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 수필>
삼식이 회와 삼식이 매운탕
지난 토요일 아들 녀석이 모처럼 시간이 난다고 강화로 아이들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 손자들이 아직 어리고, 아들도 회사일로 바쁜 터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근 한 달만의 만남이다.
3살, 1살 손자 두 녀석도 눈에 삼삼하던 터라 얼씨구나 아침 일찍 집사람을 차에 태우고 강화로 달려갔다. 아직 어리지만 손자들을 데리고 ‘옥토끼 우주체험관’에 들러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대명항에 들러 먹을 만 한 것을 찾아보자고....
어판장을 구경하는데 아직도 꽃게철이 지나지 않았는지 온통 꽃게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김장철이 다가오는 때문인지 싱싱한 새우도 무척 많다.
식당에 들러 메뉴를 살피는데 아들 녀석이 무엇을 드시겠냐고....
메뉴판에 반가운 삼식이 회가 눈에 들어온다. 고향 강릉에서 맛있게 먹었던 삼식이 매운탕이 생각이 나서 손으로 가리켰더니 삼식이 회와 매운탕을 시키는데 제법 고가이다.
삼식이(꺽죽이) / 도치(씬퉁이) / 아귀 / 물메기
예전 바닷사람들은 못생긴 삼식이가 그물에 걸리면 재수 없다고 바다물에 텀벙 도로 내던져서 ‘물텀벙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못생기고 푸대접 받던 물고기가 삼식이다.
광어회가 8만 원 정도인데 삼식이는 가격이 ‘싯가’라 붙어있어 얼마냐고 물었더니 10만원이란다. 그 못생기고 푸대접 받던 물고기가 광어보다 고급이라니.....
삼식이의 표준어는 ‘삼세기’로 양볼락목, 둑중개과의 물고기인데 포항지방에서는 ‘수베기’, 동해안에서는 ‘삼숙이’, 서해안에서는 ‘삼식이’, 경남지방에서는 ‘탱수’, 내가 근무하던 백령도에서는 ‘꺽죽이’라고 불리던 물고기이다.
백령도 근무시절, 인근의 대청도에 갔는데 거기에 삼세기(꺽죽이)가 많이 잡혔다. 달밤이면 꺽죽이가 알을 낳으러 바위로 기어오르는데 ‘꺽, 꺽’ 소리를 내서 꺽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이놈은 머리통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고 뒷부분을 건드리면 짧은 지느러미로 팔랑거리며 도망을 간다고 한다.
대청도 사람들은 꺽죽이가 올라오는 달밤에 망태를 옆구리에 차고 바위 위에 앉아 기어오르는 놈을 갈쿠리로 머리통을 찍어서 잡는다는데 어떤 날은 100마리도 넘게 잡는다고...
그때만 해도 꺽죽이는 고기는 먹을 것이 별로 없고 알이 많아 꺽죽이 알로 매운탕을 끓이면 먹을 만 하다고들 했다.
이 삼세기와 비슷한 못생긴 물고기로 꼼치과의 ‘물메기’가 있다. 경상도 지방에서 ‘물미거지’ 혹은 그냥 ‘미거지’라 하고 강원도나 부산지방에서는 ‘물메기’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인기가 없어 ‘물텀벙이’ 신세의 물고기였지만 지금은 매운탕으로 인기가 높다.
또 ‘아귀’, ‘도치’도 비슷한 못생긴 고기로 ‘물텀벙이’ 신세였는데 특히 ‘아귀’는 불교에서 말하는 굶어죽은 귀신 ‘아귀(餓鬼)’와 이름이 같은데 그 흉측한 모양새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아귀’는 육식어류로 굶어죽은 귀신 아귀처럼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서 배를 가르고 보면 가자미처럼 귀한 어종의 고기도 온전한 채로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아귀먹고, 가자미 먹고’라는 말도 있었다는.....
방언으로 함경도에서는 ‘망청어, 망챙이’, 경남지방에서는 ‘물꿩’이라고 불렀단다.
‘도치’는 횟대목, 도치과의 못생긴 물고기로 배에 빨판이 달린 것이 특징인데 동해안에서 많이 잡힌다. 살짝 데쳐서 먹는 숙회(熟鱠)가 일미이고 얼큰하게 매운탕으로 끓여내도 별미인데 생긴 모양은 올챙이와도 비슷하다. 이것도 ‘물텀벙이’ 신세로 푸대접을 받던 어종이다. 방언으로 ‘심퉁이, 씬퉁이’, ‘뚝지’ 등으로 불린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삼식이 회가 나왔는데.... 첨 먹어보는 회라 우선 모양부터 살피는데 붉으스름한 빛깔이 나고 조금 흐물흐물한 모양새이다.
우선 초장을 조금 찍어 맛을 보는데..... 햐~! 우선 쫄깃거리는 식감이 예술이고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사람을 환장하게 한다. 생긴 것하고는, 생각하던 것 하고는 맛이 완전히 딴판이다. 회 한 점에 복분자주 한 잔을 곁들이니 별미 중의 별미로다!!!!
회가 거의 비워지자 매운탕이 나왔는데... 이 맛 또한 사람을 환장하게 한다. 아들 표현을 빌리면 푹 고아낸 진한 사골국물 맛이라고나 할까....
모르겠다. 평생의 반려자인 집사람, 나의 자랑인 귀한 막내아들과 예쁘고 싹싹한 며느리, 그리고 밤톨 같은 손자 두 녀석과 함께하는 자리여서인지는 몰라도 인생 최고의 만찬이었다.
며느리의 하는 말 ‘아버님, 맛있게 드시니 너무 좋네요. 자주 사 드릴께요~’ ㅎㅎㅎㅎ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