 쑥으로 뜸을 뜬다. 다섯 번을 뜨고 마늘 조각을 간다. 창(瘡)이 십여개 연속하여 나 있으면 한 군데를 선택하여 마늘을 이겨서 찧은 것을 환처에 펴고, 쑥을 놓고 뜸을 뜬다. 만약 종기의 색이 희고 농이 들지 않은 사람은 날과 기간을 불문하고 뜸을 많이 뜬다.
②부자뜸법
〈적응증〉 뇌루(腦瘻)와 종기(諸癰腫)가 견고한 경우에 쑥을 부자 위에 붙이고 뜸을 뜬다.
〈방법〉 부자를 바둑알 두께로 종기 위에 바로 붙이고 약간의 침으로 부자를 적신 후 쑥을 부자 위에 놓고 뜸을 떠 열이 스미게 한다. 부자가 마르려고 하면, 다시 침으로 적시고 뜸을 떠 쑥기운이 스미게 한다. 부자가 마르면 바로 바꾸어 준다.
③진흙뜸법
〈적응증〉 종기가 등과 양 견갑간에 생겨 혹 아프거나 가려운데, 처음엔 좁쌀만 하지만 소홀히 하면 10일이 못 되어 죽는다.
〈방법〉 깨끗한 황토와 물을 이겨서 두께는 2분으로 하고 가로세로 1촌반 정도 크기로 떡을 만들어 종기 위에 붙이고, 쑥을 크게 하여 흙떡 위에 놓고 뜸을 뜨되 한 번 뜰 때마다 바꿔준다. 만일 종기가 좁쌀만할 때는 뜸을 7장 뜨면 낫지만 종기가 엽전 크기 정도면 큰 쑥을 밤낮 그치지 말고 나을 때까지 한다.
④소금뜸법
· 곽란에 소금을 배꼽에 채우고 2×7장 뜸을 뜬다.
· 산기(疝氣)가 위로 치밀 때 ― 밀가루를 물에 개 떡을 빚어 배꼽에 놓고 볶은 소금으로 두툼하게 5분을 채우고 뜸쑥을 크게 하여 약간 따뜻해질 때까지 100∼500 장 뜸을 뜬다. 매년 봄 가을로 뜸을 뜬 후 9일을 연이어 밀실에 거하면서 출입과 주·색, 냉물을 삼가면 신효가 있다.
간접뜸법에는 이 외에도 생강, 약전국(두시), 유황, 상지 등의 여러 약물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부항 뜨는 법
부항법은 항아리나 죽관, 컵 등의 부항단지를 피부 표면에 대고 흡력을 발생시켜 피부가 빨려 올라오게 하는 치료방법인데, 이는 혈맥을 확장시켜 국부의 증상을 개선하고 인체의 기능을 조절하는 작용이 있다. 오늘날은 부항컵을 붙이고 공기를 빼내는 방법을 주로 쓰지만, 옛날에는 열을 이용하여 부항단지 내의 공기가 부풀게 한 후 피부에 대 공기온도가 내려가면서 생기는 압력을 많이 이용하였다.
‘침구경험방’에 언급되고 있는 ‘부항구’란 뜸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쑥을 태워서 생긴 음압으로 부항을 붙이는 화관법(火罐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허임은 단순부항법보다는, 부항을 댈 부위에 먼저 삼릉침으로 찌른 후 부항을 붙여 피를 빼내는 자락부항법(刺絡撥罐法)을 많이 활용하였다. 그가 이 방법에 대해 한 설명을 보자.
“몸체가 긴 부항을 쓰되 부항구는 세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능히 독을 빨아낼 수 있다. 아픈 곳마다 삼릉침으로 4∼5차례 찔러 부항입구 안에 대고 부항구를 7차 하되 아픈 곳 마다 침을 놓고 부항구를 한다. 여러 차례 효과를 보았다.”
특히 요배통을 비롯한 통증치료에 자주 이용하였다.
