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모 孝道(효도)’에 대한 깨달음 (19P)
♥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니가 물었어요.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 거유?"
"가긴 어딜 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어요
"그래 내일은 무얼 할꺼유? "
"하긴 무얼해? 고추 모나 심어야지!!"
"내일이 무슨 날인지나 아시우?"
"날은 무신 날! 맨날 그 날이 그 날이지~"
"어버이 날이라고 옆집 애들은 벌써 왔습디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지요"
“다른 집 자식들은 철 되고 때 되면 부모를 찾아 오는데, 우리 집 자식들은...”
오늘 아버지는 종일 산마루에서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효도하라.
공경, 효심, 효행 3가지이다.
이제 양가 부모가 다 가시고, 장모님 한 분만 남았다.
정성을 다하여 효도해야지!
다른 부모도 잘 모시자.
교회 내의 어른들도...
(엡6:1) 자녀(子女)들아! 너희 부모(父母)를 주(主) 안에서 순종(順從)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恭敬)하라. 이것이 약속(約束) 있는 첫 계명(誡命)이니, (3)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長壽)하리라.
♥ 어머니의 사랑
누군가가 어머니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열 달 懷胎(회태) 수고하는 사랑,
해산 劬勞(구로)하는 사랑,
젖 먹이는 사랑,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느라 잠자지 못하는 사랑,
철 따라 옷 입히는 사랑,
더러운 것 씻어 주는 사랑,
남 못지 않게 키우느라 학교 보내는 사랑,
앓으면 병 고쳐 주는 사랑,
자나 깨나 염려하는 사랑,
떠나면 보고 싶어 하는 사랑,
잘 하면 자랑하는 사랑,
못하면 분해 하는 사랑,
사람 되라 눈물로 가르치는 사랑,
불순하면 채찍 드는 사랑,
행여 행여 오래 오래 기다리는 사랑,
열 번 잘못 해도 다 잊어 주는 사랑,
날마다 날마다 기도해 주는 사랑,
천만 가지 다 주고도 못 다 주어 아쉬워 하는 사랑,
마지막 臨終(임종)의 자리에서도 잊지 못하는 사랑......
♥ “어메! 꽃 구경 가요.
봄도 오고 날씨도 좋으니, 꽃 구경 가요.”
운전 중에 판소리 “창” 을 목청이 끊어질 듯 애절하게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아들이 창자가 끊어지듯 노래한다.
어미가 너무 좋아서 화답한다.
그리고는 아들 지게에 올라 신나서 꽃 구경 간다.
꽃이 있는 들판이 지나고, 어두운 산길로 들어 선다.
아들은 산 속으로 자꾸만 들어 간다.
그 때서야 어미는 “아이쿠!” 신음한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솔잎을 뜯어다가 길에 뿌리며 간다.
아들이 묻는다.
“어메! 길에 솔잎은 왜 뿌린다요?”
“나중에 너 혼자 돌아 갈 때, 길 잃지 말라고 그런다.”
순간 나의 목이 콱 메였다.
고려시대의 고려장을 노래한 판소리 “창” 이었다.
♥ 정철의 ‘慈孝(자효)’
이조 초기, 정철의 ‘훈민가’ 16수 중에 ‘慈孝(자효)’ 에 효도에 관한 참으로 아름다운 시조가 한 편 실려 있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닲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
나뭇 가지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냥 두지 않고,
늙고 병든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
♥ 喪家 僧舞 老人歎(상가 승무 노인탄)
지극한 효도를 나타내는 고사 성어 가운데 喪家 僧舞 老人歎(상가 승무 노인탄)이란 말이 있다.
“상복 입은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중이 춤을 추고, 노인이 운다.”는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 여년 전 조선 중기 숙종대왕 때의 일이다. 왕이 평복을 입고 민정을 살피며 돌아 다니는 중에 어느 날 밤, 한 골목을 지나 가는 중에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한 오막살이 집에서 늙은이 한 사람이 목을 놓아 울고 있고, 상복을 입은 젊은이는 노래를 부르고, 머리를 박박 깍은 여승 하나가 춤을 추고 있었다. 왕이 너무도 기이해서 신분을 감추고 들어 가서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다음과 같은 기막힌 사연을 털어 놓았다.
