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비달마구사론 제21권
5. 분별수면품 ③
이와 같이 수면과 아울러 전(纏)을 세존께서 누(漏)와 폭류(瀑流) 등으로 설한 이유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그렇다면 번뇌에는 오로지 그것만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 밖의 다른 것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1)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
결(結) 등의 차별로 말미암아
다시 다섯 종류가 있다고 설하였다.
논하여 말하겠다.
즉 온갖 번뇌에는 결(結, sayojana)ㆍ박(縛, bandhana)ㆍ수면(anuśaya)ㆍ수번뇌(隨煩惱, upakleśa)ㆍ전(paryavasthāna)이라는 뜻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다시 다섯 가지 종류로 설하고 있다.
[결]
바야흐로 ‘결’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결(結)은 아홉 가지로서, 번뇌의 수[物]와 ‘취’가 동등하여
견(見)과 취(取)의 두 가지 결을 별도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두 가지는 오로지 불선이며,
아울러 자력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전(纏) 가운데 오로지 질(嫉)과 간(慳)만을
별도로 건립하여 두 가지 결로 삼은 것이다.
혹은 자주 현행하기 때문이며
비천함과 가난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며
두루 수번뇌[隨惑]를 현기하기 때문이며
두 부류의 유정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결에는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애결(愛結)이며,
둘째는 에결(恚結)이며,
셋째는 만결(慢結)이며,
넷째는 무명결(無明結)이며,
다섯째는 견결(見結)이며,
여섯째는 취결(取結)이며,
일곱째는 의결(疑結)이며,
여덟째는 질결(嫉結)이며,
아홉째는 간결(慳結)이다.1)
이 중에서 애결은 이를테면 3계의 탐(貪)을 말하며, 그 밖의 번뇌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바에 따라 그 상을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2)
견결이란 이를테면 세 가지 견(유신ㆍ변집ㆍ사견)을 말하며,
취결이란 이를테면 두 가지 취(견취ㆍ계금취)를 말한다.
이와 같은 이치에 의거하였기에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혹 견과 상응하는 법으로서 애결(즉 탐)에 계박되지만 견결에는 계박되지 않는 것이면서 여기에 견수면이 수증(隨增)하는 경우가 있는가?
있다.
어떠한 것인가?
집지(集智)가 이미 생겨나고 멸지(滅智)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 견멸ㆍ견도소단의 두 가지 취(즉 견취와 계금취)와 상응하는 법이 바로 그것이다.
즉 그러한 상응법은 [자부(즉 멸ㆍ도제)의] 애결에 소연계(所緣繫)는 될지라도 견결계(見結繫)는 되지 않으니, 변행의 견결은 이미 영원히 끊어졌기 때문이며,
비변행의 견결에는 소연과 상응의 두 수증이 다 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견수면이 수증하는 일이 있는 것은, 두 가지 취의 견수면이 거기에서 수증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근거에서 세 가지의 ‘견’을 견결로 별도로 설정하였고, 두 가지의 ‘취’를 별도로 설정하여 취결로 삼은 것인가?
세 가지 ‘견’과 두 가지 ‘취’는 번뇌의 수[物]와 취(取)가 동등하기 때문이다.3)
즉 그 같은 세 가지 ‘견’에는 열여덟 가지의 법이 있으며, 두 가지 ‘취’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번뇌의 수가 동등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세 가지 ‘견’은 다 같이 동등하게 취해지는 것[所取]이고,
두 가지 ‘취’는 다 같이 동등하게 능히 취하는 것[能取]이기 때문에 ‘취가 동등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취해지는 것’과 ‘능히 취하는 것’으로서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5견을] 두 가지의 결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어떠한 이유에서 전(纏) 가운데 ‘질’과 ‘간’ 두 가지만을 결로써 건립하고, 그 밖의 다른 전은 결이라 하지 않는 것인가?4)
이 두 가지는 오로지 불선의 번뇌로서, 자력으로 일어나는 자재기(自在起)이기 때문이다.
즉 오로지 이러한 두 가지 전만이 양쪽의 뜻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다른 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이 같은 두 가지 전만을 결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5)
그러나 전에 오로지 여덟 가지만이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해석은 그럴 수 있지만,
10전이 있다고 인정할 경우 이러한 해석은 이치에 맞지 않으니,
분(忿)과 부(覆)의 두 종류도 역시 이러한 두 가지 뜻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6)
이에 따라 만약 10전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경우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질과 간은 그 허물이 특히 더 무겁기 때문이다.
즉 이 두 종류는 자주자주 현행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 두 가지는 비천함과 빈곤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며,7)
또한 근심[戚]과 기쁨[歡]의 수번뇌를 두루 드러내기 때문이며,8)
또한 출가와 재가의 두 부류를 뇌란시키기 때문이며,9)
혹은 천중(天衆)과 아소락(阿素洛)을 뇌란시키기 때문이며,10)
혹은 인(人)ㆍ천(天)의 뛰어난 2취(趣)를 뇌란시키기 때문이며,11)
혹은 타부(他部)와 자부(自部)를 어지럽히기 때문에,12)
[10전 가운데 ‘질’과 ‘간’만을 결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또 다른 곳에서 차별문(差別門)에 근거하여 ‘결’이라고 하는 말에는 다섯 가지 종류의 번뇌가 있다고 설하신다.13)
게송으로 말하겠다.
또한 5순하분결(順下分結)이라는 것이 있는데
두 가지에 의해 욕계를 초월하지 못하고
세 가지에 의해 다시 하계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갈래[門]와 근본[根]에 포섭되기 때문에 세 가지이다.
혹은 다른 곳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도에 미혹하고 아울러 도에 대한 의심이
해탈로 나아가는 것을 능히 장애하니
그래서 오로지 세 가지를 끊으라고 설한 것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유신견과 계금취와 의(疑)와 욕탐(欲貪)과 진에(瞋恚)가 바로 그것이다.
어떠한 연유에서 이러한 다섯 가지를 ‘순하분’이라 이름한 것인가?
이러한 다섯 가지는 하분(下分)의 세계에 수순하여 증익[順益]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로지 욕계만이 ‘하분’이라는 명칭을 획득하는데, 이러한 다섯 가지는 그 같은 욕계에서만 능히 수순하여 증익하는 것이다.
즉 [이생은 비록 성법을 획득하였을지라도] 뒤의 두 가지 종류(욕탐과 진에)로 말미암아 능히 욕계를 초월하지 못하며,
설혹 능히 초월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앞의 세 가지(유신견ㆍ계금취ㆍ의)로 말미암아 다시 되돌아오니,
마치 감옥을 지키는 옥졸과 순라꾼과 같기 때문이다.14)
그런데 유여사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하분이라는 말은 이를테면 하계의 유정 즉 온갖 이생과 하계 즉 욕계를 말하는데,
앞의 세 가지는 하계의 유정을 초월하는 것을 능히 장애하며,
뒤의 두 가지는 그들로 하여금 능히 하계를 초월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순하분’이라는 명칭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15)
예류과를 획득한 모든 이는 여섯 가지 번뇌를 끊는데, 어떠한 연유에서 다만 3결만을 끊었다고 설하고 있는 것인가?16)
이치상으로는 실로 마땅히 여섯 가지 번뇌를 끊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나
[세존께서는] 갈래[門]와 근본[根]에 포섭시켰기 때문에 단지 세 가지만을 끊었다고 설한 것이다.
이를테면 [견]소단의 번뇌에는 세 종류의 유형이 있으니, 오로지 1부(部)에 의해 끊어지는 것과 2부에 통하는 것과 4부에 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종류만을 끊었다고 설하면 그러한 세 갈래를 포섭하게 되는 것이다.17)
또한 [견]소단 중의 세 가지는 세 가지에 따라 일어나니,
이를테면 변집견은 유신견에 따라 일어나고, 견취는 계금취에 따라 일어나고, 사견은 의(疑)에 따라 일어난다.
그러므로 세 가지 종류를 끊은 것에 대해서만 설하면 그러한 세 근본을 포섭하게 되는 것이다.18)
따라서 이러한 세 가지 근본을 끊었다고만 설하면 이미 여섯 가지 번뇌를 끊었다고 설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다른 지방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세 가지의 장애가 있다.
