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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품류족론 제13권
7. 변천문품 ④
[4성제](2)
이 4성제(聖諦)는 몇 가지가 단변지(斷遍知)로 두루 아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苦諦ㆍ集聖諦]는 단변지로 두루 아는 것이며, 두 가지는 단변지로 두루 아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가 마땅히 끊어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苦諦ㆍ集聖諦]는 마땅히 끊어야 하며 두 가지는 끊지 않아야 한다.
몇 가지가 마땅히 닦아야 하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道諦]는 마땅히 닦아야 하고 한 가지[滅諦]는 닦지 않아도 되며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은 꼭 닦아야 하기도 하고 혹은 닦지 않아도 된다.
어떤 것이 마땅히 닦아야 하는 것인가?
착한 고제이다.
어떤 것이 닦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착하지 못한 것[不善]과 무기(無記)의 고제이다.
집성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 더러운 데에 물드는 것[染汚]인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는 더러운 데에 물들지 않고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은 더러운 데에 물들기도 하고, 혹은 더러운 데에 물들지 않기도 한다.
어떤 것이 더러운 데에 물드는 것인가?
유부(有覆)의 고제이다.
어떤 것이 더러운 데에 물들지 않는 것인가?
무부(無覆)의 고제이다.
집성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가 결과[果]이면서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세 가지는 곧 결과이면서 또한 결과가 있는 것이요 한 가지[滅諦 : 離繫果]는 결과이면서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몇 가지가 유집수(有執受)인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는 무집수(無執受)이며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은 유집수이기도 하고 혹은 무집수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유집수인가?
자체(自體)에 속한 고성제이다.
어떤 것이 무집수인가?
자체에 속하지 않은 고제이다.
집성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가 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대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은 대종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혹은 대종으로 만들어지지 않기도 한다.
어떤 것이 대종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9처(處 : 五根處와 觸 이외의 四境處)와 2처(處 : 觸處ㆍ法處)의 적은 부분이다.
어떤 것이 대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1처(處 : 意根處)와 2처(處 : 觸處ㆍ法處)의 적은 부분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속한 신업과 어업은 곧 대종으로 만들어지거니와 나머지는 모두 대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몇 가지가 위[上]가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세 가지는 위가 있으며 한 가지[滅諦]는 위가 없다.
몇 가지가 유(有)인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는 곧 유이고 두 가지는 유가 아니다.
몇 가지가 인(因)과 상응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인과 상응하지 않으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 속한 색(色)과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은 곧 인과 상응하지 않으며 나머지는 모두 인과 상응한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속한 신업과 어업은 심불상응행은 곧 인과 상응하지 않으며, 나머지는 모두 인과 상응한다.
이 4성제가 6선처(善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6선처가 2제(諦 : 道諦ㆍ滅諦)와 2제(諦 : 苦諦ㆍ集諦)이 적은 부분을 포섭하며 2제와 2제의 적은 부분도 역시 6선처를 포섭한다.
5불선처(不善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5불선처가 2제(諦 : 苦諦ㆍ集諦)의 적은 부분을 포섭하고, 2제의 적은 부분도 역시 5불선처를 포섭한다.
7무기처(無記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마땅히 네 구절[四句]로 되어야 한다.
혹은 그것이 무기처이면서 제[諦]가 아니기도 하나니, 허공과 비택멸이다.
혹은 그것이 제이면서 무기처가 아니기도 하나니, 2제(諦 : 滅諦ㆍ道諦)와 2제(諦 : 苦諦ㆍ集諦)의 적은 부분이다.
혹은 그것이 무기처이면서 또한 제이기도 하나니, 2제(諦 : 苦諦ㆍ集諦)의 적은 부분이다.
혹은 무기처도 아니고 제도 아니니, 이런 일을 있을 수가 없다.
3루처(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 3루처는 2제(諦 : 苦諦ㆍ集諦)의 적은 부분을 포섭하고 2제의 적은 부분도 역시 3루처를 포섭한다.
5유루처(有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 5유루처는 2제(諦 : 苦諦ㆍ集諦)를 포섭하고, 2제도 역시 5유루처를 포섭한다.
8무루처(無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마땅히 네 구절을 만들어야 한다.
혹은 그것이 무루처이면서 제(諦)가 아니기도 하나니, 허공과 비택멸이다.
혹은 그것이 제이면서 무루처가 아니기도 하나니, 2제(諦 : 苦諦ㆍ集諦)이다.
혹은 무루처이면서 또한 제이기도 하나니, 2제(諦 : 滅諦ㆍ道諦)이다.
혹은 무루처도 아니면서 제가 아니기도 하나니,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몇 가지가 과거인가 등에 대해서는, 세 가지는 과거이기도 하고 혹은 미래이기도 하고 혹은 현재이기도 하며 한 가지[滅諦]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다.