“나는 효자 효부를 둔 홀아비 영감이라오. 오늘이 마침 내 생일인데,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내 며느리가 머리를 잘라 팔아서 고기와 술을 사 왔는데, 나를 위로하기 위하여 얼마 전에 애미를 잃은 내 아들은 노래를 부르고, 머리를 깍은 내 며느리는 춤을 추니, 내 일찍 재물을 모아 두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이러오.”
너무도 감동을 받은 왕이 이렇게 말했다.
“내일 특별 과거가 있는데, 과제가 喪家 僧舞 老人歎(상가 승무 노인탄) 이요. 아들을 꼭 보내서 과거에 응하게 하고, 그 내용은 오늘 당신들이 행한 그대로 적으시오.”
그 후 과거에 급제한 아들이 출세하고, 홀아버지를 잘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 효자와 상황버섯
지난 6월 15일 새벽, 화천 평화의 댐에서 배를 타고 물어 물어 "비수구미"란 호수 변 마을에 산다는 장윤일 씨를 찾아 가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엊그제 신문에서 그가 암에 좋다는 상황버섯을 캤다는 기사를 보고, 부작정 나선 길이었다.
구할 수 있을까?
그 비싼 걸 돈돈 없이. "신문 보고 왔습니다. 상황버섯 좀 얻으려고..."
물안개 속에 어리둥절해 있는 그에게 덥석 큰 절부터 했다.
"아버지가 위암입니다. 병 고치느라 집 팔고 차도 팔아 빈털터리입니다. 지금도 친구분 병원에 거저 누워 계십니다. 가진 건 이것 뿐입니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상황버섯.
스스로도 턱 없는 짓이라 여기며 회사 홍보용 기념품을 내밀었다.
"배짱 참 좋수. 십원 한 푼 안 가지고 오셨네."
그는 한 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먼 길을 밤새 왔는데 역시 허사인가?
곁에 앉은 아주머니도 말이 없었다.
그래도 매달려야지 생각하는 순간. 장씨가 아들을 불렀다.
"조금 남은 것 있지? 죄 가져 오너라."
한쪽은 까맣고 한쪽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자연산 상황버섯 2백g.
너무 기쁜 나머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돌아섰다.
등 뒤에서 그가 아들에게 "저런 사람 빈 손으로 보내면 평생 가슴에 비수 꽂고 산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보름 만에 돌아 가셨다.
그래도 버섯 덕인지. 큰 고통은 없이 떠나셨다.
우리가 잃어 버린 것들 우리가 찾아야 할 것들/박우사
♥ 김용기 장로의 효 사상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가나안 농군학교 교장이셨던 김용기 장로님은 부모 공경을 이렇게 가르쳤다.
1>.부모 앞에서 얼굴에 각을 짓지 말라.
각을 짓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신경질이 난 표정으로, 뾰루퉁하게 부모님 앞에 서 있으면 그것이 바로 불효라는 것이다.
2>.대답을 잘 하라.
사실 성질 급한 사람은 대답 소리 늦는 것 만큼 화가 나는 일이 없다.
“부모가 논산훈련소 조교 만도 못하냐?”
그렇다. 군에 가 본 분은 무슨 소리인지 알 것이다.
부모가 부르면 대답을 시원 시원하게 대답을 잘 해야 한다.
3>.용돈을 자주 드려라.
아직 남아 있다 싶을 때, 또 드려야 한다.
자신들은 택시비다, 외식비다 막 쓰면서 부모님의 용돈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부모님 주머니에 항상 돈이 있게 해야 한다.
효도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주님이 부모님께 드릴 것을 따로 후하게 챙겨 주신다.
4>.그 입을 기쁘시게 하라.
늘 뭔가 잡수시게 해야 한다.
연로해지시면 음식이 맛이 없어진다.
잘 챙겨 드려야,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신다.
물론 노환에 계신 부모님께 절제 없이 드리면 안된다.
5>.눈을 즐겁게 해 드려라.
노인 관광이나 공휴일 등에 기회가 있으면 꼭 보내 드리고, 시간이 되면 함께 모시고 가야 한다.
6>.좋아하시는 것을 해 드려라.
목도리나 옷가지 등을 철 따라 하나씩 해 드리라는 것이다.
7>.가정을 명랑하고 화목하게 하라.