첫째는 출발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올바른 길[正道]에 미혹하여 삿된 도[邪道]에 의지하는 것이며,
셋째는 올바른 길을 의심하는 것이다.19)
이와 마찬가지로 해탈로 나아가는 자에게도 이와 서로 유사한 세 가지의 장애가 있으니,
이를테면 유신견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두려워하여 그곳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20)
계금취로 말미암아 사도(邪道)에 의지하여 올바른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의(疑)로 말미암아 도에 대해 깊은 의혹을 품는 것을 말한다.
즉 부처님께서는, 예류(預流)는 이처럼 해탈로 나아갈 때의 장애를 영원히 끊었다고 하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하셨기 때문에 세 가지 번뇌(유신견ㆍ계금취ㆍ의)만을 끊었다고 설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또 다른 경에서,
“순하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순상분(順上分)에도 역시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고 설하셨다.21)
게송으로 말하겠다.
순상분에도 역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색계ㆍ무색계의 두 가지 탐과
도거ㆍ만ㆍ무명이 바로 그것으로,
상계를 초월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종류는, 만약 그것을 끊지 못하였을 때 유정으로 하여금 능히 상계를 초월하지 못하게 하니, 상계에 수순하여 증익[順益]하는 번뇌이기 때문에 ‘순상분결’이라고 이름하였다.22)
‘결’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박]
그렇다면 박(縛)은 무엇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박(縛)은 세 가지로, 3수(受)에 의한 것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박’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탐박(貪縛)으로 일체(즉 3계 5부)의 탐을 말하며,
둘째는 진박(瞋縛)으로 일체의 진을 말하며,
셋째는 치박(癡縛)으로 일체의 치를 말한다.23)
어떠한 연유에서 이 세 가지만을 설하여 ‘박’이라 한 것인가?
3수(受)에 따라 ‘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설한 것이다.
이를테면 낙수(樂受)에서는 탐박이 수증(隨增)하니, 소연과 상응에서 다 같이 수증하기 때문이다.
고수(苦受)에서는 진박이, 사수(捨受)에서는 치박이 수증하는 것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비록 사수에서도 역시 탐박과 진박이 수증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치박의 경우와는 같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치박만이 수증한다고 설한 것이다].24)
그리고 이 같은 정설(定說)은 자상속(自相續)의 낙 등 3수가 ‘박’의 소연이 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설한 것이다.25)
‘박’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수면]
수면(隨眠)이란 무엇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수면은 앞에서 이미 논설하였다.26)
논하여 말하겠다.
수면에는 여섯 가지, 혹은 일곱 가지, 혹은 열 가지, 혹은 아흔여덟 가지가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논설한 바와 같다.
수면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수번뇌]
수번뇌(隨煩惱)란 무엇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수번뇌는 이 밖의 나머지
염오한 심소의 행온(行蘊)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이러한 온갖 번뇌(즉 수면)도 역시 수번뇌라고 이름하니, 그것들은 모두 마음에 따라 뇌란(惱亂)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7)
그러나 또한 이것과는 다른 온갖 번뇌로서 염오한 심소의 행온에 포섭되는 것이 있으니,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 역시 수번뇌(隨煩惱)라고 이름한다.
즉 이것은 근본번뇌가 아니기 때문에 ‘번뇌’라고는 이름하지 않는데,
그 상을 널리 열거할 경우 「잡사품(雜事品)」 중에서 설한 것과 같다.28)
[이러한 수번뇌에 대해서는] 뒤에서 응당 전(纏)과 번뇌구(煩惱垢)에 포섭시켜 간략히 논설하리라.
바야흐로 먼저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전’의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전(纏)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참ㆍ무괴ㆍ
질(嫉)ㆍ간(慳)ㆍ회(悔)ㆍ수면(睡眠)
그리고 도거ㆍ혼침이 바로 그것이다.
혹은 분(忿)과 부(覆)를 더한 열 가지이다.29)
무참과 간과 도거는
모두 탐에서 생겨난 것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무명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질과 분은 진(瞋)에서 일어난 것이고
회는 의(疑)로부터, ‘부’에 대해서는 여러 쟁론이 있다.
논하여 말하겠다.
근본번뇌를 역시 ‘전’이라고도 이름하니,
경에서 “욕탐의 전을 연(緣)으로 한다”고 설하였기 때문이다.30)
그런데 『품류족론』에서는 8전이 있다고 설하였지만 비바사종(毘婆沙宗)에서는 ‘전’에 열 가지가 있다고 설하고 있으니,31) 이를테면 앞의 여덟 가지에 다시 분(忿)과 부(覆)를 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해석한 바와 같다.32)
‘질(嫉)’이란, 이를테면 타인의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기뻐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간(慳)’이란, 이를테면 재시(財施)ㆍ법시(法施)의 교시(巧施:타인에게 보시하여 이익을 주는 것)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인색하여 집착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회(悔)’란 바로 악작(惡作)으로, 앞(권제4)에서 이미 분별한 바와 같다.
‘면(眠)’이란, 이를테면 마음으로 하여금 흐리멍덩[昧略]하게 함을 본성으로 하는 것으로, [이것이 일어나는 경우] 몸을 집지(執持)할 만한 공력(功力)이 없게 된다.33) 그리고 이 같은 ‘회’와 ‘면’의 두 가지 전은 오로지 염오만을 취할 뿐이다.34)
도거(掉擧)와 혼침(惛沈)도 역시 앞(권제4)에서 해석한 바와 같다.
진(瞋)과 해(害)를 제외한 것으로서, 유정과 비유정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분발(憤發)하게 하는 것을 설하여 ‘분(忿)’이라고 이름한다.35)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하는 것을 설하여 ‘부(覆)’라고 이름한다.
이상에서 설한 열 종류의 전 중에서,
무참과 ‘간’과 도거는 바로 탐의 등류(等流)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바로 무명의 등류이며,
‘질’과 ‘분’은 바로 ‘진’의 등류이며,
‘회’는 바로 의(疑)의 등류이다.36)
그런데 [‘부’의 경우] 어떤 이는 ‘부’란 바로 탐의 등류라고 설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바로 무명의 등류라고 설하였다.
혹은 어떤 이는 설하기를,
“두 가지 모두의 등류이니, 그 순서대로 앎이 있는 자와 앎이 없는 자가 바로 그러하다”고 하였다.37)
이와 같이 열 가지 종류의 전은 모두 번뇌로부터 생겨나는 번뇌의 등류이다.
그래서 그것을 ‘수번뇌’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 밖의 [수번뇌인] 번뇌구(煩惱垢)의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번뇌구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뇌(惱)ㆍ
해(害)ㆍ한(恨)ㆍ첨(諂)ㆍ광(誑)ㆍ교(憍)가 바로 그것이다.
‘광’과 ‘교’는 탐에서 생겨난 것이고
‘해’와 ‘한’은 진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며
‘뇌’는 견취로부터 일어나고
‘첨’은 온갖 견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뇌’란 이를테면 온갖 나쁜 일[罪事]에 대해 견고히 집착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충고[諫]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다.
‘해’란 이를테면 다른 유정에 대해 능히 핍박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에 의해 능히 때리고 꾸짖는 등의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한’이란 이를테면 ‘분(忿)’의 소연에 대해 자주자주 생각하여 원한을 품어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첨’이란 이를테면 마음의 아곡(阿曲)을 말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스스로를 참답게 드러내지 않게 되며, 혹은 [남의 허물을] 바로잡아 다스리지 않게 되며, 혹은 방편을 설(設)하여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게 되는 것이다.38)
‘광’이란 이를테면 다른 이를 미혹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교’에 대해서는 앞(권제4)에서 이미 해석하였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종류는 번뇌(즉 근본수면)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더럽고[穢汚] 그 상이 거칠기 때문에 ‘번뇌구’라고 이름하였다.
즉 이러한 여섯 가지 종류의 번뇌구 중에서,
‘광’과 ‘교’는 바로 ‘탐’의 등류이며,
‘해’와 ‘한’은 바로 ‘진’의 등류이며,
‘뇌’는 바로 견취의 등류이다.
