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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면 애니, 게임이면 게임, 광고면 광고. 토에이와 반다이의 든든한 수익 1순위로 자리잡은 드래곤볼 프랜차이즈는 지난 몇 년간 손을 뻗치는 구역마다 대성공을 거두었고 드래곤볼은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드래곤볼 超: 브로리’는 여타 다른 드래곤볼 극장판들보다도 더 큰 기대와 관심을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극장판의 비주얼적인 측면에 대한 관심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는 단순히 스토리적인 측면을 떠나서도 ‘드래곤볼 Z: 불타올라라! 열전·열전·초격전’과 제법 많은 연관점이 있습니다. 두 극장판 모두 작화적으로, 또 연출적으로 각각 Z와 슈퍼의 비주얼에 있어서 아주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요. 그 전까지만 해도 드래곤볼 애니와 극장판의 총 작화 감독 겸 캐릭터 디자이너는 계속해서 ‘마에다 미노루’가 도맡았었습니다. 하지만 미래 트랭크스 tv 스페셜을 마지막으로 마에다가 드래곤볼에서 물러나며 이 자리를 대체할 사람이 필요했죠. 당시 애니에선 ‘신도 프로덕션’의 ‘야마무로 타다요시’가 ‘신도 미츠오’ 작화 감독 밑에서 원화가로서 참여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신도가 일선에서 물러나 회사 경영에 집중하게 된 인조인간 편부턴 아예 신도를 대신하여 작화 감독으로 승격되는 등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다른 여러 훌륭한 애니메이터들이 당시 Z에서 활약하고 있었지만 야마무로보다 세련되고, 빠르고, 꾸준한 사람은 없었으며 이런 야마무로는 당연히 토에이의 눈길을 끌었고 결국 야마무로는 열열초를 시작으로 앞으로의 모든 Z 극장판들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주간 애니에선 나카츠루 카츠요시.) 브로리 디자인의 초안을 제시한 사람은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였으나, 이것을 발전시키고 완성시킨 사람은 바로 야마무로였죠.
한편 연출적인 측면에선 그 전까지 드래곤볼 극장판들은 몇 개를 제외하면 전부 드래곤볼 Z의 시리즈 디렉터이던 ‘니시오 다이스케’가 감독을 맡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주간 애니 쪽에선 뛰어난 감독 한 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는데요. 이 사람은 바로 오늘날 업계의 레전드로 불리우는 ‘야마우치 시게야스’(좌)였습니다. 스토리적으로는 어쨌든 열열초는 매우 뛰어난 비주얼을 자랑했고 이 극장판의 감독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야마우치였죠. 열열초에서 야마우치는 전체적인 카메라 구도와 전반적인 색깔 등 비주얼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연출을 보여주었는데요. 재밌게도 슈퍼 브로리 극장판의 감독을 맡은 ‘나가미네 타츠야’(우)의 멘토가 바로 야마우치였습니다. 이와 함께 ‘신타니 나오히로’가 야마무로를 대신하여 브로리의 총 작화 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 역할을 맡게 됨으로서 이 두 극장판들의 연관점은 아주 명확해집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 얘기해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번 극장판은 신타니 나오히로가 프랜차이즈의 얼굴마담인 야마무로 타다요시의 총 작화 감독 겸 캐릭터 디자이너 자리를 꿰찬 걸로 유명하죠. 처음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팬들이 익숙치 않은 소프트한 디자인으로 호불호가 갈렸었으나 이후 좋은 반응을 얻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극장판의 엔딩 크레딧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었는데요. 바로 ‘타카라 이사무’라는 서브 캐릭터 디자이너의 존재입니다. 타카라는 원피스의 핵심 작화진 중 하나로 참여하다가 2018년 봄부터 행적이 묘연해졌었는데, 바로 브로리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능한 애니메이터인 타카라는 이번 극장판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했죠.