아무리 잘 잡숫게 하고, 좋은 옷을 해 드리고, 돈을 풍족하게 드려도 그 마음을 불편하시게 하면 효도는 헛 일이다.
8>.안경을 사 드려라.
9>.아프시면 즉시 병원에 모시고 가라.
자기 아들 딸은 기침만 조금 해도 쪼르르 병원에 달려 가면서, 부모가 기침하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어머님은 찬 바람만 나면 저러셔.”
“원래 늙으면 저렇게 기침을 하는 거야!”
잘 들으라. 노인의 몸은 더 아프다.
10>.팔 다리 주물러 드려라.
연로하시면 팔 다리가 저리고 쑤신다.
안마해 드리면 그렇게 시원해 하실 수가 없다.
11>.이야기를 들어 드려라.
늙으면 사람은 팔 다리에는 힘이 없고, 입으로 힘이 다 간다고 한다.
이해하고 들어 줄 줄 알아야 한다.
面駁(면박)을 주거나, 외면하면 안된다.
12>.궁금증을 풀어 드려라.
13>.아기를 맡기지 말라.
아기 보는 일은 가장 힘든 중노동이다.
14>.시키시는 일이 무리하더라도 실행하라.
70세 이상 연로하신 부모님은 어린 아이 같이 된다.
젊은 사람이 이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리 이치를 따지며 걸고 넘어지면 아니된다.
♥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일 (14P)
에베소 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잠언 23:24-25,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언 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 친정 집에서 양식을 훔쳐 온 효성 깊은 며느리
옛날 충남 공주 땅 팔봉산 자락에 효심이 지극한 청상과부가 병든 시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다.
본래 밭고랑 하나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다 그나마 시집 온지 삼 년 만에 들일을 나갔던 서방이 벼락을 맞아 죽는 바람에, 졸지에 죽고 기력 없는 시아버지만 떠안고 말았다.
말 잘하기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이 과연 몇 해나 버틸 거냐고 허구한 날 수군거렸지만, 청상과부의 효성은 벌써 일곱 해를 하루 같이 변할 줄 몰랐다.
시아버지의 병 구완은 변함없이 지극 정성이었으며, 봄이면 날품팔이, 여름이면 산나물과 약초를 캐다 팔아 힘든 생계를 이어 갔다.
"아가야, 이제 그만 친정으로 돌아 가거라. 그 만큼 고생했으면 됐다.
이제 좋은 상처 자리라도 만나, 배나 곯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
세상천지에 널 탓하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그만 돌아 가거라!”
병 든 시아비는 틈만 나면 며느리의 손을 잡고 통사정을 하며 울었다.
"아버님! 제 집이 여기인데, 왜 저를 자꾸만 내치시려 하십니까?
저는 아무 데도 안 갑니다.
살아도 이 집 며느리요, 죽어도 이 집 귀신인 제가 가기는 어딜 간단 말입니까?
제발 그런 말씀 마시고 어서 몸이나 쾌차하십시오. 아버님!”
몹시 흉년이 든 어느 해 가을, 추석 명절이 돌아 왔다.
그나마 받은 품삯을 시아버지 약값으로 다 쓰고 보니, 정작 차례를 지낼 일이 걱정이 되었다. 이틀 후면 한가위인데 아무리 궁리를 해 보아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빈상에 냉수만 올리고 제사를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돌아 가신 분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병든 시아버지의 낙심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며느리는 방문 앞에서 시아버지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버님, 저 읍에 좀 다녀 오겠습니다!”
며느리가 쪽마루를 내려 서는데 시아버지는 그 날 따라 안간힘을 써 가며 문구멍으로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사립문을 나서는 며느리의 가련한 모습을 보면서 시아비는 피를 토하며 울고 있었다.
며느리는 정처 없이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두 다리는 돌덩이를 매단 듯 천근만근으로 무겁기만 했다.
걷다 힘이 부치면 냇가 미루나무 아래서 쉬고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벼 이삭을 주우며 걸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더 없이 야속하기만 한 서방의 얼굴이 어른거려 쉴 새 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걷고 또 걷고, 얼마나 걸었는지 어느 새 해는 한나절이 지나고 서쪽 하늘이 봉선화 꽃잎을 흩뿌린 것처럼 군데 군데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큰 재를 넘으니 마침내 오매불망 그리던 친정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버지, 어머니...”