그리고 ‘첨’은 바로 온갖 ‘견’의 등류이다. 예컨대,
“무엇을 아곡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온갖 악견을 말한다”고 설하였기 때문에,
‘첨’은 결정코 바로 온갖 ‘견’의 등류인 것이다.
이 같이 이러한 구(垢)와 아울러 전(纏)은 번뇌로부터 생겨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수번뇌’라는 명칭으로 설정한 것이다.
[‘구’와 ‘전’의 끊어짐]
이 같은 ‘구’와 ‘전’은 어떠한 도에 의해 끊어지게 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전’ 가운데 무참ㆍ무괴와 수면과
혼침ㆍ도거는 견소단ㆍ수소단이며
그 밖의 나머지와 번뇌구는
자력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오로지 수소단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바야흐로 10전 가운데 무참 등의 다섯 가지는 견소단과 수소단에 통하니, 이것들은 모두 2부의 번뇌와 상응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39)
따라서 견차제소단(見此諦所斷)의 근본번뇌와 상응하여 일어난 것을 설하여 견차제소단의 수번뇌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 밖의 나머지인 질ㆍ간ㆍ회ㆍ분ㆍ부와 아울러 번뇌구는 자력으로 일어나는 이른바 ‘자재기(自在起)’이기 때문에 오로지 수소단이다.
즉 오로지 타력(他力)에 의해 일어나는 수소단의 무명과 상응하기 때문에 ‘자재기’라고 이름한 것이다.40)
[수번뇌의 성질]
이 같은 수번뇌 중의 어떤 것은 어떠한 성질[性]과 통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욕계의 세 가지는 두 가지의 성질이고,
그 밖의 것은 악이며, 상계의 것은 모두 무기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욕계에 계속(繫屬)되는 수면과 혼침ㆍ도거의 세 가지는 모두 불선과 무기의 두 가지 성질과 통하며,
그 밖의 일체의 수번뇌(즉 욕계계인 일곱 가지 전과 6번뇌구)는 모두 불선이다.
상 2계 중에 상응하는 바에 따라 존재하는 일체의 수번뇌(즉 첨ㆍ광ㆍ교ㆍ혼침ㆍ도거)는 오로지 무기성에 포섭된다.
[수번뇌와 계]
이 같은 수번뇌 중의 어떤 것은 어떠한 계(界)에 계속(繫屬)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첨’과 ‘광’은 욕계와 초정려에 존재하고,
세 가지는 3계에, 그 밖의 것은 욕계에 존재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첨’과 ‘광’은 오로지 욕계와 초정려에만 존재한다.
범세(梵世, 즉 초정려)에 ‘첨’과 ‘광’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대범왕은 자신의 사정을 숨기고 아는 체하는 상을 나타내어 마승(馬勝) 필추를 속여 미혹시켰기 때문이다.41)
그리고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앞(권제4)에서 이미 분별하였을지라도 그 뜻이 상응하기 때문에 지금 다시 거듭하여 분별한 것이다.
그리고 혼침과 도거와 교(憍)의 세 가지는 다 같이 3계에 존재하며,
그 밖의 일체의 수번뇌는 모두 오로지 욕계에만 존재한다.
즉 열여섯 가지(10전과 6구) 중 다섯 가지(첨ㆍ광ㆍ혼침ㆍ도거ㆍ교)는 앞에서 분별한 바와 같고,
그 밖의 나머지 열한 가지는 오로지 욕계에만 계속되는 것이다.
[수면과 수번뇌와 식]
수면과 수번뇌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 중에서 오로지 의지(意地, 즉 제6의식계)에만 의지하여서 일어나는 것은 몇 가지이고,
6식지(識地) 모두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은 몇 가지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견소단과 만(慢)ㆍ수면(睡眠)과
자력으로 일어나는 수번뇌는 모두
오로지 의지(意地)에서만 일어나며
그 밖의 것은 모두 6식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논하여 말하겠다.
간략히 설할 것 같으면,42) 모든 견소단과, 아울러 수소단으로서 일체의 만과 수면, 수번뇌 중의 자력으로 일어나는 자재기(自在起)의 번뇌(즉 질ㆍ간ㆍ회ㆍ분ㆍ부와 6번뇌구), 이와 같은 일체의 번뇌는 모두 의식(意識)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즉 [이 같은 온갖 번뇌는] 5식신(識身)에 의지하여 일어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43)
그 밖의 일체의 번뇌는 모두 6식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즉 수소단 중의 탐ㆍ진ㆍ무명과, 아울러 그것과 상응하는 온갖 수번뇌, 이를테면 무참ㆍ무괴ㆍ혼침ㆍ도거, 그리고 그 밖의 대번뇌지법에 포섭되는 수번뇌(즉 방일ㆍ해태ㆍ불신)는 모두 6식신에 의지해야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44)
[근본번뇌와 온갖 수(受)의 상응관계]
앞(권제3)에서 분별한 바와 같은 낙(樂) 등의 5수근(受根)과 지금 여기서 밝힌 번뇌와 수번뇌 중에서 어떠한 번뇌가 어떠한 근과 상응하는 것인가?
여기서 마땅히 온갖 [근본]번뇌의 상응관계에 대해 먼저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욕계의 온갖 번뇌 가운데
탐은 희수(喜受)ㆍ낙수(樂受)와 상응하고
진은 우수(憂受)ㆍ고수(苦受)와, 치는 모두와
사견은 우수ㆍ희수와 상응한다.
의(疑)는 우수와, 그 밖의 다섯 가지는 희수와
일체의 번뇌는 사수(捨受)와 상응하며
상지의 번뇌는 모두 각기 대응하는 바에 따라
자식(自識)의 온갖 수와 두루 상응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욕계에 계속(繫屬)되는 온갖 번뇌 중에서 탐은 희수와 낙수와 상응하니, 기쁨에서 일어나고[歡行轉], 6식에 의해 두루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45)
진(瞋)은 우수와 고수와 상응하니, 근심에서 일어나고[戚行轉], 6식에 의해 두루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명은 앞의 네 가지의 수와 두루 상응하니, 기쁨과 근심에서 일어나고, 6식에 의해 두루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견은 우수와 희수 모두와 상응하니, 기쁨과 근심에서 일어나고, 오로지 의지(意地, 제6 의식)에 의해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떠한 연유에서 사견은 기쁨과 근심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순서대로 일찍이 죄업과 복업을 지었기 때문이다.46)
또한 의(疑)는 우수와 상응하니, 근심에서 일어나고, 오로지 의지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유예심(猶豫心)을 품은 자는 결정적으로 알기를 희구하여 마음이 수척해지기 때문이다.
그 밖의 [사견을 제외한] 4견과만은 희수와 상응하니, 기쁨에서 일어나고, 오로지 의지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개별적인 상[別相]에 근거하여 5수근과의 상응관계를 논설한 것이다.
이제 전체적인 상[通相]에 근거하여 5수근과의 상응관계를 논설해 보면, 일체의 번뇌는 모두 사수(捨受)와 상응한다.
모든 수면은 그 상속이 끊어지는 상태에서는 세력이 쇠퇴하고 다하여 반드시 사수에 머물기 때문이다.47)
욕계의 번뇌가 이미 그러하다면 상지(上地)에서의 경우는 어떠한가?
상지의 번뇌는 모두 각기 상응하는 바에 따라 자지(自地)의 자식(自識)과 구기하는 온갖 수(受)와 두루 상응한다.
이를테면 만약 어떤 지 중에 네 가지 식이 모두 존재할 경우, 그러한 각각의 식에 의해 일어난 번뇌는 각기 자식의 온갖 수와 상응한다.48)
또한 만약 온갖 지 중에 오로지 의식만이 존재하는 경우, 그러한 의식에 의해 일어난 번뇌는 그 같은 의식(즉 自識)의 온갖 수와 상응한다.