몇 가지가 착한 것[善]인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滅諦ㆍ道諦]는 착한 것이면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 착하기도 하고 혹은 착하지 못하기도 하며 혹은 무기(無記)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착한 것인가?
고성제에 속한 5온(蘊)이다.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것인가?
고성제에 속한 착하지 못한 5온이다.
어떤 것이 무기인가?
고성제에 속한 무기의 5온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가 욕계에 매인 것[欲界繫]인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는 매이지 않은 것[不繫]이고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은 욕계에 매인 것이기도 하고 혹은 색계에 매인 것[色界繫]이기도 하며 혹은 무색계에 매인 것[無色界繫]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욕계에 매인 것인가?
고성제에 속한 5온(蘊)이다.
어떤 것이 색계에 매인 것인가?
고성제에 속한 5온이다.
어떤 것이 무색계에 매인 것인가?
고성제에 속한 무색계의 4온(蘊)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가 학(學)인가 등에 대해서는, 세 가지는 학도 아니고 무학(無學)도 아니며 한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도성제는 혹은 학이기도 하고 혹은 무학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학인가?
배울 것이 있는 이[學]의 5온이다.
어떤 것이 무학인가?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5온이다.
이 4성제는 몇 가지가 견도에서 끊어야 할 것[見所斷]인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는 끊어야 할 것이 아니며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은 견도에서 끊어야 할 것이기도 하고, 혹은 수도에서 끊어야 할 것[修所斷]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견도에서 끊어야 할 것인가?
고성제가 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이면 현관변(現觀邊)의 인(忍)으로 끊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견도에서 끊어야 할 88수면(隨眠)과 또한 그것과 상응하는 고성제와 아울러 그것과 함께 일어나는 심불상응행이다.
어떤 것이 수도에서 끊어야 할 것인가?
고제는 배울 것이 있는 이로서 자취를 본[見迹] 이면 수도에서 끊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수도에서 끊어야 할 열 가지 수면과 그것과 상응하는 고성제와 아울러 그것과 함께 일어나는 신업(身業)ㆍ어업(語業)과 심불상응행과 또 염오되지 않은[不染汚] 고성제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가 마음[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마음도 아니고 심소(心所)도 아니고 마음과 상응하는 것[心相應]도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 속한 색(色)과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은 마음도 아니고 심소도 아니고 마음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며, 수온(受蘊)과 상온(想蘊)과 행온(行蘊)은 곧 심소이면서 마음과도 상응하고 심(心)ㆍ의(意)ㆍ식(識)은 오직 마음일 뿐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은 마음도 아니고 심소도 아니고 마음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며, 수온과 상온과 상응하는 행온은 곧 심소이면서 마음과 상응하고 심ㆍ의ㆍ식은 오직 마음일 뿐이다.
몇 가지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느낌[受]과 상응하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요 느낌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괴로움의 성제에 대해서는 네 구절이 있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느낌과 상응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나니, 마음을 따라 옮겨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 그리고 느낌이다.
혹은 느낌과 상응하면서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기도 하나니, 심ㆍ의ㆍ식이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느낌과 상응하기도 하나니, 상온(想蘊)과 상응하는 행온(行蘊)이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요 느낌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니,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색(色)과 심불상응행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있어서는 네 구절이 있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느낌과 상응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나니, 신업ㆍ어업과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심불상응행과 느낌이다.
혹은 느낌과 상응하면서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니, 심ㆍ의ㆍ식이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또한 느낌과 상응하기도 하나니, 상온과 상응하는 행온이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며 느낌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니,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심불상응행이다.
몇 가지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상(想)ㆍ행(行)과 상응하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그 자성(自性)을 제외하고는 느낌에서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몇 가지가 거친 생각[尋]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세밀한 생각[伺]과 상응하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도 아니요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 대해서는 네 구절이 있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지 아니하기도 하나니,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과 거친 생각과 상응하는 세밀한 생각이다.
혹은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면서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기도 하나니, 거친 생각과 또는 거친 생각과 상응하지 않으며 세밀한 생각과는 상응하는 심ㆍ심소[心心所]의 고제이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또한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기도 하나니, 거친 생각ㆍ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심ㆍ심소의 고제이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고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지도 아니하나니,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색[色]과 심불상응행과 거친 생각과는 상응하지 않는 세밀한 생각과 아울러 거친 생각도 없고[無尋]ㆍ세밀한 생각도 없는[無伺] 심ㆍ심소의 고제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있어서는 네 구절이 있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세밀한 생각과는 상응하지 아니하기도 하나니,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과 또 거친 생각과 상응하는 세밀한 생각이다.
혹은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면서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니, 거친 생각과 또한 거친 생각과 상응하지 않으면서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심ㆍ심소의 법이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또한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기도 하나니, 거친 생각ㆍ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심ㆍ심소의 법이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면서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니,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과 거친 생각과는 상응하지 않는 세밀한 생각과 아울러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는 심ㆍ심소의 법이다.