딸은 실로 몇 해 만에 보았을 친정을 내려다 보며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날이 어둡기만을 기다리며 그토록 서럽게 울었다.
얼마 후 딸은 친정 집 광속에서 제법 묵직한 자루 하나를 들고 나와 미친 듯이 재를 넘고 있었다.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딸은 뒤도 돌아 볼 새 없이 정신없이 오던 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뭄이 들었다지만 요행히도 친정 집은 아직까지 보릿가루며 보리 기울이 넉넉한지라 이고
갈 만큼은 퍼 담았다.
그녀가 그렇게 곡식 자루를 이고 뒷동산을 넘고 있을 때 말없이 툇마루에 서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친정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딸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동산을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아이고 불쌍한 것, 어찌 이다지도 박복하더란 말이냐? 오죽이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이 한가위에 친정 울타리를 다 넘었겠느냐, 아이고 불쌍한 내 딸아!”
며느리는 새벽녘이 다 돼서야 온 몸이 땀에 절어 돌아 왔다.
그 머나 먼 곳을 다녀 왔지만, 그녀는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하나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한가윗날 아침에 산나물 반찬에 밀가루 전을 부쳐 흰 쌀밥을 올리고 조상은 물론이요, 시어머니와 서방님께 제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 고단함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한없이 마음이 설레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나 며칠이 되면서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사립문 밖에서 소란한 기척이 들려 밖을 나가 보니, 서너 말이 됨직한 좁쌀 자루가 놓여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 흉년에 누가 이 귀한 낱알을 두고 갔을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짐작이 갈만한 구석이 없었다.
아무리 궁색한 살림살이지만 남의 곡식을 덥석 축낼 수가 없어 며칠을 새벽잠을 설치며 전전 긍긍하는데, 어느 날 또 다시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몇 날 며칠을 기다렸던 터라 며느리는 죽을 힘을 다해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사이, 등에 지게를 걸머진 남자가 번개같이 담을 돌아 논둑길을 내려 서고 있었다.
"보셔요. 잠시만 저를 보셔요."
어느 새 남자의 등 뒤까지 따라 간 며느리는 그만 낚아채던 남자의 팔을 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
멋쩍은 듯 웃으며 돌아선 이는 다름 아닌 친정 아버지였다.
"이것아 집에 왔으면 어미나 보고 갈 일이지. 고구마다, 허기질 땐 꽤나 양식이 되고...
정 힘들면 대낮에 다녀 가거라. 네 어미에게는 아직 말을 안 했다!”
"아버지, 절 보셨으면 왜 한 번 불러 주지 않으셨어요!"
딸은 서럽게 목 놓아 울고 있었다.
"들어 가거라, 어서. 동네사람 볼까 무섭다. 어서!"
돌아 서는 아버지의 볼에서도 어느 새 하염없는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소중한 친구에게 주고 싶은 글💖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otoi&logNo=220661077670&targetKeyword=&targetRecommendationCode=1
♥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1.아직 우리가 아주 어리든지,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든지, 혹은 지금 이미 성장하였든지 간에 우리 모두에게는 부모가 있읍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정도에 걸쳐 우리 대부분을 위해 베풀어진 보호, 일, 금전, 자기 희생적인 노력 등을 다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들은 사실상 우리가 부모들에게 되돌려 드릴 수 없는 것을 우리 각자에계 주셨습니다. 우리가 부모들에게 또 다른 어떤 것을 빚지고 있든지 간에 우리는 현재의 생명을 빚지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명백한 사실 자체 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 6:2-3.
2 우리가 첫째로 빚지고 있는 분은 모든 생명의 참된 근원이신 창조주이시지만, 우리의 부모에게도 참으로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깊이 느껴야 합니다. 부모들이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신해서 그 분들께 드릴 수 있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주고도 생명을 살 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생명을 단순히 값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가 8:36,37; 시 49:6-8)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로마 13:8) 특별히 우리는 그 분들과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 분들에게 진 빚으로서, 부모들에게 계속 사랑을 나타 내도록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들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처럼 생명을 드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생명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을 부모에게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들을 즐겁게 하고 깊은 만족감을 가지도록 하는 데 공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그 분들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3 잠언 23:24-25,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자기 자녀들이 하는 일에서 자랑을 느끼고, 자녀들에게서 즐거움을 발견히려는 것은 부모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입니다.