그리고 상계의 온갖 지 중에는 식(識)과 수(受)에 많고 적음이 있지만, 앞에서 이미 분별한 바와 같기 때문에 별도로 분별하지 않은 것이다.49)
[근본]번뇌와 온갖 수(受)의 상응관계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수번뇌와 온갖 수(受)의 상응관계]
이제 다음으로 다시 마땅히 수번뇌의 상응관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온갖 수번뇌 가운데
질(嫉)ㆍ회(悔)ㆍ분(忿)과 아울러
뇌(惱)ㆍ해(害)ㆍ한(恨)은 우수와 구기하고
간(慳)은 희수와 상응한다.
첨(諂)ㆍ광(誑)과 아울러 수면과 부(覆)는
모두 우수와 희수와 구기하며
교(憍)는 희수ㆍ낙수와, 모든 수번뇌는 사수와
그 밖의 네 가지는 모두와 두루 상응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수번뇌 가운데 ‘질’ 등의 여섯 종류(嫉ㆍ悔ㆍ忿ㆍ惱ㆍ害ㆍ恨)는 모두 다 우수근과 상응하니, 근심에서 일어나고, 오로지 의지(意地)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慳)’은 희수와 상응하니, 기쁨에서 일어나고, 오로지 의지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쁨에서 일어난다’고 함은, ‘간’의 상이 탐과 지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첨(諂)ㆍ광(誑)ㆍ면(眠)ㆍ부(覆)는 우수와 희수와 상응하니, 기쁨과 근심에서 일어나고, 오로지 의지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쁨과 근심에서 일어난다’고 함은, 이를테면
혹 어떤 때에는 환희심에서 아첨 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으며,
혹 어떤 때에는 근심과 슬픈 마음에서 그것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교’는 희수와 낙수와 상응하니, 기쁨에서 일어나고, 오로지 의지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제3정려에서의 ‘교’는 낙수와 상응하고, 그 아래의 온갖 지에서의 ‘교’는 희수와 상응한다.
그리고 위에서 설한 온갖 수번뇌는 모두 다 사수와 상응하니, 그 상속이 끊어질 때에는 모두 사수에 머물기 때문이다.
또한 기쁨과 근심 모두에서 일어나며[通行, 즉 歡行과 戚行], 오로지 사수만이 존재하는 정려지[捨地, 즉 제4정려 이상]에도 존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수가 일체의 수번뇌와 상응한다고 하여도 아무런 장애가 없을 것이니,
비유하자면 무명이 [일체의 번뇌와] 두루 상응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 밖의 무참ㆍ무괴ㆍ혼침ㆍ도거의 네 가지 수번뇌는 5수근과 두루 상응하니,
앞의 두 가지는 바로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에 포섭되기 때문이며,
뒤의 두 가지는 바로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2) 5개(蓋)
앞에서 논설한 번뇌와 수번뇌를 부처님께서는 또 다른 갈래에 의거하여 ‘개(蓋, nīvaraṇa)’라고도 설하신 일이 있으니,
이제 다음으로 마땅히 이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개’의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개(蓋)의 다섯 가지는 오로지 욕계에 존재하는데,
[혼면과 도회는] 먹이와 대치와 작용이 동일하기 때문에
비록 두 가지 번뇌이지만 한 가지로 설정한 것으로,
무루의 온을 장애하기 때문에 오로지 다섯 가지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부처님께서는 경 중에서,
“개(蓋)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욕탐개(欲貪蓋)이며,
둘째는 진에개(瞋恚蓋)이며,
셋째는 혼면개(惛眠蓋)이며,
넷째는 도회개(掉悔蓋)이며,
다섯째는 의개(疑蓋)이다”고 설하셨다.50)
여기서 설한 ‘혼(惛)’과 ‘도(掉)’와 ‘의(疑)’는 욕탐ㆍ진에ㆍ면(眠)ㆍ회(悔)처럼 오로지 욕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3계에 통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이 세 가지도 역시 오로지 욕계에 존재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계경에서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종류는 순전히 원만한 불선취(不善聚)라고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51)
즉 색계ㆍ무색계에는 불선이 존재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다섯 가지 번뇌는 순전히 불선이라고 설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오로지 욕계에만 존재할 뿐 색계ㆍ무색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52)
어떠한 이유에서 혼면과 도회의 두 ‘개’는 각기 두 가지의 번뇌를 합하여 하나로 설정하게 된 것인가?
먹이[食]와 대치[治]와 작용[用]이 동일하기 때문에 [번뇌 자체는 다를지라도] 합하여 하나의 ‘개’로 설정한 것이다.
여기서 ‘먹이’란 이를테면 [번뇌에] 먹히는 것[所食]을 말하는데, 역시 또한 자량(資糧)이라고도 이름한다.
대치란 이를테면 능히 대치하는 것으로 역시 또한 비식(非食, 즉 ‘먹히는 것’에 반대되기 때문에 ‘비식’이다)이라고도 이름한다.
그리고 작용이란 이를테면 사용(事用)을 말하는데 역시 또한 공능(功能)이라고도 이름한다.
무엇을 일컬어 혼면개의 먹이라고 한 것인가?
말하자면 다섯 종류의 법이니,
첫째는 눈꺼풀이 무거워 감기는 것[𧄼瞢]이며,
둘째는 신이 나지 않는 것[不樂]이며,
셋째는 노곤하여 하품하는 것[頻申]이며,
넷째는 너무 많이 먹어 소화가 되지 않는 것[食不平性]이며,
다섯째는 명료하게 감지하지 못하는 것[心昧劣性]이다.
무엇의 일컬어 이러한 혼면개의 비식(즉 대치)이라고 한 것인가?
이를테면 밝은 생각[光明想]이다.53)
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번뇌(惛과 眠) 작용도 역시 동일하니,
이를테면 다 같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가라앉게 하고 어둡게 하는 것이다.
도회(掉悔)는 비록 두 가지 번뇌일지라도 먹이와 비식이 동일하다.
무엇을 일컬어 도회개의 먹이라고 한 것인가?
이를테면 네 종류의 법이니,
첫째는 친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親里尋]이며,
둘째는 고국에 대해 생각하는 것[國土尋]이며,
셋째는 죽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不死尋]이며,
넷째는 옛날에 겪었던 여러 가지 희롱과 환락과 친구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컬어 이 개의 비식이라고 한 것인가?
이를테면 사마타(奢摩他, śamatha,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는 선정, 止로 번역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번뇌(掉와 悔)의 작용도 역시 동일하니, 다 같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54)
이에 따라 먹이와 대치와 작용이 동일하기 때문에 혼침(惛沈)과 수면(睡眠), 도거(掉擧)와 추회(追悔)의 두 가지 번뇌를 합하여 하나의 ‘개’로 설하게 된 것이다.
모든 번뇌에는 다 ‘개(蓋, nīvaraṇa)’의 뜻이 있는데,55) 어째서 여래께서는 오로지 이 다섯 가지만을 ‘개’라고 설하신 것인가?
오로지 이것만이 5온에 대해 능히 뛰어난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56)
즉 욕탐개와 진에개는 능히 계온(戒蘊)을 장애하며,
혼침과 수면은 능히 혜온(慧蘊)을 장애하며,
도거와 악작(惡作, ‘회’의 다른 명칭)은 능히 정온(定蘊)을 장애한다.57)
그리하여 정온과 혜온이 없기 때문에 4제(諦)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나아가 의심으로 말미암아 능히 해탈온(解脫蘊)과 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을 모두 능히 일으키지 못하게 되니,
그래서 오로지 이 다섯 가지만을 건립하여 ‘개’로 삼았던 것이다.
만약 경의 뜻을 이와 같이 해석할 것 같으면 이치상 도회개는 마땅히 혼면개 앞에 설해야 할 것이니,
필시 정(定)에 의거하여 비로소 혜(慧)가 생겨나며,
정온의 장애도 역시 마땅히 혜온의 장애보다 선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이와 같은 이치에 따라 유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러한 5개 중에서 혼면과 도회는 각기 순서대로 정온과 혜온을 능히 장애한다.
이에 따라 계경에서는,
‘등지(等持)를 닦는 자는 혼면을 두려워하고, 택법(즉 지혜)을 닦는 자는 도회를 두려워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58)
나아가 유여사는 오로지 이 다섯 가지만을 [‘개’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달리 설하고 있다.