몇 가지가 견(見)이면서 견처(見處)가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견도 아니요 견처도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은 견이면서 또한 견처이기도 하고, 혹은 견처이면서 견이 아니기도 하다.
혹은 견이면서 또한 견처이기도 하다 함은, 안근(眼根)과 5염오견(染汚見)과 세간의 바른 견해이다. 나머지는 모두 견처이면서 견은 아니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속한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에 속하지 않은 지혜도 곧 견이면서 견처가 아니요 나머지는 모두 견도 아니면서 견처도 아니다.
몇 가지가 유신견(有身見)을 인(因)으로 삼으면서 유신견의 인(因)은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는 유신견(有身見)을 인(因)으로 삼는 것도 아니면서 유신견의 인도 아니며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은 유신견을 인으로 삼으면서 유신견의 인이 아니기도 하다. 혹은 유신견을 인으로 삼으면서 또한 유신견의 인이기도 하다. 혹은 유신견을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면서 유신견의 인이 아니기도 하다.
유신견을 인으로 삼으면서 유신견의 인이 아니라 함은, 과거ㆍ현재의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수면과 그것과 상응(相應)ㆍ구유(俱有)하는 등의 고제를 제외한 과거ㆍ현재의 견집(見集)에서 끊어야 할 변행수면과 그것과 상응ㆍ구유하는 등의 고제를 제외한 것과 또 미래의 유신견과 상응하는 고제를 제외하고, 또한 미래의 유신견과 그것과 상응하는 법과 나고[生]ㆍ늙고[老]ㆍ머무르고[住]ㆍ무상(無常)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더러워진[染汚] 고제이다.
유신견을 인으로 삼고 또한 유신견의 인이 되기도 한다. 앞의 것에서 제외된 고제이다.
유신견을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요 유신견의 인도 되지 않는다 함은, 더러워지지 않은[不染汚] 고제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가 업(業)이면서 업이숙(業異熟)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업도 아니요 업이숙도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는 네 구절이 있다.
혹은 업이면서 업이숙이 아니기도 하나니, 신업ㆍ어업과 업이숙을 포섭하지 않은 사(思)이다.
혹은 업이숙이면서 업이 아니기도 하나니, 사(思)를 포섭하지 않은 업이숙생(業異熟生)의 고제이다.
혹은 업이기도 하고 또한 업이숙이기도 하니, 업이숙생의 사(思)이다.
혹은 업도 아니요 업이숙도 아니니, 업과 업이숙생의 고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고제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사(思)는 곧 업이면서 업이숙은 아니요, 나머지는 모두 업도 아니요 업이숙도 아니다.
몇 가지가 업이면서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업도 아니요 업을 따라 옮겨 가는 것도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는 네 구절이 있다.
혹은 업이면서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기도 하나니,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신업ㆍ어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신업ㆍ어업과 사(思)이다.
혹은 업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업이 아니기도 하니, 수온ㆍ상온ㆍ식온과 사(思)를 포섭하지 않고 업을 따라 옮겨 다니는 행온이다.
혹은 업이면서 또한 업을 따라 옮겨다니기도 하나니,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신업과 어업이다.
혹은 업도 아니요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도 아니니, 업과 업을 따라 옮겨 다니는 고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고제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는 네 구절이 있다.
혹은 업이면서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니, 사(思)이다.
혹은 업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업이 아니기도 하니, 수온ㆍ상온ㆍ식온과 사(思)를 포섭하지 않고 업을 따라 옮겨 다니는 행온이다.
혹은 업이면서도 업을 따라 옮겨다니기도 하니, 신업과 어업이다.
혹은 업도 아니요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도 아니니,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심불상응행이다.
몇 가지가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이면서도 볼 수 있는 물질[有見色]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만들어진 물질도 아니요 볼 수 있는 물질도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는 세 구절이 있다.
혹은 만들어진 물질이면서도 볼 수 있는 물질이 아니기도 하니, 8처(處 : 五根處와 聲ㆍ香ㆍ味의 三境處)와 2처(處 : 觸處ㆍ法處)의 적은 부분이다.
혹은 만들어진 물질이며 또한 볼 수 있는 물질이기도 하니, 1처(處 : 色處)이다.
혹은 만들어진 물질도 아니요 볼 수 있는 물질도 아니니, 1처(處 : 意根處)와 2처(處 : 觸處ㆍ法處)의 적은 부분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속한 신업ㆍ어업은 곧 만들어진 물질이되 볼 수 있는 물질은 아니며, 나머지는 모두 만들어진 물질도 아니요 볼 수 있는 물질도 아니다.
이 4성제는 몇 가지가 만들어진 물질이면서 대할 수 있는 물질[有對色]은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만들어진 물질도 아니요 대할 수 있는 물질도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는 네 구절이 있다.