우리의 부모들도 그러합니까?
4 대체적으로 그것은 우리가 부모의 지위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그 분들의 권고를 잘 들는 것에 달려 있읍니다. 아직도 어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십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로새 3:20)
“모든 일”에는 부모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요구할 권한은 포함되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어릴 때 모든 생활 분야에서 우리를 인도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려 주는 것입니다.-잠언 1:8.
5 현재 당신은 어린 사람입니까?
언제가는 당신도 부모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를 원할 것입니까, 아니면 도전적이고, 아마 말을 듣는 체 하면서도, 부모가 보지 않을 때는 불순종하는 자녀를 원할 것입니까?
잠언 17:25은 “미련한 아들”은 즐거움을 가져오기 보다,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부모를 행복하게 할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듯이, 또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부모들에게 깊은 슬픔과 실망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행실이 그것을 결정할 것입니다.
지혜를 얻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6 청소년들은 지혜를 얻는 데, 나이가 필요한 요소임을 인식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은 지금 열 살입니까?
그렇다면 다섯살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열 다섯살입니까?
그렇다면 열살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스무살에 가까와 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열 다섯 살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나이가 당신을 더 현명하게 만든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읍니다. 그러나 앞을 바라 보고,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청소년이 얼마나 지혜롭든지 간에 그는 미래에 더 지혜롭게 될 수 있고, 지혜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7 이것은 무엇을 알려 줍니까?
당신의 부모는 당신 보다 더 나이가 많은 분들이고, 당신보다 경험이 더 많으시기 때문에 인생 문제를 대처하는 데 있어서 당신보다 더 현명하다는 점입니다.
청소년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구식”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일부 청소년들이 무책임하다고 해서 모든 청소년들이 다 무책임한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청소년들이 나이 든 사람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한 왕은 이러한 큰 실책을 범하여 재난을 당하였읍니다. 41세 된 르호보암이 자기 아버지 솔로몬의 왕위를 계승하였을 때, 백성은 짐을 가볍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읍니다. 르호보암이 연로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더니, 부드럽고 친절하게 하도록 권고했읍니다. 그 다음에 그 왕이 젊은이들에게 물었더니, 그들은 강압적인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의 충고를 따랐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열 두 지파 중 열 지파가 반역하였고, 르호보암에게는 자기 왕국의 단지 6분의 1밖에 남지 않았읍니다. 젊은이들이 아니라, 연로한 사람들이 현명한 권고를 했던 것입니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욥 12:12; 열왕 상 12:1-16; 14:21.
8 당신의 부모들이 젊은이가 아니라는 이유 만으로, 그들의 충고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찌니라”고 말합니다.
연로한 사람은 존경을 받을 만합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 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러한 명령을 무시하는 청소년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신과 부모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잠언 23:22; 레위 19:32.
자기의 본분을 이행함
9 당신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히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한 가족 성원이 고통을 당하면 모두가 혼란을 겪게 됩니다. 또한 한 가족의 성원이 불평을 잘 하거나 반항적이면, 전 가족의 평화가 깨뜨려집니다. 행복한 가정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기의 역할을 이행해야 합니다.-비교 고린도전서 12:26.
10 당신이 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돌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당신이 청소년으로서 집에 있다면 당신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생활의 많은 부분이 일하는 데 보내지게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배우고 선한 동기로 그것을 한다면 진정한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의 본분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기 대신 모든 것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결코 그러한 만족을 알지 못하며, 그는 성서에서 말한 바와 같이 ‘눈에 연기’처럼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할 것입니다. (잠언 10:26; 전도 3:12,13)
그러므로 집에서 어떤 일이 맡겨진다면 그것을 하되 잘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부모를 진정으로 즐겁게 하기를 원한다면 요청 받지 않더라도 어떤 가외의 일을 하십시오. 당신은 아마 그러한 일이 모두를 가장 즐겁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왜냐하면 당신은 그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마음으로 원하여 그것을 했기 때문입니다.