그의 설은 어떠한가?
이를테면 [어떤 비구가 걸식 등을 위해] 밖으로 나돌아다니면서[行位] 먼저 색 등의 여러 대상에 대해 애탐하고 증오할 만한 두 종류의 상(이를테면 미녀나 무뢰한)을 취하였기 때문에 그 후 입실[住位]하고 있는 동안 앞서 취하였던 상을 원인으로 삼아 욕탐과 진에의 두 가지 ‘개’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개는 능히 입정(入定)하려는 마음을 장애하며,
이로 말미암아 그 후 바로 입정에 든 상태에서도 지(止, 즉 사마타)와 관(觀, 즉 毘鉢舍那)을 능히 올바로 닦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혼면과 도회를 일으키고, 그 순서대로 사마타와 비발사나를 장애하여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그 후 출정(出定)한 상태에서 법을 사택할 때 의혹[疑]이 다시 그것을 장애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다섯 가지 번뇌만을 ‘개’로 건립하게 된 것이다.
3) 번뇌의 끊어짐
[온갖 혹의 끊어짐]
여기서 [온갖 수면은 혜(慧)에 의해 그 소연을 관찰할 때 끊어진다 할지라도] 타계(他界)의 변행과, 견멸ㆍ견도소단인 유루연의 온갖 혹(惑)은 그것이 끊어지는 상태에서는 그것의 소연을 알지 못하며,
그것의 소연을 알 때에는 그것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마땅히 사택(思擇)해 보아야 할 것이다.59)
그렇다면 이와 같은 온갖 혹(惑)은 어떠한 원인에 의해 끊어지는 것인가?
요컨대 소연을 변지(遍知)하는 것만으로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혹은 모두 몇 가지 원인에 의해 끊어지는 것인가?
네 종류의 원인에 의해 끊어진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소연을 변지(遍知)하였기 때문에
그것의 능연(能緣)을 끊었기 때문에
그것의 소연을 끊었기 때문에
대치도가 일어났기 때문에 끊어진다.
논하여 말하겠다.
바야흐로 견소단의 혹은 [본송에서 언급한] 앞의 세 가지 원인에 의해 끊어진다.
첫 번째는 소연(즉 고제ㆍ집제와 멸제ㆍ도제)을 변지함으로 말미암아 끊어지니, 이를테면 견고ㆍ견집소단으로서 자계연(自界緣)의 혹과 아울러 견멸ㆍ견도소단의 무루연혹이 바로 그러하다.60)
두 번째는 그것의 능연(能緣)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끊어지니, 이를테면 견고ㆍ견집소단인 타계연의 혹이 바로 그러하다.
즉 자계연의 혹은 그 같은 타계연의 혹에 대해 능히 연이 되므로, 만약 능연이 끊어진다면 그것도 따라서 끊어지기 때문이다.61)
세 번째는 그것의 소연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끊어지니, 이를테면 견멸ㆍ견도소단의 온갖 유루연의 혹이 바로 그러하다.
즉 무루연의 혹은 능히 그것의 경계가 되므로, 만약 소연이 끊어진다면 그것도 따라 끊어지기 때문이다.62)
그러나 만약 수소단의 혹인 경우, 그것은 [본송에서 언급한] 뒤의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끊어진다.
즉 그것은 다만 네 번째인 ‘대치도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끊어지니,’ 만약 이러한 품류의 대치도가 생겨날 때 이러한 품류의 온갖 혹은 단박에 끊어지기 때문이다.
어떠한 품류의 온갖 혹은 어떠한 도에 의해 대치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상상품으로 존재하는 온갖 혹은 하하품의 도가 능히 대치하며, 내지는 하하품으로 존재하는 온갖 혹은 상상품의 도가 능히 대치하니,63) 이와 같은 이치에 대해서는 마땅히 뒤(권제23)에서 다시 널리 분별하리라.
[대치의 종류]
앞에서 말한 대치(對治)에는 모두 몇 가지의 종류가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대치에는 모두 네 가지 종류가 있으니
단(斷)ㆍ지(持)ㆍ원(遠)ㆍ염(厭)이 바로 그것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대치의 갈래에는 모두 네 가지의 종류가 있다.
첫째는 단대치(斷對治)이니, 이를테면 무간도(無間道)를 말한다.
둘째는 지대치(持對治)이니, 이를테면 이 같은 무간도 후의 도로서, 이 도는 능히 이 같은 끊어짐[斷]의 득(得)을 임지(任持)하기 때문이다.64)
셋째는 원분대치(遠分對治)이니, 이를테면 해탈도 이후에 존재하는 도로서, 이 도는 능히 이같이 끊어진 혹의 득(得)을 더욱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역시 해탈도도 그러하니(원분대치이니), 해탈도도 그것(승진도)처럼 능히 이같이 끊어진 혹의 득을 더욱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넷째는 염환대치(厭患對治)이니, 이를테면 어떤 계(界)의 과실을 관찰하였을 경우 깊은 염환을 낳게 하는 도를 말한다.65)
그런데 이러한 대치에 관한 논설이 선설(善說)이 되고자 한다면 이치상 실로 다음과 같은 순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첫째가 염환대치이니, 이를테면 고제(苦諦)ㆍ집제(集諦)를 연으로 하여 가행도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둘째가 단대치이니, 일체(즉 4제)를 연으로 하여 무간도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셋째가 지대치이니, 이를테면 일체를 연으로 하여 해탈도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넷째가 원분대치이니, 이를테면 일체를 연으로 하여 승진도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66)
[영원한 끊어짐]
온갖 혹(惑)의 영원한 끊어짐[永斷]은 결정적으로 무엇에 따라 끊어지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소연에 따라서
가히 온갖 혹(惑)이 끊어지게 되는 것임을.
논하여 말하겠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온갖 혹의 득이 영원히 끊어졌을 때라도 그것(혹)으로 하여금 상응법을 떠나게 할 수는 없으며,
다만 그것을 소연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할 수 있을 뿐이니, 소연에서 다시는 생겨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67)
미래의 혹을 끊는 이치는 바야흐로 그럴 수 있으니, 경계(대상)에서 다시는 생겨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과거의 온갖 혹의 끊어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해야 할 것인가?
만약 본송에서 ‘소연에 따라서’라고 하는 말을 설한 것이,
[단순히 소연상에 능연의 혹을 더 이상 생겨나지 않게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소연을 변지(遍知)하였기 때문에 [온갖 혹을] 끊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역시 이치에 맞지 않으니, 결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68)
이 같은 사실로 말미암아 번뇌 등의 끊어짐은 결정적으로 무엇에 따라 끊어지는 것인가에 대해 마땅히 이같이 설해야 할 것이다.
자상속 중의 번뇌 등은 그것의 득(得)이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타상속 중의 온갖 번뇌와 일체의 색(즉 선ㆍ불선ㆍ무기색)과 불염오법(비색의 유루선이나 무부무기)은 그것을 연으로 하는 자상속 중의 온갖 혹이 완전히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끊어진다.69)
[원분대치의 멀리하는 것의 종류]
앞에서 언급한 원분대치의 원성(遠性, 멀리 있는 것)에는 모두 몇 가지의 종류가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원성에는 네 가지의 종류가 있으니
상(相)ㆍ치(治)ㆍ처(處)ㆍ시(時)가 바로 그것으로
예컨대 그것들은 대종과 시라(尸羅)와
다른 처소와 두 가지 시간[二世] 따위와 같다.
논하여 말하겠다.
전(傳)하여 설(說)하기를,
“원성에는 모두 네 가지의 종류가 있다.
첫째는 상원성(相遠性)으로,
이를테면 4대종이 비록 다 같이 동일 취(聚) 중에 생겨나 있을지라도 그 상(相)이 다르기 때문에 역시 ‘멀리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둘째는 치원성(治遠性)으로,
이를테면 계를 지니거나 범하는 것이 비록 다 같이 동일한 소의신 중에서 이루어지고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서로 대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역시 ‘멀리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셋째는 처원성(處遠性)으로,
동서의 바다가 다 같이 동일한 세계 중에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방처(方處)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역시 ‘멀리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넷째는 시원성(時遠性)으로,
이를테면 과거와 미래의 두 가지 시간[世]은 다 같이 동일한 존재[一法]에 의거하여 설정된 것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역시 ‘멀리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시원성에서] 무엇에 근거하여 ‘멀리 있는 것’이라고 설한 것인가?