브로리 극장판의 작화 감독으로는 ‘츠지 미야코’, ‘이데 타케오’, ‘타테 나오키’, ‘와타나베 코우다이’, ‘나카타니 유키코’, ‘타카하시 유야’가 있습니다. 총 작화 감독은 신타니이나 이 여섯이 각 파트로 나뉘어 작화 감독으로서 작업을 도운 것인데요. 츠지와 이데는 야마무로와 함께 슈퍼 애니판의 총 작화 감독으로서 활약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극장판에서도 작화 감독이라는 큰 역할을 맡은 게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한편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역시 타카하시 유야입니다. 타카하시는 슈퍼 애니판에서 과거 시절의 드래곤볼을 떠올리게 하는 작화체로 많은 팬들을 열광케 했고 결국 브로리 극장판의 작화 감독으로 임명되었다는 점에서 토에이가 여론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참고로 나카타니 유키코는 이번 극장판에서 직접 원화를 담당하진 않았습니다.
콘티 담당으로는 총 세 명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카라사와 카즈야’로 이번 브로리 극장판의 조감독을 맡기도 한 그는 슈퍼 애니판에서 감독으로서, 또 콘티 작가로서 뛰어난 모습을 보인 바가 있는데요. 이번 극장판에선 일상씬부터 베지터 대 브로리의 싸움 콘티를 맡았다고 스스로 트위터에서 밝혔습니다. 두번째는 많은 팬들 사이에서 슈퍼 최고의 감독 겸 콘티 작가로 손 꼽히는 ‘미츠카 마사토’입니다. 당장 기억나는 대표적인 회차들로는 94화, 110화, 118화, 129화 등이 있군요. 미츠카는 훌륭한 카메라 구도로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데에 큰 강점을 보이는 감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극장판의 감독, 나가미네 타츠야입니다. 나가미네는 우주 서바이벌 편의 시리즈 디렉터로서 드래곤볼 슈퍼의 퀄리티가 향상된 데에 큰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프로덕션 측면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팬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그 대신 나가미네를 “원피스 필름 Z의 감독”이라고 부르는 편입니다. 그만큼 나가미네가 필름 Z에서 보여준 역량은 엄청났고 그건 이번 브로리에서도 다르지 않았으며 자신의 멘토이던 야마우치처럼 다채로운 시도를 선보였습니다. 이번 극장판에선 오공/오지터 대 브로리의 콘티를 담당하였습니다.
극장판 초반부는 츠지 미야코가 작화 감독을 맡은 과거 파트입니다. 츠지의 스타일은 사실 오늘날 야마무로와 많이 비슷한 편이었고 그 스타일은 유지되어 이 극장판 초반부도 츠지가 보여준 슈퍼 애니판에서의 모습과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츠지는 극장판이 개봉한 다음 tv 광고가 나온 시점에서야 반전을 보일 수 있었는데요. 다행히도 늦게나마 신타니의 디자인에 잘 적응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에 알맞는 모습을 보였고 그러면서도 츠지 특유의 뾰족턱 등의 색깔이 묻어나왔습니다.
초반부는 주로 서사 진행에 집중하기 때문에 액션적으로는 상당히 빈약합니다. 특출난 부분은 버독이 프리저에게 대항하며 기탄을 날리는 씬 하나 정도죠. 이 장면을 어떤 애니메이터가 맡았는지는 확실히 알려진 바 없지만 놀라운 임팩트 프레임을 제대로 과시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추측으로 제일 유력한 이는 ‘니이 히로타카’가 아닌가 한데요. 버독의 얼굴을 보면 코가 상당히 뾰족하고 귀의 위치를 높게 그리는 니이 특유의 스타일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기탄의 이펙트는 우주 서바이벌 편 오프닝 제일 처음에 나오는, 역시 니이가 담당한 파트의 이펙트와 유사합니다.