혹은 만들어진 물질이되 대할 수 있는 물질은 아니기도 하니, 1처(處 : 法處)의 적은 부분이다.
혹은 대할 수 있는 물질이되 만들어진 물질은 아니니, 1처(處 : 觸處)의 적은 부분이다.
혹은 만들어진 물질이면서도 또한 대할 수 있는 물질이기도 하니, 9처(處 : 五根 및 色聲ㆍ香ㆍ味處)와 1처(處 : 觸處)의 적은 부분이다.
혹은 만들어진 물질도 아니요 대할 수 있는 물질도 아니니, 1처(處 : 意處)와 또 다른 1처(處 : 法處)의 적은 부분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속한 신업ㆍ어업은 곧 만들어진 물질이되 대할 수 있는 물질은 아니며, 나머지는 모두 만들어진 물질도 아니요 대할 수 있는 물질도 아니다.
몇 가지가 보기 어렵기[難見] 때문에 심히 깊은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보기 어렵기 때문에 심히 깊으며 심히 깊기 때문에 보기가 어렵다.
몇 가지가 착한 것[善]이면서 착한 것을 인(因)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곧 착한 것이면서 착한 것을 인으로 삼는 것이 아니요, 다른 한 가지는 곧 착한 것이면서 또한 착한 것을 인으로 삼으며, 두 가지도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는 세 구절이 있다.
혹은 착한 것을 인으로 삼되 착한 것이 아니기도 하니, 착한 이숙(異熟)으로 생긴 고성제이다.
혹은 곧 착한 것이며 또한 착한 것을 인으로 삼기도 하나니 착한 고제이다.
혹은 착한 것도 아니요 착한 것을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니, 착한 이숙으로 생겨난 고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무기와 착하지 못한 고제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가 착하지 못한 것[不善]이면서 착하지 못한 것을 인(因)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는 착하지 못한 것도 아니요 착하지 못한 것을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며,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는 세 구절이 있다.
혹은 착하지 못한 것을 인으로 삼고서도 착하지 못한 것은 아니기도 하나니, 착하지 못한 이숙으로 생겨난 고제와 욕계에 매인 유신견(有身見)ㆍ변집견(邊執見)과 아울러 그것과 상응(相應)ㆍ구유(俱有)하는 등의 고제이다.
혹은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또한 착하지 않은 것을 인으로 삼기도 하나니, 착하지 못한 고제이다.
혹은 착하지 못한 것도 아니요 착하지 못한 것을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니, 착하지 못한 이숙으로 생겨난 고제를 제외한 것과 욕계에 매인 유신견ㆍ변집견과 또한 그것과 상응ㆍ구유하는 등의 고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무기와 착한 고제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가 무기(無記)이면서 무기를 인(因)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두 가지는 무기도 아니요 무기를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니,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는 세 구절이 있다.
혹은 무기가 인이 되면서도 무기가 아니기도 하나니, 착하지 못한 고제이다.
혹은 무기이면서 또한 무기를 인으로 삼기도 하나니, 무기의 고제이다.
혹은 무기도 아니요 무기를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니, 착한 고제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몇 가지가 인연(因緣)이면서 인(因)을 가지지 아니한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세 가지는 곧 인연이면서 또한 인도 있으며, 한 가지[滅諦]는 인연도 아니면서 인도 있지 아니하다.
몇 가지가 등무간(等無間)이면서 등무간연(等無間緣)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등무간도 아니요 등무간연도 아니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는 세 구절이 있다.
혹은 이것이 등무간이면서 등무간연이 아니기도 하나니, 미래에 목전에 나타나 일어나는 심ㆍ심소[心心所]의 고제와 과거ㆍ현재의 아라한이 목숨을 마칠 때에 심ㆍ심소의 고제와 아울러 이미 생겼거나 지금 막 생긴 무상정(無想定)과 멸정(滅定)이다.
혹은 그것이 등무간이면서 또한 등무간연이기도 하나니, 과거ㆍ현재의 아라한이 목숨을 마칠 때에 심ㆍ심소의 고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과거ㆍ현재의 심ㆍ심소의 고제이다.
혹은 등무간도 아니요 등무간연도 아니니, 미래의 목전에 나타나 일어나는 심ㆍ심소의 고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미래의 심ㆍ심소의 고제와 등무간의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심불상응행과 색(色)의 고제이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도 세 구절이 있다.
혹은 이것이 등무간이면서 등무간연이 아니기도 하나니, 미래에 목전에 나타나 일어나는 심ㆍ심소의 도제이다.
혹은 그것이 등무간이면서 또한 등무간연이기도 하나니, 과거ㆍ현재의 심ㆍ심소의 도제이다.