11 젊은 사람에 의해서 깊은 인상을 받을 때,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그가 누구의 아들 혹은 누구의 딸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젊은 다윗이 탁월한 담대함과 믿음을 나타 냈을 때, 사울 왕은 즉시 “이 소년이 뉘 아들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무엘 상 17:55-58) 당신에게는 가족의 이름이 따라 다닙니다. 당신의 행동이나 당신의 사람됨은 사람들이 그 이름과 그것을 당신에게 주신 부모들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당신이 이웃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 도움, 존경, 우정을 나타 냄으로써, 부모들에게 영예를 돌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의 창조주를 영광스럽게 합니다.--잠언 20:11; 히브리 13:16.
12 부모의 행복은 당신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훈련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은 당신이 인생 행로에서 선한 출발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부모들의 노력에 협조한다면 그 분들에게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최상의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영감 받은 필자는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3:15) 당신의 부모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것에 대해 당신은 참된 지혜의 길로 인도할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면 부모들이 충실하게 그 책임을 이행하도록 도우십시오.
잠언 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13 부모가 당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거나 제한이 너무 많다고 느낄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징계 문제에서 올바른 균형을 잡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이 가정을 가지게 되면 당신은 동일한 문제를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부모들이 어떤 청소년들과의 교제를 제한하거나 당신에게 마약 사용을 경계하거나 이성과의 교제를 어느 정도 제한한다면 잠간 멈추어 관심이 없는 부모보다 징계하는 부모를 가진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잠언 13:20; 3:31) 그들의 징계에 유의하십시오. 당신은 스스로 유익을 받을 것이며 부모들의 마음을 즐겁게 할 것입니다.--잠언 6:23; 13:1; 15:5; 히브리 12:7-11.
14 물론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이 당신 자신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반응은 가정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성서는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권고합니다. (로마 12:18) 그렇게 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릅니다. 우리는 사물을 보는 견해가 다르고 나타 내는 반응이 다릅니다. 상반 되는 견해와 욕망이 있습니다. 당신의 형이나 동생 혹은 누이와 충돌이 있다고 합시다. 당신은 상대편이 이기적이라고 생각될지 모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15 어떤 아이들은 즉시 큰 소리로 욕하고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참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혹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하여 밀고 때리는 일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감 받은 잠언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라고 말합니다. (잠언 19:11) 어떤 면으로 그러합니까? 그렇게 할 때 참작할 만한 상황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 행동은 고의적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또 자신도 여러 번 잘못한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의 용서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드리고 있다!) 또한 자기 형이나 동생 혹은 누이가 잘못하였다 할지라도 자기가 화를 내어 전 가족의 평화를 깨뜨린 점은 자기의 잘못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에 대해 잠언은 계속하여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또한 골로새 3:13,14 참조.
16 기본적으로 하니님을 경외하는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여호와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시 78:36-41)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을 모르는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세상에서 인기를 얻게 되고 이름을 내고, 돈을 많이 벌면 즐거워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서 받아들이는 부모들은 이 세상과 그 욕망은 지나 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1서 2:15-17)
그러므로 그들은 자녀들이 창조주께 순종하고, 그 분의 뜻을 행하고 그 분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을 볼 때 진정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경건한 부모들도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할 때 행복해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학교나 다른 곳에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표준에 충실하고 그분을 즐겁게 하려는 욕망을 나타낼 때 더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여호와의 길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때 특히 즐거워합니다.
17 우리가 성장하여 집을 떠난다 할지라도, 부모들에 대한 우리의 염려가 식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부모들이 전 생애를 통해서 행복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 해 동안 그 분들은 우리의 필요를 돌보아 오셨으며, 때때로 상당히 많은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감사함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18 우리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경건한 요구 조건을 명심할 수 있습니다. (마태 19:19) 우리가 바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로부터 소식을 듣고 부모들을 방문하는 것이 부모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19 해가 지남에 따라 “공경”을 다른 면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물질적 도움이 필요하다면 부모가 당신에게 베푼 모든 것에 대한 인식과 여호와의 의로운 요구 조건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십시오. 사도 바울은 연로한 사람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편지했습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디모데 전 5:3,4.
20 부모들을 “공경”하는 데에 물질적인 지원도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은 성경에 명백히 나타나 있습니다. 한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그 분의 제자들이 전통을 어겼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태 15:1-6.