빈약했던 액션은 현재로 시점이 바뀜과 동시에 오공, 베지터의 대련 장면으로 확 뒤집어집니다. 이 파트는 신타니의 설정화처럼 캐릭터들의 스타일이 소프트한 편으로 신타니의 디자인이 어떠한 장점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데요. 움직임이 물 흐르듯 부드럽고 여러 흥미로운 카메라 워크가 나오는 게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 부분은 서브 캐릭터 디자이너인 타카라가 담당하였습니다.
일상 파트의 작화 감독을 맡은 사람은 야마무로와 함께 드래곤볼 애니의 산증인인 이데 타케오입니다. 특유의 귀와 턱의 모양 등으로 스타일이 상당히 명확한 애니메이터이나, 정작 본극장판에선 이데의 특징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이건 신타니가 이데의 파트를 사실상 거의 전부 수정해서 그렇습니다. 새로운 작화체에 적응을 못한 거죠. 이데 특유의 팔짱을 끼고 있는 장면을 보면 귀의 모양이 평소 이데만의 모양과 다른 걸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슈퍼 애니의 총 작화 감독이던 츠지는 나중에나마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했는데 이데는 어떤 행보를 보일지 흥미롭습니다.
이번 극장판은 ‘야피코 애니메이션’의 참여로 화제가 된 바가 있었죠. 야피코 소속 애니메이터들이 자신들의 원화를 트위터에 올려 자신들이 이데 타케오 파트에 참여하였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메디 아우차이’가 상단의 프리저 씬을, 2018년 3월 당시 이번 극장판에 야피코의 참여 사실을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주었던 ‘켄 아토’가 하단 원화를 맡았습니다. 특히 켄 아토의 베지터가 화난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 일상 파트의 하이라이트로 뽑고 싶은데요. 단순히 화만 낼 게 아니라 온갖 몸짓을 활발하게 써가면서도 모션이 아주 부드러운 캐릭터 액팅이 나옵니다. 이렇듯 신타니의 소프트한 디자인은 단순히 액션씬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런 일상씬에서 캐릭터들이 감정을 표현해내는 데에도 잘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켄 아토가 아주 잘 보여줬습니다. 또 다른 야피코 애니메이터인 ‘에디 메홍’도 같은 파트에 참여했습니다.
빙산 배경에서의 본격적인 싸움과 함께 작화 감독 타카하시 유야의 파트가 시작됩니다. 이번 극장판에서의 타카하시는 팬들로부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샀습니다. 타카하시는 과거 마인부우 편의 날카로운 그림체와 디테일한 명암으로 슈퍼 애니판에서 엄청난 반응을 얻었고 그것이 타카하시가 브로리 극장판의 작화 감독으로 임명받는 이유가 되었지만 그건 신타니의 디자인을 부정하는 모습이 됩니다. 팬들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든, 타카하시가 극장판의 스타일을 꾸준하지 못하게 만들 것은 분명했던 것이죠. 그래도 다행인 점은 타카하시가 페이스 조절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타카하시의 그림체는 신타니의 그것과는 매우 달라 아주 튀는 편이고 이것은 팬들이 우려했던 점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싸움을 준비하는 과정의 장면들에서 타카하시는 명암을 그리 넣지 않기로 하였고 이것은 명암이 많이 없던 이 바로 전 이데 타케오의 파트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리고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구체적인 명암이 나오기 시작하죠. 그렇기 때문에 타카하시 파트는 분명 그림체적으로 다르긴 하나 팬들이 걱정했던 정도로 이질감을 주지는 않습니다.