나쁜 피를 빼는 법
침을 찔러 피를 빼내주는 방법인데, 일명 사혈법(瀉血法) 또는 방혈법(放血法)이라고도 한다. 의학사적으로는 유완소(1110∼1200)나 장종정(1156∼1228) 등이 열성질환에 많이 이용하였는데, 이는 출혈이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침구경험방’에서도 여러 병증에 이 침법을 처방하는데, 허임 역시 주로 열이 있는 병증에 사용하고 있다. 노인의 경우는 출혈을 많이 하면 안되지만, 그래도 출혈해야 할 경우에는 시행한다고 하였다. 다음은 출혈법을 사용한 예들이다.
· 두면부에 열이 극렬하여 내려가지 않은 사람 ― 명주끈으로 목을 살짝 묶어 태양과 당양의 혈락이 돋아나게 하고 삼릉침으로 그 혈락을 관자하여 피를 빼준다.
· 머리와 눈이 옹종(頭目癰腫)하고 흉협이 지만(支滿)한데 ― 팔꿈치 안쪽의 혈락 및 함곡혈에 출혈을 많이 시키면 곧 낫는다.
· 두면부에 풍단(風)이 발작하여 붉게 부어 불이 붙은 듯할 때 ― 삼릉침으로 난자하여 나쁜 피를 많이 빼내주면 얼마 안 가서 좋아진다.
· 풍목광란(風目爛) ― 태양, 당양, 척택에 모두 침을 놓아 피를 빼내주면 신효가 있다.
· 갑자기 심흉통이 있으면서 땀이 날 때 ― 간사, 신문, 열결, 대돈을 찔러 출혈시킨다.
· 풍단(風丹) 및 화단독(火丹毒)에 ― 삼릉침으로 난자하여 나쁜 피를 많이 빼낸다. 다음 날에도 붉은 기운이 있는 곳은 피를 빼내준다.
· 용창(龍瘡)에 ― 용천, 위중을 찔러 출혈하면 곧 효과가 있다.
· 열병에 열이 심하며, 두통이 있고 물을 찾는데 ― 척택혈 상하의 푸른 혈관(靑絡血)을 관자하여 출혈시키면 신효가 있다.
· 하마온(蝦瘟)에 ― 삼릉침으로 당양과 태양의 혈락을 관자하여 나쁜 피를 많이 빼내주고, 척택과 위중의 혈락을 침자하여 피를 조금 빼준다.
침과 뜸은 함께 쓸 수 없는가?
“침은 몇 푼 놓고, 뜸은 몇 장 뜬다고 하였는데, 침을 놓고 이어 뜸을 뜨는 것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대해 ‘영추’에서는 “침을 놓을 때는 침만 놓고, 뜸을 뜰 때는 뜸만 떠야 한다. 침을 놓고 나서는 뜸을 뜨지 말고, 뜸을 뜬 다음에는 침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대답으로 침과 뜸을 한 혈자리에 동시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후 ‘신응경’ ‘의학강목’ ‘의학입문’ 등의 책도 이를 지지한다. 다만 ‘신응경’에서는 배에 있는 혈자리의 경우는 침을 놓고 뜸을 떠서 그 침혈을 고정시킨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침과 뜸을 한 혈자리에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두 치료법을 동시에 사용하면 기력의 소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다소 이견이 있다. 또한 ‘그러면 다른 혈자리에는 동시 시술이 가능한가?’라는 물음도 가능하다.
