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용서해야 하는가?
♥ 일생의 무거운 짐, ‘容恕(용서)’의 문제 25-2 ♥
한 인간 裵鐘富(배종부) 목사의 ‘容恕(용서)’
♥ <성령의군대> 선교 후원 ♥
배종부 농협 3560393-047263
배종부 <성령의군대> 지도목사
서울 새성교회(장로교 통합)
서울 노원구 노원로 26가길 25, 코롱상가 3층
010-2940-1717
배종부 목사의 글, 설교, 유튜브 동영상을 보시고 감동이 되시는 분은
너무나 어려운 주의 종들과 고통 당하는 선교사님들이 많음으로,
어려운 개척교회와 열악한 선교사님들을 섬기는
<성령의군대>를 정성껏 후원해 주십시오.
1.容恕(용서)의 문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 - 2P
2.용서해야 하는가? - 15P
3.어디까지 용서해야 하는가? - 32P
4.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 – 46P
5.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지 않으실까? - 58P
6.용서하지 않으면, 내게는 무슨 일이 있을까? -
7.시간이 가면 용서가 되는가, 그냥 잊혀지는가? -
8.인생은 끝없는 용서이다. -
9.한 인간 裵鐘富(배종부) 목사의 容恕(용서) -
10.그래도 생각하면 또 화가 나고, 용서가 되지 않는다. -
11.성경이 말씀하는 용서 -
12.나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
13.그들도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14.잘못을 빌면, 착한 나는 宜當(의당)히 용서하지! -
15.배종부 목사를 배신한 자들에 대한 성령 하나님의 회개 촉구 편지 지시 -
16.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잊혀진 사람들 -
17.暴力(폭력)을 행하고 激憤(격분)을 풀고 나면 용서가 되지만, 후회가 된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하고 -
18.사랑한 만큼, 용서하지 못하게 된다 -
19.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그래서 살인, 이혼, 폭력, 응징, 이별... 등을 하게 된다 -
20.역대 잘못한 대통령 들을 전부 용서합니다. -
21.잊혀진 것은 용서가 아니다. -
22.주님! 용서합니다. -
23.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자도, 용서해야 하는가? -
24.잘못한 家族(가족)을 어디까지 용서할 것인가? -
25.그냥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라. -
용서하십시오
이해인(수녀.시인)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한 세기를 마감하고, 또 한 세기의 언덕을 오르기 위해 차분히 심호흡을 하는 오늘
해 아래 살아 있는 기쁨을 감사드리며
우리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밤새 뉘우침의 눈물로 빚어 낸 하얀 평화가
새천년의 아침을 더욱 아름답게 해 주십시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부끄러운 행동을 많이 하고
하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오만함으로 죄를 짓고도
참회하지 않았음을 용서하십시오
나라와 겨레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나라와 겨레가 있는 고마움을 소중한 축복으로 헤아리기 보다는
비난과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했으며,
큰 일이 일어나 힘들 때마다 기도하기 보다는
'형편 없는 나라'
'형편 없는 국민'이라고 습관적으로 푸념하며
스스로 비하 시켰음을 용서하십시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사랑으로 다하지 못하고
소홀히 했습니다.
바쁜 것을 핑계 삼아
가까운 이들에게도 이기적이고 무관심하게 행동했으며,
시간을 내어 주는 일엔
늘 인색했습니다.
깊은 대화가 필요할 때 조차
겉도는 말로 지나친 적이 많았고,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로 상처를 입히고도
용서를 청하지 않는 무례함을 거듭했습니다.
연로한 이들에 대한 존경이 부족했고,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병약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부족했음을
용서하십시오.
자신의 존재와 일에 대해
정성과 애정을 쏟아 붓지 못했습니다.
신뢰를 잃어 버린 공허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일상생활을 황폐하게 만들었으며,
고집, 열등감, 우울함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
남에게 부담을 준 적이 많았습니다.
맡은 일에 책임과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성급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곤 했습니다.
끝까지 충실하게 깨어 있지 못한 실수로 인해
많은 이에게 피해를 주고도,
사과하기 보다는
비겁한 변명에만 급급했음을 용서하십시오.