사실 팬들이 타카하시 작화 감독으로부터 갖는 딜레마는 따로 있습니다. 그건 바로 원화가들의 개성을 지나치게 죽인다는 것인데요. 작화 감독 자체가 원래 원화들을 수정해나간다고는 하나, 타카하시의 수정은 아예 그림을 다시 그리는 수준이고 이것은 야마무로의 최대 문제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결과, ‘마나베 슈이치로’, ‘니카이도 아츠시’, ‘히가시데 후토시’, ‘카라사와 유이치’ 등 슈퍼 애니에서 활약했던 훌륭한 애니메이터들이 원화가로 타카하시의 파트에 참여하였으나 타카하시의 상당한 수정으로 척 봤을 땐 누가 어떤 파트를 그렸는지 거의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타카하시의 손을 거치면 뛰어난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냥 타카하시가 야마무로와는 달리 감을 잃지 않기를 바래야겠습니다. 타카하시 본인의 원화는 노멀 베지터 대 브로리 파트 전부와 베지터의 초사이어인 변신씬이었습니다. 타카하시 액션의 속도감은 매우 유니크하고 알아채기 쉽죠.
하지만 그럼에도 각 애니메이터들 특유의 흔적은 남아있었는데요. 베지터가 초사이어인이 되고 난 다음 벌어지는 액션은 카라사와 유이치가 담당하였습니다. 오히려 카라사와는 다른 애니메이터들에 비해선 타카하시에게 그리 많은 수정을 받지 않은 편입니다. 저 디테일한 손과 얼굴의 모양새가 딱 카라사와 유이치라는 걸 알 수 있죠. 애초에 카라사와 본인의 스타일 자체가 타카하시와 꽤나 비슷한 편이라서 그냥 놔둔 것으로 보입니다.
베지터의 초사이어인 갓, 브로리의 분노 변신 장면은 마나베 슈이치로가 원화를 맡았고 비록 타카하시의 수정이 심하긴 했으나 배치 자체는 이건 아주 탁월했습니다. 마나베는 슈퍼 작화진 중에서도 단연 가장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주는 애니메이터로, 그 대표적인 예시가 슈퍼 125화에서 나온 프리저가 파괴신 톳포에게 머리를 짓눌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었으며 역시 이번 극장판에서도 브로리가 변신할 때 엄청난 위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브로리의 변신 장면이 극장판 3차 예고편에 나오자, 드래곤볼의 레전드 애니메이터 ‘사토 마사키’는 자신이 Z 시절 담당했던 오공의 초사이어인 변신 씬을 떠올린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베지터와 브로리의 싸움을 마무리 짓는 씬은 슈퍼 미래 트랭크스 편을 구해낸 애니메이터, 히가시데 후토시가 담당하였습니다. 스케줄링 문제가 심각했던 미래 트랭크스 편 당시 사실상 거의 매 회차에 참여하면서도 좋은 퀄리티의 액션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번 극장판에서 히가시데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컸는데, 분량이 기대했던 것보단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손오공과 브로리의 전투는 2018년 3월달에 나왔던 티저 장면을 사용하며 시작합니다. 이 둘의 싸움을 담당한 사람은 ‘오오니시 료’로 티저 영상을 단독으로 책임졌던 애니메이터이기도 합니다. 오오니시는 정말 이번 극장판에서 엄청난 활약을 합니다. 원래 슈퍼 애니에서부터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의 훌륭한 액션씬을 그려낸 오오니시 료지만(예: 109화 손오공 vs 리브리안) 그런 오오니시가 신타니의 디자인을 만나자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부드럽고 탄력 넘치는 오오니시의 이 파트는 드래곤볼에선 쉽사리 찾아보기 힘은 유형의 액션입니다. 그래서 보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도 그 이상한 기분이 너무 좋더군요. 개인적으로 이번 극장판에서 제일 좋아하는 전투씬이었습니다.
오오니시 다음엔 니카이도 아츠시가 등장합니다. 타카하시의 수정이 있었으나, 브로리가 오공의 손을 낚아채는 장면에서 니카이도가 종종 보여주는 Y자 이펙트가 여실히 나오죠. 또한 왼쪽 하단에 사방으로 튀는 브로리의 오오라는 니카이도의 이펙트를 나타내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 때 오공은 브로리에게 다리를 붙잡혀 여기저기 패대기질을 당하고(헐크 오마주) 암벽에 처박히기도 하는데, 재밌게도 오공은 슈퍼 100화에서 여자 브로리인 케일로 인해 이미 같은 꼴을 당한 적이 있으며 그 장면을 담당한 애니메이터 역시 니카이도였습니다. 아마 의도한 것 같네요.