(논주의 물음)
현재세에 근거하여 [‘멀리 있는 것’이라고] 설하였다.
(유부의 답)
그렇다면 무간에 이미 멸한 때[已滅時]나 바로 생겨나는 때[正生時]는 현재와 서로 인접한 것인데,70) 어떻게 ‘멀리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논주의 힐난)
3세의 성질[世性]이 다르기 때문에 ‘멀리 있는 것’이라고 이름한 것으로,
과거[曾]와 미래[當]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비로소 ‘멀리 있는 것’이라고 일컬은 것은 아니다.
(유부의 답)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현재세도 역시 마땅히 ‘멀리 있는 것’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니, 과거ㆍ미래세와 비교하면 그 성질이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와 미래의 법은 작용을 갖지 않으며, 작용을 떠났기 때문에 그것을 일컬어 ‘멀리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온갖 무위법에도 작용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가까이 있는 것[近]’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인가?71)
만약 현재세에 무위를 두루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면, 과거ㆍ미래의 2세의 경우도 역시 그러해야 할 것이다.72)
그리고 허공무위와 같은 것을 어떻게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이름할 수 있을 것인가?73)
만약 다시 과거와 미래세를 서로 견주어 볼 때 현재세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멀리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현재세를 [과거와 미래의] 2세와 견주어 보면 다 같이 극히 서로 인접해 있으며,
[또한 역시] 무위는 [시간적] 간격이 없기 때문에 모두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과거ㆍ미래도 현재세와 인접해 있으며 서로 견주어 볼 경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응당 마땅히 [‘멀리 있는 것’, ‘가까이 있는 것’이라는] 두 가지 명칭으로 일컬어야 하지 한결같이 ‘멀리 있는 것’이라고 일컬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정리(正理)에 의거하여 설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과거와 미래는 법의 자상(自相)을 떠났기 때문에 ‘멀리 있는 것’이라 이름한다고 해야 할 것이니,
미래는 아직 법의 자상을 획득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과거는 이미 법의 자상을 버렸기 때문이다.74)
그리고 [본송에서의] ‘따위’라고 말한 것은 멀리 있는 법의 예를 아직 다 열거하지 않았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혹(惑)은 대치도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끊어진다]
앞에서 혹(惑)은 대치도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끊어진다고 말하였는데,
그럴 경우 도가 승진(勝進)할 때에는 끊어진 온갖 혹이 다시 끊어진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인가?
[만약 전자일 경우] 획득된 이계(離繫)가 거듭 획득되는 일이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온갖 혹이 다시 끊어지는 일은 없지만
이계는 거듭 획득되는 경우가 있으니
대치가 생겨나고 과위(果位)를 획득하며
근기를 단련하는 등의 여섯 때 중에 그러하다.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혹(惑)은, 만약 그것을 능히 끊는 도[能斷道]를 획득하게 되면 그러한 도로 말미암아 이러한 혹은 단박에 끊어지며, 필시 그 후 다시 이러한 혹을 끊는 일은 없다.75)
그러나 획득된 이계(離繫)는 비록 도에 따라 점차 보다 뛰어난 이계로 나아가는 일[勝進]은 없을지라도, 도가 승진할 때 그같이 뛰어난 이계의 득을 거듭하여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76)
앞에서 말한 ‘거듭하여 획득되는 경우’는 모두 몇 때에 성취되는 것인가?
모두 여섯 때에 성취된다.
무엇이 여섯 때인가?
이를테면 대치의 도가 일어나는 때와 사문의 과위(果位)를 획득하는 때와 근기를 단련[練根]하는 때이다.
여기서 ‘대치도가 일어나는 때’란 이를테면 해탈도가 일어나는 때를 말한다.77)
‘과위를 획득하는 때’란 이를테면 예류ㆍ일래ㆍ불환ㆍ아라한의 과위를 획득할 때를 말한다.
‘근기를 단련하는 때’란 이를테면 전근(轉根) 즉 근기를 바꾸는 때를 말한다.78)
바로 이러한 여섯 때 중에서 온갖 혹의 이계는 도의 승진(勝進)에 따라 거듭하여 뛰어난 득[勝得]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온갖 이계는 상응하는 바에 따라 여섯 때에 모두 뛰어난 득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으며,
내지는 오로지 두 때에만 뛰어난 득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욕계에 계속되는 견4제단(見四諦斷)과 색계ㆍ무색계의 견3제단에 의한 이계의 득은 여섯 때에 모두 획득되며,79) 색계ㆍ무색계의 견도제단에 의한 이계의 득은 오로지 다섯 때에 획득되니,
대치도가 생겨나는 때가 바로 과위(즉 예류과)를 획득하는 때이기 때문에 마땅히 이를 두 때로 나누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욕계 수단(修斷)에 의한 5품의 이계의 득도 역시 다섯 때에 획득되니, 예류과를 획득하는 때가 제외되기 때문이다.80)
제6품의 이계(즉 일래과)의 득은 오로지 네 때에 획득되니,
이를테면 앞의 다섯 때에서 한 때를 제외한 것이 바로 그것으로, 과위를 획득하는 때와 대치도가 생겨나는 때의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7ㆍ제8품의 이계의 득도 역시 네 때에 획득되니, 과위를 획득하는 네 때 중에서 앞의 두 때(즉 예류와 일래과를 획득하는 때)를 제외하였기 때문이다.
제9품의 이계(즉 불환과)의 득은 오로지 세 때에 획득되니, 이를테면 앞의 네 때 중에서 역시 한 때를 제외한 것이 바로 그것으로, 역시 대치도가 생겨나는 때가 바로 과위를 획득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색계ㆍ무색계의 수소단 중에서 오로지 유정(有頂)의 제9품의 이계를 제외한 그 밖의 이계(즉 아라한향)의 득도 역시 오로지 세 때에 획득되니, 과위를 획득하는 네 때 중에서 앞의 세 때를 제외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정의 제9품의 이계(즉 아라한과)의 득은 오로지 두 때에 획득되니, 이를테면 앞의 세 때 중에서 다시 한 때를 제외한 것이 바로 그것으로, 역시 대치도가 생겨나는 때가 바로 과위를 획득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바야흐로 있을 수 있는 이치에 대해 논설한 것이다.81)
그러나 만약 이근자(利根者)일 경우, 앞서 언급한 온갖 상태 중에서 각기 모두 근기를 단련[練根]할 때의 획득이 제외되기 때문에 [한 때를 빼야 한다].82)
또한 유정으로서 초월하여 성도(聖道)에 들어가는 자는83) 상응하는 바에 따라 예류과 등을 제외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계의 득을 거듭하여 획득하는 때는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끊어짐의 상태, 변지]
모든 이계는 각각의 상태 중에서 ‘변지(遍知)’라고 하는 명칭을 획득한다.84)
변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지변지(智遍知)이며,
둘째는 단변지(斷遍知)이다.
지변지란 이를테면 무루지를 말하고,
단변지란 이를테면 온갖 [번뇌의] 끊어짐[斷]을 말하는데,
이는 결과상에 원인의 명칭을 설정한 것이기 때문이다.85)
만약 그렇다면 일체의 끊어짐, 즉 ‘단(斷)’을 하나의 변지로 설정해야 하는 것인가?86)
그렇지 않다.
그러면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단변지에는 아홉 가지가 있으니
욕계의 처음 2부(部)의 끊어짐이 그 하나이고
다음 2부의 끊어짐에 각기 하나씩 있어 합하여 셋이 되며
상계의 세 가지도 역시 그러하다.
