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3권
3. 수기벽지불품(授記辟支佛品)
21) 화생한 왕자가 벽지불을 성취한 인연
부처님께서는 마갈제(摩竭提) 나라에 계셨다.
그때 여러 비구들을 데리고 차례로 옮겨 다니시다가 마침 항하가에 이르러 헐어버리고 무너진 채 수리하는 사람이 없는 옛탑 한 기를 보았다.
이때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어떠한 탑이기에 이같이 헐고 무너져도 수리하는 사람이 없나이까?”
이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희들을 위해 분별 해설하겠느니라. 이 현겁(賢劫) 중에 바라날국의 범마달다(梵摩達多)라는 국왕이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림으로써, 인민들이 번성하고 매우 풍요하여 전쟁과 질병, 재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 따위의 6축(畜)이 번성하고 온갖 값진 보배가 가득하였다.
그러나 다만 자식 없는 것이 유감스러워 왕이 하늘과 땅의 신[神祇]에게 기도를 올리면서 자식을 얻으려는 정성을 다하여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때에 왕의 정원에 있는 한 못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더니 꽃잎이 열리자 한 어린아이가 결가부좌하고 앉았는데 서른두 가지 대인의 모습과 여든 가지 뛰어난 몸매를 갖추었고 입에서는 우발라(優鉢羅)꽃 향내와 털구멍에서는 전단향(栴檀香) 향내를 풍기고 있었다.
못을 지키는 사람이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자, 왕은 매우 기뻐하여, 그 후비(后妃)와 함께 정원의 못에 가서 이 아이를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곧 아이를 당겨 안으려 하자, 아이가 왕에게 게송을 읊어 말하였다.
대왕께서 왕자를 얻기 위해
항상 정성 들이심을 보았기에
대왕의 원에 따라 왕자가 되려고
이제 여기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 게송을 듣고 대왕과 후비는 물론, 모든 채녀들도 다 기뻐하여 어린아이를 안고 궁중에 돌아와 길렀다. 그가 점차 나이가 들어 자라나자, 다니는 곳마다 연꽃이 솟아나고 온몸의 털구멍에서 전단향의 냄새가 났으므로 아이의 이름을 전단향이라 했다.
이때 아이는 자신이 다니는 곳마다 연꽃이 솟아나서 처음에는 매우 선명하고 아름답다가 오래지 않아 곧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 이 몸뚱이도 마침내 저 연꽃처럼 되리라.’
그 모든 것의 덧없음을 깨닫고 곧 벽지불을 성취하여 허공에 솟아올라 열여덟 가지 변화를 일으키고는, 이내 열반에 들었다.
그러자 대왕ㆍ후비와 채녀ㆍ시종들이 모두 슬피 울면서 그 시체를 화장한 다음,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워 공양했으니, 이 옛 탑의 유래가 바로 그러하니라.”
이때 여러 비구들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벽지불은 과거세 때 어떠한 복을 심었기에 그러한 과보(果報)를 받았나이까?
원하옵건대 세존께서 부연 설명해 주시옵소서.”
이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희들을 위해 분별 해설하리라. 한량없는 과거세에 바라날국에 부처님이 출현하셨는데, 그 호를 가라가손타(迦羅迦孫陀)라고 하였다.
그 당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보를 지닌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 장자의 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 어머니와 분가하여 각각 따로 살았다.
장자의 아들이 너무나 여색을 좋아하던 차에 마침 나쁜 행위를 하기에 맞는 한 음녀를 만나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하는 대가로 돈 백 냥씩 주기로 하고 몇 해를 지냈는데 재산이 탕진되어 줄 돈이 없게 되자 음녀로부터 거절을 당하였다.
그러나 장자의 아들이 하룻밤 자기를 끈덕지게 간청하자 음녀가 말하기를,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사 주면 하룻밤 자리를 같이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때 장자의 아들이 생각하였다.
‘이제 내 재산으로는 꽃 한 송이마저 살 수 없구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법왕의 탑 속에는 반드시 좋은 꽃이 있으리니, 그 꽃을 훔쳐내어 준다면 하룻밤을 지낼 수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끝에 탑 문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문 지키는 사람이 있어 부득이 옆 구멍을 따라 엎드려 들어가서 그 좋은 꽃을 훔쳐내어 음녀와 하룻밤을 지냈다.
그러자 이튿날 새벽부터 그 사람의 온몸에 악창(惡瘡)이 생겨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 모든 용하다는 의원을 다 청해 치료할 약을 물었더니,
한 의원이 말하였다.
‘반드시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 가루를 그 악창에 발라야 나을 것이오.’
이때 장자의 아들은 또 깊이 생각했으나 집에 재물이 없으므로 곧 사택(舍宅)을 팔아 돈 60만 냥을 얻어서 곧 우두전단향 가루 여섯 냥을 사들여 곧 악창에 바르려고 하다가 그 의원에게 말하였다.
‘이제 내 병은 마음으로 일어난 것이거늘, 그대가 바깥으로 치료하려 하니 어찌 병을 낫게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고는, 그 사들인 우두전단향 가루 여섯 냥을 가지고 앞서 꽃을 훔쳐낸 탑 속에 들어가 다음과 같이 큰 서원을 세웠다.
‘여래께선 과거세에 모든 고행을 닦으시어 고액과 환난에 허덕이는 중생을 다 구제하셨거늘, 저는 이제 이 몸이 한 생의 수명에 떨어졌으니,
원컨대 세존께서 지금 이 고통 받는 저의 몸을 가엾이 여겨 악창을 제거해 주옵소서.’
이렇게 발원한 뒤에 그는 우두전단향 가루 중의 두 냥어치로 꽃값을 갚고 또 두 냥어치는 성심껏 공양하고 나머지 두 냥어치로는 깊이 참회했다.
그러자 악창이 다 없어졌으며, 나아가 온몸의 털구멍으로부터 우두전단의 향내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 향내를 맡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발원하고 떠나갔으며,
이 공덕으로 말미암아 나쁜 갈래[惡趣]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천상ㆍ인간에 태어나서 그 다니는 곳마다 좋은 연꽃이 자라나고 몸의 털구멍에 항상 향내가 있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아 두라. 그때 장자의 아들로서 전단향으로 탑에 공양한 이가 바로 앞서 말한 그 벽지불이니라.”
그때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