문제가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오오니시 료(좌)로 인해 그려지고 있던 초사이어인 갓 오공과 브로리의 싸움을 니카이도(우)가 이어받았지만 오오니시와는 달리 니카이도는 타카하시에게 수정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많은 명암 없이 통통 튀는 움직임을 보이던 캐릭터들이 한순간에 상당한 디테일과 함께 인상이 날카로워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 직전 오오니시의 파트와 비교하면 이게 방금 전의 그 캐릭터가 맞나 싶을 수준으로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내내 빠르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 싸움이 이 부분에서 갑자기 느려지기도 하는데요. 특히 브로리가 오공의 다리를 잡고 패대기칠 때를 보면 고통스러워하는 오공의 목구멍이 훤히 보이게끔 클로즈업하고 이 과정을 아주 길게 늘려서 보여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니카이도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이 부분을 이번 극장판 액션씬 중 가장 워스트로 뽑고 싶을 정도입니다.
오공의 블루 변신 장면은 ‘이타이 히로유키’가 담당했습니다. 다만 와타나베 코우다이가 작화 감독으로서 수정을 맡았죠. 변신 도중에 오공의 머리 색이 은색으로 잠깐 변해서 무의식의 극의가 아니냐는 말도 있던데 공개된 나가미네 감독의 콘티를 보면 오공의 오오라가 잠시 초록색으로 변하는 건 분명히 의도하였지만 은색 머리나 극의에 관련된 흔적은 그림에서도 설명란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냥 작은 팬서비스로 받아들이면 되겠죠.
이 다음엔 처음으로 CG 파트가 나옵니다. 팬들은 지난 ‘부활의 F’ 때 기억으로 이번 극장판의 CG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CG 감독이 지난 부활의 F 때처럼 ‘마키노 카이’였기에 이러한 우려는 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의 CG는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습니다. 개봉 전 CG 스탭진의 인터뷰에 의하면 신타니가 캐릭터 CG 모델을 수정하는 데에 깊게 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결과 캐릭터 모델에 있어서 지난 부활의 F 때에 비해 아주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전투씬에서 훌륭한 이펙트를 볼 수 있었고 속도감도 좋았으며 몇몇 클로즈업 장면에선 CG 모델에 2D 작업을 덧씌운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번엔 타테 나오키가 마그마 배경 파트의 작화 감독으로서 등장합니다. 타테는 신타니 디자인의 제일 큰 수혜자입니다. 펼칠 수 있는 개성이 제한적이고 (좋지 않은 쪽으로) 구체적인 야마무로의 그것과는 달리 소프트한 신타니의 디자인과 궁합이 좋은 타테는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는데 팔을 뻗을 때 역동성 강조를 위해 팔을 더 길게 그리는 특징 역시 나옵니다. 타테는 이번 극장판에서 다른 애니메이터들의 원화 사이사이에 꽤나 많이 재등장합니다.
오오니시 료(상)가 다시 등장해 엄청난 위압감을 보여주는 브로리의 초사이어인 변신 장면을 담당하였지만 브로리가 사방으로 날려오는 기탄을 오공이 피하는 장면은 타테가 맡았습니다. 그 다음엔 초사이어인 브로리와 블루 오공, 베지터의 싸움은 두번째 CG(하)로 볼 수 있는데 유연한 카메라워크를 볼 수 있지만 너무 짧게 지나가 많이 아쉬웠습니다.