그 밖의 5순하분결과,
색과, 일체 번뇌의 끊어짐의 세 가지가 있다.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끊어짐[斷]에는 모두 아홉 가지 종류의 변지를 설정하니,87)
이를테면 3계에 계속되는 견제소단의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 여섯 가지 변지를 설정하고,88)
그 밖의 3계에 계속되는 수도소단의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 세 가지 변지를 설정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3계에 계속(繫屬)되는 견제소단(見諦所斷)의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 여섯 가지 변지를 설정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욕계에 계속되는 처음 2부(部)의 끊어짐에 하나의 변지를 설정하니, 여기서 ‘처음의 2부’라고 하는 말은 견고소단과 견집소단을 의미한다.
다음의 2부에는 각기 하나의 변지를 설정하니, ‘다음의 2부’란 말은 견멸소단과 견도소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하여 욕계의 견제소단의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 세 가지 변지를 설정하였다.
욕계에 세 가지 변지를 설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상계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니,
이를테면 색ㆍ무색의 2계에 계속되는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도 역시 처음 2부의 끊어짐에 하나의 변지를 설정하고,
다음 2부의 끊어짐에도 각기 하나의 변지를 설정하여 도합 세 가지가 된다.
즉 견고ㆍ견집소단과 견멸소단과 견도소단의 법의 끊어짐에 [각기 하나의 변지를 설정하여] 도합 세 가지의 변지를 설정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와 같은 변지를 일컬어 3계의 견제소단의 법(즉 번뇌)이 끊어지는 여섯 가지 종류의 변지라고 하는 것이다.89)
그 밖의 3계에 계속되는 수도소단(修道所斷)의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 세 가지 변지를 설정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욕계에 계속되는 수도소단의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 한 가지의 변지를 설정하니,
이는 바로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五順下分結盡遍知]’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으로, 앞의 끊어짐(즉 견혹의 諸斷)과 아울러 함께 설정하였기 때문이다.90)
색계에 계속되는 수도소단의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도 한 가지의 변지를 설정하니,
이는 바로 ‘색애가 다하는 변지[色愛盡遍知]’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색계에 계속되는 수도소단의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도 한 가지의 변지를 설정하니,
이는 바로 ‘일체의 결이 영원히 다하는 변지[一切結永盡遍知]’로서, 이것 역시 앞의 것과 합하여 하나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변지를 일컬어 3계의 수도소단의 법이 끊어지는 세 가지 종류의 변지라고 하는 것이다.
어떠한 인연에서 색계ㆍ무색계의 수도소단의 번뇌 따위의 끊어짐에는 변지를 달리 설정하였으면서 견도소단의 경우에는 달리 설정하지 않은 것인가?
수소단은 그 대치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91)
이상과 같이 설정된 아홉 종류의 변지에 대해 마땅히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그 중의 몇 가지는 어떠한 도의 결과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이 가운데 인(忍)의 결과는 여섯 가지이며
그 밖의 세 가지는 바로 지(智)의 결과이다.
미지정의 결과는 일체의 변지이며
근본정의 결과는 다섯 가지, 혹은 여덟 가지이며
무색계 변정(邊定, 즉 근분정)의 결과는 한 가지이며
세 가지 근본정도 역시 그러하다.
세속도와 성도의 결과는 두 가지와 아홉 가지이고
법지와 유지의 결과는 세 가지와 두 가지이며
법지품의 결과는 여섯 가지이고
유지품의 결과는 다섯 가지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이러한 9변지 중에서 바야흐로 먼저 인도(忍道)와 지도(智道)의 결과가 되는 변지의 차별부터 분별하리라.
‘인’의 결과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3계에 계속되는 견제소단법의 끊어짐인 여섯 가지 종류의 변지가 바로 그것이다.
‘지’의 결과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순하분결과 색애(色愛)와 일체의 결(結)이 다하는 변지가 바로 그것이다. 즉 이 같은 세 가지 변지는 바로 수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92)
어떻게 ‘인’의 결과를 설하여 변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모든 ‘인’은 다 ‘지’의 권속이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왕의 권속을 일시 왕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혹은 ‘인’과 ‘지’는 동일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93)
이제 다음으로 정려지의 권속과 근본의 결과가 되는 변지의 차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미지정려의 결과는 9변지 모두이니, 말하자면 이것을 근거로 하여 3계의 견소단ㆍ수소단의 번뇌 따위를 능히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정려의 결과에는 다섯 가지, 혹은 여덟 가지가 있다.
다섯 가지라고 말한 것은 비바사사(毘婆沙師)의 설로서, 근본정려지만이 오로지 능히 색계와 무색계에 포섭되는 번뇌 따위를 영원히 끊을 수 있기 때문이며,
욕계에 계속되는 번뇌 따위의 끊어짐을 그들은 오로지 미지정의 결과라고 인정하였기 때문이다.94)
여덟 가지라고 말한 것은 존자 묘음(妙音)의 설이다.
즉 근본정려지도 역시 욕계의 온갖 번뇌 따위에 대해 단대치가 되니, 온갖 유정으로서 일찍이 욕계의 염오를 떠난 자가 근본정려지에 의거하여 견제(見諦)에 들 때 욕계에 계속되는 견소단의 법을 끊는 별도의 도가 무루의 득을 인기한다고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에 따라 이것(욕계의 세 가지 단변지)도 역시 그러한 견도의 결과이지만 ‘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만은 제외되니,
그것은 오로지 미지정의 결과이기 때문으로, [근본정려에서] 그것의 단대치를 닦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95)
그리고 중간정려의 경우는 근본정려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제 다음으로 무색지의 권속(즉 공무변처의 近分地)과 근본(3무색정)의 결과가 되는 변지의 차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색계의 변지(邊地, 즉 공무변처의 근분지)의 결과에는 오로지 한 가지만이 있으니,
이를테면 공무변처의 근분지의 도에 의해 ‘색애가 다하는 변지’의 결과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의 세 근본정(공무변처ㆍ식무변처ㆍ무소유처)의 결과도 역시 오로지 한 가지뿐이니,
이를테면 무색의 앞의 세 근본정에 의해 ‘일체의 결이 영원히 다하는 변지’의 결과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으로 세속도와 성도의 결과가 되는 변지의 차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속도의 결과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세속도의 힘은 오로지 순하분결과 색애가 다하는 변지의 결과만을 능히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96)
성도의 결과는 아홉 가지이니, 이를테면 성도의 힘은 3계의 법을 능히 두루 영단(永斷)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으로 법지(法智)와 유지(類智)의 결과가 되는 변지의 차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법지의 결과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법지의 힘은 3계의 수소단의 번뇌를 능히 끊을 수 있기 때문에 뒤의 세 가지 결과(수소단의 세 변지)를 획득하는 것이다.
유지의 결과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 유지의 힘은 단지 색계ㆍ무색계의 수소단의 번뇌만을 능히 끊을 수 있기 때문에 뒤의 두 가지 결과를 획득하는 것이다.97)
이제 다음으로 법지와 유지의 동일한 품류로서의 온갖 도의 결과가 되는 변지의 차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법지품의 결과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는 바로 앞에서 언급한 법지와 법지인에 의해 획득되는 여섯 가지의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유지품의 결과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이는 바로 앞에서 언급한 유지와 유지인에 의해 획득되는 다섯 가지의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98)
즉 여기서 ‘품’이라는 말은 지(智)와 인(忍)을 모두 포섭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각각의 끊어짐에 별도로 변지를 설정하지 않고 오로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아홉 가지 상태에 대해서만 설정하게 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무루 단(斷, 즉 이계)의 득을 획득하고
아울러 제일유(第一有, 즉 有頂)를 결여하며
두 원인을 멸하고, 계(界)를 초월하는 것으로
그래서 아홉 가지의 변지를 설정하게 된 것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유루법의 끊어짐에는 비록 다수의 실체(즉 택멸)와 상태가 있을지라도 네 가지 조건으로 말미암아 아홉 가지 변지를 설정하게 된 것이다.99)
바야흐로 세 가지 조건으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인(忍)의 결과를 변지로 설정하였으니,
[세 가지 조건이란] 이를테면 무루의 이계득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며,
유정(有頂)을 결여하였기 때문이며,
두 가지의 원인[雙因]을 멸하였기 때문이다.100)
온갖 끊어짐으로서 요컨대 이와 같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춘 것은 ‘변지’라는 명칭으로 설정하지만, 그것을 결여할 경우 변지라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이생위에서는 두 가지 원인을 멸하였을지라도 무루단의 득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정(有頂)을 결여하지 않았기 때문에(즉 하 8지의 염오만을 떠났기 때문에) 비록 그 역시 끊어짐을 획득하였을지라도 변지라고는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성자위 중에서도 견제(見諦)에 들고부터 고류지인(苦類智忍)이 현행하기 전까지는 이미 무루도의 득을 획득하였을지라도 아직 유정을 결여하지 않았고, 아직 두 가지 원인을 멸하지 않았으며,
고류지(苦類智)와 집법지인(集法智忍)의 단계에 이른 경우 역시 비록 유정을 결여하였을지라도 아직 두 가지 원인을 멸하지 않았고,
아직 견집소단의 온갖 변행인을 멸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지라고는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의 법지와 유지의 단계에 이르러 획득된 온갖 끊어짐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상태를 변지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101)
다 같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세 가지 지(智, 즉 변지)를 결과로 설정한 것으로,
[네 가지 조건이란] 이를테면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조건에 ‘계를 초월[越界]하기 때문에’를 더한 것이다.