잘못하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이가 아니 되도록,
오늘도 우리를 조용히 흔들어 주십시오.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이들에게
첫 눈처럼 새하얀 축복을 주십시오.
이제 우리도 다시 시작하고,
다시 기뻐하고 싶습니다.
희망에 물든 새 옷을 겸허히 차려 입고,
우리 모두 새천년의 문으로 웃으며 들어 서는
희망의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용서와 사랑은 승리의 삶을 가져 온다
빌2:5-11절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람마다 삶을 살아 가는 철학을 갖고 있다. 어떤 삶의 철학과 태도를 갖고 인생을 살아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일까?
복수심과 미움과 이기주의적인 삶의 태도일까, 그렇지 않으면 용서와 사랑으로 남을 돕고, 섬기고, 나누며, 성공 시켜 주는 삶의 태도일까?
어떤 삶의 태도가 가장 하나님께 영광되고, 자기에게 가장 큰 삶의 보람과 행복을 갖고 오는 것일까?
1. 용서냐 복수냐?
1) 간음하다 잡힌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 “모세는 율법에서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2) 군중들에게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간음한 여인에게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3) 용서에 빚진 사람, 크리스찬
(1) 예수님께 용서 받았으니,
(2) 다른 이도 용서해야 함.
용서 만이 정죄와 복수심을 제하고, 삶의 화합과 따뜻함을 가져올 수 있다.
인생에 소외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을 소외시키고, 이웃과 자기를 소외시킨다. 그뿐 아니라 자기 양심과 자기 의를 소외 시켜, 가장 고독한 인간으로 만든다. 성경에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지상에서 쫓겨 난 방랑자가 되었다.
2. 사랑
1) 하나님 사랑(요 14:14-17)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 자아 사랑-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
3) 이웃 사랑-하나님의 사랑을 나타 내는 삶
3. 성공적인 삶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6:38)
1) 하나님께 드리는 삶
2) 남에게 성공을 주는 삶
인생은 항해이다. 배의 방향은 마음의 돛에 달려 있다.
용서와 사랑과 참된 성공적인 방향으로 돛을 달 것이냐, 복수와 미움과 이기주의의 돛을 달 것이냐?
그 돛에 따라 도달하는 항구가 달라진다.
용서와 사랑은 승리의 삶을 가져 온다.
널리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6-11절
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10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 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은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롬 4:7-8절
1.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 받지 못한 사람이다.
즉, 예수 믿지 아니하고 지옥을 가는 사람이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다. 사망이란 인간의 모든 불행에 대한 총체적인 표현이다. 결국 인간의 육신의 수명이 다하여 죽는 것이며, 죽은 후 지옥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이 사망이 죄 가운데 사는 인간의 심령 속에 현재 역사하고 있다. 이것이 고통으로 느껴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시32:3,4)
2. 세상의 모든 일 중에 하나님 앞에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일들은 모두 표면적이어서, 죄 용서함을 받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도 또 다른 문제가 여전히 발생한다. 그러나 주님 앞에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서 다른 모든 것이 해결된다.
(2)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은 우리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급선무이다.
오늘 밤에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를지도 모른다. 다른 일들은 내일로 연기해도 좋으나, 하나님 앞에 죄 용서함을 받기 위하여 회개하고 자백하는 일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 제일 좋은 날이다.
3.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죄라도 용서하신다.
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죄를 다 깨끗이 씻어 주신다(요일1:7).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셨고, 주님은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를 용서하시고자 함이 아닌가?
주님은 베드로에게 형제의 죄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다(마18:21,22).
이것은 곧 하나님 자신의 널리 용서하심의 뜻을 계시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중에 강도가 있어도, 이 시간 예수님을 의지하면 용서하신다. 주님은 십자가의 오른쪽에서 회개하는 강도를 용서하셨다(눅23:43).
여러분 중에 폭력, 사기, 세금 포탈, 창녀, 불륜 간음자가 있어도, 하나님은 이 시간 용서하신다(눅15:12, 요8:1-11).
눅15:11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요8: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주님께 마음을 바치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널리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여자들은 보통 요리하는 일보다 설거지를 더 싫어한다. 직장 일도 그렇다. 남이 해 놓은 일을 뒷정리하는 것은 자신이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골치 아픈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싫어한다. 신입 사원 시절 내 경우가 그랬다.