사람들은 브로리에서 유일하게 작화가 별로였다고 생각하는 파트를 고르라고 한다면 거의 대부분이 퓨전 장면이라고 하더군요. 이 퓨전 부분엔 두 명의 작화 감독들이 직접 원화를 맡았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 논란의 주인공인 타테였습니다. 타테는 이 파트에서 자신의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캐릭터들이 말을 할 때 입만 뻥끗할 게 아니라 실제로 턱이 움직이고, 캐릭터들의 손은 짧고 통통하게, 몸의 근육은 디테일하지 않게 그리는 편인데요. 이것은 이번 극장판 뿐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줄곧 의도적으로 그래왔습니다. 그리고 오공과 베지터의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보이죠. 타테는 액션에도 장점이 있지만 개그 장면에서 역시 크게 진가를 보이는 애니메이터이고 그것은 이 씬에서 확실히 나타났으며, 저는 다른 웬만한 애니메이터들이 이 파트를 맡았다면 이 장면이 필요로 하는 개그성을 타테만큼 살리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타테의 스타일은 워낙 취향을 타기 때문에 싫다는 사람들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팬의 주관적인 취향과 애니메이터의 객관적인 실력은 아예 다른 얘기이고 이런 단편적인 장면이 본인의 취향 좀 아니라고 타테의 실력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폄하할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건 절대 아니죠. 딱 보고 “이건 말이 많겠구나” 했는데 역시나더군요. 또한 프리저와 브로리의 싸움도 타테의 파트에서 나옵니다.
퓨전 장면을 유심히 보시면 중간부터 스타일이 달라진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타테는 오공이 퓨전을 제안하며 베지터를 설득하는 부분까지만 맡았고, 실제로 퓨전을 보여주고 실행에 옮기는 부분은 또 다른 작화 감독인 와타나베 코우다이가 맡았습니다. 타테의 소프트한 작화체에서 와타나베의 날카로운 스타일로 바뀌죠.
드디어 오지터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아마 이 부분은 신타니 나오히로(상)의 원화, 아니면 최소 신타니의 수정 작업은 거쳤다고 추측됩니다. 이번 극장판에서 신타니의 파트로 확실하게 컨펌이 난 파트는 아직까진 없지만 노멀 오지터의 전체적인 스타일이 신타니의 그것과 복붙 수준이죠. 그리고 오지터가 프리저와 우이스 앞에 나타나는 장면에 마지막으로 또 한 번 타테가 등장합니다.
이 다음엔 모두가 오지터 파트에서 볼 것이라 예상한 클라이막스 애니메이터 ‘시다 나오토시’(하)의 액션씬이 시작되고 시다의 분량이 약 2분은 넘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평소 날카롭고 디테일한 그림체를 자랑하는 시다가 신타니의 부드러운 디자인을 베이스로 삼고 그렸다는 것입니다. 눈매는 평소 시다의 스타일보다 둥글고 귀의 모양은 신타니의 설정화들 스타일과 매우 유사합니다. 시다는 몇 달 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자신은 신타니의 디자인을 따를 거라는 트윗을 올렸었는데 실제로 그것을 보여주었고, 그럼에도 특유의 명암과 근육 형태로 시다 본인의 색깔 역시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액션의 퀄리티는 그냥 시다스러웠다고 해도 좋을 것 같네요.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2010년대에 들어 시다의 액션 연출이 너무 다 비슷하고 고착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최근에 많이 받았었는데 이 브로리 극장판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가끔은 다른 것을 시도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시다의 파트 중간에 마지막 세번째 CG 씬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 극장판의 CG 파트들 중 제일 이질감이 심하다고 생각하나, 이 때가 차원이 부숴지는 연출과 함께 현실엔 없는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라 오히려 잘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도 동시에 받았습니다. 다만 브로리의 풀파워 변신과 오지터의 블루 변신 장면은 그냥 애니메이터들에게 맡기는 쪽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네요.
CG와 시다 파트 다음엔 스타 애니메이터들이 총출동합니다. 우선 원펀맨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쿠보타 치카시’가 등장하여 인상적인 액션씬을 선사합니다. 전체적인 캐릭터들의 생김새가 90년대 ‘나카츠루 카츠요시’의 그것과 유사한 느낌이었는데요. 쿠보타는 유감없이 좋은 액션을 선사하였으며 특히 펀치 한 방 한 방의 임팩트를 아주 잘 살렸습니다.