21 그들은 돈이나 재산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전통에 따라 부모를 돌볼 책임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도 그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사회 복지” 제도에 의해 연로한 부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의 일부가 돌보아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련이 진정으로 충분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혹은 그러한 마련이 전혀 없다면 자녀들은 실제적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연로하고 궁핍한 부모들을 돌보는 것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와 같이 진실로 “경건”의 증거, 가족 마련의 창시자인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충실성 증거입니다.
22 그러나 노후에 부모들에게 적절한 식품, 옷 혹은 거처가 있다 하더라도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감정적인 영적인 것도 필요합니다. 부모들에게는 사랑과 확신을 갖게 하는 관심이 필요하며, 몹시 그러한 것을 필요로 할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전 생애에 걸쳐 누군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누군가에 소속되어 있으며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육체적 감정적 필요와 관련하여 연로한 부모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잠언 19:26.
23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자녀들은 부모의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많은 자녀들은 슬픔과 실망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부모의 지위를 존중하고 그들의 권위에 귀를 기울인다면, 당신이 그 분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애정을 나타낸다면 당신은 부모의 마음을 매일 즐겁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언 23:25
♥ 효의 생활화
기독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기독교 신앙에는 동양 윤리의 근원이 되는 부모에 대한 효의 가르침이 없다. 그러므로 동양사람 들의 종교에는 맞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성경을 잘못해 그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효를 인간 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사람이 지켜야 할 십계명을 주셨는데, 이 십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과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계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사회에서 지켜야 할 첫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20:12)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회생활에 대한 다른 계명과 달리 [네 생명이 길리라]라는 상급을 말씀하시면서까지 부모를 공경하라고 강력히 분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효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아무리 철야하고 금식하며 기도를 한다고 해도 그 기도는 헛된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 나라를 진실로 걱정하는 늙은 부모들의 절규 (6P)
(박정희의 유신 독재만 칭찬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은 글일까?)
젊은이 들은 들어라!
몇 년 전 돌아 가신
우리 외할매는 말했다.
왜정 때,
그래도 이 땅 보단 뭔가 나을 듯해 만주로 갔단다.
그리고 뙈놈들한테
갖은 무시를 당하다가,
내 나라가 독립됐단
소리 듣고서,
이고 지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 왔단다.
그 때 우리 어매는
외할매 어깨 위에서 두만강을 건넜단다.
그래, 우리 어매는 만주에서 태어 났다.
어느 놈들 논리라면 뙈년이겠구나.
어쨌든 중국 땅에서 태어 났으니...
누구는 일본에서 태어 났고,
그래서 친일파란 소리 들었다니, 그렇겠구나.
1917년 태어난 박정희도 만주로 갔지.
그리고 군인이 되었다.
그래서 친일파라더구나.
그런데 그가 태어 났을 때 그가 속할 나라는
이미 일본 뿐이었다.
태어난 게
태어난 자의 죄인 거냐?
너희들은 부모를 골라서,
나라를 골라서 태어 날 수 있었더냐?
태어난 게
어매 잘못이냐?
박정희 잘못이냐?
못 먹고 못 살아 찢어지게 가난하여
조국도 없던 그 시절이 잘못 아니더냐?
청나라로 끌려 갔던 여인들이 ‘환향녀’ 로 罵倒(매도)되어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아 있지.
화냥년!
지켜지지 못해 피해 받은 그들이 무슨 잘못이더냐?
일제 때 이 나라의 꽃다운 처녀들이
성 노예로 끌려 갔다고 분개하더라!
그게 누구 잘못이냐?
그녀들의 잘못이냐?
일본 놈의 잘못이냐?
그러지 않게 지켜 줄 나라가 없어지게 된 탓 아니냐?
그런데 나라를
일제에 넘기고도
이씨 왕가 일족들은 일제가 망하는 그 날까지도
호의호식했다 하더라.
그래 우리 외할매는 수꼴이었다.
아니 우리 할매도
할부지도 수꼴이었다.
나라가 없다는 건,
지킬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지.
그래!
너희들이 비웃는 늙어서 죽어야 하는 80~90대는
내 나라가 없어
서럽던 그런 분들이다.
그래서 그 분들은 경험으로 안다.
내 나라’ 라는 게 울타리라는 것을...