공사 완공을 앞두고 5년 동안 쌓인 서류들이 사무실의 두 벽면 가득 진열되어 내 숨통을 졸랐다. 그 어마 어마한 양의 영문 서류들을 정리하는 것이 내 업무였는데, 당시 나는 이 거창한 일 뿐만 아니라, 상사와의 관계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 사수(직속 상사)로 말하자면, 나보다 다섯 해 먼저 입사했고, 업무엔 정통하고 컴퓨터엔 박사였으며, 외국인과 회의까지 유창하게 할 정도였고, 모든 일에 모르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다른 팀의 여직원이 요즘 무슨 색깔의 옷을 자주 입는다는 것까지 입력하고 다닐 정도로 천재(=괴물?)였다.
깔끔한 것도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손을 씻으면 세면대에 대여섯 번씩이나 물을 받아 놓고 손을 씻었다. 그런 내 사수는 상사들에게는 대단히 신임을 받았지만, 나에겐 영 아니었다!
* 서류 뭉치를 내던지다.
더구나 그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야’, ‘야, 김희정’, ‘너’ 중 하나였다. 그것 쯤은 참을 수 있지만 열통 터지는 것은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수 있어.” 라면서 업무에 대해 잘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한 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괴로운 곳으로 보내셨을까? 마음에 답답함이 쌓여 갔다.
6월 초 어느 날이었다. 유달리 덥고 답답했던 그 날 종일 서류철을 뒤적이며 진땀 흘리고 있었는데, 사실 땀만 흘렸지 하루 종일 오래된 서류 뭉치 하나와 씨름했다. 그래서 더 열 받고 있던 늦은 오후에 그 대단하신 사수가 갑자기 내게 이렇게 비아냥 대며 야단을 쳤다. “야, 김희정. 너 이 따위 밖에 못해?”
당시 사무실에는 상사들이 여러 분 있었기에 모멸감은 더 컸고, 급기야 이성을 잃은 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뭉치와 펜을 번쩍 들어 올린 후 사수를 향해 힘껏 내던지며, “그렇게 잘하는 Y대리님이나 해 보세요.” 목청껏 외쳤다.
도대체 이 모습이 상상이나 되는가?
입사한지 6개월도 안된 신입사원이 여러 상사들 앞에서 이런 하극상을 저지르다니!
‘퍼덕’ 하며 서류 뭉치가 바닥에 흩어지는 소리가 날 때 쯤 정신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뛰쳐 나왔다.
“아, 하나님. 오늘 또 큰 사고를 쳤습니다.”
몹시 후회하며 여직원 화장실로 달려 갔다. 회사에서 마음이 괴로울 때면 언제든지 달려 갔던 화장실에서 30 분 쯤 울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마음이 진정되자,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이대로 그냥 집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사무실로 들어 갈 것인가?’
하나님께 용기를 구하면서 30분 전에 뛰쳐 나왔던 그 사무실로 다시 들어 가기로 결심했다. 내가 사무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 서니까, 모두 나를 집중해서 쳐다 보는데,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차마 상사들의 눈을 쳐다 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Y 대리에게로 향했는데, 그도 순간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나는 나의 머리가 무릎에 닿을 정도로 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박 또박 힘주어 말했다.
혹시 못 들었다고 다시 말해 보라고 할까 봐, 정중하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의 눈과 1-2초 간 마주쳤는데, 기나 긴 침묵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어색하고 창피스럽고 고약한 기분이 교차하는 순간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당당하고 담담하게, 꼭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인지 부끄러움도 몰랐다.
나는 빨리 시간이 지나 가기를 바라며 사수의 반응을 기다렸는데, 잠시 후 그가 어이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자기도 황당했었나 보다.
웬 웃기는 녀석이 서류를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뛰쳐 나간 상황도 미처 정리가 안 됐는데, 잠시 후에 들어 와서 꾸뻑 절하며 용서해 달라고 하니, 황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피식 웃었던 반응을 용서로 알고 자리로 돌아 와서 퇴근 시간까지 죽은 듯이 앉아, 바늘방석 같은 자리를 지켰다.