쿠보타의 파트 후부턴 전체적으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분위기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건 몇 년 전까지 토에이 애니메이션 소속이었다가 현재는 프리랜서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에 참여하며 활약하고 있는 ‘하야시 유키’(상)의 등장 때문입니다. 하야시의 표현력으로 이 때 브로리를, 특히 브로리의 얼굴을 보면 오지터를 상대로 아예 고전을 넘어 발악을 한다 싶을 생각이 들 정도죠. 그리고 액션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에네르기파 씬을 담당한 애니메이터는 아예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우마코시 요시히코’(하)입니다. 클로즈업을 하며 캐릭터의 얼굴이 크게 뭉개지는 연출은 우마코시의 특기이기도 한데요. 우마코시는 개봉 몇 달 전에 자신이 오지터 파트를 담당할 것이라는 소식을 알려준 장본인으로 나가미네 감독이 인터뷰에서 따로 언급할 정도로 총애하는 나가미네의 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라이가 신룡에게 소원을 빌어 브로리를 구하는 씬은 ‘오오츠카 켄’이 맡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오츠카의 액션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한 게 너무 아쉽네요.
모든 액션이 끝난 후엔 ‘모리 마사미’가 도맡아 타테와 유사한 느낌으로 부드러운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캐릭터들이 전체적으로 귀엽다는 인상을 주네요. 이 마지막 장면을 빌어 신타니 디자인의 장점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드러운 디자인과 날카로운 디자인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여러 스타일의 포용성입니다. 날카로운 디자인 하에서 누군가 이렇게 모리처럼 소프트한 작화체로 다가간다면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작붕이라는 헛소리를 할 것입니다. 그에 비해 신타니처럼 부드러운 디자인은 이런 스타일이 등장해도 기존 디자인과 부합하여 문제 없으며 위에 타카하시처럼 디자인과 엇나가는 날카로운 어프로치의 애니메이터가 나오더라도 어차피 일반 팬들은 그건 그것대로 멋있다고 좋아해 하죠. 이러한 여러 애니메이터들의 스타일과 그 포용성,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이번 브로리 극장판이 드래곤볼 팬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브로리 극장판은 비주얼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드래곤볼이 여태껏 본 적 없는 수준의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처음 이 극장판의 스탭진 명단이 공개되었을 때 그 누구보다 좋아하고 환호했던 저이기에 상당히 흐뭇한 결과물인데요. 드래곤볼 하면 사실 투박하고 타격감 있는 액션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고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겠지만 냉정하게 저는 늘 그런 연출을 보며 드래곤볼이 너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며 이젠 새로운 느낌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브로리 극장판은 정말 드래곤볼이 현대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솔직히 엔딩 크레딧을 보고 최대한 제 나름대로 아는 선에서 써봤지만 제가 쓴 이름들 외에도 이번 극장판에서 활약한 훌륭한 애니메이터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것을 다 담아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원래는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 작화 분석 2’라는 제목의 다른 글로 본글의 내용을 보충했었는데 그냥 하나로 합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본글을 수정하였고 두번째 게시글은 삭제하였습니다. 하는 김에 살도 더 붙였고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작화에 관심이 많은데 항상 유익한 지식과 정보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
이걸 이제야 봤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작화부분은 잘 모르는데 다다단님 덕분에 많이 알게됩니다.
진짜 유익하고 흥미로운 글입니다 ^^
제가 사진에나오는 저 부분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전투를 좋아하고 즐기는 느낌에서 진지하게 싸우자는 느낌으로의 전환점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뒤로 오공이 정신없이 패대기질 당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명암이 뚜렷한 그림이 심각하거나 진지한 상태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서 작화를 전환한게 아닌가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