혹은 등무간도 아니요 등무간연도 아니니, 미래의 목전에 나타나 일어나는 심ㆍ심소의 도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미래의 심ㆍ심소의 도제와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의 도제이다.
몇 가지가 소연연(所緣緣)이면서 소연(所緣)이 있지 아니한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소연연이면서 소연이 있지 아니하며,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에 속한 색(色)과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은 곧 소연연이면서 소연이 있지 아니하며, 나머지 모든 고제는 모두가 곧 소연연이면서 또한 소연도 있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도성제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은 곧 소연연이면서 소연이 있지 아니하며, 나머지 모든 도제는 모두가 소연연이면서 또한 소연도 있다.
몇 가지가 증상연(增上緣)이면서 증상(增上)이 있지 아니한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곧 증상연이면서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며, 세 가지는 곧 증상연이면서 또한 증상도 있다.
몇 가지가 폭류(瀑流)이면서 순폭류(順瀑流)는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한 가지는 폭류가 아니면서 순폭류도 아니며, 두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성제는 혹 이것은 폭류이면서 또한 순폭류이기도 하다. 혹은 순폭류이면서 폭류는 아니기도 하다.
그것은 폭류이면서 또한 순폭류라 함은 4폭류(瀑流)이다.
나머지 모든 고제는 곧 순폭류이며 폭류는 아니다.
집성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4정려]
4정려(靜廬)라 함은 초정려(初靜廬)와 제2 정려와 제3 정려와 제4 정려이다.
이 4정려는 몇 가지가 형상[色]이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에 속한 신업(身業)ㆍ어업(語業)은 곧 형상이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형상이 없다.
몇 가지가 볼[見] 수 있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볼 수 없다.
몇 가지가 대할[對] 수 있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대할 수 없다.
몇 가지가 유루(有漏)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는 혹 유루이기도 하고 혹 무루(無漏)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유루인가?
정려에 속한 유루의 5온(蘊)이다.
어떤 것이 무루인가?
정려에 속한 무루의 5온이다.
몇 가지가 유위(有爲)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유위이다.
몇 가지가 곧 이숙(異熟)이 있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로서 만일 유루이면 이숙이 있거니와 만일 무루이면 이숙이 없다.
몇 가지가 곧 연으로 생긴 것인가[緣生]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연으로 생기고 또한 인으로 생기며[因生] 곧 세간에 속하다.
몇 가지가 물질[色]에 속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에 속한 신업과 어업은 곧 물질에 속하며, 나머지는 모두 이름[名]에 속한다.
몇 가지가 내처(內處)에 속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에 속한 심ㆍ의ㆍ식은 내처에 속하며, 나머지는 모두 외처(外處)에 속한다.
몇 가지가 지변지(智邊知)로 두루 아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지변지로 두루 아는 것이다.
이 4정려는 몇 가지가 단변지(斷邊知)로 두루 아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가 만일 유루이면 마땅히 단변지로 두루 아는 것이며, 만일 무루이면 단변지로 두루 아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가 마땅히 끊어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가 만일 유루이면 마땅히 끊어야 하며, 만일 무루이면 끊지 않아도 된다.
몇 가지가 마땅히 닦아야 하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 곧 닦아야 하는 것이다.
몇 가지가 더러운 데에 물드는 것[染汚]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 곧 더러운 데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몇 가지가 결과[果]이면서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 곧 결과이면서 또한 결과도 있다.
몇 가지가 유집수(有執受)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무집수(無執受)이다.
몇 가지가 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에 속한 신업과 어업은 곧 대종으로 만들어진 것이요, 나머지는 모두 대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몇 가지가 위가 있는가[有上] 등에 대해서는, 모두 곧 위가 있다.
몇 가지가 곧 유(有)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가 만일 유루이면 그것은 곧 유요, 만일 무루이면 유가 아니다.
몇 가지가 인과 상응하는가[因相應]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은 인과 상응하지 않으며, 나머지는 모두 인과 상응한다.
이 4정려가 6선처(善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5선처(善處 : 善의 五蘊)의 적은 부분이 4정려를 포섭하며, 4정려도 역시 5선처의 적은 부분을 포섭한다.
5불선처(不善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 피차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7무기처(無記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피차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3루처(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피차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5유루처(有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마땅히 네 구절[四句]을 만들어야 한다.
혹은 유루처이며 정려는 아니니, 정려에 포섭되지 않은 유루의 5온(蘊)이다.
혹은 정려이면서 유루처가 아니기도 하나니, 무루(無漏)의 4정려이다.
혹은 유루처이면서 또한 정려이기도 하나니, 유루의 4정려이다.
혹은 유루처도 아니요 정려도 아니니, 정려에 포섭되지 않은 무루의 5온과 무위의 법[無爲法]이다.
8무루처(無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마땅히 네 가지 구절을 만들어야 한다.