* 내가 믿는 예수님 때문에…
내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 생활을 잘하기 위함 만은 아니었다. 내 기분 만을 생각했다면 나는 집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었다. 내가 사고를 쳤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이 순간에 내 실수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자의 나쁜 이미지를 주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하면 안되겠다.’
그 날의 실수 이후, 나는 언짢은 일이 생겼더라도 내가 먼저 사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현재까지도 그 분과는 회사 내 어떤 직원 이상으로 친근하고,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창세기 50:17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출애굽기 23:21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출애굽기 34: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신13:5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 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6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7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8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9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사랑과 용서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가 약 30명의 크리스챤들과 함께 루마니아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김옥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감옥 속으로 밀쳐 던져졌는데, 침침한 감방 속에서 그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 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감방 속의 모든 크리스챤들은 곧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던 비밀경찰의 대위였다. 그가 왜 감옥에 들어 왔는지, 너무나 의아해 하는 크리스챤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열 두 살 된 소년이 자기를 면회 왔다고 하여 사무실로 들여 보내라고 했다. 수줍어 하며 자기의 사무실에 들어 오는 소년의 품에는 아름다운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져 있었다. 소년은 입을 열어서 말했다.
"대위님! 당신이 우리 엄마와 아빠를 체포해 가신 분이에요. 오늘은 우리 엄마의 생일이예요. 나는 엄마의 생일이면 꼭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 왔어요. 그런데 금년에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나에게 늘 가르쳐 주시기를, 원수도 사랑해야 하고,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이 꽃으로 대위님의 애기들의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요. 이 꽃다발을 대위님 부인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대위는 그 소년의 꽃다발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소년을 부둥켜 안고 눈물로 울었다고 한다.
그 후로 그의 마음에는 양심의 가책과 회개가 왔고, 남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그 일로 자기도 감옥에 오게 된 것이었다.
사무엘상 25:28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열왕기상 8:50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열왕기하 5:18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 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역대상 21:8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역대하 6:39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느헤미야 9:17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시편 39:13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시편 99:8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자기 부인의 원리
미국 교계에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탐 스키너라는 부흥사가 있습니다. 그는 뉴욕 할렘가의 불량 청소년 갱단 두목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영혼과 삶이 뒤바뀌었으나, 그가 변화되었다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옛날의 동료 하나가 탐 스키너를 시험했습니다. 지나 가는 탐 스키너의 뺨을 한 대 후려쳤습니다. 탐 스키너가 일어나면서 그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친구여. 나는 너를 용서하노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둔 사람 만이 살아 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본능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본능은 "복수하라" 고 말합니다. 본능은 나에게 보복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본능은 편리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죄에 대해 자신을 죽은 자로 바라 보기 시작한 사람이 겸허하게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용서는 가장 큰 자기 否認(부인)의 삶입니다.
용서 중에 가장 힘든 용서가 不倫(불륜)이다.
잠6:29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30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31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간음이 가장 큰 도적질이다.)
32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33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34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35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잠언 19:11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전도서 10:4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
이사야 55:7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예레미야 5:1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 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예레미야 5:7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예레미야 36:3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50:20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형제에 대한 용서
‘보물섬’ 이라고 하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스코트랜드의 작가 ‘로버트 스티븐슨’ 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가정에서 가족들과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습니다. 부인이 놀라 뒤따라 나가서 남편을 붙들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스티븐슨이 말하기를 "오늘은 내가 죄를 용서해 달라고 주기도문을 주님께 드리기가 괴롭소. 마음이 편치 않소." 라고 말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스티븐슨은 그래도 염치가 있고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사례들이 비일 비재하면서도, 주일마다 의젓하게 하나님 앞에 이 기도를 드립니다. 정말 이는 하나님이 괴로운 문제입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하나님 앞에 뻔뻔스럽게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시편 109편 7절에 있는 저주를 받아야 한다." 고 했습니다.
시편 109편 7절에 나오는 저주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얼마나 기막힌 말입니까?
코로나19 사태로 고통을 당하는 이 때에 주님이 주신 경종의 말씀이 있습니다.