나라가 없이는
나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안보, 안보 하며
지팡이를 짚고,
꼬부라져서라도 태극기를 들고 나서는 것이다.
이제 80을 앞둔
우리 어매는 말한다.
나무 껍질 벗겨서
먹어 봤냐고...
부황이 들어 온 몸이
퉁퉁 부어 봤냐고...
쌀 한 줌에 고구마 줄기를 한 솥 넣어
풀죽 끓여 먹어 봤냐고...
전염병이 돌면 픽픽 죽어 나가는 사람을 본 적 있냐고.
공부하고 싶어도 학교가 없었던
그 시절을 겪어 봤냐고...
지금 북한이 그 모양, 그 꼴 아니냐?
미국?
양키?
우리 어매는
그런 거 모른다.
시골 초봄, 누렇게 떠서 죽어 가다가
학교에서 배급으로 나눠 준 우유 가루로
죽을 끓여 먹고
설사를 할 망정,
그 덕분에 살았다 한다.
우리 어매도 6.25는 이제 가물 가물하다.
벌써 70년 전 일이다.
그래도 우리 어매는
단 하나는 안다.
배 고픔이 사람을 얼마나 짐승으로 만드는지를...
우리 아배는 말한다.
5.16 혁명을
국민들은 반겼다고...
전쟁은 끝났지만,
먹고 살 길은 막막했고,
못 먹고 못 살던 국민들의 패배감은 끝이 없었는데,
민주주의 하겠다던
4.19 다음에
나라는 되레 난장판,
데모 천지가 되었다고...
그래서 그 때는 또 한 번 세상이 뒤집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득했다고...
그럴 때
난장판인 나라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배 고픔을 면하게 해준 건 박정희였다고...
그래! 그래서
우리 어매도, 아배도 태극기를 들고 나섰다.
너희들이 말하는 것처럼 늙어 빠져서
뇌가 마비 되어서,
세뇌 되어서가 아니라,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말아야겠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그래도 이 만큼 살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은혜 갚음 때문에,
그 뼈저린 경험 때문에 그러하다.
너희들이 보기에는 우습게 보이느냐?
판단력이 흐려진 늙은이들로 보이느냐?
장기 집권이 잘못됐다고 하느냐?
유신 독재 잘못 됐다고 하느냐?
그러나 그 시대를 열심히 일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그래도 고마웠다고...
먹고 살 만하게 되었기에
그 다음에 저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고 뭐고가
있게 되었다고...
나라 뺏긴 서러움을 아는 사람,
6.25를 겪은 사람들이 바로 너희들이 말하는
늙어 빠진 노인네 들이다.
너희들이 결코 알지 못하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늙은 수구 꼴통 들이다.
그들이 가난을 원수처럼 여겨,
나라를 일으키는 초석이 되었다.
자기 한 몸 희생해서 나라를 위해 살아 왔다.
나라 없는 설움,
약해서 겪은 전쟁,
그 참상을 알기 때문이다.
박근혜 밉다고 앞 뒤 가리지 않고 쫓아 내고,
문재인 좋다고 ‘대깨문’ 해서, 그래 지금 만족스러우냐?
니들 일자리부터 날아 가고,
경제는 난장판인데,
니들의 ‘문재인이니’는 ‘정으니’에게 퍼 줄
생각에 여념이 없더구나.
그게 니들이 바라던 거냐?
그래 좋다 촛불 민주주의!
그런데 그러다
나라의 경제가,
안보가
다 깨지든 말든
그래도 좋다는 거냐?
알아 두어라.
나라가 있어야 하고
나라가 강해야
너희들도 있다는 것을...
너희들이 때로 나라를 욕하고, 촛불을 들 자유도
그 나라가 있고서야 비로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아 두어라.
장미꽃은 향기롭지만
결코 수프를 끓여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배추 시래기로라도
배를 든든히 하고서야
장미향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무엇이든
기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희들도 잘 알 것이다.
그 기본은 바로 "나라" 다.
그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
너희들의 나라이다,
이 멍청하기 그지 없는 불쌍한~~~
전교조 교육을 받고 자라 난
20~ 30~ 40대들아!
정신 차려라~~
네 놈들이 나라가 없어도
지금처럼 대가리 하늘로 쳐들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