혹은 무루처이며 정려는 아니니, 정려에 포섭되지 않은 무루의 5온과 무위의 법이다.
혹은 정려이며 무루처는 아니니, 유루의 4정려이다.
혹은 무루처이며 또한 정려이기도 하니, 무루의 4정려이다.
혹은 무루처도 아니요 정려도 아니니, 정려에 포섭되지 않은 유루의 5온이다.
몇 가지가 과거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과거이기도 하고 혹은 미래이기도 하며 혹은 현재이기도 하다.
몇 가지가 착한 것[善]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착한 것이다.
몇 가지가 욕계에 매인 것[欲界繫]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가 만일 유루이면 색계에 매인 것[色界繫]이거니와 만일 무루이면 곧 매이지 않은 것[不繫]이다.
몇 가지가 학(學)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는 혹 학이기도 하고 혹은 무학(無學)이기도 하며 혹은 학도 무학도 아니기도[非學非無學] 하다.
어떤 것이 학인가?
정려에 속한 배울 것이 있는 이[學]의 5온(蘊)이다.
어떤 것이 무학인가?
정려에 속한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5온이다.
어떤 것이 학도 무학도 아닌가?
정려에 속한 유루의 5온이다.
이 4정려는 몇 가지가 견도에서 끊어야 할 것[見所斷]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가 만일 유루이면 수도에서 끊어야 할 것이요, 만일 무루이면 끊어야 할 것이 아니다.
몇 가지가 마음[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려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은 마음도 아니고 심소(心所)도 아니고 마음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며,
수온(受蘊)과 상온(想蘊)과 상응하는 행온(行蘊)은 곧 심소이면서 마음과도 상응하고 심(心)ㆍ의(意)ㆍ식(識)은 오직 마음일 뿐이다.
몇 가지가 마음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느낌[受]과 상응하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각각 네 구절이 있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느낌과 상응하는 것이 아니니, 정려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마음을 따라 옮겨다니는 심불상응행과 느낌이다.
혹은 느낌과 상응하면서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니, 정려에 속한 심ㆍ의ㆍ식이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또한 느낌과 상응하기도 하나니, 정려에 속한 상온(想蘊)과 상응하는 행온(行蘊)이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며 느낌과 상응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니, 정려에 속한 마음을 따라 옮겨다니는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정려에 속한 심불상응행이다.
몇 가지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상(想)ㆍ행(行)과는 상응하지 아니하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그 자성(自性)을 제외하고는 느낌과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몇 가지가 거친 생각[尋]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세밀한 생각[伺]과는 상응하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세 가지는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면서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며 한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초정려는 마땅히 네 구절을 만들어야 한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세밀한 생각과는 상응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니, 초정려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심불상응행과 세밀한 생각이다.
혹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며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기도 하나니, 초정려에 속한 거친 생각이다.
혹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또한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기도 하나니, 초정려에 속한 거친 생각ㆍ세밀한 생각에 상응하는 심ㆍ심소의 법이다.
혹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요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니, 초정려에 속한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는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초정려에 속한 심불상응행이다.
몇 가지가 견(見)이며 견처(見處)는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각각 네 구절이 있다.
혹은 견이며 견처가 아니니, 정려에 속한 진지(盡智)ㆍ무생지(無生智)에 포섭되지 않은 무루의 지혜이다.
혹은 견처이면서 견처는 아니니, 견에 포섭되지 않은 유루의 네 가지 정려이다.
혹은 견이면서 또한 견처이기도 하니, 정려에 속한 유루의 지혜이다.
혹은 견도 아니요 견처도 아니니, 견에 포섭되지 않은 무루의 네 가지 정려이다.
몇 가지가 유신견(有身見)을 인(因)으로 삼으면서 유신견의 인(因)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유신견을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요 유신견의 인도 아니다.
몇 가지가 업(業)이며 업이숙(業異熟)은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사(思)는 곧 업이요 업이숙은 아니며 나머지는 모두 업도 아니고 업이숙도 아니다.
몇 가지가 업이면서 업을 따라 옮겨 가는 것[隨業轉]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각각 네 구절이 있다.
혹은 업이면서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니, 정려에 속한 사(思)이다.
혹은 업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업이 아니기도 하니, 정려에 속한 수온ㆍ상온ㆍ식온과 사(思)에 포섭되지 않은 업을 따라 옮겨 다니는 행온이다.
혹은 업이면서 또한 업을 따라 옮겨다니기도 하나니, 정려에 속한 신업과 어업이다.
혹은 업도 아니요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도 아니니, 정려에 속한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정려에 속한 심불상응행이다.
몇 가지가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이되 볼 수 있는 물질[有見色]은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에 속한 신업과 어업은 곧 만들어진 물질이면서 볼 수 있는 물질은 아니며, 나머지는 모두 만들어진 물질도 아니요 볼 수 있는 물질도 아니다.