2020.9.11.금. 예배 현장이 없어지니, 설교를 하지 않게 되고,
설교를 하지 않으니,
설교 준비를 하지 않게 되는구나!
잡다한 글들을 많이 쓰지만...
혼자서 설교를 해야겠다.
설교 준비를 철저히 다시 해야겠다.
오호라!
예배 현장이 없으면, 다 사라지는구나...
사탄의 보이지 않는
교회를 허무는 역사에 대하여,
교회가 뿌리부터 무너지고 있는 이 엄청난 사실들에 대하여,
목사들과 성도들이 과연 깨닫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내 안에서 예수가 넘쳐 나고, 말씀(言)이 넘쳐나도록 할 때다.
(이 글이 아래의 나 배종부 목사의 절망에 해답이 되었다.)
2020.9.3.목. 이제는 전통교회는 사라졌습니다.
인터넷교회시대가왔습니다.
교회가스스로 淨化(정화)되는군요.
교회,목사,예배출석...
다의미가없는시대입니다.
이제헌금은자기원하는대로
교회가아닌,개인목사에게로보내게됩니다.
개척교회와엉터리목사는저절로사라집니다.
대형교회는저절로무너집니다.
건물이이제는필요없습니다.
당연히부흥회와부흥사도사라집니다.
정권에의해완전히교회와개인이추적당하는통제시대에들어섰는데,
이렇게빨리종말이올줄은상상을못했습니다.
오호라!
이제대형집회의시대는갔다.
그런데나는여전히백일몽을꾸는가?
한 시대의 별, 김홍도 목사도 가고...
전광훈목사는욕을개처럼얻어먹고,이단으로몰리고...
목사들이너무똑똑해서,
나같은구닥다리는더이상세상과말이통하지않고...
나는絶筆(절필)하고,
골방으로 사라져야 할 것이다.
모든 시대에 맞지 않은 일들은 정리하라.
부흥회는 사라지고,
부흥사는 의미가 없게 된다.
당연히 총회부흥단, 서울부흥단도 사라지게 된다.
주님!이제는어찌해야합니까?
🌻지금은 내 안에서 예수가 넘쳐 나고, 말씀(言)이 넘쳐나도록 할 때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22: 2)
Rich and poor have this in common: The LORD is the Maker of them all. 🌲
어쩌면 지금이 우리 한국교회가 회복(回復)할 수 있는 황금(黃金)기다.
사방에서 교회를 비방하고 전도문이 꽝꽝 닫히는 소리가 요란한데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말이다.
가슴 아프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한국 개신교가 만신창이요, 동네북이라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교회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양심이 살아 있다면 고개를 들 수 없고, 내가 잘났다고 할 수가 없다.
이게 복(福)이다.
우리는 그 동안 자랑할 게 많았다. 수 많은 순교자, 유례가 없는 부흥 성장, 목회자와 성도들의 피 땀 어린 헌신들,
학교/병원/고아원/복지원 같은 숱한 사회 봉사들, 정말 교회가 아니면 좋은 것이 없었다 할 정도로 교회는 모든 면에서 잘했고, 앞서 나갔다.
덩달아 교회는 힘이 생겼고,
영향력이 커졌고, 세상 무서운 게 없었다.
지금은 완전 반대다. 자랑할 게 없어졌다.
고개를 숙여야 하고, 침 뱉음을 당해야 하고, 욕을 먹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늘 제자리를 찾았다.
회개하고, 돌이키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는 운동을 펼쳤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는 늘 깨끗해졌고, 건강해졌다.
우리 교회도 그럴 것이다.
비판을 받고, 욕을 얻어 먹으면서 떠날 사람은 떠날 것이고, 진짜 신앙이 있는 사람은 울며, 또 울며 주님께 매어 달릴 것이다.
울면 산다. 내가 죄인이다 하고 깨달으면 희망이 생긴다.
코로나는 우리가 쌓아 온 모든 바벨탑을 무너뜨렸다. 호화로운 초대형 건물도 코로나 앞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게 되었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봉사자들의 스펙도 휴지 종이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이름을 내고, 우리의 것을 자랑하는 모든 바벨탑은 무너졌다. 보여 주고, 자랑하기 좋은 것은 여지없이 나가 떨어졌다.