허임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물론 직접적인 대답은 없다. 그러나 ‘침구경험방’ 음산문(陰疝門)의 예를 보면, “산기(疝氣)가 위로 치밀어 심복에 급통이 있으면서 숨까지 막힐 때, …갑근혈에 침 1푼 놓고 뜸 3장 뜬다”고 하여, 침과 뜸의 동시 시술에 대해 상당히 융통성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계절과 날씨와 시간에 따른 침뜸치료
역대 의서에서는 천지 자연의 기운에 합일하는 것을 중시하여, 계절과 날씨 또는 년·월·일·시에 따라 때에 맞게 침을 놓아야 한다는 견해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1.계절에 따른 침 깊이의 차이
‘난경’에서는 봄과 여름에는 침을 얕게 놓고, 가을과 겨울에는 깊이 놓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의 양기(陽氣)가 봄과 여름에는 겉에 있고, 가을과 겨울에는 깊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2.날씨와 달 모양의 변화에 따른 침치료
‘내경’에서는 날씨가 차면 침을 놓지 말고, 따뜻하면 의심하지 말고 침을 놓으며, 달이 둥그레지기 시작할 때에는 사(瀉)하지 말고, 달이 다 둥그레졌을 때에는 보(補)하지 말며, 달이 다 줄어들었을 때에는 치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3.침뜸치료에 좋은 날(吉日)과 하지 말아야 할 날(忌日)
침이나 뜸을 놓을 때 좋은 날을 택해서 하고, 나쁜 날은 피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여러 침구서에는 인신(人神)이 때에 따라 각 부를 순행하는데, 그 인신이 머무는 부위에는 침뜸을 금하여 인신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동의보감’과 ‘침구경험방’에서는 태을신(太乙神)이 8절기를 나도는 날수를 따지는 도표와 구궁도의 그림 및 날과 달에 따른 인신의 소재, 침뜸의 길일과 기일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왕조실록을 보면, “오늘은 천의일(天醫日)로 침가들이 가장 길일로 여기는 날이다” “내일은 상현일(上弦日)이어서 침가에서 꺼리는 날이다” “길일 하루 전날에 혈단자 (穴單子)를 입계하는 것이 예이다”라는 등의 언급을 빈번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왕실에서 침뜸치료를 하는데 이러한 시간적 금기사항을 많이 따졌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급한 병일 때에는 여기에 구애되지 말고 속히 치료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천금방’이래로 ‘자생경’등에서 볼 수 있는데, 허임 역시 사리에 깊이 통달한 사람은 이러한 인신금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본문 해설을 마치며
이상 허임의 ‘침구경험방’과 허준의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17세기 조선의 침뜸의학을 대충 살펴보았다. 이들은 이 땅에 침뜸이라는 치료수단의 맥을 이어준 충실한 주자들이었다.
이들을 통해 조선의 침뜸의학은 의미있게 발전했다. 중국의 침뜸의학 서적을 도입하여 간행하고 교육하던 조선초기의 상황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를 소화한 바탕 위에 자체적인 경험을 접목하여 조선 고유의 침구의서를 간행하게 됐다.
이 땅의 사람들은 일찍부터 침뜸이라는 치료수단을 가지고 질병에 맞서 왔다. 그러기에 “침을 맞는다, 뜸을 뜬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그것은 백성으로부터 군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것이었다. 이렇듯 우리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침뜸에 대한 보편적인 관심과 신뢰의 이면에는 조선중기 양 허씨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지 당대의 의학적 대응은 일정한 한계와 제약을 지닌다. 17세기 조선침뜸의학의 역사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한계는 있지만 지난 시대의 침뜸의학과 그것이 시행되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애정을 가지고 보려고 하였다.
21세기를 맞은 오늘날 침뜸의학은 바야흐로 동양의 치료술을 넘어 세계인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경락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여러 가지 신침요법의 개발, 해부 및 생리학의 발전에 힘입은 경혈학의 체계화 등 현대의 침뜸의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지속하고 있고, 침뜸진료실 현장 또한 많이 새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전통 침뜸의학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찬동할 수 없지만, 진지한 성찰이 결여된 피상적 이해 또한 경계한다. 전통 침뜸의학의 충실한 계승과 변용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침뜸의학은 민간과 친숙하다. 누구나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보니 올바른 이론에 근거하지 않은 단순한 ‘술(術)’로 함부로 다루어지는 폐해도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인간과 질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숙련된 테크닉이 겸비된 침뜸의학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출처] 허임의 침구학 4 - 침구경험방 본문해설|작성자 벽담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