여기서 ‘계를 초월하였다’고 하는 말은 이러한 계(界) 중의 번뇌 따위의 법을 모두 완전히 떠났기 때문에 그같이 말한 것이다.102)
그런데 어떤 이는 ‘구계를 떠나는 것[離俱繫]’도 역시 하나의 조건으로 설정하기 때문에 변지를 설정하는 조건에는 모두 다섯 가지가 있다.
여기서 ‘구계를 떠나는 것’이라고 함은, 이를테면 이것이 비록 끊어졌을지라도 아직 변지를 설정하지 않으며,
요컨대 그 밖에 이러한 경계를 소연으로 하는 혹을 끊을 때 비로소 건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103)
그러나 이러한 구계를 떠나는 것은 ‘두 가지 원인을 멸하고 아울러 계를 초월하였다’는 조건과 그 작용상에 어떠한 차별도 없기 때문에 비록 의미상으로는 다를지라도 별도로 설해서는 안 된다.104)
그렇지만 비록 계를 초월하는 단계에서는 두 가지 원인을 멸할지라도 두 가지 원인이 멸할 때에는 모두 계를 초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두 가지 원인을 멸하였다’는 조건 이외에 별도로 ‘계를 초월하였다’는 조건을 설정한 것이다.
즉 3지(地, 상 2계의 하 3지)의 두 가지 원인을 멸하였을지라도 변지로 설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105)
그렇다면 누가 몇 가지의 변지를 성취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견제위(見諦位)에 머무는 자는 성취하는 일이 없든지
혹은 한 가지에서 다섯 가지를 성취하고
수도위에서는 여섯 가지와 한 가지와 두 가지를 성취하며
무학위에서는 오로지 한 가지만을 성취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이생(異生)은 결정코 변지를 성취하는 일이 없다.
만약 견제위(見諦位, 즉 견도)에 머무는 온갖 성자로서 첫 번째 견도(즉 고법지인)로부터 집법지인의 찰나에 이른 자라면 온갖 변지를 역시 성취하지 못하며,
집법지와 집류지인의 찰나에 이른 자라면 오로지 한 가지(욕계 견고ㆍ견집단변지)만을 성취하며,
집류지와 멸법지인의 찰나에 이른 자라면 바로 두 가지(앞의 변지와 색계ㆍ무색계의 견고ㆍ견집단변지)를 성취하며,
멸법지와 멸류지인의 찰나에 이른 자라면 바로 세 가지(앞의 두 가지 변지와 욕계의 견멸단변지)를 성취하며,
멸류지와 도법지인의 찰나에 이른 자라면 바로 네 가지(앞의 세 가지 변지와 색계ㆍ무색계의 견멸단변지)를 성취하며,
도법지와 도류지인의 찰나에 이른 자라면 바로 다섯 가지(앞의 네 가지 변지와 욕계의 견도단변지)를 성취한다.
수도위에 머무는 자로서 도류지에서 시작하여 아직 욕계의 염오를 완전히 떠나지 않은 자와, 아울러 욕계의 염오를 떠났다가 물러난 자는 모두 여섯 가지(앞의 다섯 변지와 색계ㆍ무색계의 견도단변지)를 성취한다.106)
욕계를 완전히 떠났으나 아직 색애를 다하지 않았거나107) 혹은 일찍이 욕계를 떠난 자로서 도류지로부터 나아가 색애를 다하는 승과도(勝果道)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단계에 있는 자는 오로지 한 가지의 변지만을 성취하니, 이를테면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이다.108)
그리고 색애를 다한 자와, 아울러 무학위에 있던 자가 색계의 전[色纏]을 일으켜 그것으로부터 물러나는 자도 역시 한 가지만을 성취하니, 앞에서와 같다.
색애를 가진 자로서 색애를 영원히 다한 자와, 일찍이 색애를 떠난 자로서 색애를 다하는 도를 일으킨 때로부터 아직 무색애를 완전히 떠나기 전까지의 단계에 있는 자는 5순하분결이 다하고 색애가 다하는 두 가지 변지를 성취한다.109)
무학위로부터 물러나 무색계의 전을 일으키는 자도 두 가지의 변지를 성취하니, 그 명칭은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그리고 무학위에 머무는 자는 오로지 한 가지의 변지만을 성취하니, 이를테면 일체의 결이 영원히 다하는 변지이다.
어떠한 연유에서 불환과(不還果)와 아라한과(阿羅漢果)의 경우에는 온갖 번뇌의 끊어짐을 모두 모아 한 가지 변지로 설정한 것인가?110)
게송으로 말하겠다.
계를 초월하고, 과위를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두 곳에서는 변지를 모두 하나로 모은 것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두 가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일체 번뇌의 끊어짐을 모두 모아 한 가지 변지로 건립한 것이니,
첫 번째는 계를 초월하는 것[越界]이며,
두 번째는 과위를 획득하는 것[得果]이 바로 그것이다.111)
즉 오로지 그 같은 두 과위에서만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그러한 과위의 변지를 모두 모아 한 가지 변지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변지를 버리고 획득하는 것]
누가 몇 가지 종류의 변지를 버리고 획득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한 가지와 두 가지와 다섯 가지와 여섯 가지를 버리며,
획득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나 다섯 가지만은 제외된다.
논하여 말하겠다.
‘한 가지의 변지를 버린다’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무학과, 색애가 다한 상태[色愛盡]와 욕계의 혹에서 완전히 떠난 상태[全離欲]로부터 물러나는 자가 그러하다.112)
‘두 가지의 변지를 버린다’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온갖 불환이 욕계의 전(纏)을 일으켜 색애가 다한 상태로부터 물러나는 때와, 아울러 그가 아라한과를 획득하는 때가 그러하다.113)
‘다섯 가지 변지(즉 견도소단의 앞의 다섯 변지)를 버린다’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일찍이 욕계를 떠난 자가 그 후 견제(見諦) 도류지에 들 때 5순하분결이 다하는 변지를 획득하고서 앞의 다섯 가지 변지를 버리기 때문이다.114)
‘여섯 가지 변지를 버린다’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아직 욕계를 떠나지 못한 성자가 욕계를 떠날 때가 그러하다.115)
‘획득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고 함은,
이를테면 한 가지를 획득하고, 두 가지를 획득하고, 여섯 가지를 획득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로서, 다만 다섯 가지를 획득한다는 것은 제외된다.
‘한 가지 변지를 획득한다’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아직 획득하지 못한 변지를 획득하는 때와, 아울러 무학이 색계의 전(纏)을 일으켜 그것으로부터 물러날 때가 그러하다.116)
‘두 가지 변지를 획득한다’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무학이 무색계의 온갖 전을 일으켜 그것으로부터 물러날 때가 그러하다.117)
‘여섯 가지 변지를 획득한다’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불환과로부터 물러날 때가 그러하다.118)
이상 수면(隨眠)을 분별함으로써 제기된 그것의 끊어짐[斷]에 대한 분별을 마친다.
|