껍데기는 아무 힘도 못 쓰는 시대가 와 버렸다. 이제야 말로 진짜 실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교회가 진짜 실력을 보여 줄 때가 된 것이다.
교회의 실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움직이는 교회, 예수의 이름이 드러나는 교회, 그게 실력이다.
절망했던 자들이 소망을 얻고, 우울했던 사람들이 웃음을 찾고, 사는 목적을 상실했던 사람들이 삶의 방향을 찾고,
자신의 존재를 저주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에 감사를 하고, 또 다른 나인 이웃을 살려 내는 교회가 진짜 실력 있는 교회다.
비대면/비접촉 사회는 더욱 더 고독/외로움을 불러 온다.
만나지 못할수록 사람은 만남을 그리워 한다. 공허한, 무의미한 삶에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할까?
그걸 깨고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는 영적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할 것이다. 무조건 영성시대가 온다. 이미 왔다.
사람은 감성/영성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교회의 본질은 영성인데, 영성이 있는 교회는 더욱 더 힘을 발휘할 것이다.
사이버 시대에 도래했으니,
영적인 파워가 있고, 영적인 이야기가 있는 교회라고 한다면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찾아 들게 되어 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목회자, 당회라면 영성에 집중할 것이다.
사탄의 사람들 빼고, 예수님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교회를 향해 하는 말이 그것 아닌가?
“예수는 좋은데, 교회 다니는 너희들은 싫다.” 바로 이 거다.
그러니 예수 같은 사람들이 있는 교회라면 대박이다. 절로 모일 것이다.
사이버 시대이니,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 없이 모일 것이다.
사이버 시대를 알고 준비된 자는 복있을진저.
사이버 시대에 진정 예수님과 성경을 말할 수 있는 영적 사람은 복되다.
홀로 사는 족속이 많은 시대가 될 것이고, 독거 노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날 것이고, 그 허무한 인생의 바다에서 그들이 찾는 한 줄기 빛은 무엇일까?
이 고독한 나,
이 외로운 인생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고,
그 질문에 대하여 확고한, 웃음을 머금은 답변을 가진 사람은 오아시스처럼 대접을 받을 것이다.
섬기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있을 수 없다.
섬길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 영적 실체를 아는 사람, 삶과 죽음의 과정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존경을 받을 것이며 환영을 받을 것이다.
가만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러니 성경(聖經)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처럼 살아서 말씀의 실체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된다면 전도는 절로 될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넘쳐 나는 오락,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삶의 향기를 가지고, 생명수 같은 영적인 답변을 줄 수 있는 사람 교회는 분명 오아시스다.
수십개의 신학교 보다 빼어난 콘덴츠의 유튜브가 더 큰 영향(影響)력을 발휘하는 시대(時代)가 되었다.
배 타고 비행기 타고 가지 않아도 세상을 내 핸드폰으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선교의 황금기가 도래한 것이다.
시대를 알고 시대의 정점에서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예수님 같은 향을 드러내고
예수님 같은 목소리를 내면 된다.
사도행전의 교회를 보라.
건물도 없었다.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신학교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있는 곳에는 성령님이 계셨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주님이 함께 했었다.
가진 것이 없었지만 권능이 차고 넘쳤다. 그들은 고소를 당했으나 천사(天使)처럼 얼굴이 빛났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고 축복했다.
영성이 아니면 아무 것도 없었다.
예수가 아니면 Nothing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를 가짐으로 Everything을 가졌다.
지금은 절망(絶望)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엎드려 영성(靈性)을 익힐 때다.
💖하나님께서 창조(創造)하신 아름다운 지구촌 '단' 한 번 뿐인 '여행(旅行)' 길에서 {주} 하나님께 감사(感謝)하며 찬양(讚揚)으로 '멋진' 영성의 삶들을 만들어 가세요.
용서하라.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자녀의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백번, 만번이라고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도 남을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니엘 9:9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다니엘 9:19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 9:24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주께 용서함을 받지 못하는 자의 비극을 깨닫는가?
시109:7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호세아 1:6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아모스 7:8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아모스 8:2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