이 4정려는 몇 가지가 만들어진 물질이며 대할 수 있는 물질[有對色]은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에 속한 신업ㆍ어업은 곧 만들어진 물질이며 대할 수 있는 물질은 아니요, 나머지는 모두 만들어진 물질도 아니요 대할 수 있는 물질도 아니다.
몇 가지가 보기 어렵기[難見] 때문에 심히 깊은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심히 깊기 때문에 보기가 어렵다.
몇 가지가 착한 것[善]이면서 착한 것을 인(因)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착한 것이면서 또한 착한 것을 인으로 삼는다.
몇 가지가 착하지 못한 것[不善]이면서 착하지 못한 것을 인(因)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요 착하지 못한 것을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몇 가지가 무기(無記)이면서 무기를 인(因)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무기도 아니요 무기를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몇 가지가 인연(因緣)이면서 인(因)이 있지 아니한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인연이면서 또한 인도 있다.
몇 가지가 등무간(等無間)이면서 등무간연(等無間緣)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초정려에는 세 구절이 있다.
혹은 이것이 등무간이요 등무간연은 아니니, 미래에 목전에 나타나 일어나는 심ㆍ심소의 법[心心所法]이다.
혹은 이것이 등무간이요 또한 등무간연이기도 하니, 과거와 현재의 심ㆍ심소의 법이다.
혹은 등무간도 아니요 등무간연도 아니니, 미래의 목전에 나타나 일어나는 심ㆍ심소의 법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미래의 심ㆍ심소의 법과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이다.
제2ㆍ제3의 정려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제4 정려에는 세 구절이 있다.
혹은 이것이 등무간이며 등무간연이 아니기도 하니, 미래에 목전에 나타나 일어나는 심ㆍ심소의 법과 이미 생겼거나 지금 막 생긴 무상정(無想定)이다.
혹은 이것은 등무간이요 또한 등무간연이기도 하나니, 과거와 현재의 심ㆍ심소의 법이다.
혹은 등무간도 아니요 등무간연도 아니니, 미래에 목전에 나타나 일어나는 심ㆍ심소의 법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미래의 심ㆍ심소의 법과 등무간의 심불상응행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심불상응행과 신업과 어업이다.
몇 가지가 소연연(所緣緣)이면서 소연(所緣)이 있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은 곧 소연연이되 소연이 있는 것은 아니며, 그 나머지는 모두 소연연이요 또한 소연도 있다.
몇 가지가 증상연(增上緣)이면서 증상(增上)이 있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증상연이요 또한 증상도 있다.
몇 가지가 폭류(瀑流)이면서 순폭류(順瀑流)가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정려가 만일 유루이면 순폭류요 폭류는 아니며, 만일 무루이면 그것은 폭류도 아니요 순폭류도 아니다.
[4무량](1)
4무량(無量)이라 함은 자무량(慈無量)과 비무량(悲無量)과 희무량(喜無量)과 사무량(捨無量)이다.
이 4무량은 몇 가지가 형상[色]이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모든 무량에 속한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은 곧 형상이 있거니와 나머지는 모두 형상이 없다.
몇 가지가 볼[見] 수 있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볼 수가 없다.
몇 가지가 대(對)할 수 있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대할 수 없다.
몇 가지가 유루(有漏)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유루이다.
몇 가지가 곧 유위(有爲)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유위이다.
몇 가지가 이숙(異熟)이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이숙이 있다.
몇 가지가 곧 연으로 생기는가[緣生]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연으로 생기고 또한 인으로 생기며[因生] 세간에 속하다.
몇 가지가 물질[色]에 속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무량에 속한 신업ㆍ어업은 곧 물질에 속하며, 나머지는 모두 이름[名]에 속한다.
몇 가지가 내처(內處)에 속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무량에 속한 심ㆍ의ㆍ식은 내처에 속하고, 나머지는 모두 외처(外處)에 속한다.
몇 가지가 지변지(智邊知)로 두루 아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지변지로 두루 아는 것이다.
이 4무량은 몇 가지가 단변지(斷邊知)로 두루 아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단변지로 두루 아는 것이다.
몇 가지가 마땅히 끊어야 하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마땅히 끊어야 한다.
몇 가지가 마땅히 닦아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당연히 닦아야 한다.
몇 가지가 더러운 데에 물드는 것[染汚]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더러운 데에 물들지 않는다.
몇 가지가 결과[果]이면서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결과이면서 또한 결과가 있다.
몇 가지가 유집수(有執受)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무집수(無執受)이다.
몇 가지가 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무량에 속한 신업과 어업은 곧 대종으로 만들어진 것이요, 나머지는 모두 대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몇 가지가 위[上]가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위가 있다.
몇 가지가 곧 유(有)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유이다.
몇 가지가 인(因)과 상응하는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무량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은 인과 상응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인과 상응한다.
