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년 한결같은 사랑과 봉사, 애국심으로 살아오신
각당복지재단 설립자 김옥라 박사님 영전에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원장 양 정 자
본 상담원의 고문이시자 국내 최초의 자원봉사자 전문 교육기관인 각당복지재단의 명예이사장 김옥라 박사님이 8월 30일 103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시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김옥라 박사님은 평생을 여성운동, 인권운동, 생명운동,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운동을 펼치신 활동가인 동시에 화해의 사도로서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일에는 법률구조사업을 하는 저희와 같은 길을 가는 동지셨으며, 저를 비롯한 수많은 후학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스승이셨습니다. 이사장님은 ‘정의를 실천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봉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본인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주시고 가르침을 주신 분으로, 항상 마음속에 깊은 존경과 사랑 그리고 정신적인 지주로 모시던 큰 어른이셨습니다. 그렇게 크신 분이 곁에 생존해 계시고 본 상담원의 고문이시라는 사실만으로도 제게는 언제나 큰 힘과 용기, 의지가 되었습니다.
김옥라 박사님과의 첫 만남은 197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여의도에 여성백인회관을 완공하여 이전한 후 상담소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주로 박사님이 안내하시어 상담소 활동을 브리핑 해주실 때입니다. 그 후 상담소 운영이사로 이사회에 참석하시어 자주 뵙는 기회가 있었지만, 회의만 참석하신 후 급히 떠나시고, 외견상으로 쉽게 범접하기 어렵고 약간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를 지니셔서 허물없이 가까이 정을 나누기는 어려운 분 같은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고 이태영 박사님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나고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사람을 알아보시지 못하자 이 박사님을 찾아뵙는 분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거의 찾아뵙는 분이 없을 때, 유일하게 한결같이 변함없이 평균 일주일 간격으로 찾아뵙고 극진하게 대해드리고, 돌보시는 분들에게도 감사 표시를 해주신 분이 김옥라 박사님이셨습니다.
김 박사님은 감리교신학교를 다니실 때 고 이태영 박사님의 부군이신 정일형 박사님께 강의를 들으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김옥라 박사님은 고 이태영 박사님을 스승의 사모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함께 뜻을 함께한 선배·동지로 존경하고 사랑하시고, 두 분의 자녀분들까지 진심으로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1998년 3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김 박사님께 그동안 상담소를 후원해 주시던 여성단체장님들과 함께 상담소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조정 모임에 참석해 주실 것을 요청드리자 귀한 시간을 할애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의 요청으로 인해서 항상 정의와 약자의 편에 서주시는 선생님의 판단과 실천으로 당시 선생님이 공·사간에 인간관계가 있는 분들과 불편한 경우도 있으셨을 거라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1999년 3월 31일 신설된 인사규정에 따라 저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퇴직한 후, 지부 개설 및 후원에 동참해 주시던 분들의 지원과 참여로 같은 해 8월 26일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이 창설되어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창설 당시 고문 위촉을 드리자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승낙해주시고, 소천하실 때까지 고문으로 계시며 큰 힘이 되어 주시어 상담원의 법률구조사업이 튼튼하게 뿌리내리도록 해주셨습니다.
김 박사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필자가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법률구조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때로는 어머니, 때로는 멘토, 때로는 후원자의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본원에서 발간하는 ‘법률복지’ 기사를 하나도 빼지 않고 읽으시고, 특히 메시지를 보신 후에는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본원이 발전하는 것을 보시고 카드를 손수 써서 보내시며 꼭 고 이태영 박사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내용을 넣으셨습니다.
“2002년 새해는 더욱 활기차게 상담사업을 하시기 바랍니다. 작년 통계에 8,000명 가까운 사람들과 상담을 하셨더군요, 이태영 박사가 가정복지상담소의 탄생과 성장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 2002년 구정
“한결같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벗이 되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 2010.9.30.
“이태영 선생님 탄신 백세 기념회에 갔었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양정자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어른을 생각할 때마다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일 많이 하셔서 이태영 박사 영혼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 2014.9.20.
“꽃보다 더 아름다운 푸르름으로 가득한 5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래동안 아프셨던 다리가 나아서 4월 24일 저녁에 백합화를 한아름 가슴에 안고 들어오시는 양정자 박사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백합화의 향기가 우리집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백합을 좋아했습니다. 무엇보다 법률복지상담원을 훌륭히 운영하고 계시니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호소할 곳조차 알지 못하는 분을 위해 무료로 법률상담, 조력, 소송구조를 해주시는 대한가정복지 상담을 통하여 세상은 아름답고 눈물없는 사회가 되도록 이끌어주시는 양정자 박사님께 하나님의 축복을 빕니다.” - 2015.5.15.
자연의 아름다움과 백합화를 좋아하시는 고 김옥라 박사님은 1918년 강원도 간성에서 10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나 간성공립보통학교를 우등 졸업했지만, 집안 형편상 상급학교에 가지 못해 독학으로 지금의 검정고시 과정을 마친 뒤 독지가의 도움으로 감리교신학교에 입학하셨습니다. 그러나 일제 탄압으로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일본으로 건너가 어렵사리 장학생 자격을 얻어 일본 도시샤여대 영문과에 진학해 졸업하시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거쳐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수료하셨습니다.
김 박사님은 미 군정 당시 미국이 강사를 보내 걸스카우트의 전신인 대한소녀단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걸 보고 애국심으로 뛰어들어 재건과 성장을 이끌어 15년 간 간사장을 맡으며 한국걸스카우트가 196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8차 세계대회에서 정회원으로 승인받도록 하였고, 1967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초대 부회장을 시작으로 2대 회장(1967~1973)과 감리교여선교회 전국연합회장(1974~1982), 1981년부터 5년간 세계감리교여성연합회 회장을 맡아 이 단체를 유엔의 NGO(비정부 기구)로 등록시킴으로써 한국 여성 중 처음으로 국제기구 수장이 되시고,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회장 등을 지내며 교회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여성운동을 하셨습니다.
김 박사님은 1986년 부군 나익진(1915~1990) 전 상공부 차관과 함께 국내 첫 전문자원봉사자 양성기관인 사회복지법인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를 세운 후 1992년 부군의 아호를 딴 각당복지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사장을 맡으셨습니다. 우리나라에 자원봉사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할 때였습니다. 부군과의 사별 후에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꾸려 국내 최초로 웰다잉 공개강좌를 여는 등 죽음을 터부시하던 1990년대에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과 웰다잉 운동을 주도한 죽음 준비 교육의 개척자이십니다.
김 박사님은 예순이 넘어서 자원봉사를 시작하시고, 나이가 많아도 배우고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저항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자원봉사자나 재단 직원들과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코칭이 적합하다는 글을 보고 아흔이 넘어서도 학생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시고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셨습니다. 『Methodist Women』, 『World Sisterhood』, 『나, 하나님께 이끌리어』, 『삶과 사랑과 죽음』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를 남기셨습니다.
고령에 봉사하시기 힘들지 않으신지 문의하면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는 건강 주시고, 기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절대 희생이라 생각지 않는다. 기쁨이고 축복이라 생각한다.” 하시던 김옥라 박사님은 “내가 태어날 때의 세상보다는 떠날 때의 세상이 조금 더 나아졌기를, 나의 존재로 인해서 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졌으면 하는 생각으로 살아줬으면 하는 거예요. 그 나아진 변화를 스스로 느낄 수 있고, 제3자가 느껴주면 더 좋고요.”라고 하셨습니다.
본 상담원에서 5월말 발행하여 6월에 발송한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법률상식” 리플렛을 보시고 상속과 유언, 유류분에 관한 법률에 대해 알아보고 싶으시다면서 상담원을 방문하신다 하셔서, 요즘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면접 상담자가 적으니 제가 집으로 찾아뵙겠다 하고 찾아뵌 것이 이사장님과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김옥라 박사님! 박사님을 잃은 깊은 슬픔을 딛고 박사님이 평생에 걸쳐 실천한 “정의의 실천, 약자를 위한 사랑과 봉사의 삶”, “여성운동, 인권운동, 생명운동,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운동”의 길을 따라가고자 노력하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웃으며 격려해 주시겠지요?
김옥라 박사님의 영전에 뜨거운 감사와 깊은 존경과 사랑의 인사를 올립니다.
김 박사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벌써 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