이 4무량이 6선처(善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5선처(善處 : 善의 五蘊)의 적은 부분이 4무량을 포섭하고 4무량도 역시 5선처의 적은 부분을 포섭한다.
5불선처(善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피차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7무루처(無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피차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3루처(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피차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5유루처(有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5유루처의 적은 부분이 4무량을 포섭하고, 4무량도 역시 5유루처의 적은 부분을 포섭한다.
8무루처(無漏處)와 서로 포섭함에 있어서는 피차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몇 가지가 과거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과거이기도 하고 혹은 미래이기도 하며 혹은 현재이기도 하다.
몇 가지가 착한 것[善]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곧 착한 것이다.
몇 가지가 욕계에 매인 것[欲界繫]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색계에 매인 것[色界繫]이다.
몇 가지가 학(學)인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학도 아니요 무학도 아니다[非學非無學].
이 4무량은 몇 가지가 견도에서 끊어야 할 것인가[見所斷]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수도에서 끊어야 할 것[修所斷]이다.
몇 가지가 마음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무량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은 마음도 아니요 심소(心所)도 아니며 마음과 상응하는 것[心相應]도 아니요 수온(受蘊) 및 상온(想蘊)과 상응하는 행온(行蘊)은 곧 심소이면서 마음과 상응하고 심ㆍ의식은 오직 마음일 뿐이다.
몇 가지가 마음을 따라 옮겨 가면서 느낌[受]과 상응하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각각 네 구절이 있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느낌과 상응하지 아니하기도 하나니, 무량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심불상응행과 느낌이다.
혹은 느낌과 상응하며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기도 하나니, 무량에 속한 심ㆍ의ㆍ식이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또한 느낌과 상응하기도 하나니, 무량에 속한 상온과 상응하는 행온이다.
혹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요 느낌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니, 무량에 속한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무량에 속한 심불상응행이다.
몇 가지가 마음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상(想)ㆍ행(行)과는 상응하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그 자성(自性)을 제외하고는 느낌에서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몇 가지가 거친 생각[尋]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세밀한 생각[伺]과 상응하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자무량(慈無量)에는 네 구절이 있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며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나니, 자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과 거친 생각과 상응하는 세밀한 생각이다.
혹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며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은 아니니, 자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과 거친 생각과 상응하지 않고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심ㆍ심소의 법이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고 또한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기도 하나니, 자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 및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심ㆍ심소의 법이다.
혹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요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니, 자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자무량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 그리고 자무량에 속한 것으로 상응하지 않는 거친 생각과 자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는[無尋無伺] 심ㆍ심소의 법이다.
비무량(悲無量)과 사무량(捨無量)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
희무량(喜無量)에서는 네 구절이 있다.
혹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고 세밀한 생각과는 상응하지 아니하나니, 희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 그리고 세밀한 생각이다.
혹은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고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니, 희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이다.
혹은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고 또한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기도 하나니, 희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ㆍ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심ㆍ심소의 법이다.
혹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요 세밀한 생각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니, 희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을 따라 옮겨 다니는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희무량에 속한 신업ㆍ어업과 심불상응행, 그리고 희무량에 속한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는 심ㆍ심소의 법이다.
몇 가지가 견(見)이면서 견처(見處)는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무량은 혹은 견이면서 또한 견처이기도 하다. 혹은 견처이면서 견이 아니기도 한다.
견이면서 또한 견처이기도 하다 함은, 무량에 속한 지혜[慧]이며, 나머지는 모두 견처이나 견은 아니다.
몇 가지가 유신견(有身見)을 인(因)으로 삼으면서 유신견의 인(因)은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유신견을 인으로 삼는 것도 아니요 유신견의 인도 아니다.
몇 가지가 업(業)이면서 업이숙(業異熟)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무량에 속한 신업ㆍ어업, 그리고 사(思)는 곧 업이면서 업이숙은 아니며, 나머지는 모두 업도 아니고 업이숙도 아니다.
몇 가지가 업이면서 업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각각 네 구절이 있다.
혹은 업이면서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기도 하나니, 무량에 속한 사(思)이다.
혹은 업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업이 아니기도 하니, 무량에 속한 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식온(識薀)과 사(思)에 포섭되지 않은 업을 따라 옮겨 다니는 행온(行蘊)이다.
혹은 업이면서 또한 업을 따라 옮겨다니기도 하나니, 무량에 속한 신업ㆍ어업이다.
혹은 업도 아니요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도 아니니, 무량에 속한 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심불상응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무량에 속한 심불상응행이다.
몇 가지가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이면서 볼 수 있는 물질[有見色]이 아닌가 등에 대해서는, 모두를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무량에 속한 신업과 어업은 곧 만들어진 물질이면서 볼 수 있는 물질은 아니며, 나머지는 모두 만들어진 물질도 아니요 볼 수